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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의 능멸을 당한 그 후
절친의 능멸을 당한 그 후
작가: 대망

제1화

이혼합의서는 내가 30분 전에 금방 프린트해놓았다.

그전엔 거실 소파에서 밤새 앉아 있었고...

식탁 위엔 내가 정성껏 차려놓은 열몇 개의 음식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울트라맨 케이크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림이 녹아버렸다.

실은 어제가 아들 이유준의 생일이었다.

남편 이건우는 친히 나더러 집에서 잘 준비하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유준이를 데려와서 함께 생일을 보낼 거라면서...

다만 종일 기다린 결과 성수지의 SNS에 넷이 찍은 가족사진이 떡하니 올라왔다.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이건우는 내 입에서 이혼 얘기가 나올 줄 몰랐던지 미간을 찌푸리고 이혼합의서를 갈기갈기 찢었다.

“강하은! 또 무슨 수작이야? 유준이 데리고 수지네 집에 간 걸 까먹고 말하지 못했을 뿐이잖아.”

말을 마친 후 한 상 가득 차린 음식과 케이크를 보더니 눈가에 죄책감이 살짝 스쳤다.

그의 말투가 조금은 느슨해졌다.

“그래, 알았어. 어젠 내가 까먹고 얘기하지 못했어. 앞으론 주의할게.”

“여긴 내가 치울 테니 가서 좀 자. 점심에 유준이랑 셋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는 늘 이런 식이다. 병 주고 약 주는 한심한 인간이다.

본인이 도가 지나친 걸 뻔히 알면서도 사과는 안 하고 그저 조금만 자세를 낮추는 척한다.

이때 내가 얌전히 순응하지 않으면 바로 냉전에 돌입하고 그 결말은 늘 내가 먼저 찾아가서 고개를 숙이는 식이었다.

전에는 늘 그래왔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나는 탁자 밑에서 이혼합의서를 한 부 더 꺼내 그에게 밀어붙였다.

“몇십 부 준비했으니까 찢고 싶으면 실컷 찢어.”

화가 난 이건우는 그릇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는 짜증 섞인 눈빛으로 내게 쏘아붙였다.

“까놓고 말해서 넌 그냥 유준이가 수지를 더 좋아해서 질투 난 거잖아?!”

“강하은, 잊지 마! 이건 네가 수지한테 빚진 거야.”

“나랑 유준이가 수지 모녀를 챙겨주는 건 너 대신 속죄하는 것뿐이라고!”

‘속죄? 대체 내 죄가 뭔데?!’

나랑 성수지는 한때 절친한 사이였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그녀가 나랑 함께 놀러 가자고 했다.

실컷 놀고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 나는 큰길로 가고 싶었지만 성수지가 길목에서 친구가 기다린다며 기어코 작은 길로 가겠다고 했다.

결국 우린 각자 제 갈 길로 갔다.

하지만 그다음 날 잠에서 깨자마자 이건우가 느닷없이 우리 집에 쳐들어오더니 내 멱살을 잡고 울부짖었다.

대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왜 성수지를 내팽개쳤냐고 말이다.

나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뒤늦게 알게 됐다. 성수지는 작은 길로 가다가 몇몇 건달들에게 겁탈을 당했다고 한다.

의외인 것은 그녀가 날 위해 건달들을 유인하다가 되레 나쁜 짓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내가 아무리 해명해도 아무도 믿어주는 자가 없었다. 게다가 CCTV까지 고장 나버리니 이 죄명을 뒤집어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난 모든 이에게 죄인으로 낙인됐다.

부모님은 내가 매정하다고 구박했고 이건우는 날 냉혈인이라고 했다.

나를 향했던 모든 사랑이 보상이란 명목으로 성수지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심지어 내가 성품이 비열해서 유준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면서 아이까지 뺏어갔다.

바로 그 때문에 나랑 이유준의 관계가 이토록 삭막해진 것이다.

다만 나는 유준이를 너무 사랑하고 어떻게든 아이와의 감정을 다시 쌓아가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득 유준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원수를 쳐다보듯 혐오에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엄마가 아빠랑 수지 아줌마의 인생을 망쳤어요. 엄마가 없었으면 수지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을 거잖아요!”

나는 찢어질 듯한 마음을 부여잡고 몸을 휘청거렸다.

“누가 그래?”

아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아니에요?”

곧이어 내 시선이 이건우에게 닿았다.

그 순간마저도 나는 멍청하게 그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끝내 내 눈길을 피했다.

“유준이는 그때 그 일만 아니었다면 내가 수지랑 결혼할 줄로 알고 있어.”

예전의 나라면 대체 왜 아이에게 해명하지 않았냐고 그에게 따져 물었을 것이다.

명색이 나랑 이건우가 소꿉친구이고, 명색이 내가 이건우의 여자친구였고, 명색이 내가 두 사람을 소개해줬으니까.

하지만 이젠 다 부질없는 노릇이다.

아이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어차피 이제 곧 이 남자랑 남남이 될 테니까.

나는 짐을 싸고 문밖을 나섰다.

“생각 마치거든 가정법원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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