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유성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보았다. 비록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이미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어르신은 여전히 느긋한 모습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네가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고 해도 난 괜찮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테니 말이지. 특히 젊은이들은 반항기가 넘치지. 내가 그래서 너 같은 젊은이들을 좋아하는 거야. 패기가 있잖아. 그리고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까지 하고. 다 인품이 훌륭해서 그렇네!”“그래서 어디에 있죠?”연유성은 쓸데없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물
그 말인즉 한 여자를 위해 이런 선택까지 할 가치가 있냐는 뜻이었다.연유성은 별다른 말도 없이 대답했다.“네. 후회 안 해요.”연유성의 눈빛은 단호했다.그는 이미 강하랑을 포기한 것에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어떻게 포기를 할 수 있겠는가?아무리 그녀가 더는 그를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물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그는 자신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래보다 지금 강하랑의 소식을 하나라도 더 알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찾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운학산.폐건물 꼭대기 층. 건물 표면에는 푸른 이끼가 가득한 아주 낡고 허름한 폐건물이었다.그리고 건물 안쪽 지하주차장에는 꽤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입구를 지키고 있는 존재감 없는 노랑머리와 중간에 모여 화투를 치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여섯 되었다...“필무 형님, 그 여자는 우리가 어떻게 처리할 건가요? 위에서 아직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화투판을 벌이고 있던 무리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맞은 편에 앉아 작은 눈을 찌
산속에서 피를 흘리고 덩그러니 버려졌으니 하루 동안 어떻게 버티고 있겠는가?노란 머는 다들 놀란 것 같은 기색에 말을 보탰다.“하지만 규철이와 형만이 목숨은 아직 붙어 있었어요. 이미 병원으로 보냈으니 아마 살아날 수 있을 거예요.”“이런 X발 것들이!”김필무는 바로 욕설을 내뱉으며 흉흉한 기세로 지시를 내렸다.“가! 가서 그 년을 데리고 와! 감히 우리 애들한테 그런 짓을 해?! 내가 꼭 이 대가를 치르게 해서 복수할 거야!”“하지만 필무 형님, 그년 신분이 보통 신분이 아닌 것 같았어요.”김필무 옆에 있던 동진은 바
철제 케이지의 문은 순식간에 열렸고 주위에선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치 지력이 달리는 원시인 같은 사람들이 사냥감을 보고 환호하는 듯한 소리였다.강하랑은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계속 자는 척할 수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떠 자신을 보고 흥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입술을 틀어 물었다.케이지 안으로 침을 뱉는 사람과 중지를 펴 보이는 사람, 그리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그녀가 어떤 물건인지 훑어보는 사람도 있었다.강하랑은 이런 시선에 다소 혐오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일단 그들의 말
대체 누가 도로를 이딴 식으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버려진 후로 길을 고치는 사람도 없었기에 더욱 겁이 났다.연바다는 그렇게 가는 길 내내 연도원의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짜증스럽게 반박하기라도 했지만, 점점 산길 깊이 들어갈수록 그는 상대하기도 귀찮아 무시해 버렸다.그리고 연도원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입을 다물게 되었다.차는 빠르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연바다는 바로 문을 열어 다쳤다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싸늘한 얼굴로 건물 쪽을 향해 걸어갔다.“아이고 도련님! 제발 좀 천천히 가세요!”연
이 소리를 듣고 지하 주차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움직임을 멈춘 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연바다 혼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같이 경멸의 미소를 보였다.“누가 이렇게 시끄럽나 했더니 다친 개새끼였네. 우리가 아니었으면 진작 산에서 죽었을 개새끼 말이야.”김필무는 연장을 휘두르면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여유로운 자태로 말을 이었다.“우리가 그동안 저 새끼한테 당했던 것만 생각하면 난 아직도 열이 치밀어 올라. 다들 마찬가지지?”사람들은 시끄럽게 동의했다. 주차장을 꽉 채운 소리는 그대로 한참이나 울려 퍼졌다.바닥에 엎어
만약 도망가는 사람을 새에 비유한다면, 주차장의 모습은 지진의 전조와 같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연바다와 같은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김필무를 제외한 다른 사람도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주차장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연바다는 느긋하게 바닥에 쓰러진 강하랑을 향해 걸어갔다.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깔고 누운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인지, 그녀는 눈도 뜨지 못하면서 몸을 한쪽으로 옮겼다.그녀의 앞에 꿀어앉은 연바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이 와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