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빠진 건물에 남아 있는 또 다른 두 사람은 여전히 1층부터 샅샅이 찾고 있었다.위층에서 소리가 들려온 뒤로 연유성과 지승우는 더는 잡담을 할 새도 없이 서둘러 소리가 나는 쪽으로 올라왔다.헐레벌떡 두 층쯤 올라왔을까, 덜컹대던 소리가 사라졌다.캄캄한 건물엔 녹이 슨 쇳가루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사르륵 소리를 내면서 마치 건물 전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두리번대던 연유성은 그제야 반대편 계단 입구에서 난 소리임 알게 되어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대체 왜 앞장서서 이딴 길로 온 거지?”아무
그래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지승현과 함께 있는 강하랑이 100% 안전할 거라고 확신했다. 여하간에 파란 머리 외국인은 이미 병원으로 이송한 상태이지 않은가. 길도 모른 채 계속 돌아다니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그래, 근데 돌아가는 길은 기억해?”지승우는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연유성을 보았다.계단 위에 올라선 그가 지승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넌 기억 안 나냐?”손전등을 이내 지승우를 향해 틀었다.어두컴컴한 곳에서 갑자기 손전등의 불빛에 밝게 빛나는 연유성의 얼굴을 본 지승우는 하마터면 삐끗할 뻔
지승우는 여전히 겁에 질린 마음을 진정하고자 했다.두려움이 가신 상태인 그는 다시 똑바로 서서 자신을 부르는 연유성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한참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일단, 직감대로 가볼까?”“...”지승우를 상대하기 귀찮았던 연유성은 먼저 걸음을 옮겼다.이미 들어올 때 한번 걸어본 길이니 조금이나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정 안 되면 가는 곳마다 표식을 남겨두어 다시 길을 찾으면 그만이다.방법을 다 시도해 본 두 사람은 결국 포기하였다.소용이 없었다.지승우는 또다시 주절대기 시작했다.건물
게다가 지승현은 젊은 나이에 지씨 가문을 장악하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친부를 밟아 그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니 절대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지난번에 한 번 얕봤다가 하마터면 목숨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지승현이 자신에게 분명 그런 짓을 할 사람이란 걸 확신하고 있었지만, 지난번처럼 얕볼 일은 더는 없을 것이다.내일 아침도 직접 이곳으로 올 생각이다.체력 회복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쉬는 것이 나았다.이미 단이혁에게도 문자를 보내놨다. 내일 아침에 바로 오라고.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직접 와서 두 눈
그런 그의 모습에 연유성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혹시 강하랑의 기억상실은 누군가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닐까?'다만 이 생각도 빠르게 머릿속에서 사라졌다.현대 의학에 따르면 아무리 유명한 심리학자라고 해도 인간의 기억을 100%로 말끔히 지우기는 어려웠다.물론 최면의 방법도 있었다. 상대만 협조를 잘해준다면 최면술사의 최면으로 원하는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잊게 할 수도 있다.수술로 기억을 없애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인간의 뇌 구조는 아주 복잡해 설령 정말로 두개골을 열어 수술한다고 해도 100% 성공할
담담한 어투로 앨런의 병문안을 가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강하랑이 납치된 데엔 전부 연바다의 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도 예전에 사람을 시켜 연유성의 친구를 데려가 피떡으로 만들지 않았는가.연유성의 말은 맹수의 꼬리를 밟고 수염을 뽑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맹수는 이빨 빠진 나약한 맹수였다.연씨 가문에서 쫓겨나고 모든 인맥과 세력은 전부 시어스에 있었으니 서해에서 연바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었다.그가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배후에 든든한 자본가와 인맥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하긴.”지승우는 가볍게 혀를 차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쯧, 난 그래도 미친 형을 꽤 대단한 놈으로 보고 있거든. 다른 건 우리한테 달려도, 숨는 건 정말로 쥐새끼처럼 교활하게 잘 숨어.”물론 지승현은 지금 건물 안에만 숨어있어 잘 숨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건물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강하랑을 찾지 못하지 않았는가?상황으로 봐서는 연바다가 강하랑을 데리고 나올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예전에 서해를 주름잡던 사람이긴 했지만, 혼란 속에서 강하랑의 종적을 찾아낸다고 해도 지승현이 순순히 강하랑을 내어줄지도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옆에서 자신을 향한 사나운 시선을 느꼈다.정말이지 상대가 의도를 알아챘다고 해도 바로 본색을 드러내다니.지승우는 어깨를 으쓱였다.상대가 이미 의도를 알아챘는데 굳이 계속 연기를 이어갈 필요가 있겠는가?핸드폰 너머엔 평온한 음성이 들려왔다.“사실 별건 아니야. 그냥 둘째 형님한테 한 마디만 전해줘. 사랑 씨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내가 잘 돌보다가 목적을 이루면 제때 집으로 돌려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해줘.”‘걱정하지 말라고?'‘웃기는 소리.'옆에서 듣고 있던 단이혁은 하마터면 육두문자를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