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한, 우리 구씨 가문에 어떻게 너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역겨운 짐승이 태어났을까!”그 남자는 구지한이 말을 듣지 않자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외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다면, 특히 너 같은 놈을 극혐하는 사람들이라면 과연 널 살려둘까?”구금섬의 규칙상 구지한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 어떠한 가치도 창출할 수 없다고 여기므로 죽음을 선사한다.구금섬의 규칙은 모두 상류층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런 성향의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아이를 낳을 수 없고 구금섬에 신선한 피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구지한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두 손을 머리 뒤로 얹었다. “그래, 그래. 난 죽어 마땅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살아 있네. 넌 우리 밖에서 계속 개처럼 짖으렴.”남자는 분노에 몸을 떨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할아버지께서 이미 네 소식을 듣고 여기로 오시는 중이야. 그래, 두고 봐!”남자는 말을 마친 후 반승제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서서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문이 닫히자 이곳에는 반승제와 구지한만 남았다.구지한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플로리아라는 곳에 가면 정말 나 같은 사람도 차별하지 않는 거야? 심지어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고?”“그래.” “꼭 살아서 네가 말한 나라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반승제는 미간을 좁히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내가 널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구지한은 손을 움직이며 편안한 자세로 바꾸었다.“그랬으면 좋겠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구금섬을 떠나본 적이 없어. 우리가 접한 지식으로 여태까지 구금섬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나라라고 생각했어.”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고 있던 검은색 로브를 정리했다.“밖에 나가서 좀 둘러볼게.”“네 여자 친구를 보러 가지 않을 거야?”“가야 해. 하지만 오늘 밤 중간 섬에 난동이 일어나서 예전에 살던 집이 파괴됐어.” “그 여자는 괜찮아?”“괜찮아. 하지만 쫓아가지 않아서 다시 연락이 끊겼
성혜인이 한숨을 내쉬자 배현우도 따라서 한숨을 내쉬었다.“혜인아, 나 집에 가고 싶어. 이 섬에서 벗어나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가고 싶어.”성혜인을 비스킷을 그의 입에 밀어 넣었다.“우선 배부터 채우고 나서 말해”지금의 그녀는 감히 이 다리 구멍을 벗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특히 대낮에 그 무리가 어디를 지키고 있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발목을 잡는 두 사람을 데리고 온전히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성혜인은 비스킷을 먹으며 노예찬에게 잠 좀 자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노예찬이 물었다.“오늘 밤 나갈 거야?”“응, 어젯밤 그 무리의 상황을 보러 가고 싶어. 두 무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한 무리는 나를 처리하러 왔고 다른 한 무리는 내분 중이었어. 그들이 잡고 있는 사람은 아마 승제 씨일 거야. 가서 살펴봐야 해.”노예찬의 눈에 희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오늘 밤 그녀가 나간 틈을 타 연극을 한 번 더 해야 할까?이제 부하들과 연락이 닿았고 어젯밤 그 작은 별장을 폭파한 무리가 K의 부하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구금섬은 노예찬의 구역이고 노예찬은 어리지만 유능했다. 자신의 세력에 K가 침투하지 못했지만 K의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아마 성혜인이 첫날 이곳에 들어왔을 때 K의 사람들이 이미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노예찬의 구역이라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을 뿐. 노예찬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는 그 위선자를 몹시 싫어했다.세 사람은 이렇게 다리 구멍 아래에 하루 동안 숨어있었다. 밤이 되자 성혜인은 밖으로 나가며 노예찬에게 신신당부했다.“만약 그 무리가 여기를 찾아내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배현우를 데리고 도망가. 내 번호를 알고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하면 되니까.”“알았어.”노예찬의 입꼬리가 휘어 올라갔다. 오늘 밤은 바로 성혜인이 죽을 시간이었다. 그녀는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자백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 성혜인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예찬아, 고민이 있거나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성혜인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예찬은 손에 든 사탕을 배현우 앞에 던졌다.“바보야, 먹어.”배현우는 그가 베푸는 게 선의인지 악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는 멍청해진 게 맞았다. 그는 사탕을 집어 들고 포장을 벗겨서 입에 넣었다. 돌 위에 앉아 있던 노예찬이 물었다.“달아?”“달콤해.”“그래?”노예찬은 한 번도 이런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와 같은 신분의 사람은 피비린내가 가장 익숙했고 단맛은 사치였다.의부가 말하길 이런 끈적끈적한 맛은 단시간 동안 신경을 마비시켜 투지를 앗아간다고 말했다.어릴 적 훈련에 지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사탕의 냄새를 맡고 한 알을 훔쳐 먹은 적이 있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고된 훈련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탕을 다 삼키기도 전에 두 번이나 채찍질을 당했다.“노예찬, 정말 실망이야. 또 그딴 걸 건드리면 손가락을 하나 잘라버리겠어.”노예찬은 그때 크게 겁을 먹었다. 이게 자신의 몇 살 때 기억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기억 속에 사탕은 달콤하지 않았고 두 번의 채찍질 같은 맛이었다. 피비린내 나고, 아프고, 쓰디쓴...아무것도 모르는 배현우를 보자 그는 질투심을 느꼈다. 스물일곱이나, 여덟 살로 보이는 남자였지만 고작 사탕 한 알에 만족해서 이토록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정말 그보다 10년을 더 살았다는 게 부질없었다.노예찬은 속눈썹을 내리고 휴대폰을 꺼내 부하에게 연락했다.“그 여자를 잡아다가 고문해서 해파리 인장의 행방을 알아내. 이 연극도 이제 막을 내려야지. 그리고 K의 무리를 막아. 구금섬은 그들이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야.”“K가 장로님과 잘 얘기해 보고 싶다고 합니다.”K는 이미 성혜인과 반승제가 구금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구금섬의 주인에게 협조하기만 하면 두 사람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노예찬은 조직 내에서 항상 그와 대립하여 둘 사이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게다가 노예찬은 조직에 가는 일이 극히 드물었고
중간 섬의 밤은 불빛이 그리 밝지 않았다. 앞으로 걸어가던 성혜인은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는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은밀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어젯밤 세 사람이 도망쳤던 그 길이었다. 원래는 이 길을 따라 돌아가려고 했으나 이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이마에 총구가 닿아 발걸음을 멈췄다. 상대방의 말투는 차가웠다.“혜인 씨, 우리랑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성혜인은 이 길이 은밀한 골목이라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낼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에게 총을 뺏기고 두 손이 결박된 그녀는 두 눈이 검은 천으로 가려져 축축한 방으로 끌려와 두 손이 묶인 채 매달려서 심문을 받았다.“해파리 인장은 어디 있지?”K 쪽의 사람일까?아니, K는 오랫동안 그녀 주위를 맴돌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직접 할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극도로 자부심이 강한 K가 고양이 쥐잡듯 자신의 목적을 대놓고 드러낼 사람도 아니었다.하지만 K가 아니면 해파리 인장과 그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곰곰이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그녀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곧바로 채찍이 날아왔다.처음 K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채찍질을 당했다. 그 후 커다란 물집이 잡혔는데 그때의 고통은 지금보다 백 배는 더 괴로웠다.이제는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성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으로 맞섰다.고문을 하던 남자는 채찍을 연달아 열 번을 때리며 성혜인이 견딜 수 없을 줄 알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부아가 치민 그는 더욱 힘을 실어 다섯 번 연거푸 채찍질했다.“해파리 인장이 어디 있지? 말만 하면 살려주겠다.”성혜인은 입술을 깨물며 쓴웃음을 지었다.과연 그럴까? 만약 말해준다면 그녀의 이용 가치도 사라지게 될 텐데...채찍으로 연속 스무 번 내려치자 그녀의 몸에 걸친 옷이 전부 찢어져 얼룩덜룩한 상처가 드러났다.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고 즉시 밖으로 나가 노예찬에게 전화를
“누나, 난 괜찮으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성혜인은 초조한 나머지 기침을 두어 번 했지만, 가슴에는 통증만 느껴질 뿐이었다.“그 사람 건드리지 말아요. 제가 말할게요.”그녀의 말에 노예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은 마치 무언가가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그는 성혜인이 그렇게 빨리 입을 열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노예찬은 생각에 잠긴 듯 성혜인의 시선을 피하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한편, 노예찬을 위협하던 남성이 성혜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조금 전에 때릴 때는 한마디도 안 하던 년이 이제야 입을 여네? 배짱이 대단한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가 보구나?”그 시각 성혜인의 머리는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피가 묻은 채 눈빛은 말할 나위 없이 차가웠다.“해파리 도장은 외곽 섬 제가 묵었던 방에 있어요. 제 방 침대 밑에 숨겨진 칸막이가 있는데 그 안에 있거든요.”그 당시 그녀는 해파리 도장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했었다. 비록 그 물건이 크지도 않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지만, 몸에 지니고 다니는 한 안전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하여 그녀는 머물 곳을 찾은 후 그것을 닥치는 대로 거기에 둔 것이다.조금 전의 그 남성은 노예찬을 놓아주며 냉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밖에 있는 사람을 향해 말했다.“이놈을 당장 끌고 가라. 그리고 나머지 몇 명은 조금 전 말한 그곳에 가서 한번 찾아보도록 해라.”노예찬은 손을 번쩍 들어 성혜인의 옷을 잡았다.그녀의 옷은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졌고, 몸에는 온통 상처투성이였다.노예찬이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해파리 도장이 진짜 거기 있는 거야?”그 말에 성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노예찬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전에 그가 그녀에게 해파리 도장이 어디 있는지 물었을 때도, 그녀는 똑같게 그곳이라고 이야기했었다.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어떻게 그런 곳에 아무렇게나 둘 수 있단 말인가!성혜인이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그는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다시 가서 더 고문해.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그냥 죽여버려. 나도 이젠 더는 못 참겠어.”이 게임은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K 쪽 사람들이 이미 그 안에 찾아왔고, 두 사람은 이제 정면으로 마주칠 것이다.게다가 반승제, 그를 죽이는 데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지 아직 모른다.“10 장로님, 저 여인을 그 사람한테 보내지 않으시겠어요? 그쪽에서 연구하기 위해 저런 똑똑한 사람들이 필요하잖아요?”노예찬은 입꼬리를 올리며 손끝을 문질렀다.구금 섬은 사실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짐승처럼 팔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지위가 높은 윗사람을 제외하면 아랫사람은 우리에 갇힌 짐승과도 같다.이것이 바로 구금 섬의 잔인한 진실이다. 그곳의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은 거의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구금 섬이라는 곳은 수년 전부터 이러했다.그 무리의 사람들은 좋은 싹을 고르러 여기 올 것이고, 충분히 똑똑한 사람들만이 선발될 것이다.노예찬은 처음부터 성혜인을 속이지 않았고, 실제로도 해파리 같은 문신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밑바닥의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수단일 뿐이었다.게다가 모두 그런 문신을 하고 싶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들은 자신이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도마 위의 고기가 되어 있을 뿐이다.그런 환경에서 자란 노예찬이 어떻게 보통 사람의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장로님, 그년이 남자보다 끈기가 있으니, 아마 그쪽 사람들도 엄청나게 좋아할 것 같습니다.”그 말에 노예찬이 눈을 반짝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순간 생겨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그가 승낙하려는 순간 해파리 도장을 찾으러 나갔던 사람이 돌아와 정중하게 무릎을 꿇어 보였다.“장로님, 찾았습니다.”그는 손에 해파리 도장을 들고 있었고, 그 도장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노예찬은 어리둥절했고 그 순간이 꿈만 같았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해파리 도장이었고, 성혜인이 잠시 머물렀
성혜인은 그렇게 동이 틀 때까지 그 자리에 걸려있었다.그 시간 동안 아무도 그녀를 만나러 오지 않았고, 그 앞에 누워 있는 시체를 제외하고는 그 방에 성혜인 혼자뿐이었다.햇빛이 쏟아졌을 때, 마침내 문이 열렸다.한 남성이 방에 들어왔고 그는 그녀를 묶고 있던 밧줄을 단검으로 잘라냈다. 그러더니 차가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이건 그놈이 남긴 쪽지야. 흐흐, 이미 우리가 불에 태워 죽여버렸거든.”말을 마친 뒤 그 남성은 바로 자리를 떠났다.성혜인은 아무 말도 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고, 머릿속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몇 초가 지나서야 그녀는 그 남자를 따라잡으려고 쫓아 나갔다.“이미 도장 찾은 거 아니에요?”“탓할 거면 말 많은 그 자식을 탓해.”그 남성은 말을 마친 뒤 한쪽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멀지 않은 곳에는 한 무더기의 재가 있었고, 거기에는 아직 온도가 남아 있는 채로 한 무더기의 시체 뼈가 있었다.그전까지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성혜인은 그 장면에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사람들이 그녀를 놓아줬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여기를 떠나야 했다.그녀는 발로 불에 타고 있는 재를 걷어찬 뒤 안에 있는 인골 몇 조각을 주웠다.성혜인은 지금 남아 있는 게 진짜로 인골인지 뭔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게다가 손은 인골을 줍는 바람에 새까맣게 그을렸다.그 잿더미의 온도는 매우 높았고 아직 불이 타고 있는 부분도 많았다.성혜인은 십여 분 동안 휘적이다 결국은 노예찬의 뼈라고 확신한 걸 주운 후에야 옷감을 찢고 그것을 그 안에 감쌌다.사실 그녀는 노예찬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단지 그녀가 구금 섬에서 눈을 뜰 때마다 노예찬이 보였을 뿐이었다. 비록 그의 행동이 괴상할 때도 많았지만, 성혜인은 줄곧 그를 위한 이유를 찾았다.예를 들면, 이런 곳에서 생활하니 좀 이상한 것도 당연한 거라고 말이다.아마 성혜인이 지금 임
노예찬은 떠나기 직전 다시 한번 잿더미를 살폈다. 그의 마음은 무언가에 긁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게다가 현재의 그 짜증스러움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주에 걸린 것 같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 외에는 이런 감정을 거의 느낀 적이 없다.잠깐동안 탐구를 하기 싫어서, 성혜인의 목숨을 살려준 건 그에게 있어 큰 자비를 베푼 거나 다름없다.*성혜인은 인골을 넣은 천 조각을 들고 1킬로미터도 못 가서 기절했다.그녀는 온몸이 아파 났고 심지어 몸에 열도 있음을 느꼈다.그 순간 그녀의 몸은 마치 불덩이처럼 타오를 것만 같았다.이때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살짝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눈을 뜨고 볼 힘조차도 없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작은 침대 위에 있었을 때였다.창밖에는 이미 해가 지며 어여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그녀는 손등에 바늘이 꽂힌 채 링거를 맞고 있었다.성혜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바늘을 뽑으려는 찰나, 누군가에 의해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사람은 바로 배현우였다.성혜인은 온몸이 굳어진 채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이제 회복이 된 건가.’배현우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침대 옆의 걸상에 앉았다.“좀 괜찮아졌어?”“이젠 다 회복된 거야?”배현우의 이마에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상처가 있었다. 아마 어젯밤 일일 것이다.어젯밤 그녀와 노예찬이 없는 걸 보고 배현우가 그들을 찾으러 나갔다가 실수로 머리를 부딪힌 거로 보인다.그는 손을 들어 상처가 있는 곳을 더듬는 동시에 매우 공격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성혜인은 그 상황이 아주 불편했다.“회복되었다고 봐야지.”그녀는 단번에 그가 배현우, 아니 반승우라는것을 알았다.반승우는 보통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응시한다. 그는 평소에 이렇게 음침한 시선으로 사람을 응시하지는 않는다.하지만 현재 이 남성의 시선은 너무도 공격적이다.성혜인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고 그와 어떤 교류도 하고 싶지 않았다.배현우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