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고 나서야 김인우는 해방되는 것만 같았다.“어디로 갈 거예요?”김인우가 조하랑에게 물었다.조하랑은 움직이기 귀찮고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그냥 근처에 있는 백화점으로 가요. 밥도 먹을 수 있고 쉴 수도 있고 할아버님이 물어보시면 영화 본 거로 해도 되잖아요.”조하랑이 대답했다.김인우 역시 못마땅한 모습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기도 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마지못해 백화점으로 향했다.휴일이라 백화점 안에는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조하랑은 몇 번이나 인파에 몰려 김인우의 품속으로 부딪히고 말았었다.김인우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뻗어 조하랑을 보호하기 시작했다.“뭐가 재밌다고 다들 여기로 몰리는지 모르겠네요.”이대로 계속 걸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아 조하랑은 주위를 스캔하기 시작했다.이윽고 멀지 않은 곳에 줄 서지도 않아도 되는 한식당을 보게 되었다.“우리 저기로 가요.”하도 급하게 걸은 바람에 앞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하마터면 밀칠 뻔했다.“좀 조심해서 걸으세요! 와이프 임신했다고요!”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조하랑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서야 익숙한 그 얼굴이 보였다.그렇다, 강연우였다.강연우는 지금 배가 살짝 부른 고상한 여인을 부축하고 있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임신까지 했다는 사실에 조하랑은 살짝 충격이었다.이곳에서 조하랑을 마주치게 될 줄을 몰랐던 강연우 역시 순간 얼어붙었었다.하지만 그 또한 잠시 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너였구나. 어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니. 아직도 이렇게 덜렁거리고 말이야.”조하랑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은 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김인우는 세상 무서운 줄 몰라 하던 조하랑이 강연우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살짝 언짢았다.단번에 조하랑을 품속으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우리 하랑이도 임신했어요. 그쪽 아내만 산모인 게 아니라 우리 하랑이도 산모라고요
“어디 가는 거예요?”김인우가 물었다.전화를 끊은 김인우를 보고서 조하랑이 되물었다.“경호원들이 손님들 모두 내보내고 있는 거 안 보여요?”그 말에 김인우는 어이가 없었다.“다른 손님들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지 우리를 내보내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조하랑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어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다.“백화점 책임자한테 전화하고 오는 길이에요. 좀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다들 내보내 달라고 했어요.”본래 사람이 많아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던 김인우였다.하지만 조금 전 강연우와 그의 아내를 만나고 난 뒤, 모든 이들을 내쫓아 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조하랑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고 돈만 있으면 별의별 짓도 할 수 있다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모든 손님을 내보냈다는 건 오늘 이곳의 모든 지출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결코 적지 않은 지출일 것인데 말이다.“돈이 그렇게도 많아? 쓸 곳이 없으면 차라리 그 돈을 나한테 주지 그래.”조하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뭐라고 말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한 김인우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예요?”조하랑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에요. 그럼, 우리 오늘 여기서 다 공짜로 먹어도 되는 거예요?”“그럼요.”조하랑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무척이나 기뻐하며 모든 음식점의 간판 메뉴를 하나씩 대령하라고 했다.그 말에 김인우는 의혹이 들기만 했다.“다 먹을 수 있어요?”“그냥 종류별로 맛이나 좀 보려고요.”어차피 돈도 이미 냈고 가능한 한 손해를 줄여야 하니 말이다.김인우는 바로 조하랑의 말대로 지시를 내렸다.백화점에 있는 모든 음식점의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되고 마음에 드는 옷이라도 있으면 마음대로 사면 된다.김인우가 알아서 그 뒷정리를 해 줄 테니 말이다.조하랑은 어느 한 음식점에 앉아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박윤우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와서 공짜로 먹고 놀자면서 말이다.마침 집에 있던 박윤우와 박민정은 할 일이 없어 정민기에게 함께
유남준 일가족은 준비를 마치고 유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오늘따라 유난히 떠들썩한 유씨 가문이다.부잣집은 늘 이처럼 인기가 없는 날이 없는 것 같다.아직 제대로 회복하지 않은 추경은마저 이곳으로 찾아와 유명훈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고영란과 윤소현은 손님을 맞이하느라 바빴다.정수미도 예외 없이 발걸음을 해주었고 그녀와 아는 사람들은 윤소현이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서 하나같이 고영란에게 물었다.“사모님, 소현이 임신했다면서요? 남우랑은 언제쯤 식을 올리나요?”“그러게 말이에요. 날은 잡았어요?”“잡는 대로 저희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미리 축하 선물이라도 준비하려고 그래요.”“...”유남우와 윤소현의 결혼에 대해서 사람들이 다그치자 고영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유남우와 얘기를 해 본 적이 있지만, 그는 자기한테 다 생각이 있다면서 고영란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었다.그 뒤로 고영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었다.“소현이랑 남우한테 달린 일이에요. 두 사람이 언제쯤 식을 올리고 싶으면 그때 올리면 돼요.”고영란이 대답했다.이윽고 사람들의 시선은 모조리 수줍어하는 윤소현에게 쏠렸다.윤소현 역시 숨김없이 말했다.“저희 웨딩드레스까지 맞췄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식을 올리게 될 거예요.”그 말을 듣고서 손님들은 일제히 축하의 뜻을 표했다.본가로 돌아온 유남우는 부하를 통해 윤소현이 내뱉은 말을 알게 되었다.유남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은 어느새 한껏 어두워졌다.결혼을 재촉하고 있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홍주영도 그 뜻을 알아차렸지만 유남우를 타일렀다.“여하튼 도련님 아이를 품고 있는 분이시잖아요. 일찍 결혼하면 아이한테도 좋을 거예요.”유남우는 그 말을 듣고서 홍주영을 바라보았으나 그 어떠한 부드러움도 없었다.“사적인 일에 신경 쓰지 마.”홍주영은 이러한 말투로 야단치는 유남우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러자 유남우는 엄숙한 모습을 거두고 부드러운
박윤우를 데리고 자리를 찾아 앉은 박민정, 유남준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작정이었다.그때 연령대가 비슷한 유씨 가문의 사촌 언니, 사촌 동생들과 함께 ‘불청객’인 윤소현이 찾아왔다.찾아온 것만으로 부족하여 윤소현은 일부러 박민정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형님, 왜 윤우랑 같이 구석에 앉아 있는 거예요? 오시지 않은 줄 알고 한참 둘러봤잖아요.”윤소현이 먼저 말을 걸었다.다른 이들도 잇따라 옆자리에 앉았고 그 중 한 사람이 말을 이어갔다.“새언니, 이 꼬마가 남준 오빠 아들이에요? 엄청 귀엽게 생겼네요. 근데 제가 듣기로는 어딘가 많이 아프다면서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물어봐도 될까요?”일부러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질문이 아닐 수가 없었다.박민정은 상대의 질문에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때 또 다른 이가 덧붙였다.“저 외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적 있는 것 같아요. 백혈병 맞죠?”“네? 백혈병이라고요? 그거 불치병 아니에요?”또 다른 누군가가 계속 부채질을 했다.“백혈병... 그거 맞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들은 바가 있거든요.”그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일부러 박민정을 자극하고 있었다.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잡아당겼다.박민정을 자극하려고 온 이들이라면 치명적인 약점을 잘 공략한 셈이다.박윤우의 병은 그녀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아픔이자 반박 조차할 수 없는 가장 큰 약점이다.결코 선한 의도를 품고 찾아온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박윤우가 박민정 대신 반격에 나섰다.“엄마, 혹시 여기 이 이모들 학교 다닌 적 없어?”박민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면서 박윤우의 뜻을 알아차리고 연기에 들어갔다.“우리 윤우 왜 그렇게 묻는 거야? 여기 이 이모들 모두 뛰어난 우등생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유명한 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분들도 많으셔.”유씨 가문에서는 남녀를 막론하고 교육에 가장 큰 중점을 둔다.따라서 문맹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박윤우의 말을 듣고서 ‘이모’들은 피식
박윤우의 설명을 듣고 난 뒤 고영란은 그대로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감히 자기 손자한테 단명할 놈이라고 저주까지 하면서 애를 놀렸으니 말이다.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찾아왔던 그들은 억울해도 변명할 길이 없어 참으로 답답했다.조금 전에 백혈병은 치료하기 힘들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단명할 놈이라고 말한 적은 전혀 없으니 말이다.하지만 명품 연기가 주특기인 박윤우는 고영란을 덥석 안으며 이번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밀고 갔다.“할머니, 저 단명할 놈이에요? 할머니... 윤우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말하면서 박윤우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내막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엄마인 박민정도 그 연기에 넘어갔을 것이다.그리고 박윤우가 은근히 똑똑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우리 강아지 울지 마. 절대 그런 일 없어. 할머니 곁에서 아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야! 절대 그런 걱정하지 마!”고영란은 허리까지 숙여가면서 눈물을 닦아주었다.이윽고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면서 언성을 높였다.“누가 감히 내 귀한 손자한테 그런 몹쓸 말을 한 거야! 누구야!”윤소현은 지금 당장 어디로든 숨고 싶은 심정이다.고영란이 무서웠던 그들은 모두 우물쭈물했다.그때 누군가가 용기를 내면서 반박하기 시작했다.“외숙모, 저희 윤우한테 그런 말 한 적 없어요.”“그럼, 뭐라고 했는데?”고영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성을 높여가며 물었다.“그런 말을 꺼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 어린아이가 ‘단명할 놈’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수 있는가 말이다!”“저희는 그냥 백혈병을 치료하기 어렵다고 말했을 뿐이에요.”또 다른 이가 나서서 나지막이 말했다.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도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것만 말했어요? 치료하기 어렵다고만 말했냐고요!”그들은 분명히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사실 치료할 수 있든 없든 친척으로서 아이랑 아이 엄마를 앞에 두고 그런 잔인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박윤우는 더욱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할
유명훈이 추경은을 위해 사실을 감추려 하자 유남준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제 아이입니다." 유명훈은 유남준을 향해 자신의 지팡이를 내던졌다. 그 지팡이는 아슬아슬하게 유남준을 빗나갔다. "이 순간까지도 계속 거짓말을 할 셈이냐? 응?" 유남준은 하는 수 없이 그날 발생했던 위급했던 상황과 박민정이 부득이하게 시간을 뒤로 미루었던 사실을 이실직고하였다. 유명훈은 듣고 난 뒤 어안이 벙벙해져 한동안 넋이 나갔다. "그러면 추경은이 했던 얘기가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냐?" "그럼요. 아무렴 제 자신의 자식인데 그 아이가 누구의 것인지 제가 모를 리가 있겠나요?" 유남준이 되물었다. 유명훈은 이제야 둥둥 떠있던 가슴이 가라앉는 듯하였다. "그러하였구나, 경은이 이 녀석이 잘 모르면서 나한테 헛소리를 하였구나." 유남준은 입을 함부로 놀린 사람이 바로 추경은일줄 예상했다. 그의 눈밑에서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유명훈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인식하였다. 그는 인차 추경은의 실드를 쳐주었다. "남준아, 경은이도 네가 박민정한테 속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벌인 일들이야. 추 씨 가문 사람들이 항상 우리 유 씨 가문을 따랐으니 너도 경은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진 말거라." 유남준이 아무런 내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어요." 유명훈이 추재훈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추재훈은 그 은혜에 보답하려 유 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기든 항상 유 씨 가문의 편에 서서 그들을 지지해 왔다. 유남준이 유 씨 가문을 이끌기 시작했을 무렵에도 추재훈의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는 은혜를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이 아니다. "할아버지, 그럼 이만 나가보아도 될까요?" "그래, 나가보거라. 오랜만에 한가족이 모였으니 친척형제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거라." 유명훈이 말하였다. 유남준은 방문을 나선 후 서다희의 안배하에 과거 친하게 지냈던 친신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한편. 고영란은 일부 여성친척들한테 자신의 손자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웃음이
유지훈은 자기가 박윤우를 연못으로 빠뜨리려 할 때 자기도 덩달아 연못으로 같이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그는 비록 수영을 배웠지만 이건 수영장이 아닌 연못이다. 게다가 박윤우가 유지훈의 옷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으니 뿌리칠 수조차 없었다. '제길!' 누군가 이쪽으로 헤엄쳐 오는 것이 보였다. 유지훈은 자신을 구하러 오는 건 줄 알았는데 자신이 아닌 박윤우를 건져 올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박윤우는 구조당하는 순간에야 유지훈의 옷에서 손을 놓았다. 일분도 안되여 유남우는 성공적으로 박윤우를 연못에서 구해내였다. 다행히 박윤우는얼굴빛이 창백해졌을 뿐 연못물에 사레가 들리지 않았다. 유지훈도 곧 경호원들에게 구조당하였다. 사람들 틈에서 나온 박민정은 유남우가 박윤우를 구한 것을 보았다. 그녀는 황급히 달려와서 박윤우를 끌어안았다. "윤우야!" 기타 사람들은 급급히 구조전화를 걸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던 연회는 두 아이의 모순으로 황급히 마무리되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두 아이의 상태를 검사하였다. 박민정은 유남준의 손을 꼭 잡았다. 유남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박윤우를 구하느라 온몸이 다 젖은 차림의 유남우가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서있었다. 윤소현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유남우 얼굴의 물기를 닦아주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남우 씨, 옷이 다 젖었어요. 우리 먼저 돌아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 유남우는 윤소현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난 괜찮아." 유남우의 시선은 이따금 박민정과 유남준의 꼭 잡고 있는 두 손으로 향했다. 윤소현도 이를 눈치채고 질투심이 차올랐지만 딱히 뭔가를 표현할 수도 없었다. 고영란이 다가왔다. "남우야, 이게 다 무슨 일이냐. 멀쩡하던 두 아이가 어쩌다가 물에 빠진 거냐? " 유남우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소리를 들었을 땐 두 아이 모두 이미 연못에 빠져있었어요." 고영란은 유남우의 대답을 듣곤 더는 묻지 않고 이들과 같이
유지훈은 연회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소리에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닌 척했다. "그래요." 박민정은 이어 말하였다. "만약 카메라에 윤우가 민 게 아니라 네가 윤우를 미는 모습이 찍혔다면 그땐 네가 사과해야겠지?" 유지훈은 그깟 사과 따위 하면 되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남준은 이미 저택의 비서님께 이 일을 지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전송되어 왔다. 박민정은 그 영상을 건네받은 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재생하였다. 영상에서 유지훈이 박윤우를 밀어 연못에 빠트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유지훈이 연못에 빠진 건 박윤우가 빠질 때 그의 옷에서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젠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유지훈을 믿었던 유명훈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였다. "지훈아,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느냐?" 처음은 그렇다 쳐도 두 번, 세 번 연이어 거짓말을 하였다. 유명훈은 저번 청명절에서도 유지훈이 박윤우를 고의로 밀려하다가 스스로 넘어진 일을 기억하고 있다. 유지훈은 나이가 어리다 보니 이런 상황에 놀라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고영란은 원래부터 유지훈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런 와중 연이어 자신의 손주를 해하려 하는 유지훈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어린 나이에 이토록 악독하다니. 너의 엄마아빠가 이리 가르쳐주던? 윤우가 백혈병이 있어 안 그래도 몸이 약한데 네가 걔를 연목에 빠뜨린 건 윤우의 명줄을 끊으려 한 거랑 같은 거야! " 고영란이 분에 겨워 말했다. 유지훈은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어르신들의 연이은 호통소리에 유지훈은 순식간에 겁에 질렸다. 솔직히 박민정도 의아했다. 이 아이는 왜서 이토록까지 지난 일에 한을 품다 못해 윤우의 목숨까지 해하려 드는지를 말이다. 유명훈은 이번엔 유지훈이 몇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해서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윤우한테 사과하거라!"
박민정이 회사로 복귀한 후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은 윤소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원 역시 초조해하고 있었다.어렵사리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박민정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드러날까 두려웠다.이지원은 종종 몰래 박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곤 했다.그날도 촬영을 마친 뒤 그녀의 차는 PMJ 회사 앞에 멈춰 있었다.이지원은 차 안에 앉아 박민정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드디어 박민정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자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도드라진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정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이지원은 그녀 앞까지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민정 씨, 드디어 돌아왔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본능적인 반감이 피어올랐다.비록 그녀는 이지원이 저질렀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이때 진서연이 재빠르게 박민정 앞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에요?”이지원은 그제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필러로 채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간의 흔적과 연예계의 생존 경쟁 속에서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유지하려 애썼다.진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자 얼굴을 찌푸렸다.“이지원 씨, 여기 왜 온 거예요? 또 우리 보스한테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이지원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천한 년!'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박민정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렇다면 고맙네요.”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이지원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박민정이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혹시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부담 갖지 말고.”이지원은 친절한 척 덧붙였다.“우리 보스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은 없으니 그만 꺼져요!”진서연
“민정아, 엄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줄래? 날 욕해도, 화를 내도 괜찮으니 제발 그렇게 차갑게만 하지 말아줘, 응?”정수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화낼 이유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기억이 있었기에 정수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냉대를 받을 때마다 깊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그녀는 눈앞의 정수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정수미는 목이 칼로 베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어떻게 해야 박민정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정수미는 눈을 떨구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 진서연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물었다.“보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다치게 했다니, 무슨 소리죠?”박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진서연에게 설명했고 진서연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터뜨렸다.“윤소현이 어떻게 그런 모함을 할 수 있죠? 제 생각엔 일부러 자기 아이를 다치게 한 게 틀림없어요.”그녀는 단 한마디로 진실을 꿰뚫었지만 박민정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설마. 그래도 자기 친딸인데.”“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진서연은 단호히 말한 뒤 박민정을 위로했다.“보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하지만 진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여러 차례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박민정은 기억을 잃은 후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억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그녀는 오늘도 진서연과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점심시간, 박민정은 모두가 쉬고 있을 때 잠깐 밖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
가정부가 나가고 나자 정수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지?”정수미는 깊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왜 하필 윤소현을 입양했을까?비서도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었다.“큰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요. 자신의 딸마저 이용하다니요.”비서는 윤소현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정수미가 박민정, 그녀의 친딸을 미워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정수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비서에게 묻는 듯 자신에게 묻는 듯한 말을 했다.비서는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조언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오랜 고민 끝에 정수미는 윤소현의 방으로 향했다.윤소현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고열까지 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소현아!”정수미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깨우자 윤소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길래 제 방에 오신 거예요? 쉬셔야 할 시간 아니에요?”정수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얘기할 게 있어서 왔다.”윤소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무슨 얘긴데 내일 하면 안 돼요?”“다혜와 민정이에 대한 얘기야.”정수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 말을 듣자 윤소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엄마, 박민정한테 경고할 거죠?”흥분한 그녀의 말투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아니, 너한테 경고하려고 왔어.”정수미의 단호한 말에 윤소현은 멍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정수미는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고 윤소현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엄마, 그 여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다혜의 친엄마인 제가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처음엔 나도 네 말을 믿었다. 네가 민정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네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민정이를 경찰에 넘긴 거였어. 그런데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정말 실망이야.”정수미는 깊이 한숨을
비서는 정수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 생각에 둘째 아가씨는 아이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사람 같지 않아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 하지만 소현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그때 민정이를 도왔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떤 난리를 칠지 몰랐겠지.”정수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혜 일은 빨리 조사해 봐.”“알겠습니다.” 비서가 대답했다.정수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외손녀를 바라보며 다짐했다.“다혜야,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꼭 널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낼게.”그녀는 윤소현을 편드는 것도, 박민정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윤소현을 달래며 조용히 진실을 파악하려 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위해.밤이 깊었을 때, 정수미는 아이를 돌보던 가정부를 불렀다.“자, 말해 봐. 오늘 왜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너한테 뭔가를 줬니?”가정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짓말 안 했습니다. 정말로 사모님께서 그랬어요.”정수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아직도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야? 병원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민정이가 다혜를 안은 뒤로 다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그게 민정이가 했다는 걸로 바뀐 거지? 네가 직접 민정이가 아이를 해치는 걸 봤어?”가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버무렸다.“민정 아가씨가 다혜를 때리는 걸 희미하게 본 것 같아요...”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희미하게 봤다고? 그럼 왜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지?”가정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게 제가 혹시 잘못 본 걸까 봐...”그녀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수미는 확신했다. 이건 명백히 거짓말이었다.“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 테지만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의 위협에 가정부는 몸을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을 떠날 생각하지 마.”윤소현은 박민정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소리쳤고 박민정은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무릎 꿇고 사과해!”윤소현은 단호하게 네 글자를 뱉었다.그녀는 박민정이 기억을 잃은 틈을 타 그녀를 망신시키고 고통받게 하고 싶었다.‘무릎을 꿇으라고?’박민정은 아이를 해친 적이 없기에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그건 못 해요.”윤소현은 다시 정수미와 고영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보셨죠? 증거가 다 있는데도 저렇게 나오잖아요. 사과조차 하지 않겠다고요.”그녀는 이어 말했다.“이제 경찰서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네요.”윤소현은 휴대폰을 꺼내 신고 전화를 걸었다.고영란과 정수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정말 박민정이 그렇게 어린아이를 해쳤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맞을 터였다.그러나 박민정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경찰에 연행되었다.아이의 상처는 모두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었고 박민정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만한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그녀는 간단히 사건 경위를 설명한 뒤, 임시로 구금되었다.혼자 차가운 공간에 남겨진 박민정은 종종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유남준이 그녀를 보석으로 풀어주었다.“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유남준이 물었다.그는 본가로 돌아갔다가 박민정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하인들에게 물어본 끝에 그녀가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이후 고영란과 연락을 취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박민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도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내가 그 아이를 해쳤다고 믿어요?”유남준은 거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누가 뭐래도 네가 했을 리 없어. 넌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박민정은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요, 신고해요. 경찰이 와서 모든 걸 조사하게 해요. 제가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겁니다!”그녀는 나쁜 짓을 하기 않았기에 당당했다.윤소현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고영란이 그녀를 막아섰다.“소현아, 분명 이건 오해가 있을 거야. 민정이가 그렇게 어린 아이를 해칠 리가 없잖니.”정수미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 모두 한 가족인데 경찰까지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니?”그러나 윤소현은 눈가가 붉어진 채 항의했다.“엄마, 지금 제 딸이 이런 상태인데도 엄마는 저를 외면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편을 들어주실 생각은 없으세요?”박민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그만해요. 차라리 신고해요.”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경찰 조사를 통해서뿐이었다.윤소현은 사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일은 박민정과 무관했으며 그녀 스스로 꾸며낸 일이었기 때문이다.“민정아, 흥분하지 마. 우리 가족 일이니 우리끼리 해결해.”정수미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윤소현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비꼬듯 말했다.“좋아요. 우리끼리 해결하죠.”“그럼 말해봐, 박민정. 내 딸이 이렇게 됐는데 넌 어떻게 책임질 거야?”“제가 한 일이 아닌데 왜 제가 책임져야 하죠?”박민정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되묻자 윤소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지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다혜는 늘 멀쩡했어. 그런데 네가 안은 뒤로 이렇게 됐다고!”박민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말했잖아요. 전 그런 적 없어요!”그녀는 어린 다혜가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런데도 윤소현은 여전히 공격적이었다.“엄마, 보셨어요? 얘는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잖아요!”정수미는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다혜는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고영란이 오늘 아이를 돌본 보모를 불러왔고 보모는 떨
박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유남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박민정은 고영란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해 윤소현이 말한 병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윤소현이 병실에서 달려나오더니 곧장 박민정에게 달려들었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주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박민정 역시 피할 겨를이 없었고 결국 윤소현의 손바닥이 그녀의 뺨에 세게 내려앉았다.뜨겁게 달아오르는 통증이 얼굴을 타고 번졌다. 그러나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박민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박민정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고 그렇게 둘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고영란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가로막을 수 없었다.“박민정, 네가 어떻게 다혜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다혜는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는데!”‘뭐?’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전 당신 딸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우리 다혜 몸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났는데도 끝까지 모른 척하겠다고? 너 정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윤소현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노를 퍼부었고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방어에만 집중했다.고영란이 아무리 소리쳐도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다.“소현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둬!”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고 윤소현은 그제야 멈췄다.박민정도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정수미가 황급히 달려와 박민정의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보고 안타까워했다.“민정아, 괜찮아?”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만 윤소현은 불만을 터트렸다.“엄마, 똑같이 엄마 딸인데 우리가 싸웠으면 두 사람 다 챙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박민정만 신경 쓰는 거예요?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정수미는 한숨을 내쉬며 윤소현을 돌아보았다.“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봐. 왜 둘이
박민정은 그 아기가 윤소현의 딸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무슨 일이죠?”보모는 그녀를 보고도 별다른 경계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울기만 하고 어떻게 달래도 소용이 없네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온 보모에게 두 아들을 잘 돌보라고 지시한 뒤, 직접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래기 시작했다.그러나 유다혜는 그녀의 품에서도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엄마가 된 경험 덕분인지 박민정은 아기를 돌보는 법을 잊었더라도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그녀는 먼저 보모에게 아이가 충분히 먹었는지 물었고 이어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며 배탈이 났는지 살펴보았다.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아기가 계속 울자 박민정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아기를 병원에 데려가 보세요. 이렇게 계속 우는 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보모도 동의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보모가 아기를 다시 받으려던 찰나, 멀리서 윤소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내 딸을 저 여자한테 맡기라고 했어?”윤소현은 높은 굽의 힐을 신은 채 빠르게 걸어와 박민정의 품에서 아이를 거칠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보모를 질책했다.“내 딸을 당신한테 맡겼더니 이렇게밖에 돌보지 못해? 내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 책임인 줄 알아!”그녀는 이어 박민정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너도 아이가 있잖아. 내 아이를 왜 안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그 아이가 윤소현의 딸임을 알았더라면 절대 안았을 리 없었다.보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작은 사모님, 다혜가 계속 울어서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서 잠깐 도와주셨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악의도 없었습니다.”“악의가 없었다고?”윤소현은 여전히 울고 있는 딸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야.”그러다 보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작은 사모님, 아이를 병
윤소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선두에 있던 여하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 한 하인을 거칠게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박민정과 유남준 가족이 함께 웃으며 화목하게 있는 모습이었다.그 광경에 윤소현의 눈빛이 질투로 뒤덮였다. 그녀는 곧바로 고영란을 향해 차갑게 비아냥댔다.“어머니, 저랑 남우 씨가 비록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저도 유씨 가문에서 떳떳하게 맞아들인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모른 척하시겠다는 거예요?”고영란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소현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유남우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큰 실수로 느껴졌다.“소현아,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어서 남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렴. 여긴... 당분간 환영받지 못할 것 같구나.”윤소현은 이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왜요? 제가 여기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혹시 당신 아들 유남우가 저지른 일들을 제가 다 까발릴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고영란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윤소현이 마지막 퇴로조차 거부하자 냉소를 띠며 대꾸했다.“우리 아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한번 말해 보렴.”윤소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뭘 말하냐고요? 당신 아들이 자기 형의 여자를 탐냈다는 거. 이게 바로 당신들이 자랑하는 유씨 집안의 가풍인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에 있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박민정은 옆에서 두 아이를 달래며 이 상황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유남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다들 뭘 보고 있어? 당장 저 여자를 끌어내!”윤소현은 유남준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유남준 씨, 이 말을 듣기 싫은 거죠? 뭐, 당연하죠. 형의 여자를 뺏어갔다니, 저라도 그런 꼴은 못 참겠어요!”만약 그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벌써 그녀에게 직접 손을 댔을 것이다.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