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희는 원진이 후회하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정한 남자라면 고개를 숙이는 법도 알아야 해. 일단 대학 입학시험부터 통과하자.”“이 선생님, 감사하지만 전 정말 여기까지만 갈 수 있어요.”그는 택시 문을 열고 이수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이수희는 너무 불안해 가만히 서서 당시연에게 몇 번 더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당시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원진은 집에 가는 대신 훈련장에 왔다.어제 일찍 퇴근했기 때문에 오늘 훈련은 더욱 막중했다.원진은 잠시 멈칫하는 남자를 향해 주먹으로 입가를 내리쳤고 남자의 입가는 순식간에 멍이 들었다.남자는 눈썹을 살짝 치켜들고 손을 들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원진 도련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신가 보군요.”원진의 팔은 모두 잔잔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며칠 동안의 악마 같은 훈련으로 인해 주먹이 빠르고 단단했다.그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잽싸게 피해 어깨를 차버릴 기회를 찾았다.원진은 발차기로 인해 팔이 탈골되었지만 눈치채지 못한 듯 공격을 계속했다.바닥에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다른 쪽 팔도 탈골되어 더 이상 양손을 들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두 발을 계속 사용했다.“감정을 갖는 것은 좋지만 너무 많은 감정은 의식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두 팔이 탈골되었으니, 제가 당신의 적이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원진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반쯤 무릎을 꿇고 얼굴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남자는 그의 등을 걷어찼고 그는 한입 가득 피를 뱉어냈다.“제가 병원에 가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안 간 것 같군요.”원진은 바닥에 쓰러져 몸이 아팠지만 팔이 탈골되어 움직일 수 없었고 여러 번 몸을 지탱한 후 어지러워 다시 쓰러졌다.남자는 손에서 장갑을 떨어뜨리고 입을 삐죽거렸다.원진이 흘린 땀이 이마에 흘러 바닥에 떨어졌고 금세 웅덩이를 만들었다.남자가 물을 한 모금 마시자, 원진이 물었다.“가장의 자리에 오르면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까?
당시연은 이불 속에 웅크린 채 울먹거리며 말하지 않으려 했다.원진은 그녀를 힘겹게 일으켜 세우고 문으로 곧장 걸어갔다.가는 도중에 당시연은 한 번 토했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환자를 병원으로 보낸 후 문밖에서 당시연을 기다리던 원진은 남한테 저지당하는 김성진을 보았다.김성진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갈비뼈 몇 개가 부러지고 발이 부러졌으며 원진을 보는 그의 눈에는 악의가 있었다.원진의 표정도 좋지 않았고 올라가서 한 대 더 때리고 싶었다.김성진은 비웃었다.“아직도 대학 입시를 치를 수 있겠느냐?”“원진, 그토록 오랫동안 역겨운 벌레처럼 열심히 일한 것은 대학 입시를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안타깝게도 이제 네게는 방법이 없다.”벽에 기대어 앉은 원진의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대단했다.김성진을 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경찰에 잡혀가면 당시연을 돌봐줄 사람이 없을까 걱정이었다.당시연은 요즘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를 완전히 닫아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원진이 곁에서 지켜봐야만 했다.김성진은 화가 났다. 특히 이 꼬맹이가 자신의 계획을 망친다고 생각하니 가문의 힘을 이용해 원진을 그 외딴 산골 마을로 몰아넣고 싶었다.원진은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조롱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아직도 걸을 수 있나? 무릎이 부러질 줄 알았는데.”김성진은 깜짝 놀라며 통증이 다시 퍼지는 것 같았다.그는 심호흡했다. 입만 놀릴 줄 알지 조만간 무릎을 꿇고 그에게 구걸할 때가 있을 거라 그는 믿었다.원진은 당시연이 위를 씻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비참한 여인을 보자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누나.”당시연은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원진이 항상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남자들은 그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는 매일 오랜 시간 동안 훈련을 받아야 했다.그는 다음날까지 그녀와 함께 이곳에 머물렀지만, 당시연은 한밤중에 악몽에서 깨어난 후 몇 번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아무 말도 없이 또 사그라들었다.원
“김성진.”이수희가 큰 소리로 불렀다.김성진은 그녀를 보고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이수희가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었다.이수희는 그의 옆에 서 있는 홍영란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는 성진이와 시연이 담임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홍영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운 듯 말했다.“시연이 쟤 정말 말을 안 들어요. 방금 대화를 시도했는데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구는 거 있죠.”이수희는 놀라서 물었다.“시연이가 출장간 거 아니었나요?”“아뇨, 여기 병실에 있어요. 선생님, 가능하시면 시연이를 좀 설득해 주세요. 원진 때문에 우리 집안까지 다 피해를 보고 있어요. 원진만 없었어도 시연이와 성진이는 이미 결혼했을 텐데 말이에요.”이수희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곧장 당시연의 병실로 들어갔다.당시연은 침대 옆의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시연아!”이수희는 깜짝 놀라 급히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무슨 일이야? 진이가 너 출장 가서 당분간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당시연은 이수희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굳었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선생님?”이수희는 당시연의 초췌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살이 많이 빠지고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그래. 나야, 시연아. 너 대체 무슨 일이야? 지금 진이가 퇴학을 당해서 수능도 못 봐. 그런데 너도 이 모양이고... 너희들 대체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니?”당시연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지금 그녀의 반응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이수희의 말에 정신을 가다듬고 빨갛게 충혈된 눈을 들어 올렸다.“진이가... 퇴학당했다고요?”이수희는 그제야 당시연이 아직 이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 성진이 부모님이 직접 교장실에 찾아가서 명령했어. 학부모들이 워낙 강하게 반발해서 교장 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퇴학 결정을 내리셨어. 월요일에 반성문을 읽으라고 했는데 너 아직 못 들었어? 게다가 경찰이 학교에 와서 진이를 데려갔을 때
그다음 일주일 동안 당시연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원진은 밤마다 그녀를 찾아와 침대 곁에 앉아 조용히 문제집을 풀었다.당시연은 손에 든 컵을 꽉 쥔 채로 물었다. 목소리는 쉰 상태였다. “이번에도 시험이 있었어?”원진이 사과를 거부한 탓에 퇴학당했다는 소식은 거의 학교 전체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원진은 아직 당시연이 그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당시연이 평소 가장 신경 쓰던 것은 그의 성적이었다. 그래서 원진은 항상 문제집을 들고 와서 조용히 그녀 곁에서 문제를 풀었다.“네, 이번에도 1등이에요.”당시연은 아무 말 없이 컵을 꽉 쥐고 있었다.원진은 일어나 그녀의 컵을 건네받으며 물었다.“누나, 더 마실래요? 배고프지 않아요?”원진은 당시연이 한동안 침울해할 줄 알았지만 며칠 사이 그녀는 갑자기 차분해졌고 그의 성적이며 학교 일에 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진아, 수능에서 전국 몇 등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원진은 자신이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약속하듯 말했다.“1등 할 거예요, 누나. 그러니까 누나는 몸이나 잘 챙겨요.”당시연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원진은 허둥지둥하며 옆에 있던 휴지를 집어 눈물을 닦아 주었다.그러나 당시연은 마치 누군가 그녀의 아픈 곳을 찌른 것처럼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누나, 제발 울지 마요. 누나가 울면 나도 힘들어요.”당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원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잘도 말하네. 네가 1등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얼마나 어렵든 해낼 거예요.”원진은 이 말을 하며 그녀의 반응을 슬쩍 살폈다.그는 며칠 전 일어난 그날 밤 욕실에서의 일을 당시연이 떠올릴까 봐 두려웠다. 며칠 동안 그녀의 마음을 살폈지만 당시연은 그에게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오로지 동생처럼 그를 대할 뿐이었다.누나와 동생 그 이상은 넘볼 수 없는 사이였다. 원진은 그 선을 넘기도 두려웠고 그저 모든 감정을
병실 안은 적막했다. 김성진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연이 결국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알고 있었다.결국 약 10분이 지난 후 당시연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결혼 날짜 정해. 대신 원진이를 놔줘. 수능에 나가게 해줘.”“그리고 그 자식을 네 집에서 내쫓고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해. 내가 이렇게 된 건 원진 때문이니까. 그 자식 얼굴만 봐도 불쾌해. 당시연, 난 그 정도로 넓은 아량을 가진 사람이 아냐. 원진은 우리 관계를 망친 원흉이야.”당시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둘 사이를 파괴한 건 김성진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말한들 아무 소용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알겠어.”“나를 속이려 들지 마. 진짜로 끝내려면 완전히, 철저하게 해야 해. 나중에 그 녀석이 다시 너에게 돌아오지 못하게 말이야. 나도 호구는 아니니까.”“... 응.”당시연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김성진은 갑자기 손을 들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와서 나랑 같이 있어.”순간 온몸이 굳어졌다. 다시 그날 밤의 역겨운 기억이 떠올라 마치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가렵고 속이 뒤틀리는 듯했다. 하지만 거절하면 김성진이 또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라 당시연은 마지못해 천천히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뽀뽀해 줘. 이건 이자야. 내가 퇴원하면 결혼할 거니까. 당시연, 아직 첫 경험은 남아 있지?”당시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손가락을 천천히 움켜쥐었다.“그날 내가 실패했으니 아직 남아 있겠지. 설마 원진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김성진!”당시연의 속눈썹이 떨렸다. 그녀는 원진을 항상 동생처럼 아꼈고 원진도 그녀를 누나처럼 여겨왔다. 둘 사이에 그런 더러운 관계는 있을 수 없었다.김성진은 만족스럽게 숨을 내쉬며 크게 웃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 말했다.“됐어, 이제 입 맞춰.”당시연의 입술이 두 번 떨렸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쥐었다. 그녀는 천천히
다음 날 저녁 원진은 직접 만든 저녁을 들고 당시연을 찾았다.원진은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려 했지만 그녀의 목에 남은 자국을 보고는 손이 멈칫했다. 당시연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그녀는 속눈썹을 떨며 한 손으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쥔 채 다른 손으로 그가 내민 죽을 쳐서 떨어뜨렸다.“시연 누나?”원진이 급히 몸을 숙여 바닥의 그릇을 주우려 했지만 당시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통장에 1,400만 원을 넣었어, 원진. 앞으로 우리 다시 보지 말자. 그 사람들이 하는 말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네가 내 옆에 있는 동안 내 인생이 너무 꼬인 것 같아.”원진은 놀라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는 방금 들은 말이 잘못된 것이기를 바라며 고개를 들어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연의 얼굴은 차갑기만 했고 심지어 매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연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원진, 미안해. 나도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는 버티기 힘들어. 네가 온 뒤로 부모님도 낯설게 변했고 나와 김성진의 관계도 엉망이 됐어. 학교로 돌아가. 수희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줄게. 수능이 끝나면 다른 도시의 대학에 지원해.”원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쪼그려 앉아 그녀를 뚫어져라 올려다보며 그녀의 표정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당시연은 지친 듯 이마를 감싸 쥐며 씁쓸하게 웃었다.“아마도 내가 너를 산골에서 데리고 나오지 말았어야 했나 봐. 다른 사람의 운명에 섣불리 발을 들이면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미안해, 원진.”원진은 생각이 멈춰버린 듯했다. 당시연의 말에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얼굴이 창백해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누나, 나를 버리는 거예요?”원진은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약속을 떠올렸다. 그때가 되면 자신도 더 이상 당시연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그녀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당시연은 등을 뒤로 기댔
원진은 절망과 분노에 찬 목소리로 당시연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마음속에 간직했던 짝사랑은 고백도 못 한 채 꺾여버렸다.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눈을 떼지 않고 당시연을 바라보았다.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당시연이 분명 협박을 당하고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담담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차갑게 식어 있었다.어쩌면 그녀가 말한 대로 자신이 정말 그녀에게 짐이 된 걸지도 몰랐다.원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황급히 소매로 닦아냈다.“누나, 진심이에요? 정말 그런 남자랑 결혼하겠다는 거예요?”당시연의 가슴속 깊은 곳이 찢어지듯 아팠다. 몇 년 전, 그녀는 이 아이를 잘 키워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말이 칼날이 되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해야만 했다.원진은 아직 세상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는 산골 마을에서 나와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해 왔기에 사람들의 잔혹한 속내를 잘 알지 못했다. 김씨 가문이 그를 해치려 한다면 그의 앞길은 막막해질 게 분명했다.“진심이야. 나 성진이를 사랑해. 우리 다음 달쯤 결혼식 올릴 거야. 수능은 두 달 남았으니까 이제 오지 마. 부모님도 네가 오는 걸 좋아하지 않으셔.”원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지만 당시연에게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당시연은 원진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는 그녀를 좋아했고 든든한 사람처럼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는 당시연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이며 오히려 그녀에게 불행만을 안겨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원진은 태어나서 이렇게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산골에서 살아온 그의 삶은 무감각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억울함이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그는 순간적으로 끊임없이 상처 주는 말만 내뱉는 당시연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했다간 당시연이 자신을 혐오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게 뻔했다. 그는 창백한
한 달 후, 김성진과 당시연의 결혼식이 다가왔다.당시연은 거울 속 화려하게 치장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눈동자에는 어떤 생기도 없었다.주변에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오가며 당시연의 머리를 만지고 정리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주었다.화장이 끝나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부축하여 아래로 내려갔다. 긴 웨딩카 행렬이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차 앞으로 걸어갔다.차 문이 열리고 당시연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당지석과 홍영란이 무언가 말을 건네려 했지만 당시연이 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자 그들도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차가 출발하자마자 당시연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차 안에는 그녀와 운전기사만 있었고 모자를 푹 눌러쓴 운전기사는 휴지를 뽑아 뒤로 내밀었다.당시연은 정중히 받아 들고 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감사합니다.”운전기사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시연은 작은 약병을 꺼내어 알약 몇 알을 입에 털어 넣고 씹더니 씹은 약을 그대로 삼키며 쓴맛을 견디고 있었다.혹시나 오해할까 싶어 그녀는 덧붙였다.“진정제예요. 잠시 후 너무 긴장할까 봐서요.”운전기사는 반응 없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당시연의 눈물은 계속 흘렀다. 이 길이 끝이 없기를, 예식장에 도착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창밖을 보기 싫어 눈을 감은 채 있었지만 자동차가 점점 더 빠르게 달리는 걸 느끼며 불안해졌다.당시연은 모자를 푹 눌러쓴 운전기사를 바라보았다.원진은 모자를 벗으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시연 누나, 내가 데리고 갈게요.”당시연의 눈동자가 놀라움에 크게 흔들렸다. 이게 현실인지 믿기지 않았다.“진아, 멈춰!”“싫어요. 누나 데리고 여기를 떠날 거예요.”당시연은 뒷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뒤편에는 몇 대의 차가 그들을 쫓고 있었다.이제 웨딩카 행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고 김씨 가문의 사람들이 그들을 추적 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