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굳이 의심할 것도 없이 그들을 찾아온 것은 분명했다.그러니 더는 앨런을 인질로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하랑 씨가 원하는 대로 저 파란 눈 외국인을 풀어줄게요. 대신 나랑 같이 가기로 한 거 약속 지켜야 해요.”여전히 강하랑의 손에 시선 고정하고 있었던 그는 그녀가 안심하고 있는 틈을 타 물었다.“하랑 씨, 손에 든 거 이젠 내려놓으세요. 그러다가 다치면 어떡해요.”강하랑은 그의 말대로 하지 않았다.“난 앨런이 안전한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볼 거예요.”그녀는 살짝 턱을 올리며 요구를 추가했다.“지승현 씨랑 나
그녀의 입을 막아버린 지승현이 그녀를 끌고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 강하랑은 자기를 보고 있는 연유성의 시선을 분명하게 느꼈다.하지만 찰나의 순간뿐이었다.만약 연유성이 빨리 찾아오거나 지승현이 1분만 좀 더 늦게 움직였더라면 세 사람은 아마 만났을 것이다.그녀도 왠지 모르겠지만 연유성이 자기를 봤다고 생각했고 그가 반드시 그녀를 데리고 나가리라 믿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발 늦었다.그녀를 끌고 가는 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설령 그녀가 계속 있는 힘을 다 끌어내 그의 손을 깨물어 피가 흥
여하간에 지금 강하랑에겐 파란 머리 외국인이 그녀의 친구였으니 말이다.이런 늦은 시각에도 직접 달려와 구하러 온 것을 보면 앨런은 강하랑에게 꽤 소중한 존재라는 소리였다.지승현의 이런 행동은 혹 떼려다 혹 붙인 꼴과 다를 바 없었다. 오늘 병원 앞에서 강하랑의 오빠인 단이혁한테 했던 행동만 생각하면 무조건 단이혁의 미움을 샀으리라 생각했다.지승우는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그렇게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 하고 있던 와중에 옆에 있던 연유성은 이미 복도에 있는 표식을 외워둔 상태였다.심지어 잊지 않고 지승우의 말에 대답도 하면
동시에 다른 층 복도에 있던 강하랑은 어느 한구석에 입 막힌 채로 결박되어 있었다.텅 빈 복도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메아리로 되어 마치 유령의 목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하랑 씨, 들었어요?”지승현은 여전히 강하랑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은 채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어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하랑 씨 친구인 연바다와 앨런이 예전에, 예전에 하랑 씨 친구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말이에요. 심지어 불까지 질러 하마터면 연유성을 죽게 할 뻔했죠. 봐요, 연유성 얼굴을 본 적이 있잖아요. 연유성이 예전에
쿨톤 계열로 심플한 인테리어는 마치 영화 속에서만 보던 고급스러운 그런 아파트 같았다. 특히 거실에 있는 빔프로젝터가 켜지고 방안의 불빛이 그것에 맞게 어두워지고 있을 때 더더욱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그녀가 해외에 있을 때 연바다는 시어스의 ‘갑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런 신기한 설비는 처음이었다.천장에는 여러 가지 불빛이 켜져 있었고 따로 커튼이 필요 없는 빔프로젝터와 이름 모를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어항과 합체된 냉장고,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를 인지하고 말을 하는 AI 로봇까지 있었다.어쩌면 지승
강하랑은 멈칫했다.고개를 들 엄두도 나지 않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이 사람은 뭐 이렇게 소리도 없이 다녀?'‘주방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소리도 안 낼 수가 있나?'입술을 틀어 문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그냥 앉아만 있자니 조금 심심해서요. 그래서 뭐라도 좀 보면서 시간을 보낼까 생각했죠.”지승현은 별말 없이 그저 나직하게 웃었다. 그녀의 말을 믿고 있는지 아닌지도 추측할 수 없게 말이다.그는 과일을 담은 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다시
낡아빠진 건물에 남아 있는 또 다른 두 사람은 여전히 1층부터 샅샅이 찾고 있었다.위층에서 소리가 들려온 뒤로 연유성과 지승우는 더는 잡담을 할 새도 없이 서둘러 소리가 나는 쪽으로 올라왔다.헐레벌떡 두 층쯤 올라왔을까, 덜컹대던 소리가 사라졌다.캄캄한 건물엔 녹이 슨 쇳가루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사르륵 소리를 내면서 마치 건물 전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두리번대던 연유성은 그제야 반대편 계단 입구에서 난 소리임 알게 되어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대체 왜 앞장서서 이딴 길로 온 거지?”아무
그래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지승현과 함께 있는 강하랑이 100% 안전할 거라고 확신했다. 여하간에 파란 머리 외국인은 이미 병원으로 이송한 상태이지 않은가. 길도 모른 채 계속 돌아다니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그래, 근데 돌아가는 길은 기억해?”지승우는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연유성을 보았다.계단 위에 올라선 그가 지승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넌 기억 안 나냐?”손전등을 이내 지승우를 향해 틀었다.어두컴컴한 곳에서 갑자기 손전등의 불빛에 밝게 빛나는 연유성의 얼굴을 본 지승우는 하마터면 삐끗할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