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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作者: 윤지
인제 보니 아빠는 유남준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걸 진작 알아챘나 보다.

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유씨 일가와 계약을 체결했고 박민정도 소원대로 유남준에게 시집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아빠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만약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남동생과 엄마도 계약을 위반하지 않을 텐데...

박민정은 재산 양도 수속을 전부 장 변호사에게 건넨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길옆에서 이지원의 홍보 포스터들을 보게 됐다.

포스터 속 그녀는 더없이 눈부시고 아름답고 해맑은 모습이었다.

‘이젠 놓아줄 때가 됐어. 남준 씨도 나도 자유를 되찾아야지.’

두원 별장에 도착한 그녀는 짐 정리를 마쳤다.

결혼한 3년 동안 그녀의 짐이라곤 고작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갔다.

이혼합의서는 작년에 이미 장 변호사에게 부탁해 작성해달라고 했다.

유남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자괴감이 들고 마음이 약해진다.

그녀는 진작 알아챘다. 둘 사이의 감정은 조만간 끝이 닿는다는 걸, 그래서 일찌감치 떠날 채비를 했다...

저녁 시간, 유남준의 문자는 없었다.

박민정은 용기 내어 그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 시간 돼요? 당신한테 할 얘기 있어요.」

상대는 한참 동안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박민정은 어두운 얼굴로 생각했다.

‘이젠 문자로 답장하는 것조차 싫은가 보네. 내일 아침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어쩌겠어.’

그 시각 유앤케이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 안.

유남준은 문자를 확인하곤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

절친 김인우가 소파에 앉아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끝내 못 참고 물었다.

“민정 씨 문자야?”

유남준이 묵인했고 김인우는 거리낌 없이 비난해 댔다.

“이 귀머거리가 진짜! 제가 정말 유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도 된 줄 아나? 어딜 감히 남편을 감시해? 남준아, 너 설마 걔랑 평생 시간 끌려는 건 아니지? 박씨 일가는 인제 아무것도 아니야. 걔 남동생 박민호는 회사도 운영할 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라고. 얼마 안 가 박씨 가문이 그대로 망할걸. 걔네 엄마는 또 밑 빠진 독이지!!”

유남준은 담담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들었다.

“알아 나도.”

“근데 왜 이혼 안 해? 지원이는 여태껏 너만 기다렸어.”

김인우가 초조하게 물었다.

단순하고 또 항상 노력하는 이지원은 약아빠진 박민정보다 몇 배는 더 나은데, 김인우는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이혼 얘기에 유남준은 침묵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김인우가 못 참고 물었다.

“너 설마 박민정한테 정든 건 아니지?”

정든다고?

유남준은 경멸의 미소를 날렸다.

“걔가 그럴 자격이나 돼?”

그는 인수합병 계약서 한 부를 김인우에게 건넸다.

이를 본 김인우는 입이 쩍 벌어졌다.

‘유남준, 너 진짜 독하다 독해!’

그는 단지 유남준과 박민정이 이혼하길 바랐지만 절친 남준이가 바움 그룹을 단번에 인수할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뜻밖에도 박민정이 살짝 안쓰럽게 느껴졌다.

부부로 3년을 지내오며 박민정이 유남준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는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다 안다.

유남준은 무자비하기 그지없고 박민정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도 팩트이다!

...

그가 안 돌아올 줄 알았는데 새벽 12시에 두원 별장으로 돌아왔다.

박민정은 아직 안 자서 재빨리 그를 마중 갔다. 그녀는 숙련된 솜씨로 그의 외투와 서류 가방을 넘겨받았다.

일련의 행동은 보통 부부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

“앞으론 함부로 문자 보내지 마.”

유남준의 쌀쌀맞은 목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트렸다.

그녀는 일도 안 하고 종일 집에 있으면서 굳이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

박민정은 외투를 옷장에 걸다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네, 앞으론 더는 그런 일 없어요.”

유남준은 그녀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곧게 서재로 향했다.

몇 해 동안 그는 돌아오면 대부분 시간을 서재에서 보낸다.

두 사람은 분명 한 지붕 아래에 있지만 박민정은 늘 혼자였다.

어쩌면 유남준은 청각장애인의 세계가 늘 조용하다고 생각할지도, 또 혹은 아예 그녀를 신경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듯싶다.

서재로 들어간 후 유남준은 하던 대로 비즈니스 업무를 상의했고 그 내용은 바움 그룹 인수합병 건이었다...

박민정도 늘 그랬듯 위를 따뜻하게 해주는 차 한 잔 타왔고 그가 부하 직원에게 명령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동생 박민호가 무능해서 바움 그룹은 조만간 이날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바움에 제일 빨리 손 쓴 자가 남편일 줄이야.

“남준 씨.”

그녀의 부름에 유남준은 하던 말을 멈췄다.

그는 가슴이 찔렸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흠칫 놀라더니 재빨리 온라인 통화를 마치고 노트북도 접었다.

박민정은 일부러 그의 동작을 못 본 듯 가까이 다가와 케모마일 차 한 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남준 씨, 차 마시고 일찍 쉬어요.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에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유남준의 긴장했던 마음을 조금 풀어주었다.

그녀는 듣지 못했겠지. 만약 들었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웠을 테니까!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유남준은 떠나가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할 얘기가 뭐야?”

박민정은 더없이 익숙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 오전에 시간 돼요? 우리 함께 가정법원 가서 이혼 신청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한 바람처럼 차분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평상시 흔하디흔한, 아주 사소한 일을 말하듯 이혼을 언급했다.

유남준의 눈빛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결혼생활 3년 동안 그가 아무리 도가 지나친 일을 해도 박민정은 이혼을 언급한 적이 없다.

사실 유남준도 알고 있다. 그녀는 유남준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이전에 두 집안이 이웃으로 지낼 때부터 이 어린 소녀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무려 십여 년 동안 자신만 좋아한 것도 잘 안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박민정의 퀭했던 두 눈이 지금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영롱하게 빛났다.

“남준 씨, 그동안 당신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요. 우리 이만 이혼해요.”

유남준은 양옆에 내려놓았던 손이 저도 몰래 움찔거렸다.

회사에서 김인우가 이혼하라고 다그칠 때도 그는 아무 말 없었는데 박민정이 먼저 얘기를 꺼내다니, 대체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방금 너도 들었지? 바움은 이젠 말로에 세워졌어. 내가 따오거나 딴 사람이 따가거나 뭐가 다른데? 이혼 얘기는 대체 왜 꺼내는 거야? 아이 때문이야 아니면 돈 때문이야? 그것도 아니면 지금 나더러 바움에서 손 떼라고?”

유남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잊지 마. 난 널 사랑한 적 없어. 이런 협박 따위 나한테 안 통해.”

박민정은 이혼으로 협박할 뿐 절대 이혼할 엄두가 안 날 것이다. 그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박씨 일가가 감히 이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더더욱 못하겠지!

박민정은 순간 눈앞의 유남준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목이 뻣뻣함과 동시에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 보청기를 착용했지만 그가 뭐라 말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제멋대로 이해하고 방금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유남준이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챌까 봐 그녀는 얼른 서재를 나섰다.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남준은 전례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딴 사람 때문에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책상을 뒤집는 일이 없는데...

그녀가 방금 따라온 케모마일 차가 바닥에 쏟아져 흥건해지고 책상 위에 놓였던 서류들도 바닥에 널브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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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정은 오른쪽 귀에서 피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한수민은 이토록 연약하고 무능한 딸을 보자 자기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다.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문서를 박민정에게 건네주었다.“잘 살펴봐.”“엄마가 널 위해서 만들어준 배경이니까.”문서를 받아들자 문서에는 혼인계약서 다섯글자만 보였다.박민정은 문서를 열어보았다.「...박민정 양은 최명길 군의 아내가 되여 그의 일생을 책임지고... 최명길 군은 박진정 양의 가족들의 생활을 보장해주고 600억의 자산을 박씨 집안에게 제공해준다...」최명길. 그는 진주시의 오래된 사업가 중 한명으로 올해 일흔에서 여든이었다.박민정은 뇌가 아릿하게 당겨오는 것 같았다.한수민이 이어 말하는 게 들렸다.“최 사장님이 말씀 하셨어. 네가 재혼이어도 불쾌해 하지 않을거고 자기한테 시집만 오면 박씨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겠다고.”한수민은 기대에 찬 눈으로 박민정을 보면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면서 말했다.“착한 우리 딸. 너는 엄마랑 동생을 실망 시키지 않을거야. 맞지?”박민정은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녀는 손 안에 든 계약서를 꽉 움켜쥔 채 말했다.“저랑 남준 씨, 아직 완전히 이혼한 게 아니에요.”한수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말했다.“최 사장님이 말씀하셨어. 먼저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혼인신고해도 된다고. 어차피 유남준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닌데 엄마는 네 선택을 존중한단다. 너희 둘 이혼 허락해줄게.”박민정과 유남준의 결혼을 무를 수도 없었다.한수민은 아들의 말대로 딸이 아직 어릴 때 그 가치를 최대한 사용하고 싶었다.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목이 메어왔다.“뭐 하나만 물어도 돼요?”그녀는 잠깐 멈칫하고 말을 이었다.“제가 친딸은 맞는 거예요?”한수민은 흠칫했다.어르고 달래던 한수민은 바로 표정이 바뀌어 책망하듯이 얘기했다.“내가 너만 아니었으면 내 몸매가 이렇게 될 일이 있었겠니? 세계적인 무용가가 진창에 떨어질 일이 있었겠냐고! 너는 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화

    주위를 둘러보자 그저 낯설게 느껴졌다.그녀는 또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핸드폰을 꺼내서 내비게이션을 킬 생각이었지만 또 한참 동안 사는 곳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연지석은 쭉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아까 유남준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정 혼자 제자리에 서 있는 걸 보고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박민정.”박민정은 유남준이 돌아온 줄 알았다.그녀는 기대 어린 눈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결국 실망하고 말았다. 연지석은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나 진짜 기억 안 나? 나 뚱이야. 잊은 거야?”연지석은 그녀를 일깨워줬다.박민정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어릴 때 은정숙을 따라서 시골에 가 살 때 친해진 절친 뚱이.그때 연지석은 뚱뚱한 데다가 박민정보다도 키가 작았다. 근데 지금은 190센티미터는 훌쩍 넘는 키에 얼굴도 굉장히 잘생겨졌다.“생각났어. 너 많이 변했다. 못 알아봤네.”어릴 때 친구를 우연히 마주치는 건 꽤 기쁜 일이었다.“가자. 데려다줄게.”박민정을 데려다주면서 그는 그녀가 작고 볼품없는 모텔에 묵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유씨 집안 같은 부잣집 가문이 박민정과 이혼한다 해도 그녀를 이런 누추한 곳에 데려다 놓는 건 말도 안 됐다.박민정은 조금 멋쩍게 말했다.“우스운 꼴만 보였네. 나 여기 묵어. 아주머니한테는 말하지 마! 걱정하실라.”연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너무 늦은 시간이었다.그는 계속 여기 있을 수도 없었다.연지석은 그저 내일 다시 박민정을 만나러 오겠다고 하고 떠났다.모텔을 떠나는 연지석은 길 구석에 세워진 검은색 캐딜락 한 대를 발견하지 못했다.박민정에게 있어서 어디에 묵는지는 다 똑같았다.연지석이 떠났다.술을 마셔서인지 위가 불편했고 머리도 어지러웠다.머릿속에서 유남준이 한 말이 맴돌았다.‘화장은 무슨 귀신처럼 해서... 너 같은 사람을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어?!’그녀는 힘을 주어 얼굴에 남은 화장과 입술의 립스틱을 문질렀다. 창백했던 얼굴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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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02화

    유남준은 퇴근하면 무조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고 박민정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알려줬다.“나 내일에 갈게.”“그래요. 그러면 여기서 얼마간 머물면서 같이 놀 수 있겠네요.”“당연하지.”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박민정 곁으로 날아가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그렇게 박민정은 유남준과의 통화를 끝낸 뒤 누워서 조하랑과 또 어디로 놀러 갈지 생각해 보았다.며칠 전, 조하랑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김인우가 알아버렸다고 했다.그리고 아이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조하랑이 어디를 가든 김인우가 항상 따라붙었고 혹시나 어디에 부딪힐까 노심초사했다.김인우의 태도에 박민정은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다른 한편.정수미는 방 안에 있다가 갑자기 심하게 기침하더니 피까지 토해내기 시작했다.순간 깜짝 놀란 길연서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정 대표님, 당장 저랑 같이 병원에 가요.”“안돼. 갑자기 병원에 가면 엄마랑 아빠, 그리고 민정이가 바로 눈치챌 거란 말이야.”정수미는 단호하게 거부했다.“걱정하지 마. 아직은 버틸 만하니까.”“이게 다 윤소현 씨 때문이에요. 어떻게 사람이 이리도 독할 수 있어요? 그때 그런 약을 매일 먹이지만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 건강이 악화할 일도 없었을 텐데.”길연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비록 정수미는 젊었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약만 꾸준히 먹으면 6~7년은 끄떡없다고 의사가 말했다.하지만 지금은...길연서는 혹시나 정수미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곁을 떠날까 봐 너무 무서웠다.“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우리는 그저 앞으로의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면 되지.”정수미는 이제 두려울 게 없었다.“네.”“그리고 앞으로 우리 민정이를 잘 부탁해. 아직 어려서 회사를 혼자 관리하기가 분명 힘들 거야. 혹시나 남준이가 우리 민정이를 괴롭히지 않는지도 잘 지켜보고.”정수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유언처럼 들렸고 길연서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01화

    때마침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녀는 한껏 아니꼬운 눈빛으로 박민정을 쏘아보았다.“그런 속담이 있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눈앞의 여자는 분명 박민정보다 한참 어린 것 같았고 나이가 많아 봤자 고작 스무 살 정도로 보였다.사실 이미 어제 한 번 만났었는데 먼 친척의 딸이라고 했고 잠시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이름은 정윤아.그녀를 기억하게 된 원인도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정윤아만 자신을 혐오와 경멸이 가득 찬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정윤아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며 지나가려 했지만 순순히 보내줄 박민정이 아니었기에 대뜸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제가 뭘 잘못했나요?”박민정의 돌발행동에 정윤아는 살짝 놀란 듯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물었다.“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몰라요?”박민정은 눈앞의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무슨 헛소리에요? 전 당신을 아예 모르는데 제가 그쪽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거죠?”지금의 박민정은 더 이상 예전의 그 겁도 많고 물러터진 사람이 아니었다.그리고 눈앞의 사람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자신을 비꼬는데 무조건 확실하게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의 말에 정윤아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제가 아니라 소현 언니요.”‘소현 언니라... 보아하니 윤소현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였구나?’“제가 소현 씨한테 잘못한 건 또 뭔데요?”“당신이 이 가문에 돌아오지만 않았다면 소현 언니가 쫓겨날 일도, 교도소에 가게 될 일도 없겠죠? 이 모든 게 다 그쪽 때문이잖아요. 우리 고모한테도 무슨 약을 쳤는지 그쪽 말이라면 아주 철석같이 믿더라고요.”박민정은 그녀의 말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윤소현이 지금처럼 변한 게 다 자업자득이고 모두 자신이 저지른 죄인데 그걸 왜 박민정 탓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정윤아 씨, 우리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되죠.” “제가 왜 몰라요? 소현 언니는 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00화

    “어차피 우리 아이면 어떤 모습이든지 제 눈에는 다 예뻐 보일 겁니다.”김인우가 껄껄거리며 팔불출 같은 모습을 보이자 조하랑은 방금 한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하여 고민 끝에 그에게 말했다.“알겠어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요. 그런데 만약 저랑 제 아이한테 조금이라도 모질게 굴면 바로 짐 싸서 또다시 도망칠 거란 사실만은 알아둬요.”조하랑은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맞다, 그리고 위자료도 넉넉하게 줘야 하고요.”그녀는 배신당해도 가만히 있을 멍청이가 아니다.그러자 김인우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지금 당장 계약서 씁시다. 제가 만약 하랑 씨랑 아이한테 잘 못하면 김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전부 하랑 씨한테 넘겨줄 것이고 저는 늙을 때까지 외롭고 비참하게 살다가 죽겠습니다.”김인우의 말에 조하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당장 종이와 펜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자, 여기에 적어요.”김인우는 예전에 법에 대해서 공부했던 사람이고 어차피 빈 말도 아니었기에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갔다.조하랑도 변호사 일을 했던 사람이라 그가 적은 내용이 혹시나 자신과 아이한테 이로운 게 맞는지 다시 한번 꼼꼼하게 검사해 보았다.“이만하면 된 것 같아요. 사인하고 도장 찍읍시다.”그녀의 말대로 김인우는 두말없이 서류에 사인하고 지장을 찍었다.그리고 모든 게 끝난 뒤에야 조하랑은 비로소 안심되었다.“그러면 우리는 이만 돌아가도 되지 않나요? 가서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리면 분명 좋아하실 텐데.”“며칠 있다가요. 이왕 온 김에 여행이라 생각하고 며칠 더 놀고 싶어요.”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짠 여행 계획을 그에게 보여줬다.“봐요. 아직 가야 할 곳이 엄청 많다고요.”“저도 같이 가요.”김인우의 말에 조하랑이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그러면 민정이도 같이 데리고 갑시다. 우리랑 같이 놀다가 진주로 돌아갈 때 셋이 같이 돌아가면 되잖아요.”“그래요.”김인우는 이제 조하랑의 말이라면 뭐든 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9화

    김인우는 정작 말하려니 살짝 망설여지기 시작했다.‘만약 내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그러면 나 말고 또 다른 남자가 있단 말인가?’조하랑이 김씨 가문으로 시집오고 난 뒤부터 김훈이 감시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거의 매일 같은 방에서 자야 했다.김인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하랑 씨, 임신했죠!”이건 의문문이 아니라 아예 확신에 찬 서술문이었다.조하랑은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고 깜짝 놀란 나머지 몸이 살짝 떨려왔다.그러나 조하랑의 태도에 김인우는 여태껏 의심만 하던 게 설마 진짜인가 싶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아 다시 물었다.“아이 아빠는 제가 맞는 거죠?”그래도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조하랑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얼굴이 빨개진 채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아닐 수도 있나요?”그녀의 한마디에 김인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조하랑을 안아주고 싶었다.하여 김인우는 단번에 조하랑을 공주님 안기식으로 안아 올렸다.“그러면 저도 이제 애 아빠가 되는 거예요?”그리고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자꾸만 올라갔다.조하랑은 갑자기 몸이 공중에 뜨게 되자 깜짝 놀라 김인우의 한쪽 팔을 부여잡고 배를 움켜쥐었다.“왜, 왜 그래요! 당장 내려줘요!” 조하랑은 임신 후 예전과는 달리 겁이 많아져 지금은 혼자 길을 건너는 것도 무서웠다.김인우는 그제야 그녀를 놀라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빠르게 내려주고 사과했다.“미안해요. 많이 놀랐어요?”그리고 조심스레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괜찮아요?”조하랑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그저 애써 감춰왔던 비밀이 이렇게 허망하게 탄로 난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뜬금없이 무슨 임신이에요. 헛소리 그만해요.”그녀는 애써 김인우의 눈빛을 피했다.“하랑 씨, 제가 의사라는 걸 잊었어요?”“방금 맥을 짚어보니까 임신이 맞던데요?”조하랑은 그가 맥 짚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8화

    그렇게 박민정은 옆에서 조하랑이 기도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그러나 조하랑은 아직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김인우가 이미 알아버렸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그리고 행운을 비는 글도 몇 글자 적어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미로 나무에 걸어뒀다.박민정도 윤우와 예찬이, 그리고 두 동생과 유남준, 거기에 정수미까지 모두 건강하기를 기도했다.밖으로 나와보니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이때, 조하랑은 수많은 사람들 무리에서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김인우를 발견했다.그리고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여기에는 왜 또 따라왔어요?”김인우의 눈가는 어느새 빨개져 있었고 당장에라도 눈앞의 조하랑에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옆에 박민정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는 다시 말을 삼켜야 했다.“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 언제 돌아가요?”김인우는 애써 차분하게 물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낌새도 못 느낀 조하랑은 그저 짜증만 냈다.“오랜만에 민정이랑 쇼핑하는데 분위기 깨지 말고 따라오지도 말아요. 제가 알아서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갈 테니까.”이때, 옆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민정은 단번에 김인우가 뭔가를 알아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여 조하랑의 손을 잡고 김인우에게 말했다.“저희도 거의 끝나가던 참이었는데 이만 하랑이를 데리고 가요.”김인우는 창백한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었다.“형수님, 감사합니다.”왠지 김인우를 도와주는 것 같은 상황에 조하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물었다.“민정아, 왜 그래?”“분위기상 인우 씨가 급히 너랑 할 말이 있어 보여서. 일단 오늘에는 집에 가고 우리는 다음에 다시 만나 쇼핑하자.”박민정은 슬쩍 그녀에게 눈치 줬다.그러나 조하랑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 채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급하긴 개뿔.”“됐어. 빨리 돌아가.”박민정이 조하랑의 등을 떠밀자 그제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김인우의 차에 올라타더니 출발하기 전까지도 박민정에게 잊지 않고 당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7화

    정씨 가문의 두 노인은 아주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조하랑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차피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부자라 딱히 필요한 물건이 없을 것 같았다.“이따 쇼핑 좀 하면서 혹시나 선물할 게 없나 봐야겠어.”“그래.”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주문하려고 웨이터를 부르니 뜬금없이 사장이 직접 와서 공손하게 말했다.“혹시 두 분께서는 어떤 음식으로 주문하실까요? 메뉴판은 여기에 있는데 드시고 싶은 음식은 맘껏 주문하셔도 되겠습니다.”박민정은 너무 배고픈 상태가 아니어서 조하랑에게 주문을 넘겼다.그렇게 몇 가지 메뉴를 주문하니 빠르게 음식들이 차례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조하랑은 밥을 먹다가 요즘 따라 김인우가 거머리처럼 자신에게 달라붙는다고 박민정에게 하소연했다.“나 어떡해?”이때, 조하랑은 또다시 속이 울렁거려 밥 먹다가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그 모습을 본 사장은 깜짝 놀라 얼굴까지 창백해져서는 다급히 박민정에게 다가와 물었다.“혹시 저희 요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을까요? 아니면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라도 드신 건지요?”박민정은 안절부절못하는 사장의 모습을 보고 빠르게 해명했다.“아니요. 임신 중이라 입덧이 좀 심할 뿐입니다.”“아, 네네. 그러면 다행이네요.”그래도 여전히 창백한 얼굴인 사장을 보고 박민정은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왠지 오늘 이 가게에 적잖이 민폐 끼친 것 같아 박민정은 조하랑을 데리고 빠르게 가게에서 나와 그길로 쇼핑하러 갔다.그러나 두 사람이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웬 남자가 다시 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바로 김인우였는데 그는 아까부터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시름 놓고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다가 조하랑이 토하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이상함을 느꼈다.하여 사장에게 방금 상황을 묻자 그는 사실대로 알려줬다.“아, 아까 그 아가씨가 지금 임신 중이라면서 음식을 먹으면 자주 토한다고 하셨어요.”임신!김인우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린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잘못 들었나 싶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6화

    그 사람이 박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조하랑의 입꼬리는 주체를 못하고 아래위로 춤을 췄다.‘뭐야?’‘민정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꼴값을 떨었지? 오늘은 그저 밥이나 먹고 쇼핑하는 건데 이렇게 많은 경호원을 데려올 필요가 있나?’박민정도 차 안에서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가게 안으로 달려가다가 뒤따라오는 경호원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여기까지 데려다주시면 돼요. 그리고 밖에서 기다려줘요.”그러자 그들은 난감한 얼굴로 박민정에게 말했다.“안 됩니다. 정 대표님께서 무조건 10미터 이내로 밀착 경호하라고 했거든요.”순간 할 말을 잃은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경호원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사장은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조심스레 물었다.“저기, 혹시 저희 가게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요?”순간 박민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답했다.“가게는 괜찮네요. 인테리어도 심플해서 마음에 들고요. 왜요?”그녀의 대답에 순간 사장은 어리둥절했다.“그러면 여기까지 온 목적이...”사장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그저 친구랑 밥 먹으러 왔는데요?”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두리번거리다가 그제야 구석 창가 쪽에 앉아 있는 조하랑을 발견했다.원래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조하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박민정과는 모르는 사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박민정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하랑아.”조하랑이 못 들은 척 고개를 수그리자 박민정은 오늘따라 그녀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뒤따라오던 경호원들이 사장에게 말했다.“이제부터 다른 손님은 받지 말아 주세요.”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살짝 당황했지만 그래도 사장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네네.”그렇게 경호원들은 다시 박민정의 주위로 흩어져서는 혹시나 위험한 인물이 없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이 맞은편에 앉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5화

    “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박민정은 어렵게 되찾은 자기 친엄마를 두 번 다시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정수미는 이 기회에 원래 자기 건강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박민정의 반응을 보고는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그래, 그만 말할게. 너도 얼른 쉬어. 그리고 요 며칠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기만 해.”“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정수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정수미가 집에 돌아와 보니 길연서가 이미 그녀를 위해 약을 준비하고 있었다.“대표님, 혹시 민정 씨한테 말했어요?”그러자 정수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약을 한 입 마셨다.“아니.”그러다가 허망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분명히 아주 간단한 몇 마디인데도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네.”길연서는 한숨을 길게 내뱉더니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런 일은 최대한 빨리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겁니다.”“나도 알아.”정수미는 빈 컵을 그녀에게 건네며 다시 말을 이었다.“됐어. 오늘 너도 힘들었을 텐데 이만 가서 쉬어. 난 괜찮으니까.”“네.”길연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떴다....이튿날, 아침.박민정은 일찍 깨어나 모든 준비를 마쳤다.도우미들은 박예찬과 박윤우가 일어나자마자 학교 갈 준비를 도와줬는데 그 모습이 박민정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정근우와 임은숙은 박민정이 오늘 친구 만나러 간다는 걸 알고 특별히 조하랑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해 뒀다.“민정아, 이건 우리가 준비한 선물인데 네 친구한테 주면 분명 좋아할 거야.”그러나 박민정은 습관적으로 거절했다.“아니에요. 저랑 오래된 친구라 그럴 필요 없어요.”“바보야, 오래된 친구일수록 이런 서프라이즈도 가끔 필요한 거야.”임은숙은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선물은 우리가 꼭 주고 싶었어. 우리 민정이랑 친구로 지내줘서 고맙다는 표시니까 빨리 갖고 가.”자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4화

    “네 아빠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이었지. 그런데...”정수미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잘 생겼던 건 인정, 아니면 내가 데리고 살아주지도 않았을 거야.”박민정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수미는 한숨을 다시 내뱉었다.“사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가정 환경마저 평범한 아주 보통 집에서 태어난 남자였지.”“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결국에는 혼자만의 힘으로 서주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으로 되었고.”“나랑 네 아빠는 어느 기업의 한 파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뒤로 연인 사이가 되어버렸어.”“그렇게 약혼도 하고 네가 태어난 거야.”정수미는 간단하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줬다.“그때의 정씨 가문은 지금처럼 그리 화목하지 않았어. 내 위로 오빠 한 명이 있는데 그 사람은 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께서 데려온 아이였지. 그리고 내가 임신한 사실과 네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하자 내가 정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아 갈까 봐 몰래 우리한테 손을 썼어.”“그렇게 너는 그 사람 손에 의해 보육원에 보내졌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실 그 사람은 그때 널 죽이려 했어. 그런데 마지막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널 그냥 살려둔 거야.”“그때의 나는 너를 낳고 나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가 하마터면 그 사람이 지른 불로 인해 죽을뻔했어.”“그렇게 네 아빠가 나를 불바다에서 꺼내주다가 본인은 죽게 되었지...”여기까지 말하던 정수미의 눈가는 이미 빨개졌고 두 주먹을 꽉 쥐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나랑 꼭 행복하게 살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렇게 나만 두고 가버린 사람을 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결국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말로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괴로워 아무 핑곗거리나 찾았던 것 같았다.박민정은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몰라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그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빠도 아마 엄마가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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