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폭죽이 터지고 화려한 크루즈가 서서히 멈춰 섰다. 크루즈가 움직이면서 만든 여울에는 다양한 색깔의 불꽃이 비춰서 일렁였다.크루즈의 갑판에서 연바다는 정장 외투를 어깨에 걸친 채 화재가 일어난 집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빛에는 어울리지 않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고, 손가락은 갑판의 난간을 톡톡 두드렸다. 마치 피아노라도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다.“어때요, 내가 준비한 불꽃놀이 예쁘죠?”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 난간을 두드리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시선은 살짝 곁으로 돌려서 남자를 바라봤다.그의 뒤에 멈춰 선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날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아. 네 마음속에는 강세미밖에 없잖아.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같이 자란 친구야. 내가 부모 없는 고아가 됐다고 네 이름 하나 못 부를 건 없잖아.”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닭똥 같은 눈물은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졌다. 이 모습을 보고서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도련님, 잠깐만요.”이때 곁에서 지켜보던 의사가 이상을 눈치채고 끼어들었다. 비록 연바다와 강하랑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세미라면 그도 잘 알았다.
“그래?”연바다는 약간 멈칫하면서 강하랑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어디가 달라졌을까? 한 번 맞춰보지 않을래?”“음...”강하랑은 주저하는 표정으로 익숙한데도 낯선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그는 분명히 연유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투와 행동에서 나오는 낯선 느낌은 도무지 무시할 수 없었다.왠지 모르게 연유성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강하랑은 금방 기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얼굴을 한 사람은 연유성이 유일했다.“모르겠어. 약간 낯설다는 느낌밖에 안 들어. 그
“...”강하랑의 서러움 가득한 얼굴에는 곧바로 놀라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붉어진 눈을 크게 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핸드폰을 바라봤다. 작게 벌린 입에서는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목소리가 나왔다.“벌써... 2023년이 됐다고?”“너는 언제라고 생각했는데?”연바다는 핸드폰을 거두더니 연유성과 비슷한 말투로 물었다. 시선은 계속 강하랑의 예쁜 얼굴에 향해 있었다. 그녀의 놀라움을 구경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기는 아닌지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미간을 찌푸린 강하랑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지금은 분명히 20
싸늘한 강바람이 부는 크루즈에서 연바다는 꼿꼿하게 서 있었다.“내가 확신이 섰다면 진 교수한테 부탁하지도 않았겠죠. 아니면 내가 했던 일을 또 할 만큼 심심해 보이던가요?”연바다와 함께 크루즈에 탄 의사는 다름 아닌 진씨 가문의 장남이자, 진정훈의 큰형인 진정석이었다. 대대로 의학을 공부하는 진씨 가문에서 장남인 그도 당연히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진정훈보다는 실력이 떨어져서 병원에서의 서열도 약간 떨어졌다.하지만 진씨 가문에서 실력이 가장 뒤떨어지는 의사라고 해도 밖에서는 훌륭하게 평가받는다. 한주에서 연바다가 인정하는 젊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만하기 짝이 없던 연성태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을 보고, 단원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가 정신 차리고 대답하기도 전에 연성태는 먼저 떠나버렸다.“형, 저 말 무슨 뜻일까요?”단이혁이 곁에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단원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점점 멀어지는 연성태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생각할 필요 없어. 연씨 가문에서 개입하기로 한 이상 우리가 막을 방법은 없으니까. 우리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하자.”말을 마친 단원혁은 잠깐 숨을 돌리다가 계속해서 물었다.“사랑이 쪽
처음 보는 ‘연유성’의 눈빛에 강하랑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강세미가 돌아오고 그녀를 따돌리기 시작한 다음에도 먼저 피하거나 정색하기만 했기 때문이다.‘내가 기억을 잃은 새로 사람이 이렇게나 변할 수 있다고? 이 사람 진짜 유성이가 맞아?’강하랑은 창백한 안색으로 가만히 서서 넋이 나간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원래 하려고 했던 말도 결국 끝까지 하지 못했다.자신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을 뒤늦게 인식한 연바다는 어두운 표정을 거두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하랑아, 왜 밖에 나왔어? 너 아직은 가만히 있어야 해, 진 교수가
“왜 그래, 유성아? 내가 뭘 잘못 말했어?”상처 때문에 강하랑은 욕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저 낮은 소리로 욕을 읊조리다가 그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기가 죽었다.연바다는 강하랑의 표정을 지켜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잘못 말한 건 없어. 그저 조금 놀라서 말이야. 하랑이,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그 순간, 연바다는 강하랑이 무언가를 떠올린 게 아닌가 싶었다.혹은 애초부터 연기한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보아낼 수 없었다.그녀의 눈을 마주하면 강하랑은 바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