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나무 잠자리를 넣었다. 대장로의 숨소리를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그는 이 늙은이가 정말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형님...”이번에 대장로가 끌려갔을 때, 3장로는 처음에 여석진의 명령인 줄 알았다. 여석진도 그들의 제자였고 당시 나하늘과 함께 그들 밑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최면술이든 예술이든 나하늘은 여석진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났다. 나하늘은 손에 꼽히는 천재였다.나하늘이 BKS의 성녀로 뽑힌 건 아직 열여덟 살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장로와 3장로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딸도 없었기에 나하늘을 친딸처럼 대했다. 나하늘이 사라진 이후 그들은 그녀를 찾아 헤맸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3장로는 어쩔 수 없이 부하들에게 대장로의 장례를 준비하게 했다. 여석진도 대장로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하늘을 제외한 대장로의 유일한 제자는 여석진뿐이었으며, BKS의 규칙에 따르면 제자는 조직에서 대장로의 지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여석진은 조직의 의사 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지만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대장로라는 칭호가 그에게로 오자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이건 예상치 못한 기쁨이 아니라 이미 계획 된 일이었다.앞으로 3장로가 세상을 떠나면 그 자리를 물려받을 사람은 여전히 여석진이 될 것이다. 대장로와 3장로는 그동안 여석진의 숨겨진 이면을 간과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온순한 제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하늘의 실종이 여석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길이 없었다.여석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K였다. 대장로가 죽고 여석진이 대장로가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3장로를 죽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조직 전체가 완전히 그들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K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축하드려요, 대장로님.”여석진은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가볍게 웃었다.“이 두 늙은이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네요.”한평생의 노력이 전부 여석진
손에 든 나무 조각 장난감을 누군가 집어 들었지만, 그 사람은 3장로의 사람이 아니었다.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어느새 방을 떠나고 여석진만 침대 곁에 남아있었다. 여석진이 대체 언제 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3장로의 손에 들려 있던 나무 조각 장난감을 건네받은 여석진은 입꼬리가 살짝 휘어졌다.“잘 가세요, 스승님.”눈을 커다랗게 뜬 3장로가 일어나 앉으려고 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석진의 목소리라는 것만 알아차릴 수 있었다.여석진은 대장로와 3장로가 입양한 어린 제자였는데, 말하자면 그동안 나하늘을 찾는 데만 집중하느라 이 어린 제자의 존재를 소홀히 했다.여석진은 손가락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가 튀어나온 곤충을 집어넣고 다시 버튼을 눌렀다.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스승님, 3장로인 제가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리러 왔어요.”3장로는 여석진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럴 힘조차 없었다. 여석진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의 귀에 속삭였다.“영상 봤어요? 하늘이가 참 불쌍하죠?”3장로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지면서 믿기지 않는 듯 숨을 헐떡이며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여석진은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며 그의 머리를 돌려놓았다. “제 탓이라고 할 수도 없죠. 당신과 대장로가 저더러 하늘이와 결혼하라고 했을 때부터 전 하늘이를 제 아내로 생각했으니까요.”숨소리가 더욱 가빠진 3장로는 여석진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뇌졸증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여석진은 손에 쥔 나무 조각 장난감을 내려다보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러게 왜 날 사랑하지 말래요. 원래 내 소유물이었어야 했는데.”푸웁! 3장로는 또 한 번 피를 뿜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죽지 않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앞으로는 먹고 마시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여석진은 두 사람을 불러 그를 돌보라고 명령했다.“잘 돌봐
나하늘은 플로리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도시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 도시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여석진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주변의 장치들이 반응했을 때 그는 이미 K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설기웅과 최용호는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차에 앉아 컴퓨터의 빨간 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짧은 시간 내에 이 지역 IP주소를 해킹했다. 모두 BKS의 사람들이었다. 이 조직은 한때 플로리아에 나타난 적이 있는데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BKS는 연구 기지만큼 미스터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용호와 원진의 정보망을 이용해 K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K는 구금섬 밖에 나타나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 적이 있기 때문에 구금섬 밖에서 그를 감시하기만 하면 금방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교활한 K는 BKS의 본부로 돌아가지 않고 이 도시로 왔다.이곳은 대장로와 3장로가 은퇴 후 거주 중인 도시였다. 여석진도 이곳에 살고 있으며 두 장로를 보호하기 위해 BKS의 일부 세력이 여기에 흩어져 있었다. 이때 원진의 사람들이 이곳을 폭격하여 나하늘의 거처와 두 장로의 거처가 전부 파괴되었다. 3장로는 이미 여석진에 의해 다른 곳에 옮겨졌다. 이제 한 무리의 사람들이 BKS의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하들에게 원진의 무리를 매복하여 계속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헬리콥터에 앉아 있는 K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놈들이 여기를 찾은 모양이네요. 반승제가 아리카로 갔으니 이 도시는 안전할 줄 알았는데.”여석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가 눈가까지 드리우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반승제가 아리카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연구 기지에서 일부러 소식을 흘려 연구 기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질병은 연구 기지의 결과물이었다.칸다는 몇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큰 질병이 창궐하고 그때마다 인구의
진백운과 진세운은 달랐다. 진백운은 항상 연구 기지에서 살았고, 연구의 대상이었다.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 그와 함께한 것은 온통 차가운 기기뿐이었다. 그는 유리를 통해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전부 엄마와 아빠라고 생각했다.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 푸른 하늘이 무엇인지, 초록 잎새가 무엇인지, 바람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진세운에게 접촉하라고 파견되었을 때 진백운은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가 보았다. 어릴 때부터 호르몬 주사를 맞은 그들은 다섯 살이지만 아이큐는 월등히 높았다. 아마도 그의 얼굴에 나타난 놀라움과 그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진세운은 연구 기지로 돌아가겠다고 바로 약속하지 않았다. 진세운은 그때 이렇게 말했다.“하늘이 이모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어.”그는 몇 년 동안 조직에서 살면서 나하늘을 자기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나하늘에게 이 일을 털어놓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 대장로와 나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다.“K는 아이큐가 높고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똑똑하지만 냉혈한 성정을 타고난 아이야. 이런 사람들은 집단 명예 의식이 없는 경향이 있어. 게다가 다스리기도 어렵고 리더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대장로님, K는 우선 제외해요. 사실 이미 적합한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하지만 그녀는 그 후보가 자신의 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말을 전부 들어버린 진세운은 자신의 불타오르는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그는 나하늘이 BKS의 책임자이자 성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무조건 그녀의 말을 따라야 했고 그녀가 누군가를 부인하면 이 사람은 조직 내에서 결코 미래가 없는 셈이었다.“대장로님, 이 아이는 많은 작은 동물을 죽였어요. 잔혹성을 띤 유전적 요소가 있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거예요. 앞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되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해요.”이것은 나하늘이 대장로에게 한 충고였지만 대장로의 눈에는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였기 때문에 마
연구기지에서 연락을 받은 진세운은 진백운과 함께 가보려 했다.진백운은 마치 그의 그림자 같았다. 독립적 사고능력이 없는 그림자 말이다.진세운이 시키면 그저 꼭두각시처럼 하는 것이다.비행기에 탄 후 진백운이 물었다.“이번에야말로 반승제를 영원히 못 돌아오게 할거지?”“응. 처참하게 죽여야지.”이 시기에 아리카에 가다니. 반승제는 목숨을 내놓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아리카의 역병 상황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매일 보도되고 있었으며 모든 국가는 국민들에게 칸다가 통제할 수 있을 때 즉각 철수하라는 통보를 내렸다.질병이 다른 곳으로 퍼지기만 하면 세계적인 재앙이 될 것이니 말이다.금방 칸다에 도착한 반승제는 호텔을 찾았다.제로 역시 그와 같은 호텔에 머물렀다.밤이 되자 반승제의 사람들이 호텔에 더 투숙했다.그들이 컴퓨터 앞에서 회의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반승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화면을 보니 낯선 사람이 보낸 지도 사진이었다.이 사진은 반승제가 아리카로 오기를 선택하게 한 관건이 되는 물건이기도 했다.이 낯선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사흘 전 그는 반승제에게 구금섬에 대한 지도를 보내주었다.지도에는 구금섬의 위치가 자세히 그려져 있었으며 비밀통로도 포함이었다.더 중요한 건, 지도를 그려준 사람이 반승제가 구금섬에 있을 때 비둘기로 외부와 연락을 하던 위치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승제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음에도 말이다.분명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다.하지만 그땐 반승제가 이미 노예찬의 도움으로 비밀통로로 들어갔기 때문에 지도가 쓸모 없어진 이후였다.그러나 이틀 전 그 사람에게서 칸다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이번에는 지도 위에 연구기지의 위치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었다.칸다에서 역병이 창궐했기에 반승제는 감히 성혜인을 데려오지 못했다.성혜인의 성격이라면 그녀와 상의해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여 반승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이 지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려 했다.현재 연구기지의 위치를
하지만 이미 아리카로 떠난 사람을 어찌하겠는가.성혜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화를 진정시켰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말들을 마침내 한마디로 정리해 메시지를 보냈다.[안전 조심해요.][혜인아, 걱정하지 마. 얼른 돌아갈게. 방금 아리카에 도착해서 상황을 잘 몰라서 누군가 추적할까 봐 수시로 핸드폰 전원을 끌 거니까, 만약 전화를 받지 못했더라도 조급해하지 마. 사흘에 한 번씩은 진행 상황을 꼭 알려줄 게]그는 말할수록 성혜인이 화를 낼까 봐 두려워졌다. 결국 메시지 뒤에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래도 되지?]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성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성혜인은 그가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설의종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었다.게다가 나하늘의 상태를 봐서 하루빨리 연구기지를 찾아내야 했다.[네.]그녀의 단마디 답장에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감정표현에 서툰 반승제는 이모티콘에서 어렵게 고르고 골라 귀엽게 입을 맞추는 이모티콘을 전송했다.이모티콘을 본 성혜인은 화가 사르르 풀렸다.성혜인을 잘 달랜 후 반승제는 얼른 전원을 껐다....두 시간 후, 보냈던 정찰대가 돌아왔다.“대표님, 병원에 매 세 걸음마다 카메라가 있습니다. 일반 병원이었다면 절대 카메라를 이렇게 많이 설치하지 않았을 겁니다.”어찌 그뿐이겠는가. 칸다 같이 낙후한 곳은 여건이 좋지 않으므로 카메라는 중요한 장소에만 설치되어 있었다.고작 진료를 보는 병원에 이렇게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다른 건?”“기증한 후의 시신은 의학 연구에 쓰인 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록해야 하는데 이 병원은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환자로 위장하고 영안실에 실수로 들어갔더니 총을 든 사람에게 위협당했습니다.”영안실은 시신을 보관하는 곳이다.“그리고 병원의 몇몇 주요 관계자 배후에 있는 가족들은 정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조사해 보니 모두 신분을 산 사람들이었습니
낮이 되자 몇 명이 일찍 집을 나섰다.반승제는 또 제로에게 밖을 서성이되 티 내지 말라며 당부했다.제로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도시를 누비기 시작했다.진세운과 진백운은 오후에 도착했다.그러나 그들은 칸다의 도시가 아닌 연구기지 본부로 헬기를 타고 곧장 향했다.지구의 허파에서 가장 복잡한 지형을 차지하는 연구기지는 표면이 가장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고 각종 독극물로 둘러싸인 끝없는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다.처음 이 프로젝트에 몇십조를 투자한 후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연구 기지는 여전히 새것처럼 깨끗했다.입구의 동공 스캐너가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했다. 연구 기지는 10M 간격으로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러한 테스트를 했다.동공 데이터 외에도 마지막 테스트에는 보행 기록 비교 기기가 있었다.앞에 놓인 20미터 길이의 복도 곳곳에 카메라가 달려있었으며 들어오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기록과 비교했다. 데이터가 부적합하면 머리 위에 총구가 겨눠지고 곧이어 비명이 들린다. 곧이어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히 와서 시신을 수습한다.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연구 기지에 외부인이 침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진세운과 진백운은 데이터 테스트를 거쳐 마침내 로비에 도착했다.몇천 평이 되는 로비에는 전부 하얀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있었다.그러나 다른 연구소와 달리 이곳 직원들은 평생 연구기지를 떠날 수 없는 발고리를 착용하고 있었다.일단 떠나면 발고리가 폭발할 것이며 절대 다리 하나가 부러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진세운이 곁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선생님은요?”“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겹겹한 방을 넘어서야 선생님이 계시는 은밀한 방으로 갈 수 있었다.이곳은 연구기지 내부 직원이 사는 곳으로 진세운은 입구에 서서 능숙하게 문을 두드렸다.그와 진백운의 선생님은 우아한 중년 여인이었으며 이름은 배민희였다. 30년 전부터 연구 기지에 있었던 그녀는 현재 50세가 되었다. 그녀는 연구 기지에 많
해파리 도장이 바로 옆에 놓여 있는데도 그녀는 더 보지 않았다.방 안에 침묵이 돌았고 진세운은 도저히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줄곧 배민희의 속셈을 알지 못했다.배민희가 테이블 위의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전에 말했던 그 사람은? 나하늘의 딸?”“아직 살아 있습니다.”배민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세운은 종래로 실수 하지 않는 사람이다. 진세운이 칼을 빼어 들었다면 그 아이는 지금 살아있어서는 안 되었다.“살 기회를 줬나 보네?”“그냥 죽이기엔 너무 재미가 없어서요.”관찰실의 사람들처럼 실험용 가축으로 만들어야 했다.제일 처음 성혜인을 데리고 BKS로 돌아가려 했을 때의 속셈이었다.우선 우두머리의 권력을 느끼게 하고 신뢰를 얻은 다음 연구 기지로 데려오는 것.그때의 성혜인은 마치 실험용 생쥐 같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꼭두각시처럼 따르기만 하는.하지만 그가 방심했다. 성혜인이 우두머리의 자리도 탐내지 않고 오히려 반승제와 함께 지낼 방법을 생각했던 것이다.우습기는.나중에 그녀가 구금섬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더 이상 봐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설기웅과 원진의 지원이 너무 빨랐고, 게다가 난동을 부린 노예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으며 오히려 자신의 행적까지 드러나게 하고 말았다.배민희가 손에 든 잔을 보며 손을 저었다.“피곤해. 너흰 얼른 나가.”진세운과 진백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향했다. 어깨 너머로 배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쪽에서 회장 자리 추천인 보고해야 하는데. 세운아, 추천서 쓰면 내가 올려줄게.”연구기지에는 총 20명의 회장이 있으며 내부 핵심 인력과의 의사소통을 담당했다.진세운이 연구 기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핵심 인력과 접촉할 수 있었지만 엄격한 추천 절차가 있었기에 승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생긴 것이다.일단 회장이 되면 연구 기지에서 연구해 낸 알약을 한 정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진세운이 만족스러운 웃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