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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윤지
“아직 제대로 된 사랑도 못 해봤죠? 남준 오빠는 나랑 있을 때 밥도 직접 차리고 또 내가 아플 땐 제일 먼저 달려왔어요. 나한테 했던 가장 달콤한 말은 바로 ‘지원아, 난 네가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 이 말이었어요... 오빠가 민정 씨한테는 사랑한다는 말 한 적 있어요? 전에 나한테 엄청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오빠 유치하다고 항상 틱틱거렸거든요...”

박민정은 묵묵히 들으며 이 3년 동안 유남준과 함께한 나날들을 되새겨보았다.

그는 단 한 번도 음식을 차려본 적이 없다.

그녀가 아플 때 관심의 말 한마디조차 없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박민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할 얘기 다 했어요?”

이지원은 흠칫 놀랐다. 그녀가 너무 차분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사람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것만 같아서인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박민정이 떠난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왠지 모르게 이지원은 지금 이 순간 꼭 마치 박씨 일가의 후원을 받던 가난한 고아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박씨 일가의 귀한 따님 뒤에서 이지원은 영원히 웃음 팔이 피에로 역할이었다.

...

박민정이라고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

12년이나 좋아했던 남자인데, 한때 그녀도 아이처럼 누군가를 좋아했었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했었는데...

박민정은 문득 또다시 두 귀가 아파서 보청기를 빼내더니 그제야 선홍빛 핏물이 고인 걸 발견했다.

그녀는 습관처럼 보청기에 묻은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는 옆에 내려놓았다.

잠이 오질 않아 휴대폰을 가져와 인스타그램을 열었는데 상단 스토리에 이지원 계정이 보란 듯이 초록색 테두리로 되어 있었다.

클릭해 보니 박민정을 ‘친한 친구 리스트’에 넣어 오직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첫 장은 대학교 때 이지원과 유남준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둘은 나란히 서 있었고 유남준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두 번째 장은 둘의 카톡 대화 내용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유남준은 너무나도 상냥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지원아, 생일 축하해. 널 꼭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줄게.」

세 번째 장은 유남준과 이지원이 손잡고 나란히 모래사장을 걷는 뒷모습이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진들에 박민정은 숨이 꽉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는 감히 더는 뒤로 넘기지 못하고 얼른 휴대폰을 껐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젠 포기해야 해. 놓아줄 때가 됐어.’

이날, 박민정은 일기장에 이런 말을 적었다.

「난 원래 어둠을 견딜 수 있었어. 하지만 그건 빛을 보지 못한 전제하에서야.」

다음날 그녀는 습관적으로 일어나 아침밥을 차렸다.

하지만 6시가 다 돼도 유남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기억났다. 앞으로 집에 돌아와 아침을 먹지 않겠다고 했던 말.

유남준이 안 돌아올 줄 알고 그녀는 홀로 소파에 누워 스르륵 잠들었다.

“아침 안 차려도 된다고 했잖아.”

짜증 섞인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고 박민정은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떴다.

유남준은 시큰둥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얼른 습관처럼 사과했다.

“미안해요, 깜빡했어요.”

또 깜빡했다는 말, 또 미안하다는 말...

유남준은 고개 돌려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오늘도 늘 똑같은 그레이 톤의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마치 그가 돈 없어서 와이프를 막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왜 집에 돌아오는 건 깜빡 안 해? 왜 나랑 결혼한 건 깜빡 안 해? 이참에 그냥 너 자신도 깜빡하지 그랬어? 아쉽겠지? 우리 집안 재산이 욕심나겠지! 돈 버는 기계인 날 놓치기가 싫겠지!”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처럼 그녀 마음을 정처 없이 난도질했다.

박민정은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남준 씨, 난 한 번도 남준 씨 돈을 노린 적 없어요.”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건 오직 유남준이란 사람 그 자체이다.

유남준은 야유 섞인 미소를 날렸다.

“그런데 너희 엄마가 오늘 아침 회사로 찾아와서 나한테 애 낳아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앞뒤가 안 맞잖아.”

박민정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없이 싸늘하고 어두운 그의 두 눈을 마주한 순간 그제야 알아챘다. 유남준은 어젯밤 일로 그녀에게 화낸 게 아니었다.

유남준은 그녀와 쓸데없는 말을 떠벌리지 않았다.

“박민정, 너 우리 집에 무사히 있고 싶거든, 너희 집안 무너지지 않게 하고 싶거든! 너희 어머니더러 분수 지키라고 해.”

말을 마친 유남준은 서재로 가서 물건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는 바로 집을 나섰다.

...

박민정이 한수민을 찾아가기도 전에 그녀가 불쑥 집으로 오더니 쌀쌀맞았던 이전 모습과는 달리 딸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

“민정아, 남준이 찾아가서 아이 낳자고 빌어! 의학적인 수단을 빌려서라도 꼭 낳자고 해, 응?”

의학적인 수단이라!

박민정은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며 말을 계속 들었다.

“지원이가 이미 알려줬어. 이 3년 동안 남준인 널 단 한 번도 다친 적 없다며.”

참고 또 참았던 분노가 이 한마디에 전부 폭발해 버렸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공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각자의 이익뿐!

유남준은 대체 왜 이런 말을 이지원에게 한 걸까?

그녀를 정말 너무 사랑해서?

여기까지 생각한 박민정은 해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 인제 그만 해요.”

한수민은 흠칫 놀라더니 미간을 구기고 그녀에게 물었다.

“뭐라고?”

“나 너무 지쳤어요. 남준 씨랑 이혼하고 싶어요...”

“찰싹!”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한수민이 그녀의 뺨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자애로운 어머니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두 눈을 부릅뜨며 딸에게 쏘아붙였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혼을 논해? 유씨 가문을 떠나면 너같이 온전하지 못한 이혼녀가 재혼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같이 쓸모없는 딸을 낳은 거야?! 넌 정말 하나도 나 안 닮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널 데려오는 게 아닌데!”

박민정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려서부터 한수민은 그녀를 싫어했다.

한수민은 유명한 무용가인데 난청인 딸 박민정을 낳은 게 평생의 한이 되었다.

그녀는 모질게 딸아이를 가정부에게 맡겼다가 학교 갈 나이가 돼서야 박씨 일가로 데려왔다.

박민정은 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 세상에 제 자식을 싫어하는 엄마는 없다는 그 말.

그때부터 그녀는 더 우수해지려고 노력했고 엄마에게도 최대한 잘 보이려고 애썼다.

난청이지만 무용, 음악, 서예, 언어 등 장르마다 손꼽히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다 결국 이제야 알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마음속엔 영원히 좋은 딸이 못 된다는 걸.

엄마 말대로 그녀는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몸뿐만 아니라 가족도 사랑도 전부 다...

한수민이 떠난 후.

박민정은 파운데이션으로 얼굴에 난 선명한 손자국을 커버한 후 홀로 차 타고 로펌으로 갔다.

사무실 안.

박민정의 아버지가 생전에 고용했던 법무 장명철은 그녀가 건네준 위임장을 다 훑어본 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너희 아빠가 몰래 네게 남겨주신 일부 유산을 정말 유남준에게 다 줄 거야? 잘 생각해 봐, 그 사람은 이까짓 돈이 부족하지 않아.”

박민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아요, 하지만 이건 내가 빚진 거니까 갚아야죠 무조건.”

3년 전 박민정의 아빠 박형식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생전에 이미 세 개의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한수민이 딸 민정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지 이 마지막 유언장은 사석에서 딸에게 전해주라고 장 변호사에게 당부했다.

마지막 유언장엔 박민정이 결혼한 3년 후, 만약 불행하다고 느껴지거나 본인만의 사업을 차려 남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을 때 이 유언장을 쓸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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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a Comment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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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화
재밌어요~~~너무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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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jin Kim
계속 계속 보고심고 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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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020112
재밌어요~ 좋아요 GOOD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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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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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화

    기사를 열어보니 유앤케이 그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바움 그룹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고 발표하는 내용이었다.이 세상에 더는 바움 그룹이 존재하지 않는다...기사에는 유남준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잘생긴 옆모습과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사진 아래에 댓글도 아주 많이 달렸다.「유남준 완전 잘생겼어,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라니.」「아쉽게도 유부남이네. 결혼 상대가 박씨 일가의 따님이랬나?」「정략결혼이지 뭐. 3년 전 그 기사 다 잊었어? 결혼식 때 유남준이 아예 신부 손을 뿌리치고 떠났었잖아...」「...」인터넷은 모든 걸 기록하고 있다.박민정은 3년 전 결혼식 날 유남준이 자신을 버리고 분노하며 자리를 떠난 일을 거의 잊고 있었다.그렇게 쭉 아래로 댓글을 읽어내려갔다.이 3년간 그녀는 바움이 조만간 무너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유남준은 최근 흐뭇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바움을 인수하고 끝내 통쾌하게 복수했으니.김인우가 웃으며 말했다.“3년 전에 박씨 일가에서 사기 결혼을 강행하더니 인제 드디어 벌 받네.”그는 문득 화제를 돌려 옆에서 일하는 유남준에게 물었다.“남준아, 귀머거리 요즘 너한테 찾아와서 사정하지 않았어?”서명하던 유남준의 손이 멈칫 흔들렸다.왠지 모르지만 요즘 그의 주변에서 박민정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거의 이혼하는 마당에 왜 아직도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응, 없어.”그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김인우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박씨 일가에 이렇게 큰일이 발생했는데 박민정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니?“걔 설마 진짜 해탈한 거 아니야? 누가 그러는데 걔네 엄마가 걔 찾느라고 사방으로 돌아다닌대. 대체 어디 숨었길래.”김인우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대자 유남준은 짜증이 확 밀려와 눈썹을 찌푸렸다.“나가!”김인우는 화들짝 놀라더니 그제야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걸 알아채고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대표이사 사무실을 나섰다.그가 떠난 후 유남준은 무심코 휴대폰을 들여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화

    박민정은 오른쪽 귀에서 피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한수민은 이토록 연약하고 무능한 딸을 보자 자기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다.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문서를 박민정에게 건네주었다.“잘 살펴봐.”“엄마가 널 위해서 만들어준 배경이니까.”문서를 받아들자 문서에는 혼인계약서 다섯글자만 보였다.박민정은 문서를 열어보았다.「...박민정 양은 최명길 군의 아내가 되여 그의 일생을 책임지고... 최명길 군은 박진정 양의 가족들의 생활을 보장해주고 600억의 자산을 박씨 집안에게 제공해준다...」최명길. 그는 진주시의 오래된 사업가 중 한명으로 올해 일흔에서 여든이었다.박민정은 뇌가 아릿하게 당겨오는 것 같았다.한수민이 이어 말하는 게 들렸다.“최 사장님이 말씀 하셨어. 네가 재혼이어도 불쾌해 하지 않을거고 자기한테 시집만 오면 박씨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겠다고.”한수민은 기대에 찬 눈으로 박민정을 보면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면서 말했다.“착한 우리 딸. 너는 엄마랑 동생을 실망 시키지 않을거야. 맞지?”박민정은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녀는 손 안에 든 계약서를 꽉 움켜쥔 채 말했다.“저랑 남준 씨, 아직 완전히 이혼한 게 아니에요.”한수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말했다.“최 사장님이 말씀하셨어. 먼저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혼인신고해도 된다고. 어차피 유남준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닌데 엄마는 네 선택을 존중한단다. 너희 둘 이혼 허락해줄게.”박민정과 유남준의 결혼을 무를 수도 없었다.한수민은 아들의 말대로 딸이 아직 어릴 때 그 가치를 최대한 사용하고 싶었다.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목이 메어왔다.“뭐 하나만 물어도 돼요?”그녀는 잠깐 멈칫하고 말을 이었다.“제가 친딸은 맞는 거예요?”한수민은 흠칫했다.어르고 달래던 한수민은 바로 표정이 바뀌어 책망하듯이 얘기했다.“내가 너만 아니었으면 내 몸매가 이렇게 될 일이 있었겠니? 세계적인 무용가가 진창에 떨어질 일이 있었겠냐고! 너는 정

Pinakabagong kabanata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34화

    윤소현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아봤다.그녀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 사촌 동생한테 뺨을 맞으니 그 충격은 거의 배로 느껴졌다.“정윤아, 너 어디 두고 봐!”그러자 정윤아는 팔짱을 끼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언제까지 두고 보시려고요? 몇십 년 뒤 백발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까요?”그녀의 말 한마디에 윤소현은 또다시 발악했다.“난 절대 감옥에 가지 않을 거야! 누군가가 꼭 데리러 올 거거든.”“아, 그래요? 그 사람이 누구인데요?”그러나 윤소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사실 윤소현한테는 정윤아가 마지막 동아줄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기 때문이다.정윤아는 대답 못 하는 그녀에게 계속 일침을 날렸다.“그거 알아요? 제가 너무 심심해서 유남우 씨는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거든요?”유남우라는 이름이 들리자마자 윤소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뭐 하고 있는데?”“여기저기 선을 보러 다니느라 아주 정신이 없더라고요. 거의 괜찮은 집 여자들은 다 한 번씩 만나본 것 같던데 왜 이렇게 결혼을 서두르는지 모르겠어요. 설마 언니의 그늘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윤소현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그런 남자랑 결혼하는 것 자체가 불행이야.”윤소현의 순결도 유남우 때문에 더럽혀졌다. 이때 정윤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유남우 씨를 좋아했던 게 아니었어요?”순간 윤소현은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그 누구한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왜요?”정윤아는 순간 그녀의 말에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그러나 윤소현은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말을 꺼리는 모습에 정윤아는 더욱 호기심이 차올랐다.“혹시 유남우 씨가 언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요?”“네가 알아서 뭐 하게?”끝까지 대답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정윤아도 어쩔 수 없이 그만 물어야 했다.“알겠어요. 그런데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은 아직 끝난 것 같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33화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방성원은 방문호와 한창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혹시나 자기 아내가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방성원의 모습에 안현자는 혀를 끌끌 차며 방문호에게 말했다.“여보, 애들도 쉬어야 하는데 우리도 그만 돌아갑시다.”그러자 방문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래.”그리고 돌아가기 전 그는 방성원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마치 어린아이에게 당부하듯 말했다.“인하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두 사람이 가자마자 방성원은 빠르게 설인하한테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엄마가 심한 말은 안 하셨어?”순간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다는 걸 느낀 설인하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그저 시시콜콜한 얘기만 나눴어.”말을 마치자마자 설인하가 갑자기 방성원을 향해 양팔을 뻗으며 물었다.“나 좀 안아줄 수 있어?”사실 두 사람은 약혼 날 이후로 포옹해 본 적이 없었다.방성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그녀를 품에 안았고 설인하는 그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성원 씨...” 오늘따라 유난히 다정하게 들리는 그녀의 부름에 방성원이 대답했다.“응.”“앞으로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서로 숨기는 일 없이 솔직하게 말하기.”방성원은 갑자기 돌변한 그녀의 태도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했다.“그래.”방성원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설인하는 눈을 꼭 감은 채 그의 온기를 느끼려 했지만 방성원은 자기 감정을 억제하느라 꽉 안아주지도 못했다.그렇게 두 사람이 애틋하게 안고 있을 무렵, 갑자기 도우미가 방은정을 데리고 들어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깨져버리고 말았다.“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나갈게요.”그러자 설인하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아니에요. 괜찮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도우미에게 다가가더니 방은정을 자기 품에 안고 그녀의 귀여운 볼에 입을 맞췄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32화

    설인하는 안현자의 말을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여태껏 방성원은 자신을 너무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그저 미적지근한 태도로 대했다.특히 연애 초반에도 방성원은 달콤한 말 한마디나 그 어떤 사랑 고백, 하물며 그 흔한 선물조차 준 적이 없었다.‘그런데 꼭 나랑 결혼해야 한다고 매달렸다고?’안현자는 한눈에 봐도 눈앞의 설인하가 지금 자기 말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인하야, 이런 걸로 내가 너를 속이겠니? 너도 잘 생각해 봐. 너희 집이 그때 파산하고 네 부모님까지 돌아가셨으면 우리 방씨 가문에서는 충분히 그 결혼을 무를 수 있었어.”여기까지 들은 설인하는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진짜 그대로 파혼을 밀고 나갔다면 좀 창피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 선택이 우리 방씨 가문에는 더 유리했을 거야. 그런데 우리 성원이가 무조건 너랑 결혼하겠다고 억지 부리는 바람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어.”“그때 성원이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또 너를 위해 우리 앞에서 무릎 꿇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어.”그 무뚝뚝한 방성원이 자신을 위해 무릎까지 꿇었다는 소리에 설인하는 더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었다.“저는...”이때 안현자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솔직히 난 아직도 네가 내 며느리인 게 마음에 안 들어. 그런데 우리 아들이 죽고 못 산다고 하니 엄마로서 다른 방법이 없잖니.”안현자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설인하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그리고 그녀가 방금 했던 말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그런데 왜 여태껏 이런 말을 저한테 해주지 않으셨어요?”“난 네가 진심으로 우리 아들을 사랑하는 줄 알았으니까!”안현자가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넌 그저 겉으로만 우리 성원이를 사랑한다고 했고 우리 아들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그만큼 표현하지 않았던 거야.”“그 애는 자기 아빠를 닮아서 어릴 때부터 말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걸 잘 못 했어. 그렇다고 이게 너한테 상처받을 이유는 못 되잖아?”안현자는 어떻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31화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그렇게 두 사람은 약혼했고 설인하는 학교에 다닌 것 외에는 주로 방성원 만나러 성진그룹에 갔다. 그때의 방성원은 설인하에게 한없이 차갑고 무뚝뚝해서 남들의 눈에는 여자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졸업하고 난 뒤 양가 부모님의 허락하에 두 사람은 혼인을 맺었고 모든 게 탄탄대로 흘러갈 줄 알았다.그러나 결혼하기 얼마 전에 설씨 가문이 부도났고 동시에 설인하의 부모님도 돌아가게 되었다.그때 설인하는 큰 타격을 받고 한동안 말조차 하지 못했다.게다가 방성원은 설인하와의 결혼 첫날 밤에 그녀에게 상처 주는 말까지 해버렸다.그 이후로부터 설인하는 방성원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분명 두 사람은 부부였지만 어딘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했다.설인하는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오르자 빠르게 자기 손을 뺐다.그러자 방성원은 한껏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왜 그래?”설인하는 주먹을 꽉 쥐고 답했다.“아니야.”그리고 지금의 방성원을 더 이상 보기 싫어 아예 등지고 앉았다. 혹시나 혼자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런지 방성원이 다정하게 대해주는 게 왠지 모르게 익숙지 않았고 오히려 불편했다.방성원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던 이때, 설인하가 다시 답했다.“천천히 하자, 천천히.”그제야 방성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알겠어.”설인하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많이 배려한 셈이다.집에 돌아와 보니 방성원의 부모님이 이미 와있었고 한창 방은정과 놀아주고 있었다.그리고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들에게 물었다.“왜 이렇게 늦게 와?”“퇴근하고 병원에 친구 보러 갔었어요.”“그래.”안현자는 방은정을 안고 설인아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녀에게 말했다.“인하야,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좀 나와 봐.”말을 마친 뒤 아이를 도우미에게 넘겨줬다.그러나 방성원은 본능적으로 자기 어머니가 설인하에게 못된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엄마, 그냥 여기서 얘기해요.”안현자는 자기 아들의 예민한 반응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30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혹시나 정수미와 박민정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 같아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했다.갈 때도 모두 짝을 지어 돌아갔는데 그중 정민기와 진서연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서다희와 민수아도 팔짱을 끼고 가다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하더니 그녀도 임신했다고 알렸다.세 커플 중 오직 방성원과 설인하 두 사람만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서로 떨어져서 걸었다.그리고 이런 상황을 진작에 눈치챈 방성원은 아까부터 마음이 불편했지만 사람이 많아서 애써 참고 있었다.하여 빠르게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김인우가 그의 팔을 잡았다.“성원아, 나도 곧 아이가 태어날 것 같아.” 그러자 방성원이 뜬금없이 한마디를 내뱉었다.“우리 은정이는 이제 곧 두 살이야.”“어쩌라고? 우리 딸이 아마 네 딸보다 더 귀여울걸?”그의 말에 방성원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아직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면서.”순간 김인우는 할 말을 잃었다.그의 말대로 아무리 자기가 딸은 원한다고 무조건 딸이 태어나는 것도 아니었다.그러고 보니 유남준도 딸을 간절히 원했지만 태어난 네 명의 아이는 모두 남자였다. 역시나 딸 복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그러다가 방성원은 문득 설인하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걸 발견하고 재빨리 김인우에게 말했다.“그만하자.”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설인하를 쫓아갔다.“뭘 이리도 빨리 가?”설인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기다리란 소리도 없었잖아.”방성원은 그녀의 대답에 어이없다가 문득 앞에서 하하호호 즐겁게 걸어가고 있는 두 커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자신과 설인하는 비록 지금 이혼에 대한 얘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냉랭한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방성원은 지난번 설인하와 연지석 사이를 오해한 게 미안한 것도 있어서 차에 올라탈 때 갑자기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남자의 돌발행동에 설인하는 온몸이 굳어진 채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물었다.“뭐 하는 거야?”“손잡고 싶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9화

    정수미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만약 어느 날 네 마음이 변했더라도 민정이한테 상처 주지 말고 그냥 우리 정씨 가문으로 보내줘.”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미 수많은 일을 겪어온 정수미는 약속이란 게 참 지켜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유남준도 그녀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자기 말을 증명해 낼 수 있는 게 없었다.하여 허리를 숙이고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비록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말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아는데요. 꼭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전 이미 IM 그룹의 모든 지분을 민정이 명의로 변경했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저희 둘이 헤어지면 민정이가 평생 먹고 남을 돈은 있는 거잖아요.”사실 박민정은 이미 지엔 그룹을 소유하고 있기에 금전적인 면에서는 전혀 어려움이 없지만 그래도 유남준이 저렇게 말하니 마음이 든든했고 그의 말을 믿고 싶었다.하여 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래, 나도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게.”“네.”유남준의 입꼬리는 어느새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민정이 수술이 끝났는지 이만 가볼까요?”“그래.”그렇게 유남준은 정수미의 휠체어를 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사실 방금 정수미가 당부했던 말은 서주에 있을 때 정근우도 똑같이 말했었다.“만약 우리 민정이를 괴롭히는 날에는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때나 지금이나 유남준은 그들의 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박민정을 지켜주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박민정의 수술은 점심이 되어서야 끝났고 김인우가 수술실에서 걸어 나오자마자 유남준이 빠르게 달려가 물었다.“어떻게 됐어?”김인우는 마스크를 벗으며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아마 큰 문제는 없을 텐데 회복되는 걸 지켜봐야 할 것 같아.”유남준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정수미와 다른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들 배고프시죠? 얼른 가서 밥부터 먹고 옵시다.”김인우도 웃으며 답했다.“그래요. 밥부터 먹어요.”박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8화

    조하랑은 박민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너 오늘 수술한다고 해서 옆에 있어 주려고, 겸사겸사 정 대표님도 보려고 왔지.”박민정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안 깨어나셨어.”“괜찮아, 밖에서 기다릴게.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조하랑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김인우는 그녀의 업무를 전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고 조하랑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그녀는 박민정곁에 앉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되물었다.“맞다, 남준 씨는?”“예찬이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올거야.”지금 정민기도 매우 바쁜 시기라 왠지 유남준이 직접 박예찬을 데려다줘야 안심될 것 같았다.“아, 그렇군.”그렇게 조하랑은 박민정의 손을 잡고 또 한동안 위로의 말을 건네는걸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박민정의 얼굴이 지금 괜찮아 보여도 속은 말이 아니란 걸 조하랑은 다 알고 있었다.“괜찮을 거야, 민정아.”그러고는 박민정을 꽉 안아줬다.김인우는 곁에서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지 몰라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어느 정도 얘기를 나누다가 조하랑은 정수미 보러 들어갔다.정수미는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는데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정 대표님, 오면서 과일 좀 사 왔어요.”조하랑은 혹시나 정수미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최대한 밝게 인사를 건넸다.“하랑 씨, 고마워요.”“저는 민정이 친구이고 민정이 엄마면 제 엄마나 마찬가지예요.”그리고 뒤에 서 있는 김인우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나중에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제 남편한테 말씀 주시면 되겠습니다.”그러자 김인우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와 정수미에게 말했다.“하랑 씨말대로 혹시나 병원에 불편한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꼭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알겠어요. 그런데 여기 병원 너무 좋아요.”정수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박민정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정수미가 중병 환자란 사실마저 잊어버렸다.그리고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매일 슬픔 속에서 지내고 싶지 않았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7화

    그의 호들갑에 조하랑은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지금 여기서 어떻게 더 늦게 가란 소리예요? 전 그냥 임산부일 뿐이지 어디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걷는 것까지 뭐라 하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 줄래요?”조하랑이 임신한 사실을 안 뒤로부터 김인우는 조하랑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고 먹는 것도 철저하게 관리했다.그리고 지금은 혹시나 넘어질까 봐 걷는 것까지 걱정했다.조하랑은 이제 더 이상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하랑 씨는 제 아내이고 뱃속에는 제 아이가 있는데 제가 신경 쓰지 않으면 누가 신경 써줘요? 말 좀 들어요, 네?”김인우는 말하면서도 조하랑의 눈치를 힐끔힐끔 봤지만 조하랑은 그냥 못 들은 척 앞으로 직진했다.병원에는 당연히 사람도 많고 급히 걸어가는 의사나 환자, 그리고 병간호는 사람들도 많았다.그 보습을 지켜보던 김인우는 조하랑을 안쪽으로 세우더니 사람들에게 소리쳤다.“여기 임산부가 있는데 혹시나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주세요.”병원 관계자들은 그가 김인우란 사실을 알아차린 뒤 바로 벽 쪽에 붙다시피 지나다녔다.하지만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당연히 김인우가 누구인지, 그가 병원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있었기에 저마다 이상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조하랑은 순간 쥐구멍이 있으면 당장 기어들어 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는데 이렇게 과잉보호하는 남자를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지 문득 의심이 들었다.“그만해요. 인우 씨는 얼굴이 두꺼워서 잘 못 느끼겠지만 전 부끄러워 미치겠어요.”그러나 김인우는 지금 조하랑의 뱃속의 아이가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역시나 빠르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작 임신한 거로 왜 저리 오버야?”“내 말이, 누가 보면 이 병원에서 혼자 임신한 줄?”“너무 저러면 오히려 위험한 일이 더 많이 발생하던데.”“그러니까요. 너무 몸을 사리는 것도 안 좋더라고요. 차라리 그냥 우리처럼 자연스레 행동하는 게 낫지.”“문제는 아직 배도 너무 불러온 게 아니던데요?”몇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6화

    어렵게 되찾은 친엄마의 사랑을 다시 잃는 게 두려워서일까?박민정은 그렇게 찬물로 여러 번 얼굴을 씻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아 다시 화장실에서 나왔다.저녁.박민정은 유남준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혼자 남아서 정수미 곁을 지키려 했다.그러나 정윤아도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정수미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그렇게 밤이 되자 정수미는 또다시 통증이 밀려와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어 계속 뒤척거리기만 했다.그 모습을 발견한 박민정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엄마, 잠이 안 오면 우리 수다나 떨어요. 어차피 저도 안 피곤하거든요.”정윤아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모, 우리 얘기나 나눠요.”그러자 정수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래.”정윤아가 먼저 대화의 주제를 꺼냈다.“민정 언니, 언니 어렸을 때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데.”어렸을 때라...박민정은 그 시절 행복했던 부분만 말해줬다.“사실 별거 없어요. 그때 저는 한 가정부네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학교 끝나서 집에 돌아오니...”박민정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주자 정윤아와 정수미는 모두 귀 기울이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특히 정수미는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그녀한테는 너무 소중한 시절이라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들었다.그러다가 중간중간에 정윤아는 궁금한 점도 박민정에게 물었다.그렇게 세 사람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나눴고 정수미의 통증도 어느새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저녁 10시.정수미는 시계를 보다가 문득 내일 박민정의 수술이 생각나 졸린 척 하품했다.“안 되겠다. 나 너무 피곤한데 우리 이만 자자.” “네? 한참 재밌는데 벌써 잔다고요?”정윤아는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전 아직 하나도 안 졸려요.”그러자 정수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나 같은 늙은이가 너희 젊은 사람들의 체력을 따라가기 쉬운 줄 알아? 자, 너희 둘은 옆에 칸에 가서 자. 민정이는 내일 수술도 해야 하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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