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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엔 못 놔줘
죽기 전엔 못 놔줘
作者: 윤지

제1화

作者: 윤지
청명,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병원 문 앞에서.

박민정은 가녀린 몸에 수척한 손으로 병원 임신 테스트 보고서를 들고 있었는데 보고서에는 임신이 아니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결혼한 지 3년인데 아직도 임신 못 했어? 왜 이렇게 쓸모가 없니? 너 계속 임신 안 되면 유씨 일가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어. 그땐 우리 집안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한수민은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옷차림에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삿대질했다.

박민정은 두 눈이 퀭하고 가슴에 꽉 막혔던 그 말들이 결국 한 마디로 함축되었다.

“미안해요.”

“엄마는 미안하단 말을 원하는 게 아니야. 얼른 남준의 아이를 낳으란 말이야. 알겠니?”

박민정은 목이 확 메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혼한 3년 동안 남편 유남준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곁을 안 주는데 어떻게 아이가 생길까?

한수민은 약해빠진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왜 저를 닮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차가운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남준이한테 여자 한 명 찾아줘. 걔도 그럼 너한테 고마워할 거 아니야.”

박민정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친엄마란 자가 딸에게 지금 남편을 위해 여자를 찾아주란 말이나 내뱉고 있다니.

그녀의 마음에 순간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민정의 머릿속엔 온통 엄마의 마지막 말만 감돌았다.

문득 귓가에 굉음이 한바탕 울렸다.

그녀는 자신의 병이 더 심해진 걸 알고 있다.

이때 문득 휴대폰 문자 벨 소리가 울렸다.

유남준의 3년을 하루 같이 보낸 문자였다.

“오늘 밤 집에 안 가.”

결혼한 이 3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집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없다.

아내인 그녀를 터치한 적은 더더욱 없고.

3년 전 신혼 첫날밤에 유남준이 했던 말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너희 집안에서 감히 사기 결혼을 감행했으니 넌 인제 평생 고독하게 살 각오해.”

평생 고독하게 살라고...

3년 전 박씨 일가와 유씨 일가에서 정략결혼을 맺었다.

분명 양가 집안의 이익을 위한 결혼이라고 약속했건만 결혼식 날 박씨 일가에서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유남준이 결혼 예물로 박민정에게 준 2천억 원을 포함해 모든 재산을 빼돌렸다.

여기까지 생각한 박민정은 안색이 어두워지고 늘 그랬듯 남편에게 알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손에 쥔 임신 테스트 보고서는 어느새 꾸깃꾸깃한 종이 덩어리가 돼버렸다.

집에 도착한 후 그녀는 보고서를 휴지통에 바로 내던졌다.

매달 이맘때면 그녀는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다.

저녁밥도 준비하지 않고 소파에 기댄 채 스르륵 잠들었는데 귓가엔 늘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또한 유남준이 그녀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박민정은 난청이 있어 재벌가에서는 장애인에 해당한다.

유남준이 이런 그녀와 어떻게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할까?

벽에 걸린 유럽식 벽시계가 둔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계는 어느새 새벽 다섯 시를 가리켰다.

한 시간만 더 있으면 유남준이 돌아온다.

박민정은 소파에 누워 밤을 지새운 걸 알아채고 허둥지둥 일어나 남편의 아침상을 차렸다. 1초라도 늦으면 안 되니까 매우 조심스러웠다.

유남준은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시간에 대한 요구도 엄청 까다로운 편이다. 전에 박민정이 아빠 장례식에 갔다가 제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 그의 아침밥을 차리지 못했는데 그 일로 유남준은 한 달이나 그녀에게 문자 한 통 없고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유남준은 6시 정각에 맞춰 돌아왔다.

훤칠한 키에 이태리 슈트를 차려입은 유남준은 고고한 기품이 저절로 흘러넘쳤으며 잘생긴 외모에 남성미가 뿜어져 나왔다.

다만 박민정의 눈가에 스친 그의 모습은 마냥 차갑고 소외감만 들 뿐이다.

유남준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곧게 의자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앞으론 아침밥 준비 안 해도 돼.”

박민정은 흠칫 놀랐다.

그녀는 본능적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비천한 말투로 물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요?”

유남준은 고개 들어 3년 동안 변함없이 잔잔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건 아내이지 가정부가 아니야.”

3년 내내 박민정은 늘 똑같은 연회색 옷차림이었고 문자 답장도 항상 알겠다는 그 한마디뿐이었다.

솔직히 정략결혼만 아니었다면, 박씨 가문의 사기 결혼만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절대 이런 여자와 결혼할 리가 없다!

박민정은 그에게 가당치도 않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아내이지 가정부가 아니야!’

그녀의 귓가에 굉음이 더 크게 울렸다.

박민정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또다시 유남준이 제일 싫어하는 그 말을 내뱉었다.

“알았어요.”

순간 유남준은 기분이 확 잡쳐 평소 제일 즐겨 먹던 아침밥도 맛없게 느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짜증 섞인 얼굴로 의자를 빼고 밖에 나가려 했다.

이때 박민정이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남준 씨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유남준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무슨 뜻이야?”

박민정은 고개 들어 그를 빤히 쳐다봤다.

유남준은 그녀와 결혼한 지 3년 되는 남편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무려 12년이나 쫓아다니며 좋아한 남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박민정은 차오르는 씁쓸함을 꾹 짓누르고 엄마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그분과 함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남준이 가로챘다.

“미친.”

...

인생은 결국 부단히 내려놓는 것이다.

유남준이 떠난 후 박민정은 홀로 베란다에 앉아 처량하게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넋 놓고 바라봤다.

그를 12년이나 좋아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빗소리는 가끔 또렷하게 또 가끔은 어렴풋이 들렸다.

한 달 전,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민정 씨는 청신경과 중추에 병변이 생겨 현재 청력이 다시 감퇴했습니다.”

“다른 치료 방법은 없는 건가요 선생님?”

의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기간의 신경성 청력 저하로 뚜렷한 약물치료 효과가 없어요. 청력 재활을 위해 보청기를 계속 착용하시길 제안합니다.”

박민정은 의사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아무런 치료 방법도 없다는 뜻이었다.

보청기를 빼면 그녀의 세상은 온통 고요한 정적이다.

그녀는 이런 조용한 세계가 적응되지 않아 거실로 나와서 TV를 켰다.

볼륨을 최대치로 올리면 겨우 조금 들리는 수준이다.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TV를 켜자마자 세계적인 발라드 여왕 이지원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리모컨을 들고 있던 박민정의 손이 움찔거렸다.

다름이 아니라 이지원은 한때 유남준의 첫사랑이다.

몇 년 만에 보는 데도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

이지원은 이젠 카메라 앞에서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웠다. 애초에 박씨 일가의 후원을 받으려고 애쓰던 수줍고 열등감 넘치는 신데렐라가 아니었다.

기자가 귀국 이유를 묻자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범하게 말했다.

“제 첫사랑을 다시 만나려고요.”

손에 쥐었던 리모컨이 바닥에 떨어졌고 박민정의 마음도 철썩 내려앉았다.

창밖의 빗소리도 점점 더 켜졌다.

그녀는 솔직히 두려웠다. 이지원이 유남준을 뺏어갈까 봐 너무 두려웠다.

그해 박씨 일가의 보배 따님이었을 때도 그녀는 아무 배경 없는 이지원을 제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지원이 세계적인 발라드 여왕으로 거듭나서 밝고 자신감이 흘러넘치니 더더욱 비할 바가 못 된다.

박민정은 횡설수설 TV를 끄고 수저도 안 댄 아침밥을 치우러 갔다.

주방에 들어가 보니 유남준이 휴대폰을 놓고 나갔다.

그녀는 휴대폰을 챙기다가 부주의로 화면이 열렸는데 마침 읽지 않은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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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メント (3)
goodnovel comment avatar
Eun Kim
너무궁금궁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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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궁금하네요.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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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유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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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앞에서 은정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정이 깼어? 아줌마가 우리 민정이 제일 좋아하는 만두 빚었어. 식기 전에 얼른 먹어.”은정숙의 목소리에 박민정은 서서히 기억났다.두원 별장에서 나오고 병원 가서 병 보인 후 마지막으로 아줌마 보러 왔었지.그녀는 머리를 살짝 내리쳤다.‘기억력은 왜 또 이렇게 나빠진 거야?’이제 막 당혹스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잔꽃 무늬 침대 시트에 핏자국이 큼지막하게 나 있었다.오른쪽 귀를 만졌더니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었고 손을 펼쳐보니 피로 흥건했다.보청기도 빨갛게 물들었다...박민정은 서둘러 티슈로 귀를 닦고 침대 시트도 전부 거둬냈다. 은정숙은 그녀가 내려올 기미가 없자 베란다로 올라갔다가 시트를 씻고 있는 박민정을 보았다.“왜 그래?”“생리 왔어요. 조심하지 않아 시트에 묻혔더라고.”박민정이 웃으며 해명했다.침대 시트를 다 씻고 아줌마와 함께 아침을 먹으며 잠시만의 평온함을 만끽했다.은정숙의 목소리는 때론 똑똑히, 때론 어렴풋이 들렸다.박민정은 너무 두려웠다. 앞으로 이 목소리도 못 들으면 어떡하지?아줌마가 알고 나서 속상해하시면 어떡하지?그녀는 이곳에서 반나절 더 있다가 저축한 돈 일부를 몰래 침대 머리맡에 숨겨두고 나서야 아줌마와 작별 인사를 했다.떠나갈 때 은정숙은 그녀를 정거장까지 배웅하며 아쉬운 눈길로 손 흔들었다.박민정이 떠나간 후에야 은정숙도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문득 앙상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결국 유앤케이의 내선전화에 연락했다.대표이사 사무실의 비서는 박민정 씨 가정부가 대표님을 찾으신다고 그대로 알려주었다.오늘은 그녀가 집 나간 지 3일째 되는 날이고 유남준이 그녀에 관한 전화를 받은 첫날이다.유남준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기분이 째질 것만 같았다.‘역시 3일을 못 버틴다니까.’은정숙의 늙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유 대표님, 저는 민정이 어릴 때부터 보살펴온 가정부 은정숙이라고 해요. 제발 부탁드리는데 더는 우리 민정이 다치지 않도록 너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9화

    시계를 들여다보니 마침 10시 정각이었다.유남준은 그녀에게 전화해 도착했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멀지 않은 곳의 나무 아래에 박민정이 어두운 톤의 옷을 입고 서 있었다.주르륵 내리는 가랑비 속에 앙상하게 마른 그녀는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았다.금방 유남준과 결혼했을 때, 박민정은 밝고 긍정적이었다. 지금처럼 어두운 표정과 뼈만 남은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그는 우산을 들고 박민정에게 걸어갔다.그녀는 뒤늦게 유남준을 발견했다.3년 동안 유남준은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멋있고 카리스마 넘치며 전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모습이었다.3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또 자신의 일생을 다 써버린 것만 같았다.유남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어서 사과하길 기다렸다.이젠 그만할 때도 됐지!하지만 정작 그녀의 말은 정반대였다.“남준 씨 일하는 데 방해되겠어요. 얼른 들어가요.”유남준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고 표정이 얼어붙었다.“너 후회하지 마.”그는 이 한마디만 내던지고 가정법원으로 들어갔다.박민정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씁쓸했다.후회?그런 건 모르겠고 이젠 지쳐버렸다.한 사람이 떠날 결심을 했을 땐 아마 일말의 희망도 얻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인 실망이 너무 커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겠지.이혼 절차가 진행되고 직원이 두 사람에게 정말 이혼하기로 결심했냐고 물었을 때 박민정은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네.”그녀의 확고한 눈빛에 유남준은 가슴이 움찔거렸다.수속을 마치고 한 달이란 숙려기간이 있어 두 사람은 한 달 뒤에 또 이리로 와야 한다.만약 이 한 달 동안 오지 않으면 이혼 신청도 자동으로 폐지된다.가정법원을 나선 후 박민정이 유독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그럼 다음 달에 봐요. 잘 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곧게 빗속으로 뛰쳐들어가 택시를 잡고 떠나가 버렸다.유남준은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며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이건 아마도 해탈이겠지.더는 그녀와 얽힐 필요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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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02화

    유남준은 퇴근하면 무조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고 박민정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알려줬다.“나 내일에 갈게.”“그래요. 그러면 여기서 얼마간 머물면서 같이 놀 수 있겠네요.”“당연하지.”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박민정 곁으로 날아가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그렇게 박민정은 유남준과의 통화를 끝낸 뒤 누워서 조하랑과 또 어디로 놀러 갈지 생각해 보았다.며칠 전, 조하랑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김인우가 알아버렸다고 했다.그리고 아이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조하랑이 어디를 가든 김인우가 항상 따라붙었고 혹시나 어디에 부딪힐까 노심초사했다.김인우의 태도에 박민정은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다른 한편.정수미는 방 안에 있다가 갑자기 심하게 기침하더니 피까지 토해내기 시작했다.순간 깜짝 놀란 길연서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정 대표님, 당장 저랑 같이 병원에 가요.”“안돼. 갑자기 병원에 가면 엄마랑 아빠, 그리고 민정이가 바로 눈치챌 거란 말이야.”정수미는 단호하게 거부했다.“걱정하지 마. 아직은 버틸 만하니까.”“이게 다 윤소현 씨 때문이에요. 어떻게 사람이 이리도 독할 수 있어요? 그때 그런 약을 매일 먹이지만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 건강이 악화할 일도 없었을 텐데.”길연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비록 정수미는 젊었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약만 꾸준히 먹으면 6~7년은 끄떡없다고 의사가 말했다.하지만 지금은...길연서는 혹시나 정수미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곁을 떠날까 봐 너무 무서웠다.“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우리는 그저 앞으로의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면 되지.”정수미는 이제 두려울 게 없었다.“네.”“그리고 앞으로 우리 민정이를 잘 부탁해. 아직 어려서 회사를 혼자 관리하기가 분명 힘들 거야. 혹시나 남준이가 우리 민정이를 괴롭히지 않는지도 잘 지켜보고.”정수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유언처럼 들렸고 길연서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01화

    때마침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녀는 한껏 아니꼬운 눈빛으로 박민정을 쏘아보았다.“그런 속담이 있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눈앞의 여자는 분명 박민정보다 한참 어린 것 같았고 나이가 많아 봤자 고작 스무 살 정도로 보였다.사실 이미 어제 한 번 만났었는데 먼 친척의 딸이라고 했고 잠시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이름은 정윤아.그녀를 기억하게 된 원인도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정윤아만 자신을 혐오와 경멸이 가득 찬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정윤아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며 지나가려 했지만 순순히 보내줄 박민정이 아니었기에 대뜸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제가 뭘 잘못했나요?”박민정의 돌발행동에 정윤아는 살짝 놀란 듯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물었다.“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몰라요?”박민정은 눈앞의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무슨 헛소리에요? 전 당신을 아예 모르는데 제가 그쪽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거죠?”지금의 박민정은 더 이상 예전의 그 겁도 많고 물러터진 사람이 아니었다.그리고 눈앞의 사람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자신을 비꼬는데 무조건 확실하게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의 말에 정윤아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제가 아니라 소현 언니요.”‘소현 언니라... 보아하니 윤소현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였구나?’“제가 소현 씨한테 잘못한 건 또 뭔데요?”“당신이 이 가문에 돌아오지만 않았다면 소현 언니가 쫓겨날 일도, 교도소에 가게 될 일도 없겠죠? 이 모든 게 다 그쪽 때문이잖아요. 우리 고모한테도 무슨 약을 쳤는지 그쪽 말이라면 아주 철석같이 믿더라고요.”박민정은 그녀의 말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윤소현이 지금처럼 변한 게 다 자업자득이고 모두 자신이 저지른 죄인데 그걸 왜 박민정 탓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정윤아 씨, 우리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되죠.” “제가 왜 몰라요? 소현 언니는 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00화

    “어차피 우리 아이면 어떤 모습이든지 제 눈에는 다 예뻐 보일 겁니다.”김인우가 껄껄거리며 팔불출 같은 모습을 보이자 조하랑은 방금 한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하여 고민 끝에 그에게 말했다.“알겠어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요. 그런데 만약 저랑 제 아이한테 조금이라도 모질게 굴면 바로 짐 싸서 또다시 도망칠 거란 사실만은 알아둬요.”조하랑은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맞다, 그리고 위자료도 넉넉하게 줘야 하고요.”그녀는 배신당해도 가만히 있을 멍청이가 아니다.그러자 김인우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지금 당장 계약서 씁시다. 제가 만약 하랑 씨랑 아이한테 잘 못하면 김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전부 하랑 씨한테 넘겨줄 것이고 저는 늙을 때까지 외롭고 비참하게 살다가 죽겠습니다.”김인우의 말에 조하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당장 종이와 펜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자, 여기에 적어요.”김인우는 예전에 법에 대해서 공부했던 사람이고 어차피 빈 말도 아니었기에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갔다.조하랑도 변호사 일을 했던 사람이라 그가 적은 내용이 혹시나 자신과 아이한테 이로운 게 맞는지 다시 한번 꼼꼼하게 검사해 보았다.“이만하면 된 것 같아요. 사인하고 도장 찍읍시다.”그녀의 말대로 김인우는 두말없이 서류에 사인하고 지장을 찍었다.그리고 모든 게 끝난 뒤에야 조하랑은 비로소 안심되었다.“그러면 우리는 이만 돌아가도 되지 않나요? 가서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리면 분명 좋아하실 텐데.”“며칠 있다가요. 이왕 온 김에 여행이라 생각하고 며칠 더 놀고 싶어요.”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짠 여행 계획을 그에게 보여줬다.“봐요. 아직 가야 할 곳이 엄청 많다고요.”“저도 같이 가요.”김인우의 말에 조하랑이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그러면 민정이도 같이 데리고 갑시다. 우리랑 같이 놀다가 진주로 돌아갈 때 셋이 같이 돌아가면 되잖아요.”“그래요.”김인우는 이제 조하랑의 말이라면 뭐든 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9화

    김인우는 정작 말하려니 살짝 망설여지기 시작했다.‘만약 내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그러면 나 말고 또 다른 남자가 있단 말인가?’조하랑이 김씨 가문으로 시집오고 난 뒤부터 김훈이 감시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거의 매일 같은 방에서 자야 했다.김인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하랑 씨, 임신했죠!”이건 의문문이 아니라 아예 확신에 찬 서술문이었다.조하랑은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고 깜짝 놀란 나머지 몸이 살짝 떨려왔다.그러나 조하랑의 태도에 김인우는 여태껏 의심만 하던 게 설마 진짜인가 싶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아 다시 물었다.“아이 아빠는 제가 맞는 거죠?”그래도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조하랑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얼굴이 빨개진 채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아닐 수도 있나요?”그녀의 한마디에 김인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조하랑을 안아주고 싶었다.하여 김인우는 단번에 조하랑을 공주님 안기식으로 안아 올렸다.“그러면 저도 이제 애 아빠가 되는 거예요?”그리고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자꾸만 올라갔다.조하랑은 갑자기 몸이 공중에 뜨게 되자 깜짝 놀라 김인우의 한쪽 팔을 부여잡고 배를 움켜쥐었다.“왜, 왜 그래요! 당장 내려줘요!” 조하랑은 임신 후 예전과는 달리 겁이 많아져 지금은 혼자 길을 건너는 것도 무서웠다.김인우는 그제야 그녀를 놀라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빠르게 내려주고 사과했다.“미안해요. 많이 놀랐어요?”그리고 조심스레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괜찮아요?”조하랑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그저 애써 감춰왔던 비밀이 이렇게 허망하게 탄로 난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뜬금없이 무슨 임신이에요. 헛소리 그만해요.”그녀는 애써 김인우의 눈빛을 피했다.“하랑 씨, 제가 의사라는 걸 잊었어요?”“방금 맥을 짚어보니까 임신이 맞던데요?”조하랑은 그가 맥 짚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8화

    그렇게 박민정은 옆에서 조하랑이 기도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그러나 조하랑은 아직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김인우가 이미 알아버렸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그리고 행운을 비는 글도 몇 글자 적어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미로 나무에 걸어뒀다.박민정도 윤우와 예찬이, 그리고 두 동생과 유남준, 거기에 정수미까지 모두 건강하기를 기도했다.밖으로 나와보니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이때, 조하랑은 수많은 사람들 무리에서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김인우를 발견했다.그리고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여기에는 왜 또 따라왔어요?”김인우의 눈가는 어느새 빨개져 있었고 당장에라도 눈앞의 조하랑에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옆에 박민정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는 다시 말을 삼켜야 했다.“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 언제 돌아가요?”김인우는 애써 차분하게 물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낌새도 못 느낀 조하랑은 그저 짜증만 냈다.“오랜만에 민정이랑 쇼핑하는데 분위기 깨지 말고 따라오지도 말아요. 제가 알아서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갈 테니까.”이때, 옆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민정은 단번에 김인우가 뭔가를 알아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여 조하랑의 손을 잡고 김인우에게 말했다.“저희도 거의 끝나가던 참이었는데 이만 하랑이를 데리고 가요.”김인우는 창백한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었다.“형수님, 감사합니다.”왠지 김인우를 도와주는 것 같은 상황에 조하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물었다.“민정아, 왜 그래?”“분위기상 인우 씨가 급히 너랑 할 말이 있어 보여서. 일단 오늘에는 집에 가고 우리는 다음에 다시 만나 쇼핑하자.”박민정은 슬쩍 그녀에게 눈치 줬다.그러나 조하랑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 채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급하긴 개뿔.”“됐어. 빨리 돌아가.”박민정이 조하랑의 등을 떠밀자 그제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김인우의 차에 올라타더니 출발하기 전까지도 박민정에게 잊지 않고 당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7화

    정씨 가문의 두 노인은 아주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조하랑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차피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부자라 딱히 필요한 물건이 없을 것 같았다.“이따 쇼핑 좀 하면서 혹시나 선물할 게 없나 봐야겠어.”“그래.”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주문하려고 웨이터를 부르니 뜬금없이 사장이 직접 와서 공손하게 말했다.“혹시 두 분께서는 어떤 음식으로 주문하실까요? 메뉴판은 여기에 있는데 드시고 싶은 음식은 맘껏 주문하셔도 되겠습니다.”박민정은 너무 배고픈 상태가 아니어서 조하랑에게 주문을 넘겼다.그렇게 몇 가지 메뉴를 주문하니 빠르게 음식들이 차례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조하랑은 밥을 먹다가 요즘 따라 김인우가 거머리처럼 자신에게 달라붙는다고 박민정에게 하소연했다.“나 어떡해?”이때, 조하랑은 또다시 속이 울렁거려 밥 먹다가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그 모습을 본 사장은 깜짝 놀라 얼굴까지 창백해져서는 다급히 박민정에게 다가와 물었다.“혹시 저희 요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을까요? 아니면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라도 드신 건지요?”박민정은 안절부절못하는 사장의 모습을 보고 빠르게 해명했다.“아니요. 임신 중이라 입덧이 좀 심할 뿐입니다.”“아, 네네. 그러면 다행이네요.”그래도 여전히 창백한 얼굴인 사장을 보고 박민정은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왠지 오늘 이 가게에 적잖이 민폐 끼친 것 같아 박민정은 조하랑을 데리고 빠르게 가게에서 나와 그길로 쇼핑하러 갔다.그러나 두 사람이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웬 남자가 다시 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바로 김인우였는데 그는 아까부터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시름 놓고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다가 조하랑이 토하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이상함을 느꼈다.하여 사장에게 방금 상황을 묻자 그는 사실대로 알려줬다.“아, 아까 그 아가씨가 지금 임신 중이라면서 음식을 먹으면 자주 토한다고 하셨어요.”임신!김인우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린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잘못 들었나 싶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6화

    그 사람이 박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조하랑의 입꼬리는 주체를 못하고 아래위로 춤을 췄다.‘뭐야?’‘민정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꼴값을 떨었지? 오늘은 그저 밥이나 먹고 쇼핑하는 건데 이렇게 많은 경호원을 데려올 필요가 있나?’박민정도 차 안에서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가게 안으로 달려가다가 뒤따라오는 경호원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여기까지 데려다주시면 돼요. 그리고 밖에서 기다려줘요.”그러자 그들은 난감한 얼굴로 박민정에게 말했다.“안 됩니다. 정 대표님께서 무조건 10미터 이내로 밀착 경호하라고 했거든요.”순간 할 말을 잃은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경호원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사장은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조심스레 물었다.“저기, 혹시 저희 가게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요?”순간 박민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답했다.“가게는 괜찮네요. 인테리어도 심플해서 마음에 들고요. 왜요?”그녀의 대답에 순간 사장은 어리둥절했다.“그러면 여기까지 온 목적이...”사장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그저 친구랑 밥 먹으러 왔는데요?”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두리번거리다가 그제야 구석 창가 쪽에 앉아 있는 조하랑을 발견했다.원래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조하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박민정과는 모르는 사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박민정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하랑아.”조하랑이 못 들은 척 고개를 수그리자 박민정은 오늘따라 그녀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뒤따라오던 경호원들이 사장에게 말했다.“이제부터 다른 손님은 받지 말아 주세요.”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살짝 당황했지만 그래도 사장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네네.”그렇게 경호원들은 다시 박민정의 주위로 흩어져서는 혹시나 위험한 인물이 없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이 맞은편에 앉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5화

    “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박민정은 어렵게 되찾은 자기 친엄마를 두 번 다시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정수미는 이 기회에 원래 자기 건강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박민정의 반응을 보고는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그래, 그만 말할게. 너도 얼른 쉬어. 그리고 요 며칠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기만 해.”“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정수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정수미가 집에 돌아와 보니 길연서가 이미 그녀를 위해 약을 준비하고 있었다.“대표님, 혹시 민정 씨한테 말했어요?”그러자 정수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약을 한 입 마셨다.“아니.”그러다가 허망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분명히 아주 간단한 몇 마디인데도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네.”길연서는 한숨을 길게 내뱉더니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런 일은 최대한 빨리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겁니다.”“나도 알아.”정수미는 빈 컵을 그녀에게 건네며 다시 말을 이었다.“됐어. 오늘 너도 힘들었을 텐데 이만 가서 쉬어. 난 괜찮으니까.”“네.”길연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떴다....이튿날, 아침.박민정은 일찍 깨어나 모든 준비를 마쳤다.도우미들은 박예찬과 박윤우가 일어나자마자 학교 갈 준비를 도와줬는데 그 모습이 박민정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정근우와 임은숙은 박민정이 오늘 친구 만나러 간다는 걸 알고 특별히 조하랑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해 뒀다.“민정아, 이건 우리가 준비한 선물인데 네 친구한테 주면 분명 좋아할 거야.”그러나 박민정은 습관적으로 거절했다.“아니에요. 저랑 오래된 친구라 그럴 필요 없어요.”“바보야, 오래된 친구일수록 이런 서프라이즈도 가끔 필요한 거야.”임은숙은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선물은 우리가 꼭 주고 싶었어. 우리 민정이랑 친구로 지내줘서 고맙다는 표시니까 빨리 갖고 가.”자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94화

    “네 아빠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이었지. 그런데...”정수미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잘 생겼던 건 인정, 아니면 내가 데리고 살아주지도 않았을 거야.”박민정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수미는 한숨을 다시 내뱉었다.“사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가정 환경마저 평범한 아주 보통 집에서 태어난 남자였지.”“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결국에는 혼자만의 힘으로 서주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으로 되었고.”“나랑 네 아빠는 어느 기업의 한 파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뒤로 연인 사이가 되어버렸어.”“그렇게 약혼도 하고 네가 태어난 거야.”정수미는 간단하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줬다.“그때의 정씨 가문은 지금처럼 그리 화목하지 않았어. 내 위로 오빠 한 명이 있는데 그 사람은 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께서 데려온 아이였지. 그리고 내가 임신한 사실과 네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하자 내가 정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아 갈까 봐 몰래 우리한테 손을 썼어.”“그렇게 너는 그 사람 손에 의해 보육원에 보내졌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실 그 사람은 그때 널 죽이려 했어. 그런데 마지막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널 그냥 살려둔 거야.”“그때의 나는 너를 낳고 나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가 하마터면 그 사람이 지른 불로 인해 죽을뻔했어.”“그렇게 네 아빠가 나를 불바다에서 꺼내주다가 본인은 죽게 되었지...”여기까지 말하던 정수미의 눈가는 이미 빨개졌고 두 주먹을 꽉 쥐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나랑 꼭 행복하게 살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렇게 나만 두고 가버린 사람을 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결국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말로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괴로워 아무 핑곗거리나 찾았던 것 같았다.박민정은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몰라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그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빠도 아마 엄마가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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