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경을 보던 용전 사람들의 눈에 분노가 들끓었지만 지금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눈만 껌뻑이며 땅바닥만 주시하고 있었다.용인서는 껄껄 웃으며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당인준도 그의 행동에 살짝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전설의 용문주는 역시 거침이 없었다.행동 규칙과 체면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처럼 그저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행동할 뿐이었다.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문주.”하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사실 용문은 백 년 평판을 가진 집단입니다.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나 하나 때문에 문주께서 오랫동안 열심히 이뤄온 것을 잃으실까 염려됩니다.”“용전 사람들은 제가 도성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테러와 관련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이제는 제 차례입니다.”“제가 그들에게 물을 차례입니다.”“그들은 비록 사람을 죽이고 싶어 했지만 저는 저들이 품은 나쁜 심보를 문책할 것입니다.”“용위, 용옥, 용전, 용문, 모두 심문하고 싶습니다!”“무고한 자들에게 정의를 되돌려주고 싶습니다!”“저에게 죄가 있다고 판명된다면 인정하고 벌을 받겠습니다!”“저에게 죄가 없다고 밝혀지면 용전 항도 지부를 폐기하겠습니다!”이 말이 나오자 하수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용인서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의 그 시원시원한 행동 스타일 정말 마음에 들군.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그들은 사람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우리는 그들이 가진 나쁜 심보를 벌하겠어!”“당통령! 자네가 임시로 용전 항도 지부를 맡아주게. 지금부터 이곳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나갈 수가 없네!”“오늘 우리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천하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밝힐 것이네!”“콰강!”하늘 위로 먹구름이 장막을 치며 해를 가렸고 천둥과 번개가 몰려와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질 듯 위세를 더했다....연경 교외에 오래된 능묘 같은 곳이 있었다.그곳은 수많은 사람들
하구천은 우산을 쓰고 미소를 머금은 채 꽃집에 들어갔다.하백진을 본 하구천은 그녀에게 공손하게 말했다.“고모, 웬 꽃집이에요? 갑자기 이곳으로 오라고 한 이유가 뭐예요?”하백진은 눈앞에 나타난 하구천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그러고 나서 그의 전체를 꿰뚫어 보려는 양 가만히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녀는 입술을 들썩이며 천천히 말했다.“하현이 항성과 도성에서 와서 당한 일, 네가 그런 거야?”하구천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물론 아니죠.”“퍽.”하백진은 태블릿 PC를 꺼내 하구천의 이마에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하현의 장모 최희정이 납치가 되었고 하현은 두 번이나 하수진에게 습격당했어...”“화 씨 집안 아들들이 하현을 건드렸고.”“진태유는 최규문을 감옥에 보내려고 했고 그것을 파헤치려는 하현을 유인해 도성 국제공항에서 그를 치려고 했어.”“이 모든 일이 너와 무관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하구천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고모, 저도 이 일에 대해서 듣긴 했어요.”“이 일에 연관된 사람들도 다 제가 아는 사람들 맞아요.”“하지만 문제는 제가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거예요.”하백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구천아, 지금 네가 한 그 말, 내 앞에서는 괜찮아. 하지만 네가 심문받을 때도 괜찮을까?”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하구천은 심문받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노여움이 가득한 빛이 그의 눈동자를 스쳐 지나갔다.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모, 이해가 안 돼요. 항도 하 씨 가문 구역이고 용전이 일을 처리하는 곳인데 왜 다른 세 곳에서 끼어드는 거예요?”“우리 가문에서 언제 다른 집 일에 뛰어든 적 있어요?”하백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끼어드냐고? 구천아, 정말 너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하현은, 우리 항도 하 씨 집안사람이자 강남 하 세자야. 게다가 용문 대구 지회장이라구.”“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가 반
큰일이다!용전 항도 지부 안.하수진은 낯빛이 어두워졌고 마음속에선 오직 이 말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용인서가 진두지휘하고 명을 내리자 당인준이 빠른 몸놀림으로 용전 항도 지부 진입로를 모두 봉쇄했다.용전 항도 지부 핵심 구역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모기 한 마리 날아오지 못하게 했다.용전 항도 지부는 태평산에 있기 때문에 태평산에 사는 많은 권세가들이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항성 일인자들조차도 줄줄이 소환되었다.용전 항도 지부 전체는 금지된 구역과도 같았다.반나절 후 하현은 당인준과 둘이서 향이 그윽한 차를 나눠 마셨다.이윽고 사람들이 계속 그곳에 도착하기 시작했다.이들은 모두 용전, 용위, 용옥, 용문의 거물들로 이번 일을 전권으로 처리하는 대표들은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인물들이었다.네 곳이 모두 모여 회의한 일은 최근 몇 년 동안은 없던 일이었으나 이번에 용문과의 관계로 회의가 열렸으니 당연히 철저하게 처리해야 한다!게다가 이번 일은 국제적인 영향도 상당해서 대하 9 대 장로회에서도 이 일에 대해 의견을 표시했다고 한다.이 시각, 항성 전체에는 이 소문으로 가득 차서 아무도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이런 상황은 하수진의 심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그녀는 지금 엄청난 압박감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항도 하 씨와 용전이라는 큰 뒷배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것이었다.하지만 용위, 용옥, 용문이 9대 장로까지 대동하고 왔을 때는 아무도 이번 재판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모든 일은 규칙에 따라 처리될 수밖에 없다.심문할 테면 심문해 보라지.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자신감 넘치는 하수진을 더욱 흉악하게 몰아갔다.그녀는 멀리 서 있는 하현을 바라보았다.도저히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가 않았다.왜!?이 사람은 그냥 용문 대구 지회장일 뿐이고 보잘것없는 하 세자일 뿐이잖는가?그런데 어떻
이욱은 소리 없이 웃으며 하현의 손을 놓더니 그대로 돌아섰다.이때 붉은 깃발을 단 승용차가 절제된 위용을 드러내며 멈추었고 덩치 큰 장세경이 차 문을 열고 내려와 하현의 곁으로 곧장 다가온 뒤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장 어르신.”하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 대표, 당신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았는데 용문 대구 지회장일 줄은 몰랐군그래.”“나이 든 나도 진심으로 수긍할 만해.”“그런데 용전 저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지. 어찌 자네한테 대드는 것인가?”“그들은 자네가 용문 천군만마를 데리고 용전을 평정하는 것이 진정 두렵지 않단 말인가?”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장 어르신 농담도 잘 하십니다. 전 그냥 일개 지회장에 불과합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겠습니까?”장세경은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힘은 별로 없지만 용인서가 자네를 지지하잖는가? 한 마디로 네 개의 가문을 심문한다면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나서야지.”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담담하게 말했다.“장 어르신, 네 개의 가문은 모두 대하의 초석입니다. 대하의 공명정대함과 정의를 수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장세경은 잠시 깊은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하 대표, 내 개인으로서는 자네에게 내 진심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네.”“하지만 오늘은 내가 용옥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공정성을 염두에 두고 임하겠네.”“어떻게든 모든 진실을 잘 밝혀내도록 심문하겠네.”“물론입니다.”하현은 말을 하면서 장세경의 뒤를 바라보았다.장세경이 하현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뒤에 여자가 한 명 나타났기 때문이다.나이는 알 수 없지만 아름답고 매혹적인, 마치 인간 세상에 내려온 선녀 같은 여자였다.그 여인은 하현을 유심히 훑어보고는 빙긋이 웃으며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그녀가 나타났을 때 용전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눈빛은 그녀를 향한 관심으로 가득 찼다.그녀가 움직이자 장세경조차도 약간 긴장
하수진의 깨끗하고 청순한 이미지에 비해 하백진은 차분하면서도 위엄이 있었고 눈빛은 부드러웠다.하현을 바라볼 때도 눈 속에는 호의의 빛이 가득했다.만약 이 일련의 일의 배후에 하구천이 얽혀 있다는 걸 몰랐다면 하현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하백진은 하구천의 고모이다.하현은 아마 이 온화한 인상의 여자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졌을 수도 있었다.“펑!”바로 그때 한쪽 문이 열리고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최규문, 화태강, 곽영준이 들어왔다.이 사람들 외에도 문밖에 서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는데 모두 도성 국제공항에서 있었던 사건 관련자들임이 분명했다.이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당사자의 감독 하에 그들은 입장했다.“다 모였으니 이제 시작해 봅시다.”하백진은 위엄 있는 어조로 입을 열었고 백구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자, 시작하시죠!”현장에 있던 많은 거물들 때문인지 백구의 존재가 크게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하백진의 명령에 그는 잠시 긴장한 듯 심호흡을 했다가 자신의 증명서를 주위에 펼쳐 보이며 입을 열었다.“여러분, 그럼 시작하겠습니다.”백구의 시선이 하현에게 떨어지더니 그가 천천히 말했다.“하현, 사건 당일 왜 도성 국제공항에 갔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사람을 찾으러 갔습니다. 이 사람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서희진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으로 가서 성형수술을 한 후 얼굴을 바꾸고 소윤비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왜 그 여자를 찾으러 갔죠? 그 여자와 당신 사이에 뭔가 충돌이 있었던 겁니까?”백구는 하현을 응시하며 대답의 모든 허점을 찾아내는 듯 유심히 쳐다보았다.하현은 계속 담담하게 말했다.“희망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일부러 최 씨 남매를 희망호로 유인했고 화태강의 압박으로 견디다 못한 최 씨 남매가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간단히 말해서 소윤비는 저를 사건으로 유인한 가장 중요한 유인책이었던 것입니다.”백구가
하현은 최규문, 곽영준, 화태강에게 시선을 떨어뜨린 뒤 싱긋 웃으며 말했다.“도성 국제공항 테러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곽영준, 화태강을 기소하겠습니다.”“주범은 아니었지만 방조범이었습니다.”“최규문은 비록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직접 움직인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그 악당들은 미국 퇴역 군인들이고 희망호의 칩을 가지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그를 방어하기 위한 속임수입니다.”“그리고 최규문은 지금까지 순순히 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하지만 이 사람은 신분이 너무 높아서 감히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그래서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최규문의 입을 비틀어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겁니다.”“저는 피해자일 뿐입니다. 전 이 자리를 떠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에요, 안 그렇습니까?”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사람들은 하현이 절차를 따르지 않고 백구의 심문 과정에 불쑥 끼어드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최규문이 배후의 인물을 알고 있다고 말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하수진은 일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하현이 제멋대로인 행동을 보일 줄도 몰랐지만 이미 모든 사실을 하현이 꿰뚫고 있을 줄도 몰랐다.우연히 알게 된 걸까? 아니면 하현이 정말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걸까?불길한 예감에 하수진은 심장이 벌렁거렸다.“하현, 최규문은 이미 심문을 마쳤어요. 심지어 진실을 말하는 최음제까지 이용해서 심문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 일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그는 누명을 뒤집어썼을 뿐 배후가 진범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하민석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난 그가 누명을 썼을 거라 믿습니다. 그가 이 일을 하지 않았으니 최음제를 이용해도 소용없었겠죠.”“그러나 그는 배후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지 어떤지 여전히 그 점에 관해서는 심문이 필요해 보입
하수진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최규문, 당신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려!”하백진은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최규문이 말하게 해 주세요!”“최규문, 사건의 진상이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다 말씀해 주세요.”한쪽에 있던 용인서도 담담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당신이 진실을 말하고 죄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 이 자리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미국으로 안전하게 호송될 것을 보장합니다.”“누가 감히 당신을 건드린다면 그의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용인서의 말에 모두들 긴장한 듯 말없이 마른침을 삼켰다.용인서가 이렇게까지 하현을 비호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씀드리겠습니다!”최규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일그러졌다.“진태유는 이전에 연경 방 씨 집안 방재인을 보고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그는 화옥현을 통해 그녀에게 몰래 약을 먹여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려고 했어요.”“그런데 화옥현이 진태유를 돕는 데 다른 꿍꿍이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방재인에게 약을 먹였던 그곳에 하현이 온 거예요.”“그래서 하현은 방재인을 구출해 내고 진태유의 뺨을 때렸습니다.”“진태유라는 사람은 원한이 생기면 반드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죠!”“게다가 이전에 홍성 샛별이가 하현의 장모를 납치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진태유는 그 이후에도 하현을 계속 유인했고 결국 찾아올 걸 알고 있었던 거예요.”“그는 희망호를 이용해 하현을 죽이려고 했어요!”“그렇지만 그가 데려온 그 흉악한 놈들이 이렇게 함부로 도성 국제공항에서 테러를 범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그리고 폭탄과 총은 모두 그가 준비한 거라고 말했어요. 본인이 직접 말했다구요.”“게다가 진태유는 자신의 배후에 항도 하 씨 거물이 있고 그 거물이 하현을 죽이고 싶어 한다고 저한테 넌지시 말했어요.”“저더러 용전에 들어간 후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
최규문의 말을 듣고 하백진 일행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모든 사람들의 의심 가득한 시선이 하수진에게로 쏠렸다.만약 최규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태유는 살해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하수진은 그의 의도에 공모한 공범이었다.심지어 이 일은 이제 항도 하 씨 하구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했다.그녀의 이런 태도는 최규문이 한 말이 모두 사실임을 증명했다.최 씨 남매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얼어붙었다.그들 최 씨 집안이 다른 사람들이 나쁜 의도로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분명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저희 용옥이 이 사건을 이끌고 다른 세 집안이 감독할 사람을 보냈습니다.”장세경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리고 그가 손짓을 하자 수십 명의 용옥 정예들이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다른 세 집안에서도 각각 감독할 사람을 보냈다.현장에 있는 네 집안 중에 용전과 용문은 이 일에는 적합하지 않았다.용위는 이런 일을 잘 하지 못했다.그러니 결국 용옥에게 이 일을 맡기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았다.하현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고 최규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최규문, 당신이 방금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곧 밝혀질 거야.”“아니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하수진이 어떻게 당신을 협박하고 회유했는지 지금 말해 봐.”하현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당신이 사실대로 말하기만 한다면 난 당신이 날 모욕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을 거야.”용인서 역시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맞아요. 당신이 하현의 결백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우리 용문도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겁니다.”“당신에게 한 약속은 모두 유효합니다.”하수진은 눈꺼풀이 파들파들 떨렸다.최규문은 불안한 시선으로 하현을 힐끔 쳐다본 뒤 말했다.“난 미국 최 씨 집안에서 특수한 신분이에요. 후계자 후보 중 한 사람으로 아직 제대로 윗자리에는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