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922화

Author: 윤지
유지훈은 자기가 박윤우를 연못으로 빠뜨리려 할 때 자기도 덩달아 연못으로 같이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그는 비록 수영을 배웠지만 이건 수영장이 아닌 연못이다.

게다가 박윤우가 유지훈의 옷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으니 뿌리칠 수조차 없었다.

'제길!'

누군가 이쪽으로 헤엄쳐 오는 것이 보였다. 유지훈은 자신을 구하러 오는 건 줄 알았는데 자신이 아닌 박윤우를 건져 올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박윤우는 구조당하는 순간에야 유지훈의 옷에서 손을 놓았다.

일분도 안되여 유남우는 성공적으로 박윤우를 연못에서 구해내였다. 다행히 박윤우는얼굴빛이 창백해졌을 뿐 연못물에 사레가 들리지 않았다. 유지훈도 곧 경호원들에게 구조당하였다.

사람들 틈에서 나온 박민정은 유남우가 박윤우를 구한 것을 보았다. 그녀는 황급히 달려와서 박윤우를 끌어안았다.

"윤우야!"

기타 사람들은 급급히 구조전화를 걸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던 연회는 두 아이의 모순으로 황급히 마무리되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두 아이의 상태를 검사하였다.

박민정은 유남준의 손을 꼭 잡았다.

유남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박윤우를 구하느라 온몸이 다 젖은 차림의 유남우가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서있었다.

윤소현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유남우 얼굴의 물기를 닦아주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남우 씨, 옷이 다 젖었어요. 우리 먼저 돌아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

유남우는 윤소현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난 괜찮아."

유남우의 시선은 이따금 박민정과 유남준의 꼭 잡고 있는 두 손으로 향했다.

윤소현도 이를 눈치채고 질투심이 차올랐지만 딱히 뭔가를 표현할 수도 없었다.

고영란이 다가왔다.

"남우야, 이게 다 무슨 일이냐. 멀쩡하던 두 아이가 어쩌다가 물에 빠진 거냐? "

유남우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소리를 들었을 땐 두 아이 모두 이미 연못에 빠져있었어요."

고영란은 유남우의 대답을 듣곤 더는 묻지 않고 이들과 같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23화

    유지훈은 연회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소리에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닌 척했다. "그래요." 박민정은 이어 말하였다. "만약 카메라에 윤우가 민 게 아니라 네가 윤우를 미는 모습이 찍혔다면 그땐 네가 사과해야겠지?" 유지훈은 그깟 사과 따위 하면 되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남준은 이미 저택의 비서님께 이 일을 지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전송되어 왔다. 박민정은 그 영상을 건네받은 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재생하였다. 영상에서 유지훈이 박윤우를 밀어 연못에 빠트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유지훈이 연못에 빠진 건 박윤우가 빠질 때 그의 옷에서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젠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유지훈을 믿었던 유명훈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였다. "지훈아,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느냐?" 처음은 그렇다 쳐도 두 번, 세 번 연이어 거짓말을 하였다. 유명훈은 저번 청명절에서도 유지훈이 박윤우를 고의로 밀려하다가 스스로 넘어진 일을 기억하고 있다. 유지훈은 나이가 어리다 보니 이런 상황에 놀라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고영란은 원래부터 유지훈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런 와중 연이어 자신의 손주를 해하려 하는 유지훈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어린 나이에 이토록 악독하다니. 너의 엄마아빠가 이리 가르쳐주던? 윤우가 백혈병이 있어 안 그래도 몸이 약한데 네가 걔를 연목에 빠뜨린 건 윤우의 명줄을 끊으려 한 거랑 같은 거야! " 고영란이 분에 겨워 말했다. 유지훈은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어르신들의 연이은 호통소리에 유지훈은 순식간에 겁에 질렸다. 솔직히 박민정도 의아했다. 이 아이는 왜서 이토록까지 지난 일에 한을 품다 못해 윤우의 목숨까지 해하려 드는지를 말이다. 유명훈은 이번엔 유지훈이 몇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해서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윤우한테 사과하거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24화

    박민정과 유남준도 박윤우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박윤우는 보기에 평범한 그 구슬을 손에 쥐었다. "아빠, 엄마, 이 구슬 진짜 그리 비싸? "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래, 사리자는 무척 귀한 거야. 이후에 꼭 잘 간수해야 해." 게다가 유명훈도 득도한 승려가 원적 후의 사리자라 했으니 이걸 얻기가 어지간히 쉽지 않았을 거다. "알았어." 박윤우는 대답한 뒤 박민정에게 기대어 잠들었다. 박민정은 윤우를 꼭 껴안았다. 지금의 그녀는 윤우를 한순간도 자신의 시선밖에 내놓을 자신이 없다. 저택으로 돌아왔다. 박민정은 박윤우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에야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유남준은 먼저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밤에 그 둘은 함께 잠을 잤다. 박민정은 윤우가 사고를 당하는 악몽을 꾸고 놀라 잠에서 깨었다. "윤우야......" 깊게 잠들지 않았던 유남준은 그녀의 소리를 듣고 그녀를 안았다. "악몽 꿨어?" 박민정은 유남준의 포옹 속에서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네, 윤우가 또 사고당하는 꿈을 꿨어요." 유남준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꿈일 뿐이야." "네."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더는 잠에 들지 하였다. "근데 유지훈은 왜 윤우를 밀었을까요?" 그 영상을 보았을 당시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어린아이가 이리도 나쁜 짓을 할 수 있지?' "어린아이들은 보통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기 마련이야. 나의 아버지와 큰아버지 둘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았어. 그래서인지 유성혁은 어릴 적부터 날 경쟁대상으로 여겨왔어." 유남준이 대답했다. 그러나 과거의 유남준에게 유성혁은 그의 상대가 될만한 자격조차 없었다. 유남준이 박민정에게 이런 얘길 꺼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그녀가 유 씨 가문에 시집온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유남준의 큰아버지는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듣기론 주로 해외의 사업을 경영해서 간혹 설 쇨 때에나 집으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25화

    그러나 박윤우를 건들지 못한다 하여 박민정도 건들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기고만장하여 말했다. "제 남편이 요즘 사업하느라 매일같이 해외출장 가지 뭐예요. 하도 바빠서 저랑 같이 연회에 참석도 못했네요." "제 남편도요. 매일 사업하랴, 고객 만나랴, 여기에 저랑 동반참석하지도 못했잖아요." "말도 말아요." 듣기엔 자신의 남편이 여기가 나쁘다 저기가 나쁘다 푸념 늘어놓는 것 같지만 실은 자기의 남편이 능력 있다 자랑하는 거다. 윤소현의 아부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제부매부들이 바빠봤자 둘째 오빠보다 바쁘겠나요? 지금 큰오빠가 손을 놓으니 호산그룹은 둘째 오빠가 다 관리하잖아요. 그런 와중에도 둘째 형님과 시간을 보내시려고 노력하잖아요." 윤소현은 득의양양해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남우 씨가 저를 배려해서 산부인과 검사 같은 거 할 때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 빼내여 절 동반해주려 하네요." 그들이 한마디 두 마디 서로 주고받을 때 박민정은 못 들은 척하였다. 박윤우도 그저 묵묵히 밥만 먹었다. 박윤우는 눈앞의 아줌마들이 고의로 엄마가 들어라고 하는 소리인 것을 알았다. 박민정의 반응이 너무도 미지근했던 건지 그들 무리 중 한 명이 직접 박민영한테 말을 걸었다. "그래도 큰 형님이 젤 좋으시겠어요. 지금 큰오빠가 눈이 안 보여서 일할 필요도 없으니 매일매일 형수님과 같이 시간 보낼 수 있잖아요." 박민정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말했다. "그래, 우린 돈도 많고 일할 필요도 없으니 아주 즐거워." 이 말을 들은 몇몇이 순간 말문을 잃었다. 이때 식사를 끝마친 박윤우가 곤혹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저의 아빠가 직업이 없다고 누가 그랬어요? 아빠 회사 엄청 커요." 이 말을 들은 사촌언니동생들은 의아했다. "윤우야, 너의 아빠가 회사가 있다고? 어디 있는데? " 그들은 유민준 같이 눈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박윤우는 똘망똘망한 큰 눈동자로 그들을 지그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26화

    “경은 씨.”절뚝절뚝 추경은을 쫓아온 윤소현.윤소현의 부름에 추경은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보았다.“새언니,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유남우로 인해 추경은은 윤소현을 살짝 두려워하고 있다.“별거 아니고 그냥 얘기나 좀 하고 싶어서요. 잠깐 시간 돼요? 어디로 가는 길이었어요? 함께 해도 될까요?”윤소현의 말에 추경은은 거절하기에 뭐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유명훈이 있는 쪽으로 나란히 향했다.이때 윤소현이 추경은에게 물었다.“형님 마음에 안 들죠?”마음에 찔린 추경은은 흠칫거리고 말았다.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면서 반박에 나섰다.“그럴 리가요.”박민정을 싫어한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추경은도 아니고 말이다.“그래요? 난 또 경은 씨도 나랑 같은 마음인 줄 알았죠.”한숨까지 내쉬면서 윤소현이 말했다.“새언니도 민정 언니 싫어하는 거예요?”윤소현의 말을 듣고서 추경은은 바로 확인 사살에 들어갔다.윤소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한 모습으로 대답했다.“싫어할 뿐만 아니라 아주 눈엣가시 같은 존재죠. 겉과 속이 180도 다른 여자잖아요. 아주버님 여자로만 평생 살 여자로 보여요?”뼈가 있는 듯한 윤소현의 말에 추경은은 눈빛이 확 달라졌다.연예인 스캔들 기사를 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말이다.“글쎄 형님이 우리 남우 씨까지 넘보고 있잖아요.”순간 추경은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마침내 가면을 벗어던지기까지 했다.“너무 뻔뻔한 거 아니에요? 남자가 그렇게도 고플까요? 양다리도 아니고 문어 다리라고 하다니...”“문어 다리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윤소현은 의문이 들었다.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추경은 역시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새언니, 혹시 에리라고 알고 있어요?”‘에리?’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윤소현은 바로 에리가 누군지 떠올랐다.다름이 아니라 지난번 표절 논란으로 한동안 떠들썩했었을 때 에리가 박민정을 위해 나선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 글로벌 가수 에리를 가리키는 거예요?”“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27화

    유씨 가문의 어느 한 빌딩에서.유남준과 유남우 두 형제가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권해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 넌 이미 알고 있었지?”유남준이 물었다.여유로운 모습으로 난간에 기대고 있는 유남우, 그는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대답했다.“이번 일은 끼어들지 않았어.”이러한 대답은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기도 하다.유남준은 자기 동생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따뜻하고 상냥한 사람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직도 자기한테 칼을 겨누고 있는 유남우의 모든 행위가 믿어지지 않았다.“호산 그룹도 네 손에 넣었잖아. 근데 뭐가 아직도 불만이야?”‘그걸 말이라고 묻는 거야?’유남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따지고 보면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불만인 건 네가 내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까지 해놓고서도 나한테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빚지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네가 재수 없고 역겨워!”그 말을 듣게 된 유남준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유남우의 멱살을 한 방에 잡고서 힘을 가득 주었다.두 사람은 체형이,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고 아팠던 유남우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설령 눈이 먼 유남준이라고 하더라도.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홍주영은 그 광경을 보고서 바로 달려가려고 했다.그러나 그때 옆에 있던 서다희가 그녀를 말렸다.“홍 비서님, 우리가 가히 간섭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멱살을 단단히 잡힌 유남우는 서서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하지만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은 채 오히려 밀어붙였다.“죽여! 어디 한 번 죽여봐! 근데 똑바로 기억해! 민정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처음부터 끝까지 민정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고!”“만약 내가 죽게 되잖아? 그럼, 민정이는 널 평생 원수로 생각하면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잘생긴 얼굴이 험상궂어 보일 정도로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유남준은 무거운 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앞으로 이상한 놈들이랑 엮이지 마. 아니면 너까지 죽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28화

    마침 권진하의 행방에 대해 알리려고 했던 서다희였다.“지금 두원 별장 문 앞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사모님을 납치한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면서 권해신 스스로 벌인 일이라고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대표님께서 이번 한 번만 봐주시면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역시나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직감이 확신되는 순간이었다.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내용을 알아넬 수 없는 상황이다.“권해신은 나한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아. 너도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돼.”“네, 알겠습니다.”유남준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서다희다.권해신을 더 이상 남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권진하는 어떻게 할까요?”권씨 형제를 단번에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하물며 권진하는 담도 적고 여자한테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약하디약한 사람이다.“일단 남겨둬.”“네.”...두원 별장.소파에서 쉬고 있던 박민정은 추경은한테서 듣게 되었다.권씨 가문 셋째 도련님인 권진하가 지금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고.추경은이 박민정에게 물었다.“이지원은 잡았어요?”이지원이 하이힐로 다친 다리를 무자비하게 찍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추경은이다.추경은의 질문에 박민정은 눈을 살짝 뜨고 대답했다.“잡히지 않았을걸요? 내가 경찰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요.”진정성이라곤 일도 없는 박민정의 대답에 추경은은 순간 불쾌해졌다.“좀 분명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네요.”추경은은 일부러 일을 크게 벌이려고 했다.“새언니랑 이지원, 서로 라이벌 사이 아니에요? 우리 납치당했을 때 그년이 얼마나 기고만장했는지 다 까먹은 거예요?”박민정은 추경은을 흘겨보면서 대답했다.“아니요. 기억하고 있어요.”“하지만 기억하고 있다고 한들 뭘 어떻게 하겠어요?”말 문이 턱 막힌 추경은은 바로 정신을 차리면서 밀어붙였다.“남준 오빠한테 본때를 보여주라고 해야죠!”박민정은 일부러 거절하는 척을 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를 헤치려고 했던 사람도 권씨 가문 형제 같아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29화

    “사모님 택배 하나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경비원이 박민정에게 말했다.“네, 감사합니다.”‘뭘 보내신 거지?’택배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서 방에서 박윤우가 뛰쳐나왔다.택배는 언제나 설레는 법, 두 사람은 함께 택배를 확인하기 시작했다.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얼어붙고 말았다.박스 안에는 여자아이의 장난감과 일상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장난감과 일부 용품은 하도 낡아서 누렇게 변하기도 했다.내용물을 보자마자 박민정은 단번에 어릴 적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박민호와 한수민은 전에 박씨 가문 옛 저택을 법원에 공탁으로 넘겼었다.그 옛 저택을 이지원이 먼저 사들였고 나중에 유남준이 소유권을 차지하면서 박민정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었었다.다시 박씨 가문 옛 저택으로 들어갔을 때 박민정은 어릴 적 자기가 사용했었던 물건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었다.“한수민이 이 모든 걸 챙기고 있었다는 말이야?”박민정은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수민이 챙겼을 리가 없다면서.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박윤우는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두 눈에 호기심이 가득해졌다.“엄마, 여기 안에 있는 거 다 엄마 것이야? 엄마가 어릴 적에 썼었던 물건들이야?”단번에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민정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일기장 위에는 ‘박민정’이라고 떡 하니 쓰여 있었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래. 학교 다닐 때 썼던 물건들이야.”이윽고 박민정은 누렇게 바래버린 일기장을 한 페이지씩 넘기었다.첫 페이지에는 진주시 유씨 가문으로 처음 왔을 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8월22일, 날씨 맑음. 드디어 아빠와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도 인제 아빠와 엄마가 있다. 너무 좋고 행복하다.][8월23일, 날씨 흐림.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나에게 있는 것 같다. 나만 잘하면 아빠도 엄마도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아줌마께서 말씀해 주셨다. 내가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여 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30화

    ‘쓰레기?’한수민의 말을 듣고서도 박민정은 예전처럼 슬프거나 화나지 않았다.“그럼, 감사히 잘 받을게요.”“한 여사님, 앞으로 부디 천국으로 가시길 바랄게요.”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박민정이었다.하지만 갑자기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되면서 서서히 흔들리고 말았다.한수민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애를 썼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한수민을 친엄마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매번 상처받고서도 괜찮은 척했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조금씩 무너졌다.한편, 병원 안에서.끊긴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한수민은 박민정이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을 끊임없이 되새겼다.“한 여사님, 앞으로 부디 천국으로 가시길 바랄게요.”‘천국?’‘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건데... 천국은 무슨...’한숨을 내쉬면서 한수민은 앨범을 열어 보았다.그 안에는 어린 시절 박민정이 썼었던 그 일기들이 저장되어 있었다.실은 금고를 되찾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한수민이 먼저 확인했었다.박민정의 일기장을 한번 또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본 한수민이다.만약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박민정을 끔찍이 여기면서 살 것이라고 후회를 금치 못했다.간병인 역시 진심으로 후회하고 한수민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후회한다고 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사모님, 제가 로펌에 문의를 해보았는데, 그쪽에서 의뢰 사안을 접수할 수 있다고 했어요. 다만 지금 사모님께서 금전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닌 점을 고려하여 벤처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어요. 패소하게 되면 변호사 수임료를 지급하지 않으셔도 되고 만약 승소하게 된다면 10%를 변호사 수임료로 지급해야 할 거예요.”거동이 불편한 한수민은 윤석후와의 이혼 소송 문의를 간병인에게 부탁했었다.만약 승소하게 된다면 한수민이 받게 될 모든 재산의 10%를 변호사 수임료로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그와 반대로 만약 패소하게 된다면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

Latest chapter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8화

    조하랑은 요즘 집에서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김인우가 어쩐 일인지 늦게야 귀가하는 게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어디를 다녀오는 건지 궁금해져 하녀에게 슬쩍 물었지만 하녀는 말끝을 흐릴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그걸 본 김훈은 손자를 거론하며 말했다.“하랑아, 인우는 네 남편이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거냐?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딱 잡아봐야 정신 차리지.”그리고는 단단히 이죽였다.“만약 귀찮다느니, 피하려 든다느니 하면 내게 말해. 그놈 등짝 몇 대는 내가 책임진다.”조하랑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착하듯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신한 이후로는 자꾸만 불안해졌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가 밖에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예상치 못한 위험에 휘말리진 않을까 하고.아무래도 몸 안에 김인우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 모양이었다.“...알겠어요.”조하랑은 김훈이 자신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한 듯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김인우는 아직 클럽을 떠나지도 않은 상태였다.“하랑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오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다정하게 받았다.“지금 어디예요?”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할까 싶어 거짓말을 꺼냈다.“아, 지금? 돌아가는 길이죠.”돌아가는 길이라고?그런데 조하랑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로 분명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외부 소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내가 왜 하랑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김인우는 그녀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필 그때, 뒤편에서 이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오빠?그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재빨리 경호원에게 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7화

    바로 그때였다.차가운 눈빛 하나가 이지원을 향해 날카롭게 꽂혔다.이지원도 그 시선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짙은 먹빛처럼 어두운 김인우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오늘 김인우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바이어 몇 명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온 참이었다. 그런데 그가 본 것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이지원의 처참한 몰골이었다.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냉담했다.하지만 이지원은 그 눈빛마저도 한 줄기 희망처럼 여긴 듯 허겁지겁 바닥에서 일어나 울먹이며 소리쳤다.“인우 오빠! 오빠!”그녀는 그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김인우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즉시 그녀를 막아섰다.이지원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오빠, 제발... 날 좀 살려줘요. 나 좀 살려줘...”김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때 곁에 있던 바이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사님, 혹시 아는 분입니까?”김인우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며 냉정히 답했다.“제가 어떻게 저런 여자를 알겠습니까.”“그렇죠, 그렇죠.”바이어는 머쓱한 듯 웃으며 연신 사과했다.“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네요. 딱 봐도 저런 여자는 별로 좋은 사람 같지가 않더군요. 아마 이사님께 잘 보이려고 들러붙은 거겠죠.”진주시에서 김인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바이어는 이지원에게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며 옆의 경호원에게 명령했다.“저 미친 여자 좀 치워. 여기서 체면 깎지 말고.”“네, 알겠습니다.”경호원들은 말도 없이 이지원을 들쳐 업듯 끌어내어 도로가 쪽으로 내던졌다.끌려가면서도 이지원은 계속해서 외쳤다.“오빠, 왜 그래... 왜 나를 모른 척해?”“놔, 이 사람들아! 인우 오빠는 내 친구야! 그 사람이 이 일 알면 절대 너희들 가만 안 둘 거야!”그녀는 말끝마다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금의 이지원은 확실히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그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과거의 자신이 잘나가던 시절의 기억 뿐이었고 김인우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6화

    “민정 씨,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줘요.”이지원은 박민정의 손을 덥석 붙잡고 애원했는데 눈빛엔 간절함이 가득했다.“이제는 정말 부탁할 사람이 민정 씨밖에 없어요. 내가 한창 잘 나갈 때 일도 너무 많이 벌였고 지금은 완전히 매장돼서 진 빚이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만큼이에요.”박민정은 조용히, 그러나 아주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왜 내가 당신을 위해 돈을 갚아줄 거라 생각하죠?”이지원은 순간 멍해졌다.요즘 들어 그녀는 자꾸 옛날 꿈을 꾼다. 박민정과 친구로 지내며 가까웠던 그 시절, 박민정은 늘 그녀를 감싸고 누가 괴롭히려 하면 앞장서서 막아줬고 어떤 일이든 조건 없이 도와줬다.그뿐만이 아니었다. 박민정의 아버지 역시 그녀를 친딸처럼 잘해줬고 학비도 지원해주며 박민정과 같은 학교를 다니게 해줬다.가끔 꿈에서 깨면 지금의 현실이 너무 낯설어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민정아, 나 정말 후회하고 있어. 너한테 그런 짓을 한 내가 미쳤었어, 정말이야...”이지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박민정은 아무런 감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손을 그녀의 손에서 빼냈다.“이지원,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이지원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자 박민정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네가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다면 넌 후회했을까?”이지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생각해봐. 네가 아직도 잘나가는 톱스타였다면, 남준 씨랑 인우 씨가 아직도 진실을 모른 채 널 감싸고 있었다면 넌 지금처럼 후회하며 내 앞에 이렇게 무릎을 꿇었을까?”박민정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지원은 아마 자신을 더 깊이 짓밟고 더 높은 곳에서 비웃었을 것이다.이지원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박민정의 눈은 깊고도 고요했는데 마치 파동조차 없는 죽은 물처럼 어떤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예전엔 널 정말 내 가장 소중한 친구라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더라. 이젠 너에게 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5화

    윤소현의 일이 터지자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중에는 한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이지원도 있었다.요즘 이지원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와중에 박민정과 유남준이 자신을 찾아올까 봐 늘 초조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었다.하지만 이지원은 몰랐다.그 불안감 자체가 박민정이 의도한 것이란 걸.박민정은 윤소현의 문제를 매듭짓자마자 곧장 정민기에게 물었다.“요즘 이지원은 어떻게 지내요?”정민기는 그녀가 어느 허름한 월셋집에 숨어 살며 배달이나 택배를 받을 때만 문을 열고 그 외엔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아직도 제정신으로 살고는 있나 보네요.”이지원은 자신뿐만 아니라 조하랑까지 위기에 몰아넣을 뻔했다. 그런 그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이젠 그 평온한 삶에도 금이 좀 가야겠죠.”박민정은 조용히 말했다.정민기는 그 말뜻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지시를 내렸다....그날도 이지원은 언제나처럼 문 앞에 도착한 택배를 가지러 나섰다. 하지만 그 순간, 서너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쌌다.그중 선두에 선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우리 대스타님, 어디 가시나?”이지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아무 데도 안 가요. 정말이에요.”“그래서 돈은 언제 갚을 건데? 당신 같은 사람 믿고 우리 사장님이 그 딜 들어갔다가 결국 손해만 봤잖아. 안 그래?”남자는 거칠게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제발요. 진짜 돈이 없어요...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이지원은 애걸했다.“돈이 없으면 일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빚만 미루고 있으면 되겠어?”사방을 둘러싼 이들은 이지원을 완전히 포위했다.이지원은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결국 일해서 갚겠다는 조건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이미 업계에서 퇴출당한 몸, 일자리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결국, 이지원은 다시 ‘제우스 클럽’으로 돌아왔다.예전에 그녀는 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4화

    이미 손연서의 번호는 더는 연결되지 않았다.오준수가 다급하게 물었다.“어때요? 뭐래요?”차현영의 눈빛에는 짙은 분노가 어려 있었다.“손연서 저년은 아예 우리랑 인연을 끊고 살 작정이야.”그 말을 들은 옆자리의 오성훈이 발끈했다.“아빠, 할머니! 나 집에 갈래요! 나 비행기 갖고 놀고 싶단 말이에요! 도대체 언제 집에 가요?”오준수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조용히 해! 지금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하지만 오성훈은 그런 사정쯤엔 관심이 없었다.“나 금희 아줌마가 만든 대추떡 먹고 싶어요! 아줌마 불러와요! 당장!”허금희는 오씨 가문이 파산한 이후, 오준수가 내쫓아버린 가사도우미였다.차현영은 손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다.“그래그래, 우리 착한 성훈이. 조금만 있으면 아줌마 다시 부를게. 그때 대추떡 많이 해달라 하자, 응?”“싫어요! 지금 당장 먹고 싶단 말이에요! 지금!”오성훈은 철없이 키워진 탓에 떼를 쓰기 시작했다.“먹을 거, 먹을 거! 입만 열면 먹을 거냐? 계속 이러면 진짜 혼난다?”오준수는 참다못해 고함을 질렀다.태어나서 처음 아버지에게 소리를 들은 오성훈은 놀란 눈으로 울음을 멈췄지만 그 잠깐의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내 방 안은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고, 그 어떤 달램도 통하지 않았다.그렇게 오씨 가문 식구들 모두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이들의 사정을 봐줄 만큼 착하지 않았다.그 다음 날 아침, 오씨 가문의 저택이 압류되었다.오준수는 하룻밤 새 작은 사업가에서 무일푼의 노숙자가 되었고 차현영은 분노와 스트레스로 결국 병이 나 병원에 입원했다.그리고 오성훈은 계속 울기만 하며 ‘집에 갈래’를 외쳤다.“연서 엄마 불러줘요. 연서 엄마 보고 싶어요!”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손연서가 곁에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좋은 대접을 받았는지를. 하지만 모든 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손연서는 부하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그들이 과거 자신에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3화

    손연서가 전화를 끊고 막 눈을 붙이려던 참에 또다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화면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조금 의아한 마음에 전화를 받자 익숙하면서도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손연서? 연서 맞니?”차현영이었다.예전, 오준수가 그녀와 이혼한 직후 차현영은 그녀의 연락처를 아예 차단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의 전화기를 빌려 걸고 있었다.바로 옆엔 오준수가 서 있었다. 손연서가 전화를 곧장 끊을까 염려해, 그나마 그녀와 연락이 닿을 가능성이 있는 차현영이 전화를 맡은 것이다.손연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저 맞아요.”“아이고, 다행이다. 드디어 네 목소리를 듣는구나. 언제 시간 좀 내서 집에 한 번 들르지 않겠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 연서야.”차현영은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손연서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오 여사님. 그쪽 아들과 저는 이미 이혼했어요. 그러니 그쪽도 제 어머니가 아니죠.”차갑고 또렷한 그 말에 차현영의 얼굴빛이 순간 어두워졌다.하지만 지금은 사정해야 할 입장이니 차현영은 억지로 분노를 눌러가며 상냥한 척 말을 이었다.“연서야, 그땐 준수가 철이 없었어. 나도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있어. 왜 그때 너희를 막지 못했을까 싶어서...”“내가 준수 야단도 쳤어. 전처럼 이천애 같은 여우한테 절대 다시 안 휘둘릴 거야. 그러니까 너도 다시 돌아오면 안 되겠니?”그녀는 말을 마치고 옆에 있던 오성훈을 툭툭 건드렸다.“성훈아, 어서 엄마라고 부르렴.”오성훈은 귀찮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은 잘 들었다.“엄마... 엄마, 돌아와 줘요. 저 엄마밖에 없어요. 엄마, 제발 돌아와 줘요.”아이의 목소리에 손연서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저려왔다.하지만 그건 오성훈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아이에게 쏟았던 과거의 마음과 시간, 그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전에 차현영은 손연서에게 오성훈의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고 오성훈 역시 그렇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2화

    차현영은 그래도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 이천애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자 급히 아들을 말렸다.“준수야, 그만해.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오준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손에 힘을 풀며 그녀를 밀쳐냈다.이천애는 힘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거칠게 기침을 쏟아냈다. 그녀를 향한 오준수의 눈에는 단 한 치의 연민도 없었다. 그는 그대로 다가가 발로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마지막으로 한번 묻는다. 물건 어디 있냐?”이천애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정말이야. 켁켁... 도, 도둑맞았어.”오준수는 더는 말 섞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는지 곧장 어머니를 불러들여 방 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하지만 방을 반 이상 뒤지고 나서도 끝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이천애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렸는지 얼굴 가득 눈물 자국을 남긴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정말이야. 나 거짓말 안 했어. 도둑맞지 않았으면 벌써 출국했겠지.”“닥쳐!”오준수는 또다시 그녀의 몸을 걷어찼고 차현영은 참담한 얼굴로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너 우리 준수 생각은 안 해도, 네 아들 생각은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니? 그게 우리가 가진 마지막 돈이었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이천애는 고개를 숙이고 두 주먹을 꼭 쥐었다.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오빠,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날 용서해 줘. 그래도 나, 성훈이 엄마잖아. 성훈이가 엄마 없이 자라게 하고 싶어?”오준수는 그녀를 향해 침을 뱉었다.“너 같은 게 무슨 엄마야. 내가 눈이 멀었지, 너 같은 걸 좋아했던 내가 미친 거였어.”솔직히 그는 지금 누구보다 후회하고 있었다. 당시, 한낱 모델이었던 이천애에게 빠져 손연서와 아이를 저버렸던 그 선택이 뼛속까지 원망스러웠다.차현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내가 그때 널 말렸어야 했는데... 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1화

    홍주영은 하민재가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에선 박민정이 오늘 했던 말들이 자꾸만 맴돌았다.유남우는 정말 겉모습처럼 좋은 사람일까?예전엔 그녀가 유남우에게 너무 마음을 줬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외국에 있을 당시, 병을 앓고 있던 그를 안쓰럽게 여겼던 것일 수도 있다.그녀는 유남우의 좋은 면만을 보며 그를 받아들였지만 지금 점점 그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됐어요, 그 얘기는 그만해요.”하민재는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기색을 보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홍주영도 더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한편, 손연서도 박민정 쪽 상황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약간은 실망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입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다혜를 입양하지 못하더라도 전 종종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박민정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할 때 손연서가 말을 이었다.“맞다, 민정 씨. 저 이천애 찾았어요.”“이렇게 빨리요?”박민정이 놀라서 되물었다.“전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걸요.”손연서는 이천애의 얄미운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분이 치밀었다.“그럼 이제 찾았으니 어떻게 할 건데요?” 박민정의 물음에 손연서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깊이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일단 이천애 주소를 오준수에게 흘려뒀어요. 둘이 알아서 치고받게 두는 거죠.”그녀는 이천애를 감시하라고 사람을 붙여두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곧바로 손연서 쪽에 영상이나 소식이 들어왔다.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곧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이천애는 오준수의 어머니가 아끼던 액세서리를 훔쳐 출국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도망치듯 허름한 여관에 숨어 있었다.오준수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그곳까지 찾아가 문을 박차고 들어갔는데 차현영도 함께였다.모자는 마치 원수를 만난 듯 이천애를 노려봤다.“이 죽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0화

    잠시 후, 홍주영은 병원에 도착했다.병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문 너머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몰래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 안에서 ‘유남우’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결국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그 유남우란 사람, 설마 자기 형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그럴 리 없어. 유남우랑 유남준 사이 엄청 안 좋았어.”하민재가 친구에게 단언하듯 말했다.“이번 일은 내가 졌다고 인정해야지. 세상에, 이렇게까지 음험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 나를 해치려고 일부러 교통사고를 꾸미다니.”그 말에 홍주영은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 섰다.유남우가 하민재를 해치려고 사람을 시켜 교통사고를 냈다고? 그게 정말 사실일까?하지만 왜? 이유가 뭐지?“난 이만 간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대화를 나누던 하민재의 친구가 자리를 뜨려는 기색이었다.홍주영은 재빨리 복도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사람이 완전히 떠난 뒤에도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음을 다잡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주영 씨, 안 오는 줄 알았어요.”하민재는 그녀를 보자 두 눈이 반짝였는데 정말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홍주영은 조용히 다가가 그의 곁에 앉았다.“밥은 먹었어요?”하민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주영 씨가 시켜준 음식 진짜 맛있었어요.”“그래요?”홍주영은 속으로 좀 민망했다. 배달 음식이 맛있을 게 뭐가 있다고...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고 조심스레 물으며 분위기를 살폈다.“근데 말이에요, 이번 교통사고에서 혹시 다른 사람은 안 다쳤어요?”하민재는 그녀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곤 그대로 숨기기로 마음먹었다.“아니요, 나만 다쳤어요. 내가 좀 재수가 없었죠.”그는 알고 있었다. 유남우가 홍주영에게 어떤 존재인지. 혹여 진실을 말하면 그녀는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화를 낼지도 몰랐다.하지만 홍주영은 감정에는 조금 둔할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하민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