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여기 십만 개가 넘는 전선이 있거든요. 하나하나 잘라보려고 하는데...”“왜 그래요?”“십만 분 일의 확률로 하나만 잘못 자르면 나 여사님께서 전기충격을 받게 될 겁니다.”설우현은 분노로 가슴이 떨렸다. 배후에서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사람은 정말 치밀했다. 배선을 자르는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유일한 방법은 지하실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뿐이다. 깊은숨을 들이켠 설우현은 너무 화가 나 목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팠다. “사람 더 보낼 테니 한시라도 빨리 해결할 방법을 찾아봐요.”“네, 알겠습니다.”한편, 작업팀의 말대로 감시카메라 뒤에서 누군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레드와인 한 잔이 들려 있었고, 앞에는 근사한 스테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는 흥미롭게 그들을 지켜보며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매번 식사할 때마다 그는 모니터실로 와서 나하늘의 얼굴만 보면 음식을 몇 입 더 먹을 수 있었다. 그의 눈에는 증오와 미련 그리고 흐뭇함으로 가득했다. 외부인이 여기 있었다면 분명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상에서 나하늘은 늘 침대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그녀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건드릴 엄두도 못 냈다. 여석진은 제일 처음 그녀를 길들일 때가 떠올랐다. 매일 냄새나는 남자 다섯 명을 지하실로 보내 그녀를 찾게 했다.나하늘이 몸부림치고 화를 내며 발가벗겨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석진은 그녀에게 경고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닿으면 정말 이 남자들이 돌아가며 그녀를 겁탈하게 할 거라고. 나하늘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망가트리길 3개월 지속하고서야 그녀는 사람의 손길을 두려워했다. 실험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그는 그 남자들 대신 들어가 그녀를 겁탈했다.여석진에게 있어 나하늘은 자신이 키우는 애완동물, 자신이 길들인 애완동물, 자신의 입맛대로 변할 수 있는 애완동물이었다. 지하실에 감금까지 한 그가 어떻게 아무짓도 안 했을까.그의 강박은 나하늘을 점점
여석진은 와인 잔을 손에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3장로는 키가 1미터75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약간 통통한 체형이었다. 여석진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3장로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여석진, 너 해파리 도장 어디서 났어? 나하늘 그 계집애를 만난 거야?”3장로와 대장로의 나이는 조직 내에서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당시 그들은 나하늘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다. 나하늘의 최면술도 이들에게서 배웠는데, 다만 나하늘의 최면술이 더 뛰어날 뿐이다.3장로가 여석진을 찾아온 이유는 여석진이 조직 내에서의 존재감이 뚜렷하지만 조직 내의 일에 끼어드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수년 동안 조직 내에서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시해 온 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K였다. 당시 나하늘이 완전히 사라진 후, 아주 어린 K는 이미 사람들을 포섭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그가 해파리 도장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장로와 3장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 오직 여석진만 누구 편에도 서지 않다가 이번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K의 편에 섰다. 3장로는 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다. 3장로는 구금섬의 주인이 여석진이라는 사실을 모를 뿐만 아니라 여석진이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그동안 하늘이가 잘 지냈대? 왜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 석진아, 하늘이 지금 어디 있어?”3장로의 신체는 그다지 건재하지 않았다. 그와 대장로는 나하늘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하늘은 BKS의 성녀로 그 명예를 누려야 하는데, 어떻게 혼자 밖에서 떠돌아다닐 수 있단 말인가. 여석진은 그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자 너무 우스웠다. 옛날 같았으면 3장로가 이런 표정을 보이기만 하면 즉시 나하늘에게 날아가 그녀를 모질게 괴롭혔을 것이다.그는 모두를 속였다는 쾌감을 느꼈다. 어떤 면에서는 K와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3장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나무 잠자리를 넣었다. 대장로의 숨소리를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그는 이 늙은이가 정말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형님...”이번에 대장로가 끌려갔을 때, 3장로는 처음에 여석진의 명령인 줄 알았다. 여석진도 그들의 제자였고 당시 나하늘과 함께 그들 밑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최면술이든 예술이든 나하늘은 여석진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났다. 나하늘은 손에 꼽히는 천재였다.나하늘이 BKS의 성녀로 뽑힌 건 아직 열여덟 살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장로와 3장로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딸도 없었기에 나하늘을 친딸처럼 대했다. 나하늘이 사라진 이후 그들은 그녀를 찾아 헤맸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3장로는 어쩔 수 없이 부하들에게 대장로의 장례를 준비하게 했다. 여석진도 대장로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하늘을 제외한 대장로의 유일한 제자는 여석진뿐이었으며, BKS의 규칙에 따르면 제자는 조직에서 대장로의 지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여석진은 조직의 의사 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지만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대장로라는 칭호가 그에게로 오자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이건 예상치 못한 기쁨이 아니라 이미 계획 된 일이었다.앞으로 3장로가 세상을 떠나면 그 자리를 물려받을 사람은 여전히 여석진이 될 것이다. 대장로와 3장로는 그동안 여석진의 숨겨진 이면을 간과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온순한 제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하늘의 실종이 여석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길이 없었다.여석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K였다. 대장로가 죽고 여석진이 대장로가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3장로를 죽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조직 전체가 완전히 그들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K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축하드려요, 대장로님.”여석진은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가볍게 웃었다.“이 두 늙은이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네요.”한평생의 노력이 전부 여석진
손에 든 나무 조각 장난감을 누군가 집어 들었지만, 그 사람은 3장로의 사람이 아니었다.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어느새 방을 떠나고 여석진만 침대 곁에 남아있었다. 여석진이 대체 언제 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3장로의 손에 들려 있던 나무 조각 장난감을 건네받은 여석진은 입꼬리가 살짝 휘어졌다.“잘 가세요, 스승님.”눈을 커다랗게 뜬 3장로가 일어나 앉으려고 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석진의 목소리라는 것만 알아차릴 수 있었다.여석진은 대장로와 3장로가 입양한 어린 제자였는데, 말하자면 그동안 나하늘을 찾는 데만 집중하느라 이 어린 제자의 존재를 소홀히 했다.여석진은 손가락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가 튀어나온 곤충을 집어넣고 다시 버튼을 눌렀다.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스승님, 3장로인 제가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리러 왔어요.”3장로는 여석진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럴 힘조차 없었다. 여석진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의 귀에 속삭였다.“영상 봤어요? 하늘이가 참 불쌍하죠?”3장로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지면서 믿기지 않는 듯 숨을 헐떡이며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여석진은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며 그의 머리를 돌려놓았다. “제 탓이라고 할 수도 없죠. 당신과 대장로가 저더러 하늘이와 결혼하라고 했을 때부터 전 하늘이를 제 아내로 생각했으니까요.”숨소리가 더욱 가빠진 3장로는 여석진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뇌졸증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여석진은 손에 쥔 나무 조각 장난감을 내려다보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러게 왜 날 사랑하지 말래요. 원래 내 소유물이었어야 했는데.”푸웁! 3장로는 또 한 번 피를 뿜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죽지 않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앞으로는 먹고 마시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여석진은 두 사람을 불러 그를 돌보라고 명령했다.“잘 돌봐
나하늘은 플로리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도시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 도시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여석진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주변의 장치들이 반응했을 때 그는 이미 K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설기웅과 최용호는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차에 앉아 컴퓨터의 빨간 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짧은 시간 내에 이 지역 IP주소를 해킹했다. 모두 BKS의 사람들이었다. 이 조직은 한때 플로리아에 나타난 적이 있는데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BKS는 연구 기지만큼 미스터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용호와 원진의 정보망을 이용해 K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K는 구금섬 밖에 나타나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 적이 있기 때문에 구금섬 밖에서 그를 감시하기만 하면 금방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교활한 K는 BKS의 본부로 돌아가지 않고 이 도시로 왔다.이곳은 대장로와 3장로가 은퇴 후 거주 중인 도시였다. 여석진도 이곳에 살고 있으며 두 장로를 보호하기 위해 BKS의 일부 세력이 여기에 흩어져 있었다. 이때 원진의 사람들이 이곳을 폭격하여 나하늘의 거처와 두 장로의 거처가 전부 파괴되었다. 3장로는 이미 여석진에 의해 다른 곳에 옮겨졌다. 이제 한 무리의 사람들이 BKS의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하들에게 원진의 무리를 매복하여 계속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헬리콥터에 앉아 있는 K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놈들이 여기를 찾은 모양이네요. 반승제가 아리카로 갔으니 이 도시는 안전할 줄 알았는데.”여석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가 눈가까지 드리우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반승제가 아리카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연구 기지에서 일부러 소식을 흘려 연구 기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질병은 연구 기지의 결과물이었다.칸다는 몇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큰 질병이 창궐하고 그때마다 인구의
진백운과 진세운은 달랐다. 진백운은 항상 연구 기지에서 살았고, 연구의 대상이었다.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 그와 함께한 것은 온통 차가운 기기뿐이었다. 그는 유리를 통해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전부 엄마와 아빠라고 생각했다.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 푸른 하늘이 무엇인지, 초록 잎새가 무엇인지, 바람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진세운에게 접촉하라고 파견되었을 때 진백운은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가 보았다. 어릴 때부터 호르몬 주사를 맞은 그들은 다섯 살이지만 아이큐는 월등히 높았다. 아마도 그의 얼굴에 나타난 놀라움과 그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진세운은 연구 기지로 돌아가겠다고 바로 약속하지 않았다. 진세운은 그때 이렇게 말했다.“하늘이 이모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어.”그는 몇 년 동안 조직에서 살면서 나하늘을 자기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나하늘에게 이 일을 털어놓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 대장로와 나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다.“K는 아이큐가 높고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똑똑하지만 냉혈한 성정을 타고난 아이야. 이런 사람들은 집단 명예 의식이 없는 경향이 있어. 게다가 다스리기도 어렵고 리더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대장로님, K는 우선 제외해요. 사실 이미 적합한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하지만 그녀는 그 후보가 자신의 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말을 전부 들어버린 진세운은 자신의 불타오르는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그는 나하늘이 BKS의 책임자이자 성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무조건 그녀의 말을 따라야 했고 그녀가 누군가를 부인하면 이 사람은 조직 내에서 결코 미래가 없는 셈이었다.“대장로님, 이 아이는 많은 작은 동물을 죽였어요. 잔혹성을 띤 유전적 요소가 있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거예요. 앞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되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해요.”이것은 나하늘이 대장로에게 한 충고였지만 대장로의 눈에는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였기 때문에 마
연구기지에서 연락을 받은 진세운은 진백운과 함께 가보려 했다.진백운은 마치 그의 그림자 같았다. 독립적 사고능력이 없는 그림자 말이다.진세운이 시키면 그저 꼭두각시처럼 하는 것이다.비행기에 탄 후 진백운이 물었다.“이번에야말로 반승제를 영원히 못 돌아오게 할거지?”“응. 처참하게 죽여야지.”이 시기에 아리카에 가다니. 반승제는 목숨을 내놓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아리카의 역병 상황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매일 보도되고 있었으며 모든 국가는 국민들에게 칸다가 통제할 수 있을 때 즉각 철수하라는 통보를 내렸다.질병이 다른 곳으로 퍼지기만 하면 세계적인 재앙이 될 것이니 말이다.금방 칸다에 도착한 반승제는 호텔을 찾았다.제로 역시 그와 같은 호텔에 머물렀다.밤이 되자 반승제의 사람들이 호텔에 더 투숙했다.그들이 컴퓨터 앞에서 회의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반승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화면을 보니 낯선 사람이 보낸 지도 사진이었다.이 사진은 반승제가 아리카로 오기를 선택하게 한 관건이 되는 물건이기도 했다.이 낯선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사흘 전 그는 반승제에게 구금섬에 대한 지도를 보내주었다.지도에는 구금섬의 위치가 자세히 그려져 있었으며 비밀통로도 포함이었다.더 중요한 건, 지도를 그려준 사람이 반승제가 구금섬에 있을 때 비둘기로 외부와 연락을 하던 위치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승제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음에도 말이다.분명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다.하지만 그땐 반승제가 이미 노예찬의 도움으로 비밀통로로 들어갔기 때문에 지도가 쓸모 없어진 이후였다.그러나 이틀 전 그 사람에게서 칸다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이번에는 지도 위에 연구기지의 위치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었다.칸다에서 역병이 창궐했기에 반승제는 감히 성혜인을 데려오지 못했다.성혜인의 성격이라면 그녀와 상의해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여 반승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이 지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려 했다.현재 연구기지의 위치를
하지만 이미 아리카로 떠난 사람을 어찌하겠는가.성혜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화를 진정시켰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말들을 마침내 한마디로 정리해 메시지를 보냈다.[안전 조심해요.][혜인아, 걱정하지 마. 얼른 돌아갈게. 방금 아리카에 도착해서 상황을 잘 몰라서 누군가 추적할까 봐 수시로 핸드폰 전원을 끌 거니까, 만약 전화를 받지 못했더라도 조급해하지 마. 사흘에 한 번씩은 진행 상황을 꼭 알려줄 게]그는 말할수록 성혜인이 화를 낼까 봐 두려워졌다. 결국 메시지 뒤에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래도 되지?]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성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성혜인은 그가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설의종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었다.게다가 나하늘의 상태를 봐서 하루빨리 연구기지를 찾아내야 했다.[네.]그녀의 단마디 답장에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감정표현에 서툰 반승제는 이모티콘에서 어렵게 고르고 골라 귀엽게 입을 맞추는 이모티콘을 전송했다.이모티콘을 본 성혜인은 화가 사르르 풀렸다.성혜인을 잘 달랜 후 반승제는 얼른 전원을 껐다....두 시간 후, 보냈던 정찰대가 돌아왔다.“대표님, 병원에 매 세 걸음마다 카메라가 있습니다. 일반 병원이었다면 절대 카메라를 이렇게 많이 설치하지 않았을 겁니다.”어찌 그뿐이겠는가. 칸다 같이 낙후한 곳은 여건이 좋지 않으므로 카메라는 중요한 장소에만 설치되어 있었다.고작 진료를 보는 병원에 이렇게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다른 건?”“기증한 후의 시신은 의학 연구에 쓰인 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록해야 하는데 이 병원은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환자로 위장하고 영안실에 실수로 들어갔더니 총을 든 사람에게 위협당했습니다.”영안실은 시신을 보관하는 곳이다.“그리고 병원의 몇몇 주요 관계자 배후에 있는 가족들은 정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조사해 보니 모두 신분을 산 사람들이었습니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