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여자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나비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몇몇 여자들이 순간적으로 “와!”하고 감탄했다. 눈가에는 조롱이 가득했다.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그렇다. 남자든 여자든 돈이 생기면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변하지 않았다면 그건 유혹이 부족했던 것뿐이다.강민지는 가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신예준의 넥타이가 벗겨지는 모습을 보면서 강민지의 눈에도 흥미로운 표정이 스쳤다.비록 악질적인 장난이긴 했지만 이 남자 웨이터는 확실히 잘생겼다. 특히 강민지의 위치에서 바라보면 가슴 아래의 근육도 보였다. 부유한 여성은 신예준의 머리카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웨이터가 이 술병을 열면 40만 원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며? 예준 씨, 요즘 내가 찾으면 항상 무시하더라?”신예준은 성격이 좋기로 유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영업용 미소를 띠고 있었다.“미경 누나, 저 좀 그만 괴롭혀요.”꽃미남이 이렇게 말하니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진미경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좋아. 괴롭히지 않을게. 대신, 예준 씨가 술 세 잔을 마시면 내보내 줄게.”다른 사람들도 말을 꺼냈다.“미경 언니, 이러기예요?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어떻게 그동안 우리한테 비밀로 하셨대?”“미경 언니가 전남편한테서 돈을 받자마자 영계를 만나려는 것 같은데?”“그러게, 정말 젊어 보여. 대학생 같은데, 집에 있는 지긋지긋한 남편보다 백 배는 낫지.”여러 모욕적인 말들이 오갔지만 신예준의 얼굴에는 여전히 영업용 미소가 떠 있었다.한 병의 술이 2천만 원이다. 만약 웨이터가 직접 열면 인센티브를 받는다.진미경이 이곳에 놀러 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처음 왔을 때 신예준에게 반해서 따로 만나자며 스폰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오늘 다시 만나게 되자 자연스럽게 심통이 났다.그녀는 옆에 있는 하얀 병에서 술을 따라내며 웃음을 흘렸다.“이 술
신예준은 아무 말 없이 다른 웨이터에게 2천만 원짜리 고급술을 다섯 병 가져오라고 했다.강민지는 구석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이 남자가 꽤 줏대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취했으면서 진미경이 다섯 병의 고급술을 열겠다고 한 말을 그대로 기억하고 시키다니. 술을 열자마자 신예준은 옆에 있는 벽을 짚으며 자리를 떠났다.강민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뒤따라 나갔다. 문을 나서자 신예준이 어깨가 축 처진 채 벽을 짚으며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방금 그가 발로 걷어찬 웨이터가 마침 쟁반을 들고 다가오더니, 그를 보자마자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 미경 누나 만나러 간 신예준 아니야? 왜 이래, 억지로 술이라도 마신 거야?”이전에 신예준은 억지로 술을 마신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위장이 뒤집어질 것 같았고, 언제든지 토할 것 같은 상태였다.그 웨이터가 앞으로 다가가서 그를 밀쳤다.“조금 전까지 설치지 않았어? 지난달에 인센티브로 600만 원이나 받았으니 기분 좋았겠지? 이제 미경 누나뿐만 아니라 현주 누나와 수진 누나도 너에게 관심을 보이더라. 이 껍데기로 많이도 꼬셨네. 방금 미경 누나가 매니저에게 전화해서 너를 더 이상 룸에 들이지 말라고 했어. 그래서 기회가 나한테 넘어왔거든. 정말 안타깝게 됐네, 신예준.”그 웨이터는 비웃음을 흘리며 안타깝다고 말하더니 또 신예준을 밀쳤다. 하지만 신예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에게 밀려 뒤로 몇 번 휘청거리다가 실수로 강민지의 신발을 밟았다.신예준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정말 많이 취한 듯했지만 애써 정신을 붙잡으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신예준의 귀와 목은 알코올에 의해 붉게 달아올랐다. 강민지의 시선에서 보면 꽤 귀여워 보였다.신예준은 상대방과 더는 말다툼하지 않고,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토하기 시작했다.강민지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어차피 이 잘생긴 웨이터는 그녀에게 낯선
강연지가 급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서둘러 옆에 놓인 헬멧을 집어 들었다.“언니, 나도 같이 먹고 싶지만 정말 급한 일이 생겼어. 경기 끝나고 다시 올게. 안녕.”강연지는 항상 바쁘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나타나면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강민지는 지루함을 느꼈다. 성혜인도 바쁘고 강연지도 바쁜데 자신만 이렇게 여유로운 재벌가 아가씨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그녀도 예전에는 뭔가 해보려고 했지만 두 달 만에 강상원에게 200억 원의 손해를 안겨주었다. 그때 강상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민지야, 우리 강씨 집안의 재산으로 네가 매일 남자를 만나는 데는 충분하겠지만 창업하면 아마 몇 년 못 버틸 거야.”그 말에 강민지는 화가 나서 발끈했지만 자신에게 사업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 후 다른 회사에서 인턴을 해보려고 했지만 인턴 월급은 1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녀의 하루 식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강상원의 말이 맞았다.“네 통장 잔액에서 나오는 이자만으로 한 달 월급보다 훨씬 많아.”그 충격에 강민지는 밥만 축내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기력한 날들로 접어들었다.그녀는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강상원은 그녀에게 요구하는 바가 극히 적었다. 절대 다른 제약으로 그녀를 구속하지 않았다.그래서 다른 재벌가에서 큰돈을 투자해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는 동안, 강민지는 성혜인과 함께 국내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강민지는 어릴 적부터 다섯 개의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영어 전공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통역 일을 할 것도 아니었으니 쓸모가 별로 없었다.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안 하고 놀기만 했다. 강민지는 눈앞에 남아 있는 손대지 않은 음식을 보며 방금 그 종업원을 떠올렸다.강민지는 한 번 결심이 서면 절대 망설이지 않았다. 신예준이 마지막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을 때 그녀는 입을
레스토랑이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하게 일식을 판매했으며 돈 많은 회원의 도움으로 레스토랑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들이었다.강민지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솔직히 알려줘요. 이 레스토랑 식재료가 정말 모두 수입품이에요?”숨결이 귓가에 닿자 신예준은 고개를 피하며 대답하지 않았다.강민지 역시 의식하고 고개를 뒤로 뺐다.“아닌가 보네요. 발해 쪽에서 가져온 거겠죠.”신예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민지 씨, 계속 이야기하다간 제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겠어요.”강민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잃으면 그만이죠. 웨이터 일자리 찾기가 어디 어렵겠나요?”말을 꺼내자마자 강민지는 후회했다. 신예준이 입술을 짓씹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를 보아온 바로 이 동작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인 듯했다.게다가 강민지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으므로 마치 고의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처럼 들렸다.그녀는 황급히 사과했다.“아, 죄송해요. 웨이터님을 말하려던 게 아니라 사실 저도 웨이터거든요. 샤브샤브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5개의 샤브샤브 가게에서 일했고 저는 이 웨이터 일은 찾기가 매우 쉽다고 생각했어요. 제원은 결국 대도시이고 어디든 수요가 많기 때문에요.”신예준은 그녀의 말에 개의치 않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강민지는 얼른 옆에 있는 공용 젓가락을 가져다가 튀김 하나를 집어주었다.“우리 모두 웨이터가 이런 음식을 자주 먹지 못 하잖아요. 발해에서 온 생선이라도 값이 싸지 않으니 저와 함께 드셔 보실래요?”“좋습니다.”그는 이제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금방 처음 본 두 사람은 이렇게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강민지는 줄곧 조용히 신예준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는 밥을 먹을 때 느릿느릿하게 먹었고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는 소리조차 가벼워 전혀 웨이터로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여느 부잣집 자제처럼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었다.신예준은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많았다.그들은 모두 진미경을 알고 있었다. 진미경은 비록 전 남편과 이혼했지만 돈을 많이 나눠 가졌다. 그녀는 지금도 그 주얼리 회사의 주주였으며 매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사람이었다.하여 회사에서도 발언권이 있는, 권력 있는 사람이었다.그리고 그 회사는 바로 강씨 가문의 라이벌 회사인 NG 주얼리 회사였다.진미경의 전남편은 여전히 회사의 대표이고 진미경 역시 주주였기에 그의 언행이 지나치더라도 주변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추켜세울 수밖에 없었다.게임은 또 한 번 진행되었고 신예준은 게임에 재능이 없는지 또 져버렸다.이번에 진미경은 새 애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여보는 이 사람이 진실 게임을 했으면 좋겠어? 아니면 벌칙을 받았으면 좋겠어?”“벌칙으로 하죠. 계속 술만 마시면 재미가 없잖아요. 이번엔 반드시 벌칙이어야 해요.”“음, 아무 여자나 찾아서 10초 동안 키스하는 걸로 하죠.”현장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집에 남편이 있거나 혹은 누군가 스폰으로 데려온 여자였다. 신예준이 누구를 벌칙 상대로 뽑든 모두 미움을 살 수 있는 것이었다.만약 진미경을 벌칙 상대로 한다 해도 굴욕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멀찌감치서 보고 있던 강민지는 신예준이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화가 났을 것이다.그녀를 등지고 있었어도 강민지는 상상할 수 있었다. 그가 또다시 입술을 짓씹었을 거란 것이라는 걸.벌칙을 말하는 남자는 진미경이 옆에 앉아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고결한 척했었잖아. 스폰을 받는 사람을 업신여겼지?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키스하고 비위 맞춰 봐.현장에서 순간 야유가 터져 나왔고 스폰으로 온 여자들은 모두 신예준이 자기를 고를까 봐 뒤로 숨었다.강민지는 신예순이 걱정되어 그쪽으로 걸어가려 했다.그런데 간 지 몇 걸음 되지 않아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예준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뒤통수를 받쳐 들었다.이렇게 가벼운 키
그녀의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그러나 신예준은 그녀를 밀어내고 바닥에 놓여 있던 생수를 들어 보였다.“물 많이 마셔요.”혹시 취한 줄 아는 건가?강민지는 순간 우스워 피식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아, 진심이라니까요. 예준 씨 여자 친구 없죠?”“하루에 알바는 몇 개 해요? 제가 시간 나면 찾아갈게요. 먹을 것 가져다줄게요.”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그저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신예준은 보기에 단순한 사람이므로 아마 며칠 안에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는 강민지의 착각일 뿐이었다.신예준은 생수를 강민지의 손에 쥐여준 뒤 돌아섰다.그의 의외의 반응에 강민지가 쫓아가 붙잡으려 했다.하지만 신예준은 그녀를 전혀 상대하지 않았고 버스 정류장까지 간 후에야 멈춰 섰다.그의 뒤에 멈춰 선 강민지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예준 씨, 번호 좀 줘요. 저 제원에서 친척도 없고, 집에는 남동생 하나뿐인데 가족들은 제가 알바한 돈으로 동생 뒷바라지 해주길 바라고 있어요.”그녀가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이에 신예준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민지의 휴대전화에 번호를 타자하기 시작했다.그가 버스를 타고 가자 강민지는 이번에는 쫓아가지 않았고 작은 아파트 하나를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가난한 척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끝까지 연기해야 했다.곧 그녀는 별장에 있는 수영장보다도 작은 아파트를 얻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흐뭇해했다.새벽 3시, 그녀는 성혜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좋은 소식. 나 곧 연애할 것 같아.]성혜인의 답장은 빠르게 돌아왔다. 최근 회사에 몇 가지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겼기에 설계를 책임진 그녀는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했다.[축하해. 이번엔 어느 연예인이야?]강민지는 종래로 남자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번 이런 말 했을 때 그 상대는 갓 데뷔한 신인이었다.부잣집 아가씨인 강민지는 상대에게 60억을 던져주었고, 성혜인이 두 사람이 연애하고 있을 거로 생각할 때쯤
그녀는 신예준에게 메시지를 보내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하지만 신예준은 아주 간결하게 답장을 보냈고 이는 강민지에게 관심이 없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하지만 상대의 관심이 없을수록 강민지는 그에게 더욱 신경을 썼다.그녀는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신예준은 굳건하게 자신을 소견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강민지의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강민지는 즉시 사람을 시켜 신예준이 알바하는 가게를 알아본 후 우연히 만난 척하려 했다.그러나 신예준의 스케줄은 너무 규칙적이었다. 매일 4가지 알바를 하고, 일이 끝나면 집에 가고 다시 나오지 않았으며 1주일에 한 번 슈퍼마켓을 갔다.강민지에 비하면 무서울 정도로 규칙적인 스케줄이었다.강민지는 자신의 아버지 강상원마저도 신예준 만큼 부지런하지 않다고 느꼈다.그는 알바 외에 별다른 유흥을 하지 않았고 항상 돈을 벌고 있었다.이렇게 매일 기다리다가는 언제 우연히 만날 수 있겠는가.강민지는 결국 또 참지 못하고 이내 강연지를 불렀다. 두 사람은 다시 신예준의 아르바이트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오기 전 강민지는 신신당부했다.“사촌 언니 말고 언니라고 불러.”강민지는 연지가 해야 할 역할을 몇 번이나 중복해서 말했다.강연지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언니 지금 사기 치러 가는 거예요?”“연애하려고 하는 일들이 어떻게 사기겠어.”강연지는 순간 할 말을 잃었고 두 사람은 가게로 들어가 주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신예준이 아닌 다른 종업원이 나왔다.2시간이나 기다렸으나 신예준은 그림자도 보지 못했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때 신예준이 다른 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손님과 말다툼이 생긴 듯했다.가장 앞자리에 앉은 남성이 술 1잔을 신예준의 얼굴에 뿌려버렸고 그의 머리카락은 술에 흠뻑 젖게 되었다.강민지가 연지에게 눈짓을 하자 연기를 시작했다.“언니 이런 거 안 먹어봤지? 촌뜨기 같으니라고. 지금 내가 언니 데리고 나와준 덕분에 언니가 세상
몇 초 후에야 그가 담담하게 고개를 들었다.“좋아요.”“혹시 손님과 술자리를 한다고 월급이 깎이는 건 아니겠죠?”“아닙니다. 이미 퇴근한 시간이라서.”강민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턱을 괸 채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누군가 당신에게 술을 뿌리는 걸 보았어요. 갑자기 우리가 정말 동병상련이라고 느껴졌어요. 당신 가족들은요?”“다 죽었습니다.”이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천천히 술잔을 돌리며 평온한 표정이었다.강민지가 순간 멈칫하며 되물었다.“다 죽었다고요?”“네.”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강민지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원래는 장난이 섞인 말이었는데 이제는 조금 진지해졌다.“아, 고의가 아니었어요. 한잔하실래요?”그녀가 술잔을 들어 신예준에게 가득 따랐다.신예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강민지는 문득 이런 착각이 들었다. 마치 그녀의 오늘 밤 계획이 모두 간파된 것 같은 느낌.그러나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눈은 다시 평온하고 순해 보였다. 두 사람이 잔이 부딪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강민지 자신이 주량이 꽤 좋다고 생각했으므로 신예준을 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끝까지 마셨을 때 먼저 눈앞이 흔들린 것은 그녀였다.강민지는 천천히 한쪽의 책상을 짚고 일어섰는데 머릿속에는 아주 조금의 이성만 남아 있었다.“늦었으니 집에 가죠.”“갑시다.”신예준 역시 취기가 가득했고 그는 강민지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집이 어디예요?”강민지는 여전히 자신의 오늘 밤 목적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녀는 신예준과 잠을 자기 위해 이 일련의 일들을 벌인 것이었다.그녀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술에 완전히 취한 척 연기한 것이다.신예준은 그녀를 길가로 부축한 뒤 또 물었다.“몇 번 버스를 타야 해요? 집은 어느 쪽인데요?”강민지는 잠자코 조용히 있었고, 신예준은 결국 그녀를 멀지 않은 호텔 입구로 데려갔다.강민지는 그가 자신을 부축해 걸어갈 때 걸음걸이가 온전치 않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