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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건우는 내가 짐까지 다 싸놓을 줄은 몰랐던지 재빨리 달려와서 앞길을 가로챘다.

바로 이때 문밖에서 지문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성수지가 딸 서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 도어락에 그녀의 지문이 등록되어 있다니.

내가 분명 이 집에 성수지를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우가 끝내...

성수지는 나를 능멸하고 내 모든 걸 뺏어갔다. 나는 그녀가 죽도록 원망스럽다.

아쉽게도 이건우는 내 말을 전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나를 본 성수지가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갖은 가여운 척을 떨었다.

“하은아...”

이때 그녀 옆에 있던 서아가 뒤로 몸을 숨더니 마치 내가 미친 야수라도 된 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아줌마, 우리 엄마 때리지 말아요!”

고작 열 살짜리 어린애가, 이토록 순진한 얼굴을 한 어린애가 어떻게 이런 마음을 품을 수가 있을까? 나는 한없이 차가운 눈길로 서아를 쳐다봤다.

바로 이 아이가 추석날 우리 부모님 댁에서 내가 성수지를 때렸다고 모함했다.

내가 수년을 바라온 추석인데, 한 가족이 오붓하게 모일 수 있는 명절인데 서아가 모든 걸 망쳐놨다.

그해 추석은 그 사고가 일어난 뒤 부모님이 처음으로 나를 집에 초대한 명절이었다.

나도 어떻게든 부모님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싶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성수지가 글쎄 나를 위층 계단으로 질질 끌고 가더니 뜬금없이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다리까지 부러졌지만 아무도 내 안부를 안 물었다.

모두가 성수지의 편을 들고 있었다.

다들 그녀에게 둘러싸여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눈물로 호소했다.

“수지가 날 밀쳤다고요.”

한편 성수지는 딱히 변명하지 않고 빨개진 눈시울에 속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은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뭐.”

이때 서아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트리더니 계단을 내려오며 내게 쏘아붙였다.

“아줌마! 대체 왜 우리 엄마를 밀쳤어요?”

“엄마도 굳이 아줌마네 가족 모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한사코 초대하시니 마지못해 온 거잖아요.”

“우리가 여기 있는 게 싫으면 갈게요.”

“하지만 대체 왜 우리 엄마를 밀친 거예요?”

아이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엄마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뺨을 가차 없이 후려쳤다.

그러고는 혐오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 몇 년간 진심으로 뉘우친 줄 알았는데 어쩜 그전보다 더 지독해졌어?!”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성수지를 밀치지 않았다고 눈물로 호소했건만 아무도 날 믿어주는 자가 없었다.

아빠는 실망 어린 표정으로 내게 차갑게 쏘아붙였다.

“설마 서아 저 어린 게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니?”

이건우도 주먹을 불끈 쥐고 싸늘한 어투로 말했다.

“하은아, 너 진짜 답 없다.”

유준이까지 다가와 부러진 내 다리를 힘껏 걷어찼다. 나는 너무 아픈 나머지 나지막이 신음했다.

그럼에도 나를 걱정해주는 자는 없었다. 다들 괴로워하는 날 보며 분이 풀린 듯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때 유준이가 입을 열었다.

“엄만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난 엄마가 너무 싫어.”

...

그날 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눈물을 머금고 그 집을 나섰다.

그리고 여태껏 그날의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갈기갈기 찢어질 듯한 이 마음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때부터 이건우와 이혼할 생각을 했지만 이 남자가 무덤덤하게 이혼합의서를 찢어버리면서 말했다.

“하은아, 아직도 모르겠어? 이젠 나 말고 널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어.”

멍청한 나는 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이 남자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그는 이런 내 생각을 바로 캐치하고 야유를 날렸다.

“널 사랑하지 않는데 그동안 네가 저지른 만행들을 어떻게 줄곧 참아왔겠어?”

“하은아, 너희 부모님은 이젠 널 버렸어. 수지를 양딸로 들인 거야.”

“넌 그냥 얌전히 내 옆에만 있어. 나랑 함께 수지한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 알겠지?”

그날 밤 사랑이 부족했던 나는 끝내 이건우의 설득에 넘어갔다.

이 세상에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까 봐 두려웠고, 이 가정마저 깨지면 갈 곳 잃은 고아가 될까 봐 두려웠다. 그땐 정말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결국 참고 양보하는 걸 배웠다.

더 이상 날 위한 변명은 없었다. 부자가 보상이란 명목으로 날 외롭게 내팽개치고 성수지 모녀를 편들어줘도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했다.

다만 나의 희생은 그리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다.

처참한 과거에 빠져있을 때 유준이가 덥석 앞으로 뛰쳐나오며 나를 사색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아이는 나를 밀치고 서아에게 달려가 손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아, 서아야. 나랑 아빠가 있는 한 아무도 감히 너랑 수지 아줌마 못 건드려.”

곧이어 내게 경고장을 날리는 아들이었다.

“감히 아줌마랑 서아 건드리기만 해봐요. 그땐 영원히 엄마 안 봐!”

이를 지켜보던 서아가 착한 척하며 말했다.

“오빠, 하은 아줌마한테 너무 무섭게 굴지 말아요...”

아이는 나를 쳐다보며 아양 떨듯 미소를 지었다.

“아줌마가 나랑 엄마 싫어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우린 이젠 아무것도 없어요. 제발 내쫓지 않으면 안 돼요?”

역시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가여운 척 수작 부리는 꼴은 쏙 빼닮았다.

나는 씩 웃으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왜 아무것도 없어? 앞으로 이 집이 다 너희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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