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도 당시연은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갔다.전날 꾼 꿈 때문인지 자꾸만 부끄러워져서 몇 잔을 더 마셨다.전도윤은 옆에 앉아 당시연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녀가 첫사랑과 닮았다고 했다.당시연은 그와 결혼해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온 이유가 첫사랑을 대신하려고 한 것이라니.당시연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마음은 담담했다.“그럼, 왜 첫사랑을 다시 찾아보지 않았어요?”“그 사람은 해외에서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어요.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더라고요. 더 이상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전도윤도 나름대로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당시연은 한숨을 쉬고 술을 더 마셨다.“왜 헤어졌는데요?”“제 잘못이었죠. 그때는 교수님 밑에서 배우는 것에만 신경을 쓰느라 그 사람 감정은 아예 신경을 못 썼어요. 제3자가 낀 건 아니었지만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게 문제였어요. 여자는 옆에 있어 주는 걸 원하는데 저는 그조차 해주지 못했죠.”“헤어지고 나서 마음을 전했어야죠. 붙잡아야 했던 거 아닌가요?”“붙잡을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은 정말 단호한 성격이거든요. 예전에 저와 함께하려고 가족과의 인연까지 끊었으니. 날 사랑할 땐 불꽃 같았고 끝낼 땐 너무나 깔끔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처럼 그렇게 단호할 수는 없었죠. 지금 그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고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하게 잘 살아요. 아마 저만 여기서 멈춰 있는 거겠죠.”당시연은 조용히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전도윤은 얘기를 하다가 눈물이 차올라 얼굴을 가리며 울기 시작했다.당시연은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했다.‘내가 지금 연애 상담이나 해주려고 나왔나?’결국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전도윤을 부탁하고 자리를 떠났다.술집을 나설 때쯤 당시연은 이미 알딸딸한 상태였다.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내려다가 얼굴을 확인하자 목이 막힌 듯, 하고 싶은 말들이 전부 삼켜져 버렸다.“원진?”“누나, 취했어요?”“
당시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머리 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힌 듯 몸이 굳어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원진은 그녀가 피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았다.“그 전도윤이라는 사람이야? 둘이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귀는 거야?”‘진이가 어떻게 전도윤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당시연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혹시 그도 그녀를 계속 지켜봐 온 건 아닐까? 다만 그녀가 모르게 했을 뿐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하지만 그 생각은 너무 황당해서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이제 그녀도 더는 예전의 풋풋한 소녀가 아니라 서른이 된 어른이었다.원진은 여전히 빛나는 나이에 있으며 그녀는 이제 앞으로의 삶을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했다.당시연은 고개를 떨구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사귀기로 했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원진의 손이 그녀의 턱에 얹혔다.“그래서 벌써 할거 다 해봤어?”당시연은 눈동자가 흔들리며 그의 말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얼굴이 금세 달아올랐고 혀가 꼬이며 막무가내로 내뱉었다.“원진, 나 이제 서른이야. 서른 살 여자가 아직 순결할 거라고 생각해?”당시연은 무심코 내뱉었지만 말하고 나서 자신도 놀랐다.오늘 밤 둘 다 너무 이성을 잃었다. 이렇게 과감한 말을 주고받다니 왠지 민망해졌다.원진은 그녀를 끌어안고는 어깨에 턱을 기대며 말했다.“그럼 진짜 처음이 아닌 거야?”“응.”당시연의 머릿속이 엉켜 버렸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만두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인정하는 듯했다. 사실 그녀는 여전히 누구와도 그런 경험이 없었지만 그저 어른스러운 척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당시연, 그럼 올라가서 나 좀 가르쳐 줘.”당시연은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런 건 네 여자 친구가 가르쳐 주겠지.”“난 여자 친구 없는데.”당시연은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방으로 들어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둘이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원진이
당시연은 당혹스러워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원진은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은 듯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는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의 움직임은 한층 더 다정해졌다.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당시연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지는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원진은 한 번도 그녀의 곁을 진정 떠난 적이 없었고 오히려 그녀가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랐다.그러나 당시연은 한 번도 그를 붙잡을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반년 뒤에나 다시 만날 거라고 한 것은 그녀를 자극하고 싶어서였는데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먼저 다가와 주었다.그녀를 기다리느라 긴 시간을 보냈지만 자신의 모든 마음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원진은 당시연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거의 병적으로 강렬했기에 그녀에게서 한동안 멀리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당시연은 언제나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를 산골 마을에서 데려오지만 않았다면 어쩌면 그녀는 김성진과 결혼하여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결국 당시연의 삶을 뒤흔든 것은 자신이었다. 원진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연은 결코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당시연...”원진이 애정 어린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자 당시연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술기운에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 없이 그저 울기만 했다.원진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왜 그래? 너무 심하게 했어?”당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꿈일까 두려울 뿐이었다.“진아, 사실 나 너 찾았었어.”정말 오랫동안.원진의 움직임이 그녀의 말에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녀가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집요하게 찾으려 했는지 당시연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당시연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 곁에 남고 싶었다.잠시 후 원진은 장난스럽게 물었다.“예전 남자 친구들이랑 비교하면 어때? 누가 더 잘해?”당시연은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