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휴지로 얼굴을 닦고 방을 나섰다.곧바로 녹화가 시작되었다.연습생들은 한 명씩 무대로 올라가 기량을 뽐냈고 1차 평가를 받았다.하지만 민지훈은 나타나지 않았다.하태윤이 곧바로 해석했다. “민 대표님은 회사 업무로 바쁘셔서 후반 녹화에는 아쉽게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말을 이어가는 하태윤은 점점 얼굴이 밝아졌다.“바쁜 일정을 쪼개 현장에 와 우리 프로그램을 응원해 주신 민 대표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1차 오디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음 참가자를 열렬한 박수로 맞이할게요.”민지훈이 안 왔다고?조연아는 옆의 빈자리를 보았다.어디 갔지? 민지아의 일을 처리하러 간 걸까?조금 의문스러웠던 조연아지만 생각을 거두고 연습생들의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민지아의 동영상이 머릿속에 맴돌아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다.한 그룹이 공연을 마친 뒤 하태윤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아주 발칙한 연습생들이라고 들었어요. 본인들까지 합치면 연습생이 모두 100명이란 것을 알고 있죠? 그룹 이름이 ‘천상여자’이며 완전체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고요?”“맞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완전체 데뷔입니다.”하태윤이 그녀들을 세어보았다.“모두 6명이군요. 총 10개의 자리밖에 없는데 여러분이 모두 차지하겠다는 말인가요?”“네. 데뷔를 꿈꾸지 않는 연습생은 없지 않습니까?”“패기가 넘치네요. 잘 알겠습니다.”하태윤은 눈을 깜빡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어느 멘토님께 평가받고 싶은가요?”“우리 팀원들은 모두 강단 선생님께 평가받고 싶습니다.”멘토 강단이 헤드폰을 벗고 마이크를 잡았다.“여럿이 함께 부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선곡이지만 헤드폰으로 들어보니 음정이 불안하고 리더분만 안정적이었어요. 하여... 완전체 데뷔를 하려면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대표님은 어떻게 보셨나요?”하태윤이 조연아를 불렀다.“이대로 데뷔, 괜찮을까요?”말이 없는 그녀에 현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아직도 촬영이 남았는데 어떻게 해요? 일심에 1, 2부를 녹화해야 하거든요.”“피곤하면 잠이 올 거예요.”피곤했던 조연아는 몇 번 하품을 크게 하며 덧붙였다.“먼저 가서 쉴게요.”“제가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 곧 저녁 식사가 시작될 것이고 라이브라 현장을 통제해야죠.”시간을 확인하던 하태윤은 조연아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방에 돌아가서 푹 쉬세요. 라이브가 끝나면 저녁 식사를 들고 갈게요.”“그래요.”조연아는 숙소 방향으로 향했다.날은 어두워지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모든 연습생들은 백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에 모였다.조연아는 홀로 오솔길을 따라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그때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조연아는 제작진인 줄 알고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고 조연아를 향해 ‘야옹’ 하며 애교부렸다.고양이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있었고 한발 한발 다가오더니 무서워하지도 않고 조연아에게 몸을 비볐다.“음... 좋은 향이 나네!”조연아는 손을 뻗어 고양이를 어루만졌다.그때 ‘탁-’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을 밝게 비추던 등불이 꺼졌다.일심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어찌 된 일인가?정전인가?조연아는 휴대폰을 꺼내 불을 켜려고 했다. 갑자기 달콤한 향이 풍기더니 뒤에 거대한 물체가 나타나 조연아를 제압했고 저항 몇 번 못 해본 채로 입이 막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하고 말았다...같은 시각 식당 내부도 시끄러웠다.“여러분 침착하세요. 아마 전력 소비가 과도해서 트립이 발생한 것 같아요. 곧 수리될 겁니다.”제작진은 확성기로 사람들을 안정시켰다.약 25분 후, 식당은 다시 밝아졌고 카메라도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있었고 방금 전 정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실시간 시청자 수는 500만 명을 돌파했고 대부분이 훈조부부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면에는 민지훈과 조연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그래서 네티즌들은 두 사람이 몰래 데이트를 하고 있을 거라고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던 제작진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하게 말했다.“대표님이 사라졌어요.”제작진의 말에 하태윤은 손에 들려 있던 도시락을 놓쳤다.“뭐요?”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작진을 보았다.“일심을 샅샅이 뒤졌지만, 대표님을 찾지 못했어요.”제작진도 매우 불안해했다.충격받은 하태윤은 잠시 후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그럼 신고하지 않고 뭘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직원들 입단속 잘 시키세요. 이 소문은 퍼지면 안 돼요.”“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총감독님도 말했듯이 일심의 전체가 모두 우리 사람들이라서 절대 말하지 않을 거예요.”이 일이 알려지면 어떤 영향이 있을 거란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스타엔테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에도 아주 불리했고 심지어 공황 사태를 불러올 것이다.하태윤은 조연아의 숙소로 달려갔다. 그는 반드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같은 시각, 일심 공항에는 비행기 한 대가 이륙 전 준비를 마쳤다.그때 오민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소식을 접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대표님! 큰일 났어요! 연아 씨가 사라졌대요.”평온하던 민지훈의 얼굴이 삽시에 일그러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비행기에서 내렸다.오민이 그의 뒤를 따랐고 일심으로 향했다.민지훈이 도착했을 때 경찰들도 도착해있었다. 현장을 수색해 봤지만, 아무 흔적도 없었다.민지훈을 본 하태윤이 말했다.“왜 자리를 비운 거예요? 당신이 있었더라면 무서워서라도 대표님을 건들지 않았을 텐데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민지훈의 사나운 눈이 하태윤을 쏘아보자, 하태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죠?”냉정함 뒤에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대표님은 아직 아무런 소식 없어요. 일심은 이미 봉쇄되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지만, 여전히 찾을 수 없네요.”“감시 카메라는 확인했나요?”그가 물었다.“이미 확인했어요. 대표님이 오소길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정전되어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어요.
민지훈은 침묵했다. 잠시 후 그가 끝내 입을 열었다.“그 고양이를 찾아.”“고양이요?”오민이 멈칫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고양이는 지금 유일한 증거이다.사람이 아니고 말을 할 수 없지만 찾아야 한다. 그것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네!”오민이 대답하자 민지훈도 움직이기 시작했다.그의 눈에서 한기가 품어져 나왔다.“털끝이라도 건드리면 내 손에 죽는다!”...주위는 어둠으로 짙게 깔려있다.공기 속 그 달콤한 향기에는 피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어 헛구역질이 났다.조연아는 온몸이 너무 무거웠고 어지러워서 힘겹게 몸을 가누며 몸을 일으켰다.모든 기억이 순식간에 떠올랐다...숙소로 가던 중 누군가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여기는 어딘가?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불쾌한 냄새가 그녀의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그녀.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갑자기, 그녀의 시선에 어렴풋한 물체가 들어왔다. 조연아는 걸음 멈췄다. 그러다 조금씩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그녀는 고의로 발을 더 세게 구르며 소리를 냈다.가까이 다가섰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그것은 사람이었다.자리에 얼어버린 그녀는 너무 놀라 비명도 잊은 듯했다.그녀는 재빨리 문으로 달려갔다. 다리는 점점 힘이 풀려 그만 바닥에 쓰러졌고 무릎과 바닥이 부딪혀 거센 마찰음이 났다. 그녀는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다.그녀는 당장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이를 악문 그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다. 절뚝거리며 문으로 다가갔다.그리고 있는 힘껏 문을 밀었다.그러자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밖은 아주 밝았다.조연아는 깊게 한숨 들이기코 창고를 바라봤다...민지아!시퍼런 상처 자국으로 가득한 얼굴에 그녀는 혼비백산했고 뒷걸음 질 치다 바닥에 넘어졌다.어떻게 이런 일이...민지아 어떻게 여기에 있단 말인가!조연아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먼저 이곳을 벗어나야 해.”말을 마친 민지훈은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상처 입은 그녀의 다리를 보았다. 그는 두말없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하지만 몸을 돌린 순간,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늦었네.”조연아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민지훈이 신처럼 나타났고 고양이로 그녀를 찾았다고 하면서 지금은... 또 늦었다고 말하고 있다.“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어리둥절했던 조연아가 그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일심의 제작진과 경찰이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을 뿐이었다.“왜 민지아와 함께 창고에 있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그녀는 순식간에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그 말은... 범인이 지아를 죽인 후 나를 납치해서 나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거야?”민지훈은 이 여자의 머리가 꽤 빨리 돌아간다고 내심 감탄했다.뒤이어 도착한 경찰은 민지아의 생체 신호가 없음을 확인한 후, 법의학자에게 현장을 살피게 했다.그리고 조연아를 바라보더니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저희와 함께 서로 가서 조사를 받아야겠습니다. 대표님이 갑자기 실종되고 살인사건이 나타나서요.”조연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민지아의 죽음은 그녀와 아무 상관 없고 범인은 고의로 그녀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날 내려줘.”조연아는 민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그녀를 놓아줄 기미가 없었다.“다쳐서 걸을 수 없어요. 저도 함께 조사받죠.”민지훈의 말에 조연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장의 사람들도 모두 충격받은 모습이었다.하지만 민지훈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당신들이 여기에 도착했을 때 나도 그녀와 함께 있었으니 나도 조사받아야죠.”다른 이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만약 그녀가 범인이라면 난 유일한 공범이에요.”그는 그녀 평생의 공범이고 싶었다.진지한 그의 말에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너무 무서운 한마디었다...모두의 시선 속에서 민지훈은 조연아를 품에 안고 경찰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가는 내내
입술을 촉촉하게?이 자식은 핑곗거리도 참 많아!“도라에몽이야?”“응?”그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립밤으로 변했던 거야?”그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아주 유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이즈도 컨트롤할 수 있는데 볼래?”그의 말에 조연아는 눈을 크게 떴다.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보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변태야!”“우리 와이프는 욕도 참 달콤하게 한단 말이야.”“나쁜 자식!”조연아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너만 괜찮다면 난 다 좋아.”“??”조연아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렸다.“내가 어떻게 당신을 찾은 건지 궁금하지 않아?”그녀가 화났다는 것을 느낀 그는 농담은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흥미를 가질 만한 곳으로 화제를 바꿨다.조연아는 그가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에 자신을 찾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하지만 방금 전 그의 뻔뻔한 행동에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지 지나지 않아 경찰이 심문하기 시작했다.“저희에게 상황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제가 숙소로 가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입을 틀어막혔고 깨어나 보니 그 창고였어요. 그리고 옆에는 민지아가 누워있었고요.”조연아는 아주 간단하게 서술했다.“끝인가요?”조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누가 당신을 납치했는지 봤나요?”조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못 봤어요. 하지만 저를 납치한 사람은 남자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어요. 힘으로 보나 몸집으로 보나 틀림없이 남자였고 적어도 180CM 정도의 키였어요.”이것은 입이 틀어막히는 순간부터 정신을 잃기 전까지 그녀가 유일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대는 뒤에서 급습했기에 도저히 외모를 볼 수 없었다.경찰은 시선을 민지훈에게 돌렸다. 그리고 물었다,“민 대표님은 어떻게 거기에 있었던 거죠?”“와이프가 실종되었으니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당연히 온 산천을 뒤져서라도 찾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그녀가 다시 물었다.“고양이는 말이 없는데 어떻게 고양이로 나를 찾았단 거야?”“그 고양이가 범인일 수 있어.”조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발언에 동의했다.“그럴 가능성도 있어. 고양이 목에 목걸이가 있었고 품종은 페르시안이었으니 주인이 있을 거야. 하지만... 고양이가 범인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야?”“범인이 아니라 해도 범인과 접촉했을 거야.”그는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조연아는 더욱 의아했다.“왜 그렇게 확신해?”“지금은 꽃들이 만개하는 시기야.”조연아는 여전히 의아한 표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덧붙였다.“창고에 가려면 꽃밭을 지나야 해.”그의 말에 그녀는 마침내 모든 것을 깨달았다.그들이 방금 하산할 때 드넓은 꽃밭을 지났었다.“창고 있을 때 문이 닫힌 상태였어도 꽃향기를 맡을 수 있었어. 범인은 일찍 민지아를 창고에 버렸고 나를 납치했어. 그렇게 여러 번 오가면서 꽃밭을 지나다 보니 그의 몸에는 짙은 꽃향기가 배었던 거야. 그 고양이가 그의 것이거나 그가 만졌기 때문에 고양이에도 꽃향기가 뱃던 거지.”하지만 이럴 가능성은 낮았다.“고양이는 그의 것이야.”민지훈은 여전히 진지했다. 만약 그저 만진 것뿐이라면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꽃향기가 스며들지 못할 것이다.“그럼... 고양이 주인은 누구?”민지훈은 옆에 놓인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이건 경찰이 알아낼 거야.”조연아는 그저 확신으로 가득한 그를 볼 수밖에 없었다.아주 다양하게 수작 부리네?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부검 결과가 나왔다.조연아는 범행 가능성이 없었다. 흡입 마취제 때문에 적어도 2~3시간 동안은 잠들어있어야 했기 때문이다.그녀가 납치되어 의식을 잃은 시간이 민지아가 살해된 시간이었다. 범인은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던 것이다.고양이를 근거로 경찰은 빠르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일심의 민박 사장이었다.범인은 다음과 자백했다.“전... 전... 200억의 도박 빚을 졌어
한 사람의 목숨이다. 왜...왜 이렇게 잔인해야 했는가?전에 송진희가 그녀를 층계에서 밀쳤을 때에도 그녀는 알 수 없었다.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무자비할 수 있는지?민지아가 살해당할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차마 헤아릴 수는 없다.예전에 그녀도 민지아를 애지중지하며 친 딸로 여긴 적 있었다.조연아는 깊게 심호흡했다. 무엇 때문인지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아마 요즘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 마음이... 답답한 것 같다.여름 바람은 뜨거웠다. 하지만 조연아는 온몸이 너무 차가웠다.민지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녀는 멈칫했다. 익숙한 그의 향기, 예전이라면 안정감을 느낄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를 밀어냈다.“민박 사장에게 전화를 한 사람은 찾았어?”그녀는 짧고 간단한 물음을 던졌다.“없는 번호야.”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또 없는 번호일 줄은 몰랐다.“아마 나에게 영상을 보낸 사람일 거야.”조연아는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이 안 되는 것을 보아 없는 번호였다.“응.”조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번엔 정말 고마웠어.”그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고맙기만 하다고?”조연아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가 또 허튼수작을 부릴 것 같아서였다.“그렇게 무서워?”그는 웃을 수 없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긴 했지만, 그것은 쓴웃음이었다.조연아는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무섭지. 이미 한번 죽을 뻔했는데 소중히 여겨야지 않겠어? 세상은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서 잘 살고 싶어.”“내가 당신보다 생명을 더 소중히 여겨.”그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은 너무 씁쓸해 보였다.조연아도 고개를 끄덕였다.“잘 됐네.”“내가 소중히 여기는 건 너야.”“...”조연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전히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둔탁한 것에 세게 맞은 것 같았다.그때,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대표님!”화려하게
오민이 어떻게든 버티려는 추연을 억지로 병실에서 내보내고 다시 조용해진 병실.조연아를 꼭 안고 있던 민지훈이 한 마디 내뱉었다.“연기 좋았어.”단호한 말투에 조연아의 몸이 순간 움찔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큭.”피식 웃던 민지훈이 하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상관없어. 연기가 맞든 아니든 난 협조할 테니까.”“...”말없이 민지훈의 품에 안긴 조연아의 눈동자가 살짝 가라앉았다.‘뭐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 연기는 완벽했어. 그런데 왜... 들킨 걸까?’“나 피곤해.”대충 핑계를 대고 민지훈의 품에서 벗어난 조연아는 그를 등진 채 돌아누웠다.“재워줄까?”‘예전의 조연아라면 분명 그래 달라고 하겠지.’한편, 이미 들킨 거나 마찬가지지만 모르쇠를 대기로 했으니 조연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어떻게 재워줄까?”이때 조연아의 곁으로 훅 다가온 민지훈의 숨결이 그대로 그녀의 귀를 적셨다.‘미친 변태자식.’여전히 눈을 굳게 감은 조연아의 볼이 슬그머니 달아올랐다.착잡한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조연아의 볼에 뽀뽀를 하고 이불까지 잘 덮어준 민지훈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눈을 감고 있고 돌아누워 등까지 진 상태였지만 그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어지러운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조연아는 방금 전 추연의 말과 반응들을 다시 떠올렸다.‘추신수... 그 자식이 날 물속으로 잡아당길 때 분명히 봤어. 목에 걸린 옥 목걸이를.’그 옥 목걸이는 조연아의 어머니와 추연 두 자매의 어머니, 즉 조연아의 외할머니가 두 딸을 위해 특별 제작한 유일무이한 팬던트였다.‘하지만 엄마가 하고 있던 팬던트는 6년 전에 이미 깨졌어. 유품 정리할 때 분명 확인했다고. 그럼 추신수 목에 걸린 건 이모 거란 소린데... 이모 팬던트가 왜 추신수한테 있는 거지?’한번 불씨를 튼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추신수
“너무 무리하지 마.”민지훈이 조연아를 끌어안았다.아무런 저항 없이 얌전히 안긴 모습, 모든 게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이때 밖에서 요란스러운 인기척이 들려왔다.“뭐? 연아가 기억상실증?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당장 들어가서 확인해야지.”“이모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나 연아 이모야. 무슨 자격으로 날 막아!”그렇게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들어온 추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리고 다급하게 그 뒤를 따르던 오민도 눈을 질끈 감았다.‘세상에 두분 지금... 서로 안은 거 맞지?’“이모.”이때 추연을 발견한 조연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이모도 왜 병원복 차림이에요? 이모도 어디 아파요?”“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충격을 받은 추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너...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 거야?”“네.”그리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미는 추연이었다.“민 대표, 두 사람 이렇게 스킨십하는 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봤어 봐. 우리 연아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어? 두 사람 이미 이혼한 사이잖아.”“이혼이요?”조연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민지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우리 언제 이혼한 거야?”“이혼”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상한 민지훈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이모님, 이만 나가주시죠. 이모님도 다치셨는데 푹 쉬셔야죠.”오민 역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네, 의사선생님께서 이모님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얼른 가시죠.”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추연이 아니었다.“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기억상실증에... 걱정하지 마. 잃어버린 기억은 천천히 되찾으면 되니까. 아니, 영원히 찾지 못해도 상관없어. 그 동안 있었던 일 이모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줄 테니까. 네 옆에 서 있는 이 남자 때문에 네가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왜 이혼하게 된 건지 전부.”하지만 조연아의 맑은 눈동자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이모 말
“환자분,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십니까?”검사를 마친 의사가 물었다.말없이 고개를 저은 조연아는 또다시 공허한 눈빛으로 민지훈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대표님, 환자분 뒤통수에 생긴 상처는 아마 며칠 동안 통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상이고 뇌출혈 증상도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네.”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민지훈의 시선은 여전히 조연아를 향해 꽂혀있었다.“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민지훈을 향해 꾸벅 인사를 남긴 의사가 병실을 나서려던 그때, 조연아의 목소리가 조용한 병실의 정적을 깨트렸다.“저... 어떻게 다친 거죠?”그 질문을 들은 순간, 의사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환자분, 어떻게 다치셨는지 기억 안 나십니까?”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조연아는 민지훈을 돌아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여보, 나 어떻게 다친 거야?”“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여보?’확실히 어딘가 이상한 모습에 민지훈은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아, 남편이라는 호칭 불편해? 미안. 그러니까 그렇게 화난 표정 짓지 말아줘.”3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조심스럽고 겁 많은 새 같은 모습. ‘뭐지?’혼란스러웠지만 민지훈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아니. 남편 맞아. 화난 거 아니야.”그리고 다시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민지훈이 꾸짖 듯 물었다.“별문제 없다면서요. 이게 무슨 상황이죠?”당황스러운 건 의사도 마찬가지였다.“그러게 말입니다. 뒤통수 가격으로 인해 출혈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외상일 뿐입니다. 기억상실증까지 올 수준은 아닌데요... 물에 빠진 뒤 잠깐의 익수가 있었지만 구조가 빨랐기에 뇌손상도 거의 없었고요. 그런데도 기억을 잃은 거라면 트라우마로 인한 단발적인 기억상실증이 큽니다. 이 문제는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그럼 가장 실력 좋은 의사로 컨택해 주세요.”“네.”의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빠르게 병실을 나서고 조용해진 병실, 조연아의 옆에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걱정스레 민지훈을 바라보던 오민은 뭔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욕 먹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할 얘기는 해야 해.’“저기... 대표님. 지금 총알을 빼내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연아 씨가 깨어나고 나서 대표님 이런 모습 보면 얼마나 속상해하겠어요. 아니,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행여나 앞으로 팔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면 큰 결함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다른 라이벌들 이길 수 있으시겠어요?”민지훈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건 조연아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 오민은 자극 요법을 사용했다.“대표님. 제발 연아 씨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세요!”그제서야 살짝 흔들리던 민지훈이 결국 일어섰다.“그래요. 치료하죠.”“네, 네.”잠시 후, 역시 수술실로 옮겨진 민지훈은 바로 총알 제거 수술을 받은 뒤 마취가 풀리기도 전에 바로 조연아가 있는 응급실로 달려갔다.그리고 조연아가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그녀와 함께 VIP 병동으로 입원까지 할 수 있었다.한편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오민은 걱정되는 마음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를뿐이었다.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민지훈이 사랑 때문에 이 정도로 충동적으로 움직이다니. 이게 사랑의 힘인가 싶었다.‘연아 씨,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연아 씨가 깨어나야 저희 대표님 좀 쉬실 거 같으니까...’...조용한 병실, 차가운 달빛이 커튼을 넘어 침대를 비춰주었다.민지훈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조연아의 손을 꼭 잡았다.‘연아야...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봐. 널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힘든 건 다 내가 감당할 테니까 넌 그냥 행복만 해줘.’...한편 조연아는 깊은 꿈속을 걷고 있었다.오로라를 기다리던 그날 밤,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귓가에 다정한 사랑의 말을 건네는 꿈이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남자는 잔인한 얼굴로 그녀를 불바다 속으러 밀어버리고
가슴을 움켜쥐고 바다에 추락하는 걸 바라보는 조연아의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리고 그런 조연아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고 있던 민지훈이 한 마디 내뱉었다.“겁 먹지 마.”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조연아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핏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민지훈의 요트가 빠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이제 정말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바다에 빠졌던 추신수가 불쑥 수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요트 난간을 부여잡은 추신수가 악에 받친 얼굴로 조연아의 다리를 잡아끌었다.“으악!!”비명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사방에 튕기고 그와 동시에 민지훈은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대표님!”이에 오민 역시 짧은 고함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졌다....두려울 정도로 조용한 바다...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소음이 전부 사라지고 턱턱 막히는 숨이 이곳이 물속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아... 이렇게 죽는 건가...’의식이 아득하게 사라지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에선 더 이상 바닷물의 차가움마저 느껴지지 않았다.바로 그때, 탄탄한 팔이 그녀를 꽉 껴안고 빠르게 수면위로 올라갔다.하지만 민지훈과 조연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탕탕탕 소리가 들려왔다.갑판 위에 남은 남자들이 해수면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조연아를 꽉 끌어안은 민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총 따위 무섭지 않아.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연아만 무사하다면...’한편, 거센 기침과 함께 눈을 뜬 조연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바닷물에 엉망으로 젖었음에도 여전히 멋진 민지훈의 얼굴이었다.쿵.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위급한 이 상황이 잊혀질만큼 마음속 한 구석에 묘하게 따뜻해졌다.“탕!”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이 민지훈의 팔을 관통하고 피가 뿜겨져나왔다.“민지...”바다 내음인지 피냄새인지 헷갈리는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조연아의 의식은 다시 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원들이 갑판
추신수의 말대로 저 멀리 수평선 뒤로 다가오는 요트들을 발견한 조연아는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마음이 다시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다.‘또... 민지훈이라고? 또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는 건가?’이때, 그녀의 머리채를 홱 잡은 추신수가 총구로 그녀의 머리를 겨누었다.“허튼 짓 할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아무리 구조 요트로 도망쳐 봤자 쾌속 요트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추신수는 조연아를 미끼로 쓰기로 결정했다.“민지훈. 이 여자 머리에 구멍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멈춰.”추신수가 무전기를 사용해 소리쳤다.한편, 인질로 잡힌 조연아를 발견한 민지훈은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곧 모든 요트들이 멈춰서고... 방금 전까지 당황한 표정이던 추신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하, 전 와이프한테 남은 미련이 그렇게 많아? 그 유명한 민지훈 대표가 이렇게 순정남일 줄 몰랐어. 우리 동생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이길래 잊지를 못하실까? 뭐 침대에서 끝내주나 보지? 하하하.”추신수의 음담패설에 오민이 확성기를 빼앗아들고 소리쳤다.“추신수 씨, 이쯤에서 그만 하십시오. 당신이 저희 대표님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괜한 발버둥치지 말고 조연아 대표 풀어주세요.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으면.”하지만 오민의 경고가 굉장한 농담이라도 되는 듯 추신수는 웃음을 터트렸다.“그만 해? 의미없는 발버둥? 하하하, 정말 의미없는 발버둥일까? 조연아가 내 손에 있는 한 민지훈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너희 잘난 대표님 얼굴 좀 봐. 날 찢어죽이고 싶은데 어쩌할 방도가 없는 저 모습을.”“원하는 게 뭐야?”민지훈이 물었다.“아, 역시 통쾌하셔.”추신수가 피식 웃었다.“요트 한 대만 가까이 붙여. 조종수 한 명만 남겨두고.”잠시 후, 그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요트를 바라보며 추신수는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그만!”“너, 뛰어내려.”추신수가 배에 타고 있는 오민을 향해 말했다.조연아가 인질로 잡힌 상황인데다 어차피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인 추연의 모습에 조연아가 소리쳤다.“이모, 이모. 정신 좀 차려봐요. 이모.”겨우 눈을 뜬 추연아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털썩.남자들의 손길대로 움직이다 그대로 갑판 위에 쓰러진 추연을 바라보는 조연아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그녀 역시 꿈쩍도 할 수 없는 터라 그저 애타게 소리칠 뿐이었다.“이모! 이모!”그녀의 목소리가 추연에게 닿아 정신을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이모랑 사이가 이렇게 좋았어?”한편, 흥미롭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추신수가 피식 웃었다.“너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연이 이모는 너한테도 이모잖아.”“동생아, 내가 그걸 모를까 봐? 내가 가족, 핏줄 그런 데 얽매이는 사람처럼 보여? 그럴 거면 애초에 납치도 하지 않았어. 너희 두 사람 오늘 절대 살아서 여기서 못 벗어날 거니까 쓸데없는 기대 따위 하지 마.”추신수가 음침한 미소에 순간 소름이 돋는 조연아였다.“너... 진짜 미쳤구나? 왜? 나랑 이모 다 죽이고 스타엔터 네가 차지하려고?”“그래. 네 말이 맞아.”그 와중에 여유롭게 총구를 닦던 추신수가 말을 이어갔다.“솔직히 널 죽인다고 해서 내가 스타엔터를 차지할 거란 보장은 없지. 하지만 확실한 건... 네가 살아있는 한 그 회사가 내 몫이 될 수는 없다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사람들도 내가 널 죽였다곤 상상도 못할걸. 여기서 물고기밥이 되어서 시체도 못 찾을 텐데. 안 그래?”“너... 신수야, 너 어떻게 그런 짓을.”바닥에 쓰러져있던 추연이 소리쳤다.“아무리 미워도 우린 피를 나눈 가족이야. 어떻게 가족한테 이런 짓을 해... 넌 죄책감 같은 것도 없어?”“죄책감?”한발 앞으로 다가간 추연이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죄책감 그게 밥 먹여줘? 돈만 가질 수 있으면 난 뭐든 할 수 있어.”말을 마친 추신수는 추연의 배를 거칠게 걷어찼다.“이모!”“왜 그런 눈으로 봐?”추신수가 증오로 번뜩이는 눈빛의 조연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배 위야. 동해일 가능성이 크고.”망망대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순 없었지만 임천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동해라 그렇게 추측한 것이었다.“신수가... 신수가 벌인 짓이야. 네 얼굴 직접 보고 사과하려고 했는데 거기서 추신수 그 자식을 만났어. 그리곤 바로 쓰러졌고.”피 묻은 추연의 옷을 바라보던 조연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이모, 자세한 설명은 안전해지면 그때 해주세요. 지금은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추신수 그 미친 자식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몰라. 구조정... 이 정도 규모의 배라면 구조 보트 같은 건 있을 거야. 그걸 타고 여기서 벗어나야 해.’하지만 추연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연아야. 난 신경쓰지 말고 너 먼저 가... 이모는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괜히 따라나서봤자 너한테 짐만 될 거야.”“이모...”“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얼른 가. 이러다간 우리 둘 다 꼼짝 못하고 여기서 죽는 거야.”어느새 추연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려왔다.“아니요.”하지만 조연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저 이모 버리고 못 가요.”“어차피 신수 타깃은 내가 아니라 너야. 당장 나한테 무슨 짓을 하진 못할 텐까 너라도 일단... 일단 도망쳐. 그리고 사람들이랑 다시 와서... 날 구해줘.”출혈이 너무 심해서인지 어느새 힘이 빠진 추연은 자꾸만 의식이 흐릿해져만 갔다.“그러니까 어서 가.”그리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추연은 조연아의 손을 뿌리쳤다.“얼른 가. 얼른!”“그럼... 저 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해요. 알겠죠?”조연아가 입술을 깨어물었다.추연 말대로 지금은 쓸데없는 고집이나 부릴 때가 아니었다.어떻게든 누구라도 도망쳐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 그게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마음을 독하게 먹고 갑판으로 나선 조연아는 한쪽에서 구조 요트를 발견했다.‘저기 있다.’그런 그녀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차가운 총구가 그녀의 뒤통수를 겨누었다.“하, 내가 정말
꽤 규칙적인 흔들림 속에서 조연아는 부스스 눈을 떴다.머리는 지끈거리고 사지에 힘은 풀린 와중에 피 냄새까지 풍겨왔다.칠흑같은 어둠속 나무판 사이 틈으로 흘러드는 빛 한줄기 덕에 조연아는 본인이 어디 있는지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여긴 배...잖아?’조연아는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았다.‘이모가 쓰러져있는 걸 발견하고 나서 나도 공격받았어. 아, 이모... 이모는 어디 계시지?’조연아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잡동사니로 가득 들어찬 방에는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그렇게 한참을 더 주위를 둘러보던 조연아는 구석에서 날카로운 철편 하나를 발견했다.어두운 이 공간에서 밧줄을 자를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도구.힘겹게 꿈틀거리며 조금씩 이동하던 그때, 바깥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헉, 뭐지?’당황한 조연아는 바로 그 자리에 누운 채 아지 깨어나지 않은 척 눈을 질끈 감았다.역시나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조연아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 여자 상당히 발칙한 X이라니까 조심해. 그리고 이 여자 이모는 옆방에 있으니까 종종 들여다보고. 어촌에서 잡아온 여자들이랑 노닥거리지 말고.”“참나. 형님, 저도 사내입니다. 저딴 여자 두 명 상대 못할까 봐요. 걱정하지 마십시오.”그럼에도 “형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당부를 이어갔다.“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 스타엔터 조연아 대표라고. 보통 여자가 아니야.”“대표면 뭐요. 결국 힘없고 약한 여자 아닙니까. 게다가... 얼굴에 몸매도 반반한 것이... 한 번 건드려보고 싶은데요?”“어허. 너만 그러고 싶은 줄 알아? 나도 사실은... 엘리트 여자랑 해보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거든.”역겨운 주제에 배멀미까지 더해져 순간 밀려오는 구역질을 조연아는 억지로 참아냈다.잠시 후, 남자들이 방을 나서자 다시 번쩍 눈을 뜬 조연아는 꿈틀거리며 철조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으윽...”겨우 철조각에 손이 닿아 손발을 묶은 밧줄을 풀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