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밖으로 도망갔다.‘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반승제가 싸움질을 다 하고!’이성과 냉정함으로 이뤄진 반승제는 무리 안에서 줄곧 특별한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설우현과 한 치의 양보 없이 주먹을 주고받고 있다니?신이한과 온시환은 모두 멍해졌다. 신이한은 반승제가 곧바로 손을 쓸 줄도, 게다가 설우현이 또 반격할 줄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온시환은 이미 거의 패닉에 빠져 서둘러 신이한에게 말했다.“멍하니 뭐 하고 있어요! 신이한 씨는 설우현 씨을, 나는 승제를 잡을게요!”그렇지 않고 계속 싸우게 놔둔다면 나중에 반씨 집안과 설씨 집안 어른들이 나설 수 있었다.게다가 한 여자를 두고 난투극을 벌였다는 것은 결코 듣기 좋은 소문이 아니다.신이한은 서둘러 설우현을 잡아당겼고, 온시환은 반승제를 덥석 끌어안았다.반승제는 배에 한 대, 입가에 두 대를 맞아 이미 피를 토하고 있었다.설우현은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그가 다친 것은 내장이었다. 그래도 겉모습은 반승제보다 덜 흉측하고, 그저 입가만 부어있었다.반승제는 온시환에게 끌어안긴 뒤에도 여전히 늑대처럼 설우현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러나 설우현도 절대 승복하지 않았다.‘이게 감히 날 때려? 우리 아버지도 때린 적이 없는 날, 반승제가 뭔데?!’그는 한쪽에 있는 술잔을 움켜쥐고 반승제를 향해 내리쳤다.그러나 반승제는 손을 휘둘러 잔을 깼고, 주위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다시 한번 물어볼게, 페니 건드렸어?”“당신이 뭔 상관인데!”설우현이 여전히 강경한 것을 보고, 결국 반승제는 탁자 위의 과도를 잡고 그를 향해 던졌다.그의 정확도는 매우 뛰어났다. 칼은 설우현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의 뒤에 서 있던 신이한조차 놀라서 몸을 피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반승제를 쳐다보았다.설우현이 귀를 만지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반 대표, 이거 미친 거 아닙니까? 하마터면 사람을 죽일 뻔했어요.”신이한은 자신의 가슴을 토닥이며 말했다.한편, 온시환은 이 일이 커지는
그는 무슨 반박이라도 해보려고 입을 벌렸지만, 그저 멍하니 성혜인을 바라볼 뿐이었다.이미 설우현을 부축하고 일어선 그녀는 거듭해서 괜찮은지 묻고 있었다.설우현은 고개를 흔들었고, 손바닥의 핏자국은 손끝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천천히 떨어졌다.“병원 데려다줄게요.”오늘 밤 설우현은 혼자 이곳에 온 터라, 운전은 성혜인이 맡아야 했다.그는 수년 동안 피를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손바닥을 오므리니 어쩐지 피가 더 많이 흐르는 것 같았다.성혜인은 즉시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그의 손바닥에 빙글빙글 감았다.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성혜인은 반승제의 상처가 어떠한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성난 사자처럼 설우현을 찢어죽이지 못해 안달났던 반승제는 그저 돌덩이처럼 침묵을 지키며 서있을 뿐이었다.온시환은 그가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반승제를 도와 말했다.“병원 갈거예요? 그럼 우리도 데려가줘요. 승제 부상도 병원에 가서 보여야 하니까.”말을 마친 온시환은 반승제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챘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온시환은 확실히 기대와 비슷한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기대에는 분노가 더 컸고, 분노 속에는 약간의 억울함도 있었다.아마 반승제는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감정을 느껴봤을 것이다. 이미 여러해 동안 반승제와 알고 지낸 온시환도 그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그러나 성혜인은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설우현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갈 뿐이었다.설우현도 체면이 있었던지라, 자신이 너무 심하게 맞아서 가슴과 배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몸을 꼿꼿이 펴고 있었다.그때, 온시환이 재빨리 외쳤다.“기다려요! 같이 가요!”그리고 이내 온시환은 반승제에게 다가갔다.하지만 반승제는 마치 떼를 쓰는 아이와 같이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누가 같이 간다고 했어? 다른 사람이 좋으면 그냥 가라고 해.”그 말을 듣자, 설우현도 뒤 돌아 조롱하듯 반승제에게 말했다.
차는 병원 밖에 도착했다.성혜인은 차를 멈추고 반대쪽으로 가서 설우현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고는 그를 부축하여 대문으로 들어갔다.한편 반승제는 차에 앉아서 그녀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는데, 어쩐지 이 뒷모습이 그 어떤 말보다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온시환은 서둘러 반승제에게 차 문을 열어주고 그를 끌고 내렸다.병원 안으로 들어가, 온시환은 더욱 과장된 목소리로 외쳤다.“의사 선생님! 빨리 여기 와서 한번 봐주세요!”설우현과 반승제는 바로 인접한 두 병실에 앉아 있었고, 의사들은 그들의 상처를 일일이 검사해주었다.반승제의 목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고 가슴도 크게 긁혀져 있었다. 설우현이 독하게 손을 쓴 결과였다.의사는 지혈 소독을 하고 그의 목과 가슴에 붕대를 감았다.옆 병실에 있는 설우현도 손바닥을 싸매고 있었다. 그의 외상은 반승제에 비해 심하지 않았으나 손바닥이 찢어진 깊이는 거의 뼈가 보일 정도였다.성혜인도 그 상처를 보고 적잖이 놀란 것이 아니다.‘후유증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걱정되네...’“우현 씨, 도대체 두 사람 왜 싸운 거예요?”그러나 설우현 본인도 그와 반승제가 도대체 왜 싸웠는지 의아했다.‘그러게, 반승제는 자기 어머니가 페니 씨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면서, 왜 또 페니 씨를 그렇게 의식하는 거야? 나는 그냥 신이한과 몇 마디 농담 주고받은 것뿐인데, 나한테 감히 직접 손을 대?’“반 대표는 미쳤어요.”설씨 가문과 반씨 집안은 전혀 접점이 없었다. 지위만 놓고 보면 두 집안은 거의 막상막하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싸운 일이 알려지자, 온 무리가 떠들썩해졌다.우선 반승제. 그가 무리 내의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것을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도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이다.다음은 설우현. 이 재벌가 도련님은 성격도 꽤 좋아 보였는데, 뜻밖에도 반승제와 그렇게 사납게 싸우다니... 무리 내의 어느도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마치 서로 원수인 것처럼 어떻
성혜인이 이런 상처 주는 말을 할 수 있다니, 반승제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입을 뻐끔 벌려보았지만,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사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하는 수 없이 반승제는 고개를 떨구고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꺼져.”성혜인 역시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지라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래도 또 그의 목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온시환에게 일러주었다.“의사에게 와서 다시 처치해주라고 하세요.”그러나 반승제는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침대 맡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네 관심 따위 필요 없어, 꺼져.”그러자 온시환의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승제야, 적당히 해.”이전부터 반승제는 소위 말하는 입만 산 놈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성혜인의 몇 마디 말에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반승제는 그녀를 미워하는 것처럼 행동했다.곧이어 그의 입술이 몇 번 떨리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눈만 살짝 감았다.성혜인도 마치 개미가 심장을 갉아 먹는 듯 마음이 불편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 백화점에서 깡패들과 함께 싸우며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으나 지금은...성혜인도 더는 말하지 않고 병실을 떠나자, 뒤에서 컵이 벽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그녀는 다시 설우현의 병실로 돌아갔다. 때마침 그는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진 것으로 진단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반승제랑 싸우러 가지 말아요, 백 여사님이 또 찾아오면 어떡하려고요. 저쪽도 지금 다쳤으니, 아마 반씨 집안의 다른 사람들도 병원에 올 겁니다.”설우현의 부상은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해있어야 하는 정도였다. 물론 옆방 반승제도 비슷한 처지였다. 때문에 그들은 앞으로 피하려야 피할 수 없이 마주칠 것이다.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설우현에게 물을 뿐이었다.“뭐 필요하세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설우현은 확실히 갈아입을 새 옷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혜인이 직접 다녀올 필요는 없었다.“괜
“그건 대표님이랑 상관없는 일이예요.”반승제는 그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일이 끝나고 바지를 입은 뒤에 나 몰라라 하는 남자는 많이 봤어도, 여자는 처음이네... 오히려 더 심해.’두 사람이 침대에 오른 횟수는 결코 적지 않고, 반승제는 그녀의 몸에 점이 몇 개나 있는지조차 똑똑히 알고 있었다. 아마 그는 성혜인의 전남편을 제외하고 그녀의 몸을 가장 잘 아는 남자일 것이다.심지어 반승제는 그녀의 모든 예민한 곳도 잘 알고 있다.“나랑 잤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어?”서리같이 차가운 그의 눈빛에 번뜩 불빛이 잠깐 지나가는 것 같았다.마치 그녀가 자백하기만 하면 바로 목 졸라 죽일 것처럼 말이다.성혜인은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반승제가 성큼성큼 다가가서더니 그녀의 앞에 섰다.“서천 백화점에서 나를 보고 울면서 내 품에 안겼을 때, 너는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어? 침대에서 나 때문에 울었을 때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그러자 성혜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의 이런 기세에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이내 반승제는 손을 들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고 한쪽에 큰 나무 뒤로 끌어당겼다.큰 나무들 뒤에는 CCTV가 없고, 오직 그다지 밝지 않은 가로등만 켜져 있었다.놀란 성혜인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물었다.“뭐 하시려고요?”말이 끝나자마자 반승제는 성혜인을 나무에 밀치고 그녀의 옷 지퍼를 확 열었다.“반승제 씨!”그녀는 화가 나서 직접 그의 이름을 불렀다.그러나 반승제는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의 두 손을, 다리로는 그녀의 두 다리를 묶어두었다.이 순간, 성혜인은 자신이 곧 사람에게 베일 도마 위의 물고기와 같아 보였다.반승제의 다른 손은 그녀의 목부터 배꼽까지 샅샅이 훑어보며 옷을 걷어냈다. 그렇게 새로운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반승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성혜인은 수치스럽기 그지없었다. 만약 이 시간에 누군가 이곳을 지나가면 모든 것이 훤히 보일 테니 말이다.그녀가 떨고 있는 것을
성혜인은 설우현의 차를 그의 별장으로 가져간 다음 포레스트로 돌아갔다. 잠들기 전, 강민지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설우현이랑 반승제 소문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완전 난리가 났어. 그 두 사람이 너를 두고 싸웠다면서 말이야.”강민지는 딱 보아도 이 가십을 즐기는 것 같았다.“혜인아, 너 진짜 반승제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야?”“아니.”그녀의 말투에서 피곤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을 알아차린 강민지도 얼른 말을 건넸다. “우리 한참 못 만난 것 같은데, 내일 같이 밥이라도 먹을래?”“민지야, 나 내일 일이 좀 있어.”“그래, 그럼 바쁜 일 먼저 봐.”성혜인이 말한 일이 있다는 것은 바로 반씨 고택에 가서 반태승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또 백연서에게 끌려갈까 봐 두려웠으니 말이다....한편, 자신의 차를 탄 후에도 반승제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심인우도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어,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그러나 오늘 밤의 사건이 워낙 컸던지라, 이 소식은 벌써 반태승의 귀에 들어갔다.그래서 반승제의 차가 거의 절반쯤 도착했을 때, 반태승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얼마전 금방 2차 훈계를 받은 반승제는 혹시 자신이 페니 때문에 3차 훈계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고택에 도착했을 때, 그는 또 밖에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고택은 고요했다.곧이어 집사가 문을 열더니 그를 보고 얼른 옆으로 몸을 돌려 길을 비켰다.안에 들어가 보니 반태승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좀 늦었기 때문에 그는 차를 마시지 않았고, 앞에 끓인 물 한 잔이 놓여 있었다.반승제가 생각했던 칼싸움은 없었고 의외로 분위기가 평화로웠다.“할아버지.”그는 반태승을 한번 부른 뒤 천천히 다가갔다.그러자 두루마기 차림의 반태승은 두 손으로 지팡이를 꽉 쥐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오늘 밤, 너 설우현이랑 한 여자를 두고 싸웠니?”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반태승은 조
그는 이제 더 할 말이 없다 생각했는지 기침을 몇 번 하고 손사래를 쳤다.“전에 내가 혜인이랑 약속한 게 있다. 언제 한번 다 같이 모여앉아 식사하기로 말이다. 너도 반드시 참석해야 해.”진작 모든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손을 놓겠다 했던 반태승이었지만, 어쩐지 요즘 소문이 너무 무성했다.반승제도 그가 페니에 대해 추궁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 시점에서 할아버지를 화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알겠습니다, 할아버지.”고택을 떠날 때, 반승제는 침울한 눈빛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심인우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반승제가 훈계를 받지 않고 돌아오는 걸 보니 의외라고 여겨졌다.네이처 빌리지로 돌아와 거실로 들어갔을 때, 도우미는 반승제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얼른 옆에서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꺼냈다.“대표님, 이건 온시환 씨께서 보낸 선물입니다.”반승제는 휙 무심하게 받아들며 뜯어보지조차 않았다.그렇게 그는 침실 욕실로 가서 상처를 피해 간단히 목욕하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닦고 나온 후에야 선물을 열어보았다.포장을 막 열자, 바로 라는 적나라한 글자가 몇 개 드러났다.그러자 반승제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곧장 책을 한쪽에 버렸는데, 마침 침대 머리맡에 가서 부딪혀 떨어졌다.‘역시 온시환 이 자식은 믿으면 안 돼.’그는 한쪽에 있는 컴퓨터를 들고 침대에 오른 후 등받이에 기댔다. 그러고는 키보드를 두드려 몇 개의 서류를 처리한 후에야 컴퓨터를 껐다.하지만 그는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사실 최근 그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늘 이 방 안은 페니의 냄새로 가득했으니 말이다.그는 방 안의 가장 밝은 불빛을 끄고 침대맡 스탠드 등만 켜고는, 귀신같이 그 라고 불리는 책을 집어 들어 보기 시작했다.책은 알기 쉽게 쓰여 있는데, 한눈에 봐도 연애 경험이 전무한 모태솔로를 위해 쓰인 것이다.전체 내용은 몇 가지 기교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잘못을 인정하는 법, 달래는 법, 수영할 줄 알
그녀는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는 밥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러나 이 식사도 평온하지 못했다. 중간에 백연서가 한 차례 전화를 걸어와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성혜인은 한마디만 듣고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의 차가 번화가의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두 대의 차가 그녀를 왼쪽, 오른쪽으로 가로막았다.뒤이어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고, 차창을 내린 후 성혜인은 반기태를 보았다.반기태는 그녀에게 약 한 병을 주면서 반승제를 죽이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성혜인은 3억을 받고 지금까지 반기태에게 단 한 번만 연락했었다. 그러니 반기태가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반기태 씨.”성혜인이 먼저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그러자 반기태는 차갑게 입술을 오므렸다.“페니 양, 설마 내가 페니 양한테 말한 걸 잊은 건 아니겠죠?”“어떻게 감히 잊을 수 있겠어요. 최근 병에 걸려서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이따가 반 대표님한테 가서 계속 반기태 씨의 분부에 따라 임무를 수행할 거예요.”반기태는 눈을 가늘게 뜨며 페니의 가족을 위협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페니 양이 더 지체하면, 페니 양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요.”하지만 성혜인은 그녀 자신조차도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천에 있는 가족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외숙모와 외삼촌의 시신은 지금까지 아무도 수습하러 가지 않아 유골은 여전히 병원에 놓여 있다.그녀가 아무 말 하지 않자, 반기태는 성혜인이 무서워하는 줄 알고 더욱 냉소하기 시작했다.“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나한테 페니 양을 없애는 건 개미를 죽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니까.”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의 차가 자리를 떴다.성혜인의 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있었는데 곧 뒤에서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백연서, 반기태... 반드시 할아버지께 말씀 드려야 해. 안 그러면 정말 죽게 될지도 몰라. 게다가 백연서는 지금 미쳐버렸으니...’그러나 그녀가 반씨 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