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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내 영혼은 강제로 구진혁에게 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한때 내가 살던 집이었지만 이제 내 흔적은 없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백윤아와 구진혁이 함께 생활한 흔적들뿐이었다.

“왔어?”

백윤아는 구진혁이 돌아오자마자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구진혁은 그녀를 부드럽게 품에 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참 따뜻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친밀한 행동을 구진혁은 나에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손 아직도 아파?”

구진혁이 물었다.

백윤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괜찮아!”

구진혁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또 나 몰래 진통제 먹은 거 아니지?”

“그때 강해월에게 너무 많이 찔려서 지금도 후유증으로 앓고 있는 거잖아.”

나는 허공에 떠서 변명하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고,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백윤아의 거짓말 하나로 나를 그렇게 쉽게 단정 짓다니.

구진혁은 나를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그에게 백윤아라는 첫사랑이 있는 줄도 몰랐다.

졸업하던 해에, 백윤아는 구진혁과 결별하고 재벌 2세와 함께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구진혁을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함께한 후 그는 나를 정말 잘 챙겨주었고 내 친구들도 그를 완벽한 남자친구라고 칭찬했다.

나조차도 우리는 쭉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던 그해에 백윤아가 돌아왔다.

그 후로 구진혁은 우리 관계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백윤아 때문에 나를 몇 번이나 버렸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녀 때문에 우리의 결혼 날짜도 계속 미뤄졌다.

“제발 미친 사람처럼 굴지 좀 마.”

“나와 윤아는 그냥 친구야. 제발 그만 의심해.”

하지만, 친구라면서 밸런타인데이에 서로 선물은 왜 주고받는 건데?

또 천둥이 무섭다고 걸려 온 그녀의 전화 한 통에 어떻게 침대에 있는 자기 짝을 버리고 그녀를 만나러 갈 수 있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자신의 새로운 여자 친구라고 말하는 걸 어떻게 그냥 듣고만 있냐고?

결혼식 전날, 나는 구진혁의 휴대폰에서 백윤아가 보낸 메시지를 봤다.

[만약 강해월이 없다면 너 나랑 결혼할 거야?]

구진혁의 답장을 보는 순간, 난 온몸이 떨렸다.

[응, 난 널 사랑해.]

[그렇지만 해월이랑 오랫동안 함께했으니, 그녀와 결혼하는 건 내 책임이야.]

그때야 알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나는 책임일 뿐이고, 백윤아야말로 진짜 사랑이었다는 것을.

백윤아는 실력도, 성적도 형편없었지만, 구진혁은 온갖 인맥을 동원해 그녀를 탐사대에 넣어줬다.

그날은 우리가 가장 심하게 싸운 날이었고, 그 대가로 나는 그에게서 무정한 한마디를 들었다.

“강해월, 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내가 과거에 윤아랑 사귀었다고 해서 직장에서 그녀를 괴롭힌다면 우리 결혼하지 말자!”

그날, 나는 구진혁과 가장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심지어 나는 결혼 날짜조차 신경 쓰지 않고 남극 탐사대에 지원했다.

근데 예상치 못하게도 백윤아가 따라왔다.

남극에 도착한 지 3주째 되던 날, 나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나는 이 사실을 숨겼고 돌아가서 다시 계획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백윤아의 실수로 우리는 모두 남극에 갇혔다.

탐사대대원들은 나와 백윤아 두 여자만 배에 남겨두고 근처에 구조 요청하러 나갔다.

하지만 백윤아는 모든 물자를 훔쳐 도망치려 했고 이를 발견한 나는 그녀와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다가 실수로 모든 물자를 얼음 틈새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만족해? 이제 아무도 못 가! 다 네 잘못이야!”

멀리서 구조선이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백윤아는 망설임 없이 옆에 있던 밧줄로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내가 기절한 뒤에, 그녀는 나를 칼로 찌르기 시작했고 심지어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내 얼굴을 망가뜨렸다.

그녀의 칼은 남극의 얼음보다 더 차갑게 내 피부를 갈기갈기 찢었고 결국에는 나를 남극 호수에 던져버렸다.

내가 죽자 나를 배에서 밀어냈던 것이다.

“미안해, 강해월. 네가 죽어야만 내 비밀을 영원히 지킬 수 있어!”

모든 걸 정리한 후, 그녀는 지독하게 자신의 몸에 몇 번이나 칼로 긋고는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미안해요. 강해월이 물자를 가지고 도망쳤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물건을 잘 지키지 못했어요.”

백윤아는 나를 범죄자로 몰아세웠고 내가 죄를 피해 도망쳤다고 말했다.

눈앞에 있는 순진무구한 백윤아를 바라보며, 나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거침없이 치밀어 올랐다.

왜 나는 죽었는데 살인자인 그녀는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거지?

그녀는 내 약혼자도, 내 집도 빼앗았다고!

백윤아는 그의 품에 기대며 말했다.

“괜찮아. 그 몇 개의 상처로 네가 강해월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으니 그걸로 충분해!”

“그러니까 진혁아, 우리 결혼한 후에는 더 이상 해월을 찾지 말고 과거의 일은 그냥 묻어두자!”

구진혁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백윤아를 바라보며 애틋하게 말했다.

“네가 아파서 잠 못 자는 걸 몇 번이나 봤어.”

“그 생각만 하면 강해월을 찾아내서 네가 겪는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어!”

‘하지만 구진혁, 너는 이미 그렇게 했잖아. 나는 네 손에 직접 해부당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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