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감정을 어떻게 대하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에요.”반승제는 손에 들고 있던 컴퓨터를 닫고 시계를 보니 잠잘 시간이었다. 하지만 왠지 계속 불안해하며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책을 꺼내 보려고 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 1시에 그는 다시 옷을 입고 직접 운전해서 로즈가든으로 갔다. 로즈가든에는 몇 개의 등이 켜져 있었고 그는 창문을 조금 열고 멍하니 담배를 피웠다. 절반 정도 피더니 핸드폰을 꺼내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반승제는 등을 뒤로 젖히고 두 눈은 앞을 보며 한밤중에 왜 이곳으로 왔는지 의아해하며 그런 자신을 비웃으며 차를 돌렸다. 운전하는 도중에 SY그룹 앞에 왔는데 그는 성씨 집안에 관심이 없었기에 여기가 성씨 집안 건물인 줄도 몰랐다.회사 앞에서 어떤 여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전화하고 있었다. 그녀는 장하리였는데 성혜인과 연결이 되지 않아 걱정되었다. 오늘은 S.M의 드라마가 개봉하는 첫날이고 시청률도 기록을 경신해서 이 좋은 소식을 성혜인에게 전하려고 했지만, 오후부터 시작해서 열 번 넘게 전화를 걸어도 성혜인의 전화는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성혜인은 분명 장하리와 같이 시청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장하리가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들었을 때 옆에 주차해 있는 고급 차를 발견했는데 열린 창문으로 운전석에 앉아있는 반승제의 옆모습을 봤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성혜인에게서 반승제의 이름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비록 이혼은 했지만 부부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기에 장하리는 가까이 다가가서 정중하게 불렀다.“반 대표님.”반승제는 그때 핸들 위에 손을 올리고 음악을 듣고 있다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장하리가 침을 삼키고 말했다.“저기, 오늘 사장님께 여러 번 전화했는데도 소식이 없어요.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돼서요.”“사장님?”“네, 성혜인 사장님이요. 반 대표님 전부인
성혜인은 구석에 앉아 여전히 이마로 벽을 부딪히고 있었는데 이제 힘이 풀린 채 기계적으로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남자도 뱀과 지네들이 무서웠는지 천천히 성혜인 쪽으로 다가가서 그녀를 데리고 나오려고 했다. 그가 성혜인을 붙잡자, 그녀는 소리를 치며 힘 있게 밀쳤다. 성혜인은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디든 여기보다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남자는 뱀들이 있는 곳에 넘어졌고 너무 무서워서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에 성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남자에게로 다가가 그의 머리를 바닥에 힘차게 박아서 기절시켰다.성혜인은 밖으로 나갔지만 하루 종일 굶은 탓에 위가 경련을 일으켰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백연서가 남자의 편리를 봐주느라 경호원들을 철수시켰던 것이다. 덕분에 성혜인은 몇 번씩 넘어지면서 작은 길을 따라 밖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감히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걸어가다가 별장의 녹색 길에 넘어졌는데 눈 앞에 가죽 구두가 나타났다. 설우현은 눈앞에 나타난 여자를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페니?”성혜인은 손을 뻗어 그의 정장 바지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잡았다.“살려줘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기절했다.설우현은 오늘 백연서의 초대를 받고 반씨 저택에 왔다. 설씨 가문은 워낙 세력이 막강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그더러 제원에 좀 더 머물면서 제원의 귀족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라고 했는데 마침 설우현이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아버지의 의도는 잘 모르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백연서는 어제 다과회를 열었고 오늘은 작은 파티를 조직했는데 좀 있다가 깜짝 이벤트가 있다고 했다. 백연서는 무자비하고 비겁하게 일을 준비했는데 이번에 성혜인과 경호원의 일이 들키면 많은 사람 앞에서 그들이 간통했다고 할거고, 그래서 성혜인이 제원에서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들려고 했다. 또한 성혜인의 처참한 모습을 백연서는 그녀가 이미 미쳤다고 할 것이고 때문에 전 시어머니 별장에서 남자와 간통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현장을 확인하고 믿게 할 예정이
설우현이 차갑고 깊은 검은 눈동자로 백연서를 바라볼 때 눈 밑에 알 수 없는 감정의 기운이 감돌았다. 겉으로 바람둥이인 설우현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막돼먹지 않았다. 설우현은 사람들과 같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현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몇 마디 인사도 나누고 나서 자리를 떠났다. 차에 돌아오자, 성혜인은 이미 뒷좌석에 있었다. 그는 성혜인을 자기가 거주하는 별장 2층 방에 눕히고 여자 하녀를 불러 목욕을 시키고 이마에 약도 바르고 의사를 불러 검사했다.“큰 충격을 받았을 뿐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설우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반씨 가문의 행위를 생각하더니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어떻게 그렇게 악랄한 수법으로 한 여자를 대하는 거지!’백연서는 손님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급히 경호원에게 물었다.“찾았어?”“사모님, 못 찾았습니다.”“쓸모없는 것들! 어떻게 멀쩡한 사람이 그냥 사라져? 계속 찾아. 무슨 짓을 하든 꼭 찾아내!”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렸다.“뭘 찾아요?”백연서는 순간 겁에 질려 몸이 굳어버렸다.‘왜 왔지?’“승제야, 오늘은 웬일로 여기에 왔어?”반승제는 정말로 아주 오랜만에 돌아왔다. 반승제는 담담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최근에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고 하던데요.”아직 점심시간인데 백연서가 연회를 벌였다는 건 일반 상황이 아니었다. 백연서는 자기가 성혜인에게 한 일을 들킬까 봐 군침을 삼켰다.“네 아빠가 나와 이혼하겠다고 해서 그런 거잖아.”반승제는 짜증을 내며 넥타이를 잡아당기고 자료를 가지러 위층으로 가려던 찰나 구석에 있는 뱀을 발견했다.“이런 게 왜 별장에 있어요?”별장은 3일에 한 번씩 모기, 뱀, 개미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향을 피웠기에 고의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면 들어올 수가 없었다. 백연서는 황급히 사람을 시켜 치우라고 하고 설명했다.“아마도 향을 피우는 사람이 게으름을 피웠나
반승제는 녹색 길을 걷다가 빛이 비치는 무언가를 보았는데 매우 반짝이는 것이었다. 그가 허리를 굽혀 물건을 집어 들었는데 그건 보석이 박혀 있고 여자들이 사용하는 비싸 보이는 머리핀이었다.‘반씨 저택의 하인들은 이런 것을 하고 다니지 않는데, 혹시 파티에 온 여자가 떨어뜨리고 간 것일까?’그는 머리핀에 대하여 아무 인상이 없었지만 버리지 않았다. 그의 뒤를 따라온 백연서가 보고는 그 머리핀이 성혜인 것이라는 알아봤다.“승제야, 그건 다과회에 왔던 여자가 두고 간 것 같은데, 나한테 주면 그 사람에게 돌려줄게.”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핀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백연서가 손을 뻗어 머리핀을 가져가려는 순간, 그가 천천히 물었다.“페니가 여기 왔어요?”백연서의 머리핀을 가져오려던 손이 떨렸다.“페니? 난 몰라?”최근 들어 백연서는 감정이 불안정해져 조그마한 자극에도 폭발할 수 있는 상태였다. 반승제는 그녀의 생각을 한눈에 알아차리고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이 머리핀은...”백연서가 뺏으려고 했지만 반승제는 머리핀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게 있었는데 머리핀이 쓸모 있을 것 같다는 강렬한 직감을 받았다.“승제야, 여자 물건을 가지고 뭐 하려고 그래?”백연서는 조금 당황했지만 반승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백연서가 조급해하며 따라가고 있었는데 반승제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다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일에 끼어들지 않을 거니까, 어머니도 제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백연서의 얼굴은 더욱 추해졌고, 왜 애초에 죽은 사람은 반승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큰아들은 그녀한테 아주 순종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남은 건 아들 하나뿐인데 그녀와 친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제 그녀와 반기훈의 관계 회복은 더 힘들어진 것이다.“승제야...”그녀가 말투를 낮춰 말해보려고 했지만 반승제는 이미 자리를 떴다. BH 그룹에 돌아간 반승제는 머리핀을 꺼내서 자세히 살폈다. 그때 마침 사무실에 들어오
“반씨 집안사람들이 페니 씨를 이렇게 대하는데, 정말 원망스럽지 않아요?”설우현은 그녀와 반씨 집안 사이의 얽히고설킨 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지난번 백연서가 심하게 욕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듯했다.‘황당하네. 반 대표는 페니 씨를 그렇게 성가시게 굴면서, 집사람들이 페니 씨를 괴롭힐 땐 신경도 안 쓰는 거야? 정말 좋아하는 게 맞기는 하는가?’반승제가 자신의 전처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는 페니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태생부터 오만함을 갖고 태어난 반승제에게 전처인 성혜인은 개미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그와 같은 하늘의 신선이 땅강아지가 어떻게 구차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신경을 쓸 리가 없었다.터무니없고 황당한 일이다.이 모든 것이 그러하다.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그릇에 담긴 죽을 먹고 있었다.곧이어 설우현은 침대 맡에 앉았다. 그러고는 성혜인의 손에 있는 그릇을 옆에 놓더니 그녀를 품에 안아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울고 싶으면 울어요.”설우현에게 안겨 돌아온 후부터 현재까지, 성혜인은 잠을 자거나 천장을 바라보며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행동했다.이번 일이 매우 큰 충격을 안겨준 탓에, 성혜인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때, 설우현은 귓가에서 훌쩍이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성혜인이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울음소리에서는 여전히 애써 참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설우현은 이미 성혜인에 대한 간단한 조사를 끝마쳤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대학에서는 하마터면 졸업장을 못 받을 뻔했으며, 졸업 후 3년 동안 마치 과부와 같은 삶을 살았고, 이혼을 비롯한 온갖 미움도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그는 한숨을 쉬고 성혜인의 등을 두드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틀 동안 성혜인은 한 번도 먼저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설우현이 물어볼 때 그저 기계적으로 대답만 할 뿐.한바탕 울고 나니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는지, 성혜인은 얼른 그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설
저녁, 설우현은 술을 마시러 가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으나, 도저히 성혜인이 마음에 놓이지 않아 신신당부했다.“여기서 꼭 잘 쉬고 있어요, 다른 건 몸이 다 회복한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으니까. 백 여사님은 쉽게 페니 씨를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페니 씨가 이곳을 떠나면, 백 여사님은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가려고 애를 쓰실 거예요. 그러니 페니 씨는 먼저 대책을 잘 세워두는 게 좋을 겁니다.”그녀 혼자서는 절대 반씨 집안을 이길 수 없다....술집에 온 설우현은 공교롭게 반승제도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는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며 신이한의 곁에 앉았다.사실 오늘 밤 신이한은 성혜인에게도 연락을 취했었다. 그러나 성혜인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설우현네 별장에 있겠다고 말했다.그래서 신이한은 설우현을 보자마자 뾰로통하게 말했다.“설우현 씨는 정말 여기저기 정을 많이 뿌리고 다니시네요. 대체 어떤 감언이설로 속이셨길래 페니 씨가 우현 씨네 별장에 남아있겠다고 하는지...”이는 신이한에게 일거양득의 방법이다. 첫째는 반승제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위함이고, 둘째는 설우현을 떠보려는 것이다.신이한은 설우현보다도 더욱 놀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여자가 처음인지 아닌지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도 깨끗한 몸이 아니면서 여자가 꼭 깨끗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게 매우 몹쓸 짓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그가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바로 성혜인의 인품과 성격이었다.원래 이런 모임에 참가할 마음이 없던 반승제는 신이한이 말하는 것을 듣자 눈을 번쩍 뜨며 설우현을 쳐다보았다.설우현은 신이한의 속셈이 무엇인지 진작 꿰뚫고 있었다.‘속은 시꺼매가지고. 쯧쯧’그러나 그도 두렵지 않았다. 사실 그도 반승제를 화나게 할 생각이었으니.“감언이설이라고요? 글쎄요, 그냥 페니 씨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준 게 아닐까요?”신이한은 득의양양한 설우현의 눈빛을 보자 어딘가 조금 아니꼬웠다.“우현 씨네 별장에 이틀이나 있었는데 페니 씨를 데리고 나오지도 않고,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밖으로 도망갔다.‘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반승제가 싸움질을 다 하고!’이성과 냉정함으로 이뤄진 반승제는 무리 안에서 줄곧 특별한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설우현과 한 치의 양보 없이 주먹을 주고받고 있다니?신이한과 온시환은 모두 멍해졌다. 신이한은 반승제가 곧바로 손을 쓸 줄도, 게다가 설우현이 또 반격할 줄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온시환은 이미 거의 패닉에 빠져 서둘러 신이한에게 말했다.“멍하니 뭐 하고 있어요! 신이한 씨는 설우현 씨을, 나는 승제를 잡을게요!”그렇지 않고 계속 싸우게 놔둔다면 나중에 반씨 집안과 설씨 집안 어른들이 나설 수 있었다.게다가 한 여자를 두고 난투극을 벌였다는 것은 결코 듣기 좋은 소문이 아니다.신이한은 서둘러 설우현을 잡아당겼고, 온시환은 반승제를 덥석 끌어안았다.반승제는 배에 한 대, 입가에 두 대를 맞아 이미 피를 토하고 있었다.설우현은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그가 다친 것은 내장이었다. 그래도 겉모습은 반승제보다 덜 흉측하고, 그저 입가만 부어있었다.반승제는 온시환에게 끌어안긴 뒤에도 여전히 늑대처럼 설우현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러나 설우현도 절대 승복하지 않았다.‘이게 감히 날 때려? 우리 아버지도 때린 적이 없는 날, 반승제가 뭔데?!’그는 한쪽에 있는 술잔을 움켜쥐고 반승제를 향해 내리쳤다.그러나 반승제는 손을 휘둘러 잔을 깼고, 주위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다시 한번 물어볼게, 페니 건드렸어?”“당신이 뭔 상관인데!”설우현이 여전히 강경한 것을 보고, 결국 반승제는 탁자 위의 과도를 잡고 그를 향해 던졌다.그의 정확도는 매우 뛰어났다. 칼은 설우현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의 뒤에 서 있던 신이한조차 놀라서 몸을 피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반승제를 쳐다보았다.설우현이 귀를 만지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반 대표, 이거 미친 거 아닙니까? 하마터면 사람을 죽일 뻔했어요.”신이한은 자신의 가슴을 토닥이며 말했다.한편, 온시환은 이 일이 커지는
그는 무슨 반박이라도 해보려고 입을 벌렸지만, 그저 멍하니 성혜인을 바라볼 뿐이었다.이미 설우현을 부축하고 일어선 그녀는 거듭해서 괜찮은지 묻고 있었다.설우현은 고개를 흔들었고, 손바닥의 핏자국은 손끝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천천히 떨어졌다.“병원 데려다줄게요.”오늘 밤 설우현은 혼자 이곳에 온 터라, 운전은 성혜인이 맡아야 했다.그는 수년 동안 피를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손바닥을 오므리니 어쩐지 피가 더 많이 흐르는 것 같았다.성혜인은 즉시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그의 손바닥에 빙글빙글 감았다.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성혜인은 반승제의 상처가 어떠한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성난 사자처럼 설우현을 찢어죽이지 못해 안달났던 반승제는 그저 돌덩이처럼 침묵을 지키며 서있을 뿐이었다.온시환은 그가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반승제를 도와 말했다.“병원 갈거예요? 그럼 우리도 데려가줘요. 승제 부상도 병원에 가서 보여야 하니까.”말을 마친 온시환은 반승제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챘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온시환은 확실히 기대와 비슷한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기대에는 분노가 더 컸고, 분노 속에는 약간의 억울함도 있었다.아마 반승제는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감정을 느껴봤을 것이다. 이미 여러해 동안 반승제와 알고 지낸 온시환도 그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그러나 성혜인은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설우현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갈 뿐이었다.설우현도 체면이 있었던지라, 자신이 너무 심하게 맞아서 가슴과 배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몸을 꼿꼿이 펴고 있었다.그때, 온시환이 재빨리 외쳤다.“기다려요! 같이 가요!”그리고 이내 온시환은 반승제에게 다가갔다.하지만 반승제는 마치 떼를 쓰는 아이와 같이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누가 같이 간다고 했어? 다른 사람이 좋으면 그냥 가라고 해.”그 말을 듣자, 설우현도 뒤 돌아 조롱하듯 반승제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