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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서아는 아직 어린아이였던지라 나의 숨긴 감정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했다.

이 집이 곧 본인들 집이라고 하자 아이가 대뜸 흥분하며 되물었다.

“정말요?”

이때 성수지가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서아야, 그만!”

“여긴 하은 아줌마네 집이야.”

곧이어 빨개진 눈시울에 속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은아, 난 단 한 번도 너랑 건우 오빠 감정을 깨트리려고 한 적 없어.”

“지금 바로 갈게. 그만 화 풀어, 응?”

이 말을 들은 이건우가 앞으로 나서며 성수지의 팔을 붙잡았다.

성수지도 못 이기는 척 그의 품에 기울었다.

이건우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황급히 손을 내려놓았다.

성수지의 눈가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장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오빠, 나 말리지 말아요. 원래 우리가 방해한 거잖아요.”

그녀는 말하면서 꼭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을 흩날렸다.

서아도 그녀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마, 울지 말아요. 다 나 때문이에요. 내가 짐 덩어리가 돼서 엄마를 힘들게 했잖아요.”

나는 싸늘한 시선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이들 모녀가 연기자로 데뷔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연예계의 막대한 손실이었다.

한편 이건우는 안쓰러운 눈길로 두 모녀를 바라봤다.

그들이 안쓰러울수록 울화가 더 차오르는 모양이다. 그는 불쑥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내가 두 사람 이사 오라고 했어. 수지네 집 천장에 물이 새서 며칠 수리해야 해. 어차피 우리 집 별장이라 방이 많으니 이리로 오라고 한 거야.”

“너희 두 사람 이 기회에 서로 오해도 풀고 좋잖아. 근데 넌 어떻게 아직도 수지랑 서아한테 이토록 적대적이야? 서아 저 어린애를 꼭 그렇게 속상하게 해야만 만족하겠어?”

비록 이젠 이건우의 그 어떤 말도 타격이 없다고는 하지만 무식한 저 발언을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

“건우야, 눈이 멀었으면 병원을 가. 쟤네가 와서부터 지금까지 나 딱 한 마디밖에 안 했어.”

“너희들이 온갖 스토리를 짜낸 거잖아. 이 정도면 노벨문학상 감인데, 아쉽다 아쉬워. 그리고 나 이제 이 집 떠나. 네가 누굴 데려오든 신경 쓸 것 같아?!”

이건우는 망연자실한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정말 내가 체념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밀당하는 건지 갈피를 못 잡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 그를 밀치고 캐리어를 챙겨서 집 밖을 나섰다. 그제야 이건우도 정신을 차렸다. 내가 정말 이혼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내가 지금 이 집을 나섰으니까.

그는 저도 몰래 반년 전 성수지의 교통사고가 떠올랐다.

그녀가 퇴원한 후 서아는 집에 엄마랑 단둘이 있어서 너무 무섭다고 했다.

이에 이건우는 두 모녀를 별장으로 이사 오라고 했다.

그때 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집안의 모든 물건을 부수며 성수지를 이 집에 한 발짝만 들이면 위층에서 떨어져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건우는 하는 수 없이 성수지 모녀가 이사 오는 걸 포기했지만 이 때문에 무려 나랑 3개월이나 냉전을 벌였다.

3개월 뒤 유준이가 알레르기로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아이를 돌보러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이때 이건우가 대뜸 못 가게 가로챘다. 궁지에 몰린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고 그제야 우리의 냉전이 끝났다.

다만 그 뒤로 이건우를 향한 내 마음이 예전처럼 뜨거워지지 못했다.

내 태도가 얌전해지다 못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을 때보다 더 고분고분해졌다.

이건우는 이런 나의 변화에 은근히 거만을 떨기도 했다.

드디어 제멋대로이고 고집스러운 나를 제압했다고 으쓱해 하는 것 같은데 정작 나는 그때부터 이건우를 향한 감정이 조금씩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일말의 미련도 안 남게 되었다.

이건우가 문밖을 뛰쳐나와 나를 붙잡고 싶었지만 성수지가 갑자기 불러세웠다.

그가 뒤돌아보니 성수지의 품에 안겨 있던 서아가 언제부터인지 기절해 있었다.

“오빠, 서아 왜 이래요?”

유준이도 초조해서 이건우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빠, 얼른 서아 병원에 데려가야죠!”

아이는 이 집을 떠난 엄마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이건우도 망설임 없이 서아를 안고 별장을 뛰쳐나갔다.

문밖을 나선 후에야 밖에 큰 눈이 내리는 걸 알아챘다.

갑작스러운 폭설에 나는 바로 택시를 잡지 못했다.

또한 이곳은 교외의 별장 구역이라 하는 수 없이 시리도록 차가운 눈을 맞으면서 앞으로 걸어 나가야만 했다.

이건우의 차가 대뜸 앞에 세워지고 차창이 내려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째려봤다.

“타.”

내가 거들떠보지 않자 이건우가 짜증 내며 핸들 대를 두드렸다.

“적당히 하라고!”

이때 그의 휴대폰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은이 너 계속 소란 피우면 엄마가 연 끊을 줄 알아!”

나는 씩 웃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나 원래 당신 딸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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