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차를 몰고 한참 달리다가 신호등을 기다리는 잠깐의 틈을 타, 낮에 현장에서 발견한 그 쪽지가 또 생각나 꺼내보았다.쪽지에는 성혜인이 쓴 글씨가 적혀있었다.어디에서 똑같은 글씨체를 본것같아 애써 되새겨보았지만, 자신의 전 와이프한테 전혀 관심이 없었는지라,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때까지도 아무런 단서가 떠오르지 않았다.그는 조심스럽게 종이쪽지를 접은 다음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왔다.하루내내 먹지 못한 반승제는 1층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나서 도우미한테 물었다.“페니는?”“올라가서 주무십니다. 페니 아가씨가 많이 피곤해 보이던데요.”반승제가 냉큼 위층으로 올라가 침실문을 열고보니, 과연 침대위에 이불을 쓰고 웅크린 채 자고있는 작은 체구가 보였다.그는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자연스럽게 그녀의 몸 위에 올라가 누워 그녀를 내리 감싸 안았다. 그 바람에 성혜인은 잠결에서 깨어나, 눈도 뜨지 못한채로 그의 어깨를 성질부리 듯 두어번 두드렸다. 어젯밤에도 그 차를 쫓아다니느라 힘들었고, 오늘도 밤낮으로 별로 쉬지도 못했는데, 이 남자한테 아직도 체력이 남아돌다니. 성혜인이 뭐라말할려고 입을 여는 순간,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입을 바로 막아버렸다. 힘이 빠진 그녀는 순순히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몸이 불같은 체구에 안겨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그 다음날 점심이 되어서야 성혜인은 잠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반승제는 방에 없고, 그녀를 위한 새옷 한 벌이 협탁위에 놓여져 있었다. 성혜인은 얼른 그걸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식탁에는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페니 아가씨, 식사 하세요.”도우미는 그녀한테 매우 친절했다. 성혜인은 식사를 마치고 얼른 회사로 갔다. 요새 다른 일로 많이 바빴지만 다행히 회사 내의 프로젝트는 한창 잘 진행되고 있었다.TJ엔터가 일으킨 여론은 너무 폭발적이었고, 그 과정에 S.M은 대승을 거두었다.TJ엔터는 아직도 지속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 와중에 S.M은 이번 일을 계기로 대
다른 한편, 반승제는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와서, 성혜인이 안 보이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성혜인은 그 시각 금방 별실 입구까지 도착했다. 별실 룸은 댄스 플로어에서 멀리 떨어져 주변이 그나마 조용했다.“반 대표님.”“어디 갔어?”그녀는 클럽에 있다고 얘기하려다 그렇게 되면 반승제가 쫓아올까 봐 다른 핑계를 댔다.“야근하는 중이에요.”“쉬엄쉬엄해.”이틀 동안 둘 다 많이 피곤했다. 그녀가 야근한다니 몸이 버틸 수 있을지 그는 걱정이 되었다.“신경 써 줘서 감사해요.”그녀의 공손한 말투는 마치 어젯밤 뜨거웠던 두 사람이 그들 둘이 아니었던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지게 해, 반승제는 마음이 좀 불편했다.그는 눈빛이 어두워지며 아쉬운 채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자마자 거실의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성혜인이 돌아온 줄 알고 곧바로 가서 문을 열었다.문밖에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네이처 빌리지가 완공되고 나서 반태승이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할아버지.” 반태승은 주위를 둘러보고 만족스럽다는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집 인테리어가 괜찮구나.”반승제는 도우미한테 차를 내오라 하고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반태승은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네 고모가 그러는데 승혜가 온밤 내내 잠꼬대했다는구나. 뭘 말했는지 물었더니 얘기는 안 하고, 그저 승혜가 깨면 다 알게 될 거라고만 하는데, 혹시 승제 너희가 그 건물에서 또 누구를 보았느냐?”반승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승혜가 페니에 관해 얘기한 것인가?할아버지가 만약 승혜의 일이 페니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아니요.”“위에서 이미 납치범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는데 그들은 전부 밀입국자들이야. 최근 국경 쪽에도 압력이 커. 게다가 국내에 그들과 안팎으로 내통하는 자들도 있고. 그게 아니면 그렇게 많은 총을 구하지 못했을 거야.”반승제는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사색은 이미 딴 데로 가 있었다.고개를 숙일 때 마침 온시환한테서 온
성혜인은 순간 가방 속의 그 해파리 도장이 손에 댈 수도 없이 뜨겁게 느껴졌다.임지연은 어찌하여 그런 조직과 엮이게 됐을까?그리고 왜 도움이 필요할 때 이 물건을 유용하게 쓰라고 자신한테 당부했을까?설마 그 극악무도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살인이라도 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그건 임지연의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는다.성혜인이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는 그때, 설우현이 또 이어서 얘기했다.“이 조직은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어요. 그리고 아주 베일에 싸였죠. 정식 명칭은 Bloodkillers, 돈을 받고 대신 일을 해결해 주죠. 돈만 충분하다면 그들은 그 누구의 목숨이라도 빼앗을 수 있어요. 20여 년 전에도 아마 누군가 그들한테 큰돈을 줘 부잣집 일가를 죽이라고 사주했을 거예요.”성혜인은 그의 말을 듣고 몸이 오싹하여 침을 몰래 삼켰다.“그럼, 설우현씨는 무섭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그들한테 돈을 주고 우현 씨의 목숨을 노린다면?”설우현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BKS가 원하는 건 결국 돈이에요. 내가 상대방보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오히려 돌아서 고용주를 죽일 수도 있죠. BKS를 사주해서 날 죽이려면, 내가 그보다 더 많은 돈으로 내 목숨을 살지 안 살지 생각해야 할 거예요. 내가 그 돈을 기꺼이 낸다면 사주한 그 사람은 죽게 될 테니까.”“그런데 설우현씨 말대로라면, 20여 년 전에 그들이 죽인 건 세계 최고 부자가 아닌가요? 갑부보다 더 돈 많은 사람이 있을 리가요.”“그 갑부 남자는 당시 마흔 명이 넘는 여자가 있었어요. 집안 재산은 진작에 쪼개져 그 남자 손에는 얼마 남지 않았죠. 기타 가족들도 돈을 함께 모으길 원하지 않았으니, 죽임을 당한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설우현은 이 말을 마치고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얼굴색이 더 덤덤해졌다.“재벌가의 혈육 간의 정은 워낙에 희박해요. 예상하건대 그 일을 사주한 사람은 그 남자의 한 아들이었을 거예요.”성혜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점점 이 해파리 도장이
이건 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어록이다.반승제는 한순간 눈앞의 이 여자가 자신이 아는 그녀가 맞는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그는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 눈빛 속의 작은 흔들림마저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이 말을 뱉을 때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평온했다. 마치 그녀의 모든 말이 전부 사실인 것처럼. 그가 무작정 여기에 찾아온 모양새가 우스워지도록 말이다.그는 계속하여 그렇게 성혜인을 쳐다보는데, 두 눈동자는 오래된 우물처럼 깊고 캄캄하고 요동 없이 잠잠하였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은 사람을 등뼈가 오싹하게 만들었다.그런 기운이 스멀스멀 다가오자, 성혜인은 더는 그를 보지 않고, 묵묵히 앞에 있는 물컵만 주시하였다.백연서의 욕설, 반희월의 불쾌함, 반승혜의 미움까지…반승제의 옆은 온통 가시덤불과 같아, 조금만 제정신을 가진 여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쉽게 알 수 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를 정말로 좋아하는 걸까?그녀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반승제와 함께 생사를 드나들 때는 그의 강렬한 심장 박동을 느꼈지만, 그것이 구름다리 효과일 수도 있지 않는가.온시환은 반승제가 매우 화낼 줄 알고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수시로 그를 말릴 작정이었다.하지만 반승제는 그저 깊은 눈동자로 성혜인을 바라보더니 한마디 남기고 바로 돌아섰다.“그래, 앞으로 서로 방해하지 않기로 해.”온시환과 서주혁은 그가 자신들의 옆을 지날 때 풍기는 차가운 기운에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온시환은 얼른 반승제를 따라갔고, 서주혁은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팔짱을 끼고 성혜인을 흘겨봤다.‘이로써 둘은 끝내 헤어진 건가? 그렇다면 이 여자를 수연이한테 넘겨도 되지 않을까?’서수연은 성혜인한테서 협박받은 후로, 겁이 유난히 많아졌다.반승제가 이후부터 이 여자를 감싸지 않는다면, 서씨 집안에서 맘대로 처리해도 되지 않을까?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내 반승제를 따라갔다.반승제는 온시환의 별실에 와 앉으며, 온시환이 건네주는 술을 들이마
병실 내, 반승혜는 계속 똑같은 악몽을 반복했다.한 남자가 그녀의 몸 위에 엎드려 낄낄대며 그녀를 비웃었다. 그의 말소리가 쉼 없이 귓가에 울리며 그녀를 괴롭혔다.“네가 반씨 집안사람이지. 전에 널 본 적 있어. 꽤 예쁘게 생겼는데? 살결도 보드랍고 말이야. 어린아가씨, 여기서 그렇게 막 뛰어다니면 대가를 치러야 해.”이것은 그 당시 있었던 실제 장면이었다. 반승혜는 다용도실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이 남자와 부딪혔다.이 남자는 자신이 반씨 집안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인질 중에 잘 숨어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납치범이 이미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을 줄이야.반승혜는 너무 놀라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마음속으로 성혜인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이 남자의 손아귀에서 구해줬으면 하는 뻔뻔한 생각까지 하였다.인간은 생사에 직면했을 때, 비열해지기 마련이다.그러나 성혜인은 그 자리에 없었고, 남자는 그녀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기세였다.그 순간, 그녀는 거대한 생존 욕구가 솟구쳐 오르며, 좀 전에 성혜인이 또 다른 한 남자를 유혹하던 장면이 떠올라, 급기야 남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항상 도도했던 반승혜는 이렇게 굴욕적인 체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예전에 혹시 누가 그녀한테 생존 앞에서는 그 누구든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한다면, 그녀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잔혹하고 잔인한 현실에 마주치기 전까지 그녀는 오로지 서책에서 세상만사를 인식하였으나, 정작 맞닥뜨리게 되니 역시 자신도 죽음이 두려워 절절매는 비열한 겁쟁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알았다.아픔이 두렵고 죽는 것도 두려웠다. 그녀는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그리하여 그 남자 앞에 선 채, 그녀는 자기 옷을 하나씩 벗었다.방아쇠를 당기려던 남자의 손은 과연 멈추었고, 흥미진진하게 그녀가 발가벗는 모습을 지켜봤다.그러다 흥분된 그 남자는 주저하지 않고 탁자 몇 개를 한데 모아놓고, 혹독하게 그녀한테 욕망을 발산시켰다.반승혜는 계속 울고, 그녀가 울수록 그
“고모, 성혜인 때문이에요. 성혜인이 나를 거기 두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내가 그 남자한테…”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반승혜는 갑자기 목이 메어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반승혜가 의식을 잃었을 때, 반희월은 이미 승혜의 검사 보고서를 확인하였다. 하체가 심하게 찢겼다고 한 걸 보면, 그 과정 중에 승혜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승혜야, 네 말은 승제의 전처 성혜인을 가리키는 거야?”반승혜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이불속으로 머리를 틀어박았다.그 모습을 보니, 그녀가 받은 충격이 매우 큰 모양이었다.반희월과 백연서는 눈길을 마주치고는 상대방의 눈빛에서 걱정과 무거운 심정을 보았다.문제는 성혜인이 왜 거기서 나타났는가 하는 것이다.백연서는 급히 설명했다.“성혜인의 고향이 바로 서천이에요. 아마 고향에 갈 때 그곳에 잠깐 쇼핑하러 간 모양이에요. 자기가 상처 안 받으려고 승혜를 밀어냈나 봐요. 악독한 년! 아버님은 왜 애초에 그런 여자랑 승제를 결혼시켰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이혼했는데도, 계속 반씨 집안 이름을 내걸고 밖에서 위세를 부리다니, 참.”이 말을 들으니, 반희월의 눈썹은 잔뜩 일그러졌다백연서는 장담하며 말했다.“이 일은 나한테 맡겨요. 제가 성혜인한테 꼭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반희월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옆에 앉아 반승혜한테 부드럽게 물었다.“승혜야, 물 좀 마시겠니?”반승혜는 계속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며 아무한테도 대꾸하지 않았다.백연서는 이 일이 성혜인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고부터, 더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세상에 무슨 우연이 그렇게 많단 말인가. 성혜인이 거기에 나타난 건 분명 반승제를 따라가서 그를 다시 붙잡으려는 속셈이다.‘흥! 천한 년! 아직도 포기를 안 한 모양이군.’백연서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반드시 남모르게 성혜인을 해결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 여자가 다시는 반씨 집안을 내걸고 행세를 부리지 못하도록.백연서는 금방 아이디어가
인제야 알았다.오늘 밤 그녀한테 죄를 묻고 싶은 사람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백연서였다.백연서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3년 전, 얘랑 우리 아들이 결혼할 때, 우리 아들이 얘가 싫어서 해외에서 3년씩이나 안 돌아왔어요.”백연서가 화제를 꺼내자 현장에 있던 다른 여자들이 여기저기 귓속말을 나누기 시작했다.“맞아요. 승제 도련님이 외국에 나갈 때 큰 소란이 있었어요.”“결혼식도 없고, 듣기로는 혼인 신고도 자기가 혼자 가서 했다고 하데요.”“3년씩이나 외면당하다니, 얼마나 난감했을까.”백연서는 자신이 꺼낸 화두가 의논을 일으키니 냉소를 지었다.“승제가 귀국하고 나서도 나의 이 전 며느리는 단념을 못하고 곳곳에서 승제를 쫓아다녀요, 자존심도 없이. 그리고 무슨 수단을 썼는지 애가 생겼는데, 결국 애도 지키지 못했어요. 이젠 포기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승제의 뒤꽁무니만 맨날 따라다녀요, 무슨 그림자도 아니고. 승제가 그렇게 싫어하는데 계속 쫓아다니네요.”그제야 모두는 백연서가 이번 다과모임을 만들게 된 목적이 성혜인을 모욕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녀들이 성혜인을 보는 눈빛은 순식간에 경멸로 변했다. 천한 신분으로 높은 집안에 애써 들어온 것도 모자라, 버림을 받고도 계속 뻔뻔스럽고 귀찮게 매달리는 여자라니.백연서는 사모님들 중에서 꽤 잘나가는 편이었다. 그녀의 설명을 듣고 사모님들이 점점 더 치열하게 토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사실 상류사회도 일반인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인간성이 복잡하다. 다만 그녀들은 돈이 평생 써도 다 못 쓸 만큼 많을 뿐이다.그들은 일찌감치 집안을 위해 아들딸을 낳고, 인생이 더 부러울 것 없이 원만하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보기 싫은 것이 누군가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었다.백연서는 그녀들의 그런 심리를 잘 알고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다.“제가 얘한테 여러 번 말했어요. 우리 아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얘랑은 불가능하다고요. 우리 승제도 얘를 계속 거절하는데, 이 여자가 너무나 앞뒤 안 따지고
백연서의 눈에는 성혜인이 숨 쉬는 것조차도 반승제를 유혹하려는 것으로 보였다.이 천한 계집애는 또한 임지연의 딸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성혜인의 잘못이다. 성혜인이 패가망신을 당하거나 죽거나 혹은 제원에서 영원히 떠나기만 한다면, 자신과 반기훈의 혼인 생활은 만회할 수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백연서는 반기훈을 너무 사랑했다. 그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냈고, 심지어 아기 때부터 정한 혼사였고 소꿉친구였는데, 그깟 중도에 튀어나온 년보다 못할 게 뭐란 말인가!보디가드는 성혜인을 캄캄한 방으로 데려가 그녀를 가두었다.여기는 범인을 벌하기 위한 곳이었던 같은데, 손을 뻗어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빛이 하나 없이 어두웠다.성혜인은 손으로 더듬거리며 벽 쪽으로 다가가 기대었다. 그러다 그녀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서 그런 소리까지 나니 왠지 소름 끼쳤다그러다 그녀의 손은 나른하면서도 차가운 생물체를 만졌고, 뒤늦게 그것이 뱀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아!”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방이 너무 큰 탓인지, 그녀의 소리가 메아리로 다시 방안에 울려 더 공포스러웠다.어둠 속에서 그녀의 주변에는 알지 못할 각종 동물들이 에워싸고 있었고, 가끔 그녀의 발 옆으로 기어 지나가기도 했다.성혜인은 쪼그리고 앉아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그러나 방이 너무 어두웠다. 어둠은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기 쉬웠다.밖에서 백연서는 아직도 사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을 다 보내고 난 후 그녀는 반승혜한테 전화를 걸었다.반승혜는 아직도 정신적 파탄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백연서의 전화를 받을 때도 입술이 떨고 있었다.“승혜야, 내가 성혜인을 붙잡아 컴컴한 방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 방에 뱀도 집어넣었으니, 아마 1주일 정도 가두면 놀라 죽을 거야. 이만하면 너 대신 복수를 한 셈이야.”반승혜는 그 말을 듣자, 온몸이 굳어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비록 그녀가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