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가문의 어느 한 빌딩에서.유남준과 유남우 두 형제가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권해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 넌 이미 알고 있었지?”유남준이 물었다.여유로운 모습으로 난간에 기대고 있는 유남우, 그는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대답했다.“이번 일은 끼어들지 않았어.”이러한 대답은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기도 하다.유남준은 자기 동생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따뜻하고 상냥한 사람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직도 자기한테 칼을 겨누고 있는 유남우의 모든 행위가 믿어지지 않았다.“호산 그룹도 네 손에 넣었잖아. 근데 뭐가 아직도 불만이야?”‘그걸 말이라고 묻는 거야?’유남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따지고 보면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불만인 건 네가 내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까지 해놓고서도 나한테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빚지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네가 재수 없고 역겨워!”그 말을 듣게 된 유남준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유남우의 멱살을 한 방에 잡고서 힘을 가득 주었다.두 사람은 체형이,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고 아팠던 유남우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설령 눈이 먼 유남준이라고 하더라도.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홍주영은 그 광경을 보고서 바로 달려가려고 했다.그러나 그때 옆에 있던 서다희가 그녀를 말렸다.“홍 비서님, 우리가 가히 간섭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멱살을 단단히 잡힌 유남우는 서서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하지만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은 채 오히려 밀어붙였다.“죽여! 어디 한 번 죽여봐! 근데 똑바로 기억해! 민정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처음부터 끝까지 민정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고!”“만약 내가 죽게 되잖아? 그럼, 민정이는 널 평생 원수로 생각하면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잘생긴 얼굴이 험상궂어 보일 정도로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유남준은 무거운 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앞으로 이상한 놈들이랑 엮이지 마. 아니면 너까지 죽
마침 권진하의 행방에 대해 알리려고 했던 서다희였다.“지금 두원 별장 문 앞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사모님을 납치한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면서 권해신 스스로 벌인 일이라고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대표님께서 이번 한 번만 봐주시면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역시나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직감이 확신되는 순간이었다.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내용을 알아넬 수 없는 상황이다.“권해신은 나한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아. 너도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돼.”“네, 알겠습니다.”유남준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서다희다.권해신을 더 이상 남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권진하는 어떻게 할까요?”권씨 형제를 단번에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하물며 권진하는 담도 적고 여자한테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약하디약한 사람이다.“일단 남겨둬.”“네.”...두원 별장.소파에서 쉬고 있던 박민정은 추경은한테서 듣게 되었다.권씨 가문 셋째 도련님인 권진하가 지금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고.추경은이 박민정에게 물었다.“이지원은 잡았어요?”이지원이 하이힐로 다친 다리를 무자비하게 찍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추경은이다.추경은의 질문에 박민정은 눈을 살짝 뜨고 대답했다.“잡히지 않았을걸요? 내가 경찰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요.”진정성이라곤 일도 없는 박민정의 대답에 추경은은 순간 불쾌해졌다.“좀 분명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네요.”추경은은 일부러 일을 크게 벌이려고 했다.“새언니랑 이지원, 서로 라이벌 사이 아니에요? 우리 납치당했을 때 그년이 얼마나 기고만장했는지 다 까먹은 거예요?”박민정은 추경은을 흘겨보면서 대답했다.“아니요. 기억하고 있어요.”“하지만 기억하고 있다고 한들 뭘 어떻게 하겠어요?”말 문이 턱 막힌 추경은은 바로 정신을 차리면서 밀어붙였다.“남준 오빠한테 본때를 보여주라고 해야죠!”박민정은 일부러 거절하는 척을 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를 헤치려고 했던 사람도 권씨 가문 형제 같아요.
“사모님 택배 하나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경비원이 박민정에게 말했다.“네, 감사합니다.”‘뭘 보내신 거지?’택배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서 방에서 박윤우가 뛰쳐나왔다.택배는 언제나 설레는 법, 두 사람은 함께 택배를 확인하기 시작했다.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얼어붙고 말았다.박스 안에는 여자아이의 장난감과 일상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장난감과 일부 용품은 하도 낡아서 누렇게 변하기도 했다.내용물을 보자마자 박민정은 단번에 어릴 적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박민호와 한수민은 전에 박씨 가문 옛 저택을 법원에 공탁으로 넘겼었다.그 옛 저택을 이지원이 먼저 사들였고 나중에 유남준이 소유권을 차지하면서 박민정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었었다.다시 박씨 가문 옛 저택으로 들어갔을 때 박민정은 어릴 적 자기가 사용했었던 물건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었다.“한수민이 이 모든 걸 챙기고 있었다는 말이야?”박민정은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수민이 챙겼을 리가 없다면서.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박윤우는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두 눈에 호기심이 가득해졌다.“엄마, 여기 안에 있는 거 다 엄마 것이야? 엄마가 어릴 적에 썼었던 물건들이야?”단번에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민정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일기장 위에는 ‘박민정’이라고 떡 하니 쓰여 있었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래. 학교 다닐 때 썼던 물건들이야.”이윽고 박민정은 누렇게 바래버린 일기장을 한 페이지씩 넘기었다.첫 페이지에는 진주시 유씨 가문으로 처음 왔을 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8월22일, 날씨 맑음. 드디어 아빠와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도 인제 아빠와 엄마가 있다. 너무 좋고 행복하다.][8월23일, 날씨 흐림.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나에게 있는 것 같다. 나만 잘하면 아빠도 엄마도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아줌마께서 말씀해 주셨다. 내가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여 두
‘쓰레기?’한수민의 말을 듣고서도 박민정은 예전처럼 슬프거나 화나지 않았다.“그럼, 감사히 잘 받을게요.”“한 여사님, 앞으로 부디 천국으로 가시길 바랄게요.”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박민정이었다.하지만 갑자기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되면서 서서히 흔들리고 말았다.한수민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애를 썼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한수민을 친엄마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매번 상처받고서도 괜찮은 척했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조금씩 무너졌다.한편, 병원 안에서.끊긴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한수민은 박민정이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을 끊임없이 되새겼다.“한 여사님, 앞으로 부디 천국으로 가시길 바랄게요.”‘천국?’‘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건데... 천국은 무슨...’한숨을 내쉬면서 한수민은 앨범을 열어 보았다.그 안에는 어린 시절 박민정이 썼었던 그 일기들이 저장되어 있었다.실은 금고를 되찾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한수민이 먼저 확인했었다.박민정의 일기장을 한번 또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본 한수민이다.만약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박민정을 끔찍이 여기면서 살 것이라고 후회를 금치 못했다.간병인 역시 진심으로 후회하고 한수민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후회한다고 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사모님, 제가 로펌에 문의를 해보았는데, 그쪽에서 의뢰 사안을 접수할 수 있다고 했어요. 다만 지금 사모님께서 금전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닌 점을 고려하여 벤처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어요. 패소하게 되면 변호사 수임료를 지급하지 않으셔도 되고 만약 승소하게 된다면 10%를 변호사 수임료로 지급해야 할 거예요.”거동이 불편한 한수민은 윤석후와의 이혼 소송 문의를 간병인에게 부탁했었다.만약 승소하게 된다면 한수민이 받게 될 모든 재산의 10%를 변호사 수임료로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그와 반대로 만약 패소하게 된다면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
문적 박대를 당한 추경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에 귀를 기울였다.뭐라도 듣고 싶어서 이내 안달 난 모습으로 말이다.다행히도 방음 효과가 꽤 뛰어났고 베란다에서 얘기하고 있었으므로 추경은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뻔뻔할 수 있어? 꽉 막힌 공간에 남녀 단둘이 들어가다니!”일그러진 얼굴로 추경은이 내내 중얼거렸다.옆에 박윤우가 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한참 박민정을 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다리 쪽이 젖어 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긴가민가하면서 고개를 숙인 추경은은 액체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박윤우를 보게 되었다.박윤우는 추경은의 다리에 그 액체를 붓고 있었고 그 냄새는 유난히 지독했다.“아! 박윤우! 뭐 하는 짓이야!”세상 순수한 눈빛으로 박윤우가 대답했다.“경은 이모, 이건 제가 아줌마한테서 가지고 온 거예요. 꽃에 주는 비료라고 하던데, 이거 이렇게 많이 뿌리면 꽃이 빠르게 자란다고 했었어요.”“경은 이모 다리가 하도 낫지를 않아서 이렇게라도 하면 좀 빨리 낫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비료 주고 있는 거예요.”그 말을 듣고서 추경은은 바로 사색이 되어버렸다.이윽고 비명과 함께 미친 듯이 욕실로 뛰어갔다.허겁지겁 달려가는 그 모습을 보고서 박윤우는 자기도 모르게 손뼉까지 쳤다.“흥! 감히 우리 엄마를 욕하다니!”같은 시각, 방안에서.베란다에서 한창 얘기를 하고 있던 박민정과 정민기는 밖의 상황을 알 리가 없었다.“민정 씨, 제가 알아본 것에 따르면 그때 이지원은 진주시를 떠나지 않고 권진하를 찾아가서 그와 사적으로 만남을 유지했다고 했어요. 나중에는 권진하가 이지원에게 특별히 집까지 마련해줬다고 해요.”정민기의 말을 듣고 난 박민정은 조금 믿어지지 않았다.“네? 제 기억으로는 권진하에게 따로 약혼녀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지원의 친한 친구인 하예솔이 권진하의 약혼녀였던 것 같은데요?”정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하예솔도 지금까지 속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알게 된다면 권진하와 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예솔을 비롯한 10명 이상의 동창생이 모임에 참가하겠다고 했다.박민정은 자기만 모임에 참가하겠다고 하면 하예솔도 반드시 참가할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였다.내일이면 휴가철 마지막 날이다.과 반장은 내일 저녁 8시에 만나자면서 레스토랑 위치를 채팅방에 올렸다.하예솔은 더욱더 정확한 소식을 얻고자 바로 이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원아, 너 대학교 채팅방 봤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는 이지원이다.내내 박민정으로부터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지원은 지난번 일이 자기한테 파급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박민정의 답장을 따로 받지 못했다.모임에 참가하겠다고 올린 답장 외에는...“봤어. 근데 왜?”이지원은 애써 덤덤한 척을 했다.“같이 가자. 박민정 걔가 지금 어떤 꼴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하예솔 역시 박민정이 유명한 작곡가 민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지가 아무리 잘나 봤자 박민정이지!’하지만 이지원은 살짝 망설였다.“그냥 안 갈래. 나 지금 걔 때문에 숨어 살고 있어. 모임에 갔다가 도려 당하게 될지도 몰라.”그 말을 듣고서 하예솔이 오히려 발끈했다.“안 돼! 너 꼭 와! 걔가 아무리 잘나가는 작곡가라고 하더라도 제삼자인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아. 제삼자는 이유가 어찌 됐든 세상 제일 나쁜 년이고 욕을 아무리 먹어도 싸!”그렇다, 하예솔은 아직도 박민정이 이지원과 유남준의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생각하고 있다.“하지만...”“그만하고 너도 간다고 반장한테 말할게.”하예솔은 이지원의 동의도 없이 바로 채팅방에 글을 올렸다.[우리 이지원 스타님도 가실 거야. 그러니 끼지 말아야 할 사람은 알아서 끼지 않은 게 좋을 거야.]채팅방을 확인한 이지원은 바로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먼저 하예솔이 박민정에게 미움을 사게 하고 자기가 나서서 두 사람 사이를 풀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이내 마음이 약한 박민정이므로 하예솔과의 ‘싸움’에서 박
유남준은 달갑지 않아 하면서 다시 박민정을 끌어안았다.그러자 박민정은 손을 뿌리치는 것만으로 부족하여 옆으로 몸을 옮겼다.“내 몸에 손대지 마요.”나지막한 소리로 ‘경고’까지 하면서 말이다.박민정의 말과 행동에 지금 몹시나 답답한 유남준이다.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다친 유남준을 위해 눈물을 뚝뚝 흘렸던 박민정이기 때문이다.유남준이 괜찮아진 것을 보고 난 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그럼, 네가 내 몸에 손대.”박민정의 손을 덥석 잡고서 유남준은 자기 가슴 위에 놓았다.졸음이 밀려온 박민정은 이내 귀찮아하면서 그 손을 뿌리쳐버렸다.유남준은 달갑지 않아 하면서 오기라도 발동한 듯이 또 손을 덥석 잡아 가슴에 놓았다.임신한 박민정은 지금 호르몬 분비 변화로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그만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린 채 소리까지 치고 말았다.“언제까지 이럴 거예요! 짜증 난다고요!”말을 마치고 이불을 돌돌 말고서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멍해진 유남준만 침대 중간에 덩그러니 남겨 둔 채 박민정은 바로 꿀잠에 들었다.유남준에게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큰 소리로 말하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는 사람은 오직 박민정 한 명뿐일 것이다.그렇게 유남준은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이튿날 아침, 유남준은 어두운 얼굴로 차에 올랐다.주위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것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범상치 않았다.숨 막히는 듯한 상황에 서다희는 자기도 모르게 유남준과 ‘안전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도저히 보고를 올릴 수 없었으니 말이다.유남준의 이성을 잃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박민정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서다희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대표님, 윤석후 회사에 관한 사안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사모님께 말씀해 드릴까요?”박민정에게 알려주면 반드시 기뻐할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유남준은 무려 시장 최저 가격으로 윤석후의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하지만 어젯밤 박민정에게 하대를 당한 것을
오늘 이지원은 예전과 달리 메이크업에도 옷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얼굴도 약간 창백한 것이 수심에 잔뜩 녹아내린 모습이었다.박민정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도 예를 갖춘 채 먼저 눈웃음을 건넸다.며칠 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기고만장함이라곤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자리를 찾아 앉은 박민정은 따뜻한 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거의 다 모이게 되자, 과 반장이 나서서 바삐 돌기 시작했다.“자, 다들 얼른 자리 찾아 앉아. 이렇게 다시 모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더욱 즐겁게 지내도록 하자.”박민정 곁에 앉은 누군가가 그만 참지 못하고 물었다.“민정아, 얼마 전에 기사에서 그러던데, 네가 바로 그 유명한 작곡가 민 선생이라면서? 그게 사실이야?”“맞아. 그게 나야.”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소리를 듣고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박민정에게 시선을 쏠리게 되었다.저마다 다양한 시선과 표정으로 말이다.“민정아, 너 진짜 성공했구나!”“너 난청 환자라고 하지 않았어?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서 배워야 한다고 선생님이 그러셨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민정이 네가 작곡가로 성공하다니 너무 놀랍고 대단한 것 같아!”“...”다들 한마디씩 주고받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재수 없어.’계속 듣기에 거북했던 하예솔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그딴 곡 몇 개 쓴 거 가지고 유난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러는 거야 다들? 완전히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하예솔의 말에 조금 전까지 박민정에게 칭찬하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합죽이가 되어 버렸다.절대로 말려들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말이다.그러나 오히려 예상치 못한 사람인 이지원이 박민정의 손을 잡고서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민정아, 마음에 담아주지 마. 예솔이 여기로 오기 전에 술 좀 마셨거든 아마 취한 김에 하는 소리일 거야.”“지원아!”하예솔은 이지원을 부를 때 음을 길게 뺐다.“그게 무슨 헛소리야! 나 술 마시고 온 거 아니야. 취할
박민정이 회사로 복귀한 후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은 윤소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원 역시 초조해하고 있었다.어렵사리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박민정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드러날까 두려웠다.이지원은 종종 몰래 박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곤 했다.그날도 촬영을 마친 뒤 그녀의 차는 PMJ 회사 앞에 멈춰 있었다.이지원은 차 안에 앉아 박민정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드디어 박민정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자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도드라진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정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이지원은 그녀 앞까지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민정 씨, 드디어 돌아왔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본능적인 반감이 피어올랐다.비록 그녀는 이지원이 저질렀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이때 진서연이 재빠르게 박민정 앞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에요?”이지원은 그제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필러로 채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간의 흔적과 연예계의 생존 경쟁 속에서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유지하려 애썼다.진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자 얼굴을 찌푸렸다.“이지원 씨, 여기 왜 온 거예요? 또 우리 보스한테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이지원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천한 년!'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박민정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렇다면 고맙네요.”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이지원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박민정이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혹시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부담 갖지 말고.”이지원은 친절한 척 덧붙였다.“우리 보스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은 없으니 그만 꺼져요!”진서연
“민정아, 엄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줄래? 날 욕해도, 화를 내도 괜찮으니 제발 그렇게 차갑게만 하지 말아줘, 응?”정수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화낼 이유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기억이 있었기에 정수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냉대를 받을 때마다 깊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그녀는 눈앞의 정수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정수미는 목이 칼로 베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어떻게 해야 박민정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정수미는 눈을 떨구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 진서연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물었다.“보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다치게 했다니, 무슨 소리죠?”박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진서연에게 설명했고 진서연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터뜨렸다.“윤소현이 어떻게 그런 모함을 할 수 있죠? 제 생각엔 일부러 자기 아이를 다치게 한 게 틀림없어요.”그녀는 단 한마디로 진실을 꿰뚫었지만 박민정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설마. 그래도 자기 친딸인데.”“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진서연은 단호히 말한 뒤 박민정을 위로했다.“보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하지만 진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여러 차례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박민정은 기억을 잃은 후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억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그녀는 오늘도 진서연과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점심시간, 박민정은 모두가 쉬고 있을 때 잠깐 밖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
가정부가 나가고 나자 정수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지?”정수미는 깊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왜 하필 윤소현을 입양했을까?비서도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었다.“큰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요. 자신의 딸마저 이용하다니요.”비서는 윤소현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정수미가 박민정, 그녀의 친딸을 미워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정수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비서에게 묻는 듯 자신에게 묻는 듯한 말을 했다.비서는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조언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오랜 고민 끝에 정수미는 윤소현의 방으로 향했다.윤소현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고열까지 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소현아!”정수미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깨우자 윤소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길래 제 방에 오신 거예요? 쉬셔야 할 시간 아니에요?”정수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얘기할 게 있어서 왔다.”윤소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무슨 얘긴데 내일 하면 안 돼요?”“다혜와 민정이에 대한 얘기야.”정수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 말을 듣자 윤소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엄마, 박민정한테 경고할 거죠?”흥분한 그녀의 말투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아니, 너한테 경고하려고 왔어.”정수미의 단호한 말에 윤소현은 멍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정수미는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고 윤소현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엄마, 그 여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다혜의 친엄마인 제가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처음엔 나도 네 말을 믿었다. 네가 민정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네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민정이를 경찰에 넘긴 거였어. 그런데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정말 실망이야.”정수미는 깊이 한숨을
비서는 정수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 생각에 둘째 아가씨는 아이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사람 같지 않아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 하지만 소현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그때 민정이를 도왔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떤 난리를 칠지 몰랐겠지.”정수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혜 일은 빨리 조사해 봐.”“알겠습니다.” 비서가 대답했다.정수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외손녀를 바라보며 다짐했다.“다혜야,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꼭 널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낼게.”그녀는 윤소현을 편드는 것도, 박민정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윤소현을 달래며 조용히 진실을 파악하려 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위해.밤이 깊었을 때, 정수미는 아이를 돌보던 가정부를 불렀다.“자, 말해 봐. 오늘 왜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너한테 뭔가를 줬니?”가정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짓말 안 했습니다. 정말로 사모님께서 그랬어요.”정수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아직도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야? 병원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민정이가 다혜를 안은 뒤로 다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그게 민정이가 했다는 걸로 바뀐 거지? 네가 직접 민정이가 아이를 해치는 걸 봤어?”가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버무렸다.“민정 아가씨가 다혜를 때리는 걸 희미하게 본 것 같아요...”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희미하게 봤다고? 그럼 왜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지?”가정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게 제가 혹시 잘못 본 걸까 봐...”그녀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수미는 확신했다. 이건 명백히 거짓말이었다.“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 테지만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의 위협에 가정부는 몸을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을 떠날 생각하지 마.”윤소현은 박민정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소리쳤고 박민정은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무릎 꿇고 사과해!”윤소현은 단호하게 네 글자를 뱉었다.그녀는 박민정이 기억을 잃은 틈을 타 그녀를 망신시키고 고통받게 하고 싶었다.‘무릎을 꿇으라고?’박민정은 아이를 해친 적이 없기에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그건 못 해요.”윤소현은 다시 정수미와 고영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보셨죠? 증거가 다 있는데도 저렇게 나오잖아요. 사과조차 하지 않겠다고요.”그녀는 이어 말했다.“이제 경찰서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네요.”윤소현은 휴대폰을 꺼내 신고 전화를 걸었다.고영란과 정수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정말 박민정이 그렇게 어린아이를 해쳤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맞을 터였다.그러나 박민정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경찰에 연행되었다.아이의 상처는 모두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었고 박민정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만한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그녀는 간단히 사건 경위를 설명한 뒤, 임시로 구금되었다.혼자 차가운 공간에 남겨진 박민정은 종종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유남준이 그녀를 보석으로 풀어주었다.“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유남준이 물었다.그는 본가로 돌아갔다가 박민정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하인들에게 물어본 끝에 그녀가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이후 고영란과 연락을 취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박민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도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내가 그 아이를 해쳤다고 믿어요?”유남준은 거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누가 뭐래도 네가 했을 리 없어. 넌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박민정은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요, 신고해요. 경찰이 와서 모든 걸 조사하게 해요. 제가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겁니다!”그녀는 나쁜 짓을 하기 않았기에 당당했다.윤소현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고영란이 그녀를 막아섰다.“소현아, 분명 이건 오해가 있을 거야. 민정이가 그렇게 어린 아이를 해칠 리가 없잖니.”정수미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 모두 한 가족인데 경찰까지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니?”그러나 윤소현은 눈가가 붉어진 채 항의했다.“엄마, 지금 제 딸이 이런 상태인데도 엄마는 저를 외면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편을 들어주실 생각은 없으세요?”박민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그만해요. 차라리 신고해요.”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경찰 조사를 통해서뿐이었다.윤소현은 사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일은 박민정과 무관했으며 그녀 스스로 꾸며낸 일이었기 때문이다.“민정아, 흥분하지 마. 우리 가족 일이니 우리끼리 해결해.”정수미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윤소현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비꼬듯 말했다.“좋아요. 우리끼리 해결하죠.”“그럼 말해봐, 박민정. 내 딸이 이렇게 됐는데 넌 어떻게 책임질 거야?”“제가 한 일이 아닌데 왜 제가 책임져야 하죠?”박민정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되묻자 윤소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지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다혜는 늘 멀쩡했어. 그런데 네가 안은 뒤로 이렇게 됐다고!”박민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말했잖아요. 전 그런 적 없어요!”그녀는 어린 다혜가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런데도 윤소현은 여전히 공격적이었다.“엄마, 보셨어요? 얘는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잖아요!”정수미는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다혜는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고영란이 오늘 아이를 돌본 보모를 불러왔고 보모는 떨
박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유남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박민정은 고영란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해 윤소현이 말한 병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윤소현이 병실에서 달려나오더니 곧장 박민정에게 달려들었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주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박민정 역시 피할 겨를이 없었고 결국 윤소현의 손바닥이 그녀의 뺨에 세게 내려앉았다.뜨겁게 달아오르는 통증이 얼굴을 타고 번졌다. 그러나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박민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박민정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고 그렇게 둘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고영란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가로막을 수 없었다.“박민정, 네가 어떻게 다혜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다혜는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는데!”‘뭐?’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전 당신 딸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우리 다혜 몸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났는데도 끝까지 모른 척하겠다고? 너 정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윤소현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노를 퍼부었고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방어에만 집중했다.고영란이 아무리 소리쳐도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다.“소현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둬!”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고 윤소현은 그제야 멈췄다.박민정도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정수미가 황급히 달려와 박민정의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보고 안타까워했다.“민정아, 괜찮아?”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만 윤소현은 불만을 터트렸다.“엄마, 똑같이 엄마 딸인데 우리가 싸웠으면 두 사람 다 챙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박민정만 신경 쓰는 거예요?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정수미는 한숨을 내쉬며 윤소현을 돌아보았다.“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봐. 왜 둘이
박민정은 그 아기가 윤소현의 딸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무슨 일이죠?”보모는 그녀를 보고도 별다른 경계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울기만 하고 어떻게 달래도 소용이 없네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온 보모에게 두 아들을 잘 돌보라고 지시한 뒤, 직접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래기 시작했다.그러나 유다혜는 그녀의 품에서도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엄마가 된 경험 덕분인지 박민정은 아기를 돌보는 법을 잊었더라도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그녀는 먼저 보모에게 아이가 충분히 먹었는지 물었고 이어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며 배탈이 났는지 살펴보았다.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아기가 계속 울자 박민정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아기를 병원에 데려가 보세요. 이렇게 계속 우는 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보모도 동의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보모가 아기를 다시 받으려던 찰나, 멀리서 윤소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내 딸을 저 여자한테 맡기라고 했어?”윤소현은 높은 굽의 힐을 신은 채 빠르게 걸어와 박민정의 품에서 아이를 거칠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보모를 질책했다.“내 딸을 당신한테 맡겼더니 이렇게밖에 돌보지 못해? 내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 책임인 줄 알아!”그녀는 이어 박민정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너도 아이가 있잖아. 내 아이를 왜 안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그 아이가 윤소현의 딸임을 알았더라면 절대 안았을 리 없었다.보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작은 사모님, 다혜가 계속 울어서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서 잠깐 도와주셨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악의도 없었습니다.”“악의가 없었다고?”윤소현은 여전히 울고 있는 딸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야.”그러다 보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작은 사모님, 아이를 병
윤소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선두에 있던 여하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 한 하인을 거칠게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박민정과 유남준 가족이 함께 웃으며 화목하게 있는 모습이었다.그 광경에 윤소현의 눈빛이 질투로 뒤덮였다. 그녀는 곧바로 고영란을 향해 차갑게 비아냥댔다.“어머니, 저랑 남우 씨가 비록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저도 유씨 가문에서 떳떳하게 맞아들인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모른 척하시겠다는 거예요?”고영란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소현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유남우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큰 실수로 느껴졌다.“소현아,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어서 남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렴. 여긴... 당분간 환영받지 못할 것 같구나.”윤소현은 이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왜요? 제가 여기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혹시 당신 아들 유남우가 저지른 일들을 제가 다 까발릴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고영란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윤소현이 마지막 퇴로조차 거부하자 냉소를 띠며 대꾸했다.“우리 아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한번 말해 보렴.”윤소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뭘 말하냐고요? 당신 아들이 자기 형의 여자를 탐냈다는 거. 이게 바로 당신들이 자랑하는 유씨 집안의 가풍인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에 있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박민정은 옆에서 두 아이를 달래며 이 상황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유남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다들 뭘 보고 있어? 당장 저 여자를 끌어내!”윤소현은 유남준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유남준 씨, 이 말을 듣기 싫은 거죠? 뭐, 당연하죠. 형의 여자를 뺏어갔다니, 저라도 그런 꼴은 못 참겠어요!”만약 그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벌써 그녀에게 직접 손을 댔을 것이다.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