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은 집 안의 의료 상자를 침대 밑으로 걷어차고 옷을 입은 다음 방문을 열었다.당시연은 현관에 서서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고 반쯤 하다만 시험지가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보고는 안도했다.“이 선생님이 최근에 네가 다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압력이 높아서 그런가? 요즘에는 늦게 들어오네.”“아뇨, 저 시험 잘 볼 거예요.”당시연은 책상으로 걸어가 그가 푼 다른 시험지들을 살펴봤다.각 시험지의 필체는 깔끔했고 심지어 스스로 채점까지 한 상태였다.안심한 그녀는 뒤돌아서서 코끝으로 냄새를 맡았다.방에서 연고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그녀는 그것이 단지 자신의 착각인지 궁금했다.“시연 누나, 누나도 피곤한 것 같으니 가서 쉬세요.”당시연도 최근 야근이 많았고 어머니를 위로해야 했었다. 일찍 퇴근하고 늦게 돌아오니 원진과의 시간이 모두 엇갈리게 되었다.오늘 밤 그녀는 너무 불안해 결국 물어보러 온것이었다.원진이 무사하게 있는 것을 보자 당시연은 손을 들어 자기 머리를 끄적이었다.그녀가 떠나자마자 원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하고 자신의 옷을 입으며 연고를 계속 발랐다.피부는 불타는 듯 너무 고통스러웠고 조금만 만져도 따끈했다.이마는 식은땀 범벅이 되었고 샤워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수건으로 몸을 닦고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다.하지만 그는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뒤척이다 보니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는 심지어 중간에 일어나 피를 한 입 뱉어내기도 했다.*다음 날 아침 일찍 홍영란은 당시연에게 연락하여 돈을 거의 다 갚았고 당지석이 감옥에 갈 필요가 없다고 알렸다.“어머니, 그 돈은 다 어디서 났어요?”“전에 가르쳤던 학생이 나에게 보냈는데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어. 네 아버지가 오늘 밤 집에 도착할 거고 네가 사는 곳으로 함께 갈 거야. 그리고 간 김에 원진도 정식적으로 만나 보고 싶어. 이것 때문에 관계가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당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둘의 관계는 이미 오래
당시연은 조용히 채소를 고르고 있었다. 요즘 아버지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저축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바쳤지만 누구에게도 감사 인사를 받지 못했다.예전부터 이렇게 아버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자식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 같았다.그녀는 전에 김성진과 다시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했고 홍영란은 그녀를 지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음을 바꾸었고 그녀의 입에는 김성진의 선함이 가득했다.홍영란은 채소를 볶기 시작했지만, 당시연은 식욕을 잃은 듯 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오고 나면 두 사람이 함께 김성진과 결혼하도록 자신을 설득할 것이라고 이미 상상할 수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손에 든 접시를 내려놓았고 지금 어머니를 쫓아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그녀는 아직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아버지가 오자 두 사람은 김성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당시연은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두 사람이 서로 짠 듯이 맞장구를 쳐가면서 말하는 것이 어색한지 그들은 결국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났다.당시연은 혼자 설거지를 한 다음 소파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았다.저녁 12시가 되어서야 거실 문이 열렸다.이번에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몸에 새로운 상처가 많이 생긴 원진이 돌아왔다.원진은 방의 불을 켜고 그녀가 여전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물었다.“시연 누나?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당시연은 외동딸이었지만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 사실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원진을 보자마자 눈물이 흘렀다.원진은 책가방을 옆으로 던져버리고 몸의 고통을 억지로 참아냈다.“무슨 일이죠? 부모님께 또 무슨 일 있었어요?”그는 지금까지 당시연 어머니에게 보낸 돈이 김성진에게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당시연은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닦아냈고 원진에게까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그는 이미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공부가 가장 중요했
원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사실 당시연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홍영란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지석이었다.그리고 당지석의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에서 아버지로서의 권위였다.그들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항상 당시연이 아니었고 당시연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매우 힘들어했다.“시연 누나, 정말 저를 초대하신 건 아니죠?”당시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아이는 가끔 너무 똑똑했다.어머니와 아버지는 원진을 너무 좋아하지 않았고 정말로 그를 초대하지 않았으며 오늘 밤에 내일 혼자 오라며 강조하기까지 했다.아마 아직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그녀의 태도가 너무 강압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세 사람이 있는 집에서 직접 와 이야기하도록 허락한 것 같다.그러나 당시연은 자기 멋대로 원진을 데려오고 싶었고 이제 원진에게 사실을 들킨 그녀는 입술을 다물고 미소를 지었다.“내가 자란 곳을 너랑 같이 가고 싶을 뿐이야.”“내일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일찍 오도록 노력할게요.”당시연은 손을 내밀었다.당시연은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 주었다.사실 그녀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매우 불안했기 때문이었다.이번에도 어머니의 태도는 매우 강압적이었고 그녀는 마치 혼자 애를 쓰는 것 같았고 원진이 곁에 있어야만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다음 날.그녀는 오후까지 바쁘게 움직이며 집으로 향했다.조금 일찍 도착한 것이 분명했지만 그녀는 마치 시간을 쪼개는 것처럼 일부러 한 시간 더 머물렀다.그녀는 이 집에 돌아오는 것을 가장 고대하곤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몰랐다.오후 6시 30분이 되어서야 그녀는 차 문을 열고 걸어 올라왔다.거실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음식 냄새를 맡았다.평소 그녀가 즐겨 먹던 음식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녀를 본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과일을 손에 들고 오기까지 했다.당시연은 조금 후회했다. 식사가 오랫동안 준비
그녀는 메스꺼움을 느끼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을 뿐, 부모님과 김성진이 함께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부모님이 이렇게 불쾌한 방법으로 자신을 해치려고 힘을 합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마음이 여린 것도 그녀의 잘못이었다.그녀는 원망스럽게 김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성진은 이 순간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의 눈에 당시연은 전통적인 여인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너무 일찍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결혼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때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했다.김성진이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것도 그녀의 끈질긴 고집 때문이었다.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자신조차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그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당시연을 붙잡아야 했다.그의 입술은 당시연의 입술에 닿은 다음 목에 닿았다.당시연의 동공은 격렬하게 흔들렸다. 남녀 간의 힘의 격차는 말할 것도 없었고 약의 작용에 젖어 있는 그녀의 몸은 더욱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다.“하.”그녀는 약이 어디에서 왔는지 몰랐다. 이 모든 순간이 지옥 같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흔들리는 풍경화처럼 보였다.“꺼져.”손톱에서 피가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밖은 조용했다.김성진은 주저하지 않고 허리를 꼬집으며 마지막 단계만을 남기고 있었다.문밖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문을 세게 쾅 닫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은 밖에서 세게 걷어차며 열렸다.원진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이 광경을 본 김성진은 옆에 있던 꽃병을 들고 그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당시연은 그에게서 풀려나자마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침대에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단단히 감쌌다.원진은 김성진의 몸 위에 올라타서 주먹을 연거푸 내리치며 그의 얼굴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냈다.밖에서는 당지석과 홍영란의 고함이 들렸다.“안 놓으면 경찰을 부를
홍영란은 약간의 후회가 있었지만, 부모는 항상 자식보다 자신이 더 높다고 생각해 당시연에게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게다가 김성진이 가족을 위해 빚까지 갚아 줬으니 말할 나위도 없다.그녀는 심호흡하고 위협적인 말을 내뱉었다.“시연, 생각은 해봤어? 지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야. 네 아버지와 내가 강요했니? 원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너와 김성진은 아마 오래전에 결혼했을 거고 원진은 두 사람의 관계를 망친 장본인이야. 애초에 산골로 가자고 해서 네 인생을 망치지 말았어야지.”원진은 당시연을 껴안았고 그는 그녀가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심지어 그녀의 몸도 뜨거웠다.“누나?”당시연의 한 손은 죽기 살기로 옷을 움켜쥐고 있었다. 원진의 몸에서 나는 피 냄새가 너무 강했고 그녀의 착각인지 알 수 없었다.“시연 누나,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세요?”원진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한 듯 몸을 숙였다.당시연은 목을 들려 했지만 열이 나는 바람에 주변의 상황까지 인식할 수 없었다.그저 화가 치밀어 오르고 가슴이 불타는 것만 느꼈다.원진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김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막았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데려가느냐?”“강간범인 너보다 더 자격이 있지.”원진의 시선이 김성진의 몸을 칼처럼 찌르는 듯했다.그러나 김성진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홍영란이 한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당시연과의 관계를 망친 것은 모두 원진의 출현 때문이었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아마 오래전에 결혼했을 것이었다.원진은 김성진의 복부를 발로 찼다.“꺼져!”김성진은 이미 버틸 수 없었고 원진의 발차기 한 번에 한입 가득 피를 뱉고 곧바로 기절했다.이때 홍영란은 원진의 악랄한 말 한마디에 겁에 질린 듯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뻗으며 떨었다.“당연히 네 부모는 좋은 사람이 아닐 거야. 너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넌 폭력적인 성향이 있어. 시연과 함께 있으면 시연에게
당시연은 지지대 없이 곧장 욕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물 한 모금에 목이 막혔다.“시연 누나.”그는 다시 불안한 목소리로 외치더니 곧바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당시연의 머리도 흠뻑 젖어 있었고 가슴이 살짝 들썩이며 안개 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원진.”“네.”“나 너무 힘들어.”원진의 한 손이 욕조 가장자리를 죽기 살기로 꽉 쥐고 있었다. 욕조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휘젓는 것을 느꼈다가 다시 한번 그에 의해 사그라들었다.당시연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깨어 있지도 않았다.“제가 어떻게 도와줄까요?”그는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막막했다.당시연은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옷은 벗겨져 있었으며 뺨은 약간 빨개져 있었다.그녀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뽀뽀했다.원진은 화장실 옆에 반쯤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손바닥에 젖은 열기가 느껴지자, 귀 끝이 빨개지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감히 그녀를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미간조차도 움츠리고 있었다.학교의 누구라도 그 모습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원진은 수업 시간에 말이 없었고 학교에서 소문이 많았지만, 시험에서 1등을 하고 다른 친구들을 제치고 상도 받았었다.그의 집안 내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여학생이 그의 얼굴에 반해 연애편지를 쓰곤 했다.이제 그는 잠시도 당시연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욕조 옆에 정숙하게 앉아 있었다.그의 긴 손가락은 여전히 욕조에 기대어 있었고 그의 몸 전체는 아주 어색한 상태였다.당시연은 더 이상 몸의 건조한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아 얼굴 옆에 대고 문질렀다.원진의 손가락은 떨리기 시작했고 손을 빼고 싶었다.하지만 당시연은 그의 손을 잡고 뺨에서 목으로 그리고 아래로 손을 돌렸다.손이 부드러운 부분을 덮을 무렵, 원진은 마치 그 손이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더 이상 쳐다볼 엄두가 낮 않았다.그는 고
그런 다음 그는 침실로 돌아가 나머지 한 손의 멍을 살펴보고 급히 치료했다.그는 다시 구급상자를 꺼내 재킷을 벗어 던졌다.그의 피부는 온통 상처로 뒤덮여 있었고 타박상 외에도 노출된 상처가 너무 많아서 보기만 해도 아팠다.옆에서 휴대전화 벨이 울렸고 그는 스피커폰을 눌러 약을 바르며 전화를 받았다.“오늘 밤 세 시간이나 남았는데 뭐 하러 가셨나요?”“일 때문에요.”원진은 얼굴을 찡그리며 거즈에 묻은 피를 흘끗 보고 숨을 헐떡였다.그는 몇 초간 멈칫하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일 병원에 가는 게 낫겠네요. 죽지는 않겠지만 감염될 위험이 있고 오후 훈련은 계속해야 하니까요.”원진의 손이 잠시 멈칫하며 당시연의 침실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당시연을 혼자 둘 수 있을까?“상황에 따라 다르죠.”“원진 도련님, 가장자리를 가지기 전까지는 저희 말을 들어야 합니다.”원진은 심호흡하며 답했다.“알아요.”*아침 9시.당시연은 눈을 뜨고 익숙한 천장을 보았지만, 여전히 약간 당황스러웠다.그녀는 일어나서 먼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불편한 곳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 직후 어젯밤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머리가 아팠다.그녀는 다시 누워 몸을 웅크린 채 눈물이 머리카락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순식간에 긴장했다.어머니 아버지가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건가?“똑똑.”누군가 방문을 두드리자, 원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시연 누나, 일어났어요? 아침 준비했어요.”당시연은 안심하기는커녕 오히려 당황했다.어젯밤 자신을 구해준 것은 원진이었고 그녀는 원진에게 그 불쾌한 모습을 보여줬다.그녀는 두통만 느꼈고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누워만 있었다.문이 부드럽게 열렸다.원진은 먹을 것을 들고 들어왔다.“뭐 좀 먹어요.”당시연은 마치 영혼을 빼앗긴 것 같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마치 기계처럼 어떻게 먹어야 할지조차 몰랐다.원진은 근처에 있던 휴지를
“사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알고 있기나 해?”“퇴학?”오후에 김성진의 부모님은 직접 학교를 찾아 교장 선생님을 협박했다.교장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두 사람의 차갑고 침울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우리는 이 학생을 퇴학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즉시 퇴학시켜야 합니다.”“김 선생님, 하지만 곧 대학 입학시험이 다가오는데 이 학생의 성적이.”“성적이 좋다고 해서 그가 쓰레기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번에는 제 아들을 때려죽일 뻔했고 미래의 며느리에 대한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이 사람은 뼈까지 나쁩니다.”김성진은 감히 가족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진이 당시연을 침범하려다가 자신에 의해 저지당했고 그 결과 원진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진실을 조작했다.나쁜 사람들의 눈에 원진은 이미 용서할 수 없을 만큼 큰 죄를 지은 것이 분명했다.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 끝으로 대리석 탁자를 두드렸다.“원진을 퇴학시키지 않으면 교장 자리에 앉을 수 없을 겁니다.”이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교장은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알았어요. 알았어요. 학교에 바로 공지를 내도록 하겠습니다.”원진은 이수희와 함께 학교로 막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 방송에서 학교가 자신의 싸움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월요일에 단상에 올라가 반성문을 읽고 학교를 떠나라는 말을 들었다.원진의 발걸음은 멈췄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수희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김씨 가문이 이 문제를 추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 통지가 내려왔다.“원진, 내 말 들어. 월요일에 네가 먼저 단상에 올라가서 반성문을 읽고 내가 교장 선생님과 상의하러 가겠다.”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당시연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하지만 당시연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시연 언니는 어딨어?”원진은 고개를 숙이며 속눈썹을 말했다.“최근 출장 중이라 금방 돌
온시환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걸려 있던 재킷을 집어 들고 바로 문을 나섰다.공지민은 식탁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다.한편 온시환은 집을 나서자마자 추지성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 문을 열자마자 거실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온시환은 침착하게 옷을 발로 밀어내고 소파에 앉았다.거실 한가운데에서 추지성은 한 여인과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는 온시환을 보자마자 놀란 나머지 금세 흥미를 잃고 입맞춤을 멈췄다.“시환아?”추지성의 품에 안겨 있던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당황한 듯 몸을 움츠렸다.온시환은 담배를 피우며 그들을 무시했다.추지성은 이마를 문지르며 품에 안은 여인을 부드럽게 달랬다.“이만 가봐.”여인은 옷이 주워 입으며 서둘러 방을 나가자 추지성은 타올 하나만 걸친 채 태연하게 소파로 와서 앉았다.“야, 너 다음부터 올 때는 전화 좀 하고 와라.”온시환은 담배를 쥔 손이 축 늘어진 채 지쳐 보였다.추지성은 의아했다. 분명 어젯밤에는 공지민과 화해한 것처럼 보였는데 어째서 오늘은 이 모양인가 싶었다.“무슨 일이야? 아침에 전화로 자랑질하더니만. 아, 맞다. 너 점 다시 찍었더라? 확실히 점 있는 네가 낫다. 예전에 다른 여자들도 그 점이 좋아서 너한테 홀렸잖아.”온시환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지민이가 태도를 바꾼 이유는 구은우의 죽음을 조사하려는 거였어.”추지성은 옆에 놓인 주스를 집어 마시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죽은 사람의 일을 왜 조사해? 이게 몇 년 전 일이냐. 다 끝난 거잖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 난 가끔 여자들이 이해가 안 돼. 남자라면 이미 새로운 연애 몇 번은 했을 텐데.”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봐봐. 주변에 아내 잃은 남자들 있지? 그놈들 지금 얼마나 잘 놀고 다니는지 알잖아. 근데 남편 잃은 여자들은? 평생 못 벗어나.”추지성의 가족 이야기도 이어졌다. 그의 친누나는 난
공지민은 정말 지쳤다. 밤새 몇 번이나 잠들 뻔했지만 온시환이 계속 그녀를 깨웠다. 그녀는 자신의 위에 엎드린 온시환을 바라봤다. 그의 볼은 붉게 달아올랐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끊임없이 떨어졌다.온시환이라는 이 나쁜 남자 몸매 하나는 참 잘 관리했다.공지민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문득 생각했다. 그녀는 코끝에 점이 있는 온시환이 더 좋았다. 만약 점이 없었다면 그와 대화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을 것이다.한편 온시환은 그녀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빌어먹을.’공지민이 이 점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다행히 다시 그 점을 되돌려 놨다.온시환은 그녀의 뒤통수를 붙잡고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마치 그녀를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해 버리고 싶어 하는 듯했다.그날 공지민은 하루 종일 잠들어 있었다.원래 아침에 일어나 사골국을 끓이려고 했지만 전날 밤 온시환의 끈질긴 괴롭힘에 결국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깨어났을 땐 창밖에 저녁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리며 온시환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그래, 점 다시 찍었어. 신경 꺼. 쪽팔려도 내가 쪽팔려. 너랑 무슨 상관인데. 자꾸 그딴 소리하면 화낼 거야.”지난번 온시환이 점을 제거했을 때 많은 사람이 물었다. 그는 그냥 없애고 싶어서 없애는 거라며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말해 왔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점을 다시 찍자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궁금해했다.온시환은 아무에게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추지성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온시환은 그에게 심한 말을 퍼부었다.사실 추지성이 온시환을 부추기지만 않았더라도 그와 공지민이 이렇게까지 어긋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추지성은 여전히 냉철했다.“지난번에 너희가 금방 헤어지고 네가 병원에 실려 갔을 때도 지민 씨는 한 번도 널 보러 오지 않았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돌아온 걸 보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나는 너희가 다시 잘되길 반
하지만 택시 기사는 여전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 공지민이 내리려 할 때까지도 계속 말했다.“내가 보니까 그 남자 친구 참 괜찮아 보이던데. 뒤따라오는 저 차도 그 사람 거죠? 아무리 싸웠어도 아가씨 혼자 차 타고 가는 거 걱정돼서 저렇게 따라오는 거 아니겠어요?”공지민은 시선을 돌려 멀리 있는 차를 바라보았다.온시환의 차가 틀림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과거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시급했다.집에 도착한 공지민은 곧장 인터넷에서 그 남자 배우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하지만 검색 결과는 이름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의 가족에 대한 부분은 아예 생략돼 있었다.하는 수 없이 그녀는 예전에 알던 몇몇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혹시라도 남자 배우의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공지민은 연예계에서 활동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인맥을 쌓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사교를 좋아하지 않는 그녀로서는 이번 조사가 더욱 쉽지 않았다.소파에 앉아 돈을 송금하며 기자들에게 의뢰했지만 돌아온 정보는 여전히 부족했다.남자 배우의 어머니와 동생의 연락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마음이 초조해진 공지민은 한숨을 내쉬며 창가로 다가갔다. 분명 실마리를 찾았지만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때 공지민의 시야에 여전히 아래에 서 있는 온시환의 차가 들어왔다.만약 온시환이의 능력이라면 이런 조사는 금세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공지민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결정을 내리고 집 문을 열었다.아래로 내려온 그녀는 온시환의 차 앞으로 걸어갔다.운전석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던 온시환은 공지민을 보자 깜짝 놀란 듯했다.공지민이 창문을 두드리자 그가 곧바로 창문을 내렸다.“시환 씨.”온시환은 그녀가 자신을 쫓아내려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공지민은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코끝에는 예전과 똑같은 점이 다시 자리 잡고 있었다.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공지민은 남자의 말을 들으며 그를 부축했다. 남자는 술이 정말 많이 취했는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녀가 무슨 질문을 해도 다 대답했다.10억...엘리베이터가 한 층에서 멈췄을 때 공지민은 그를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남자는 자신의 방 카드를 꺼냈고 공지민을 향한 시선은 이미 노골적인 의도를 담고 있었다.공지민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지만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그녀는 그가 건넨 카드를 받아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손목을 잡아 막았다.뒤를 돌아보니 온시환이었다.온시환은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그렇게 공지민은 그의 가슴팍에 부딪혔고 옆에 있던 남자 배우는 누군가 자신을 막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멍하니 있다가 온시환의 얼굴을 보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온 작가님?”온시환은 공지민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원래부터 이 남자와 뭔가 할 생각이 없었기에 저항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온시환은 아무 말 없이 차가운 얼굴로 버튼을 눌렀다.하지만 그의 감정은 몹시 불안정해 보였다.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을 때 그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공지민, 너 그렇게 절박해?”‘절박해’라는 말이 그의 목에서 걸리는 듯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려 했지만 너무 떨려 담배는 그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굴러갔다.공지민은 온시환이 오해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남자 배우와 관련된 조사에 쏠려 있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반드시 구은우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결심했다.큰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나가자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온시환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아래층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모임 장소는 고급스러워서 촬영을 마친 여러 제작팀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오늘 밤에도 몇몇 팀이 이곳에 모여 회식을 하고 있었다.연예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온시
아니나 다를까 공지민은 무언가에 찔린 듯 온시환을 올려다보며 매섭게 노려보았다.온시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몇 장만 훑어봐도 이것이 전형적인 불평등 계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공지민은 자리를 뜨려 했지만 온시환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공지민, 난 저 남자가 왜 너랑 자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안 가. 너 침대에서 꼭 통나무 같은데, 누가 통나무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겠어?”공지민은 순간 발걸음이 멈칫했지만 그런 말은 전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온시환은 자리에 앉아 입꼬리를 비틀며 웃음을 흘렸다.말로 그녀를 상처 주는 건 소용없었다.하지만 구은우를 건드리는 말은 달랐다.대체 얼마나 좋아했기에 이미 세상을 떠난 지 그렇게 오래됐는데도 여전히 잊지 못한단 말인가.그 이후로 공지민은 어디를 가든 온시환과 마주쳤다.한두 번은 우연이라 여길 수도 있었지만 일곱 번, 여덟 번이 되니 명백히 의도적인 것이었다.온시환은 예전처럼 가벼운 태도로 사람들과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시선은 항상 공지민을 따라다녔다.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그의 곁에는 여자들이 없다는 것이다.공지민이 그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촬영이 끝났기 때문이다. 원래 짧게 등장하다 사라지는 조연이라 비중도 크지 않았다. 오늘의 자리는 남자 주인공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고 모두가 남자 주인공을 둘러싸고 아부 섞인 말을 건네고 있었다.그런 남자 주인공은 또 온시환에게 다가가 비위를 맞추려 애썼지만 온시환은 겉으로는 부드럽게 대해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공지민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취해 옆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때 우리 엄마가 내 동생 데리고 어디론가 떠났어. 어디로 갔는지 몰라. 그 대신 한 생명이 대신 희생됐지. 내 동생은 원래 수영할 줄 알았는데, 일부러 못 하는 척했던 거야.
구은우는 대학교 1학년 때 공지민과 사귀었다. 두 사람은 함께 바다로 놀러 갔다가 구은우가 파도에 휩쓸린 아이를 구하려다 익사하고 말았다. 아이는 무사했지만 구은우는 구조된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진짜 죽었네.’온시환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내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그는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었지만 추지성이 그의 손 가까이에 있던 담배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또 피우려고? 오늘 하루에 대체 몇 대나 피운 거야? 게다가 여긴 병원이잖아. 금연 구역이라고.”온시환은 갑자기 흥미를 잃은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한편 추지성은 서류를 한 번 살펴본 뒤 감탄을 내뱉었다.“와, 운명도 참 잔인하네. 그렇게 사랑하던 두 사람이 같이 놀러 갔는데, 결국 한 사람이 사고로 떠나버리다니. 남겨진 사람은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지. 아마 끊임없이 생각할 거야. 그날 바다에 가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그런데 말이야, 구은우는 공지민이 가장 사랑했던 해에 떠났어. 그리고 그해는 구은우가 공지민을 가장 사랑했던 해이기도 했지.”구은우는 열여덟 살 공지민의 삶에서 서서히 퇴장했다. 이후로 누가 나타나더라도 구은우를 대신할 순 없었다.이게 바로 운명의 장난이었다.추지성은 이제는 공지민에 대해 별다른 비난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온시환 자신도 말하지 않았던가. 공지민에게 그저 장난이었다고. 결국 장난이 과해져 자신은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는 가볍게 떠난 것뿐이었다.“그런데 시환아, 너 눈치챘어?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해가 네가 수술을 받았던 해랑 딱 겹쳐. 뭔가 운명 같지 않아?”온시환은 그런 운명 따위 믿지 않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적으로 웃었다.“남을 구하겠다고 여자 친구를 내버려두고 자기희생을 포장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결국 구해줬다는 그 아이는 당일 엄마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버렸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어. 이게 무슨 소용이야? 차라리 짐승을 구하는 게
온시환은 그대로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고급 원단으로 만든 정장에 먼지가 묻어 뿌옇게 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일 꼭대기 계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이 그를 다시 끌어당기려 하자 온시환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며 말했다.“지민아, 오늘 밤의 달 좀 봐.”공지민은 그의 말에 따라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봤다. 오늘 달은 분명 아름다웠고 내일 날씨가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시환은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며 신중하게 물었다.“왜? 마음에 안 들어? 네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지민은 발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공지민이 떠나는 것을 본 온시환은 당황해 급히 뒤쫓으려다 그만 술에 취한 상태로 균형을 잃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공지민은 온시환을 오래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으로 본 적이 없었다.그는 흙투성이가 된 정장차림으로 그녀의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지만 다리가 심하게 다친 듯 몇 번을 시도해도 실패하고 말았다.강렬한 통증이 그의 정신을 어느 정도 맑게 해주었고 그제야 그는 현실을 자각했다.‘이건 꿈이 아니야. 지민이가 정말 나를 보러 온 거야.’공지민은 그의 모습을 보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다쳤다면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병원에 가요. 내가 데려다줄게.”온시환은 아무 말 없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따라나섰다.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온시환은 공지민의 손목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손을 뿌리치고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 같았다.공지민은 옆에 있던 의사에게 물었다.“얼마나 쉬어야 하나요?”“2주 정도는 안정이 필요해요. 당분간은 목발을 써야 할 거예요.”공지민은 병원 매점에서 목발을 사서 병실로 돌아왔다. 병실에 들어섰을 때 온시환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모습은 그녀가 알고 있던 온시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공지민은 목발을
온시환이 집에 돌착했을 때도 서주혁의 팔을 붙잡고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서주혁이 그를 떼어내면 온시환은 다시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지민아...”“난 정말 모르겠어. 왜 날 대체품으로 삼았어? 그렇게 구은우가 좋으면 그냥 그 사람 찾아가면 되잖아. 왜 나한테 와서 이러는 건데.”“내가 네 장난감이냐, 나는 당해도 싸다 이거야?”서주혁은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창피해서 버리고 가버리고 싶었다.온시환이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한동안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서주혁은 가정부에게 그를 잘 돌봐달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온시환의 집을 나섰다. 취한 사람과 더 이상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서주혁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시환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공지민이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조금 황당했다. 경찰은 온시환이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되었으니 와서 그를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공지민 씨 맞으시죠? 죄송하지만, 친구분을 데려가 주실 수 있을까요? 음주 운전은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면 안 될까요?”“그분께서는 당신에게만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와도 따라가지 않을 거라고 했고요.”공지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이 밀려왔지만 결국 경찰서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온시환은 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잠든 그의 모습은 차분해 보였고 평소의 산만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공지민은 경찰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온시환이 다시는 음주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는 보증을 하고 나서야 그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그녀는 그의 소매를 잡아 살짝 당겼다.온시환은 희미하게 눈을 뜨더니 그녀를 보고 꿈을 꾸는 줄 알았다.갑자기 꿈속 공지민의 얼굴이 사라질까 봐 눈도 깜빡일 수 없었다.“지민아?”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 안으려고 했다.그러나 공지민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차가운 태도로 거리를 두었다.“대체 원하는 게
한편, 반승제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고 온시환과 공지민 사이의 일을 알아내기 시작했다.하지만 지금 온시환은 공지민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과민 반응을 보이며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면서 자꾸 대체품 어쩌고 하는 말을 내뱉었다.반승제는 한쪽 무릎을 굽히며 과일주스를 건네주었다.“무슨 대체품이야? 설마 네가 지민 씨한테 대체품으로 이용당했다는 거야?”‘와, 이렇게 자극적인 일이 벌어지다니.’“맞아! 지민이는 정말, 정말 나쁜 여자야.”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온시환이 떠올릴 수 있는 비난은 고작 이 정도였다.정신이 온전할 때는 입에 담기 힘든 독설도 가능했지만 술에 취한 지금은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 차마 험한 말을 하지 못했다. 공지민이 지금 자신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고 있든지 간에.결국 다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예전에 공지민에게 좀 더 잘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어쩌면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을지도 모른다.그랬다면 지금처럼 그에게 이 정도로 냉담하지 않았을 것이다.온시환은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반승제는 그의 말을 들으며 꽤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그는 모은 정보를 모두 성혜인에게 보냈다.[시환이가 대체품이었대.]성혜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온시환이 대체품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더욱 경악했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단 세 글자로 답장을 보냈다.[꼴좋네.]누구나 알다시피 온시환은 바람둥이였다. 과거 여러 모임에서 그는 여자를 농락하는 말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진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그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여자를 상처 입혔는지 밤마다 잠 못 들게 했는지를 생각하면 이제는 그가 상처받고 잠 못 이루는 날이 오는 것도 당연했다.성혜인은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온시환은 술에 취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서주혁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지인이는 대체 무슨 생각이야?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날 좋아하지 않았던 거야?”서주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