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강하랑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얼굴도 파리하게 질려버렸다.연바다가 어떻게 알았을까? 강하랑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연바다는 성큼 다가와 그녀에게 얘기했다.“단하랑 씨가 나를 바보로 아는 것 같은데... 이걸 어쩌지. 내 두 눈은 멀쩡하거든요.”강하랑은 이를 꽉 깨물었다. 검은 눈동자에는 분노가 피어올랐다.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눈이 뒤통수에 붙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가 비틀거리며 이리저리 부딪힌 것은 산길이 복잡해서이기도 했고 또 일부러 단서를 남기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앞에서 먼저 걸어가던
그렇게 외치는 강하랑의 목은 아주 아팠다. 하지만 화가 난 김에 모든 욕설을 연바다에게 퍼부어야겠다고 생각했다.욕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강하랑은 발로 그를 찼다. 어디를 차게 되던지 그저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마음이었다.연바다는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버둥대는 두 발을 봤다.“왜 이렇게 발차기를 못 해서 안달이에요?”강하랑은 어이가 없어 코웃음만 나왔다.연바다 같은 미친놈에게는 발차기를 몇 번 해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휘둘렀을 때는 강하랑 뿐
얼마나 우스운 사람인가.사람은 원래 다 이기적이다.강세미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라이벌을 제거하는 것은 연바다가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과 딱 맞았다.더 높이 오를 수만 있다면 길을 막는 돌덩이쯤은 쉽게 치워버려야 한다.연바다가 강세미를 도운 것은,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나서 흥미가 생긴 것이었다. 그녀에게 충분한 자원을 주면 정말 그들이 말한 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결말은 좋지 못했다. 그는 그 이유가 강세미의 수단과 방법이 옳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야심은 많으나
연바다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강하랑에게 예전의 일을 알려주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강하랑은 ‘살아남았고요’라고 얘기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았다.그녀 또한 죽음 앞에서 몇 번이고 살아남았었으니까.강하랑은 연바다의 어깨에서 조용해졌다.지금의 그녀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이유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목이 쉰 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연바다 씨, 살아남는 게 힘들다는 걸 알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예요? 해외에서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연유성한테 불만이 있다고 해도 잘 얘기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친형제
강하랑은 연바다의 말을 들으면서, 또 이 처량한 풍경을 보면서 차차 이성을 되찾았다. 어슴푸레한 하늘에 빛이 점점 밝아졌다. 아침의 햇살이 구름을 가르고 마침 호수를 비추어 환한 빛이 반사되었다.구름에 어느 정도 가려지긴 했지만 햇살 덕분에 음습했던 기운은 모조리 사라져버렸다.강하랑은 고개를 들어 연바다를 보면서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연바다 씨, 저를 좀 옮겨줄래요? 저쪽의 풍경을 보고 싶은데 앞의 나무 때문에 안 보여요.”연바다는 그 소리를 듣고 의외라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속도 좋네요. 이런 상황에서 풍경을 보
“연바다, 하랑이와 연씨 가문은 상관이 없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화풀이 해! 상관없는 사람을 건드리지 말고.”연바다가 강하랑의 목 가까이로 칼을 가져가자 연유성은 표정이 굳어서 바로 앞으로 달려들어 연바다를 제지하려고 했다.연유성은 긴장해서 비수를 보면서 얘기했다.“원하는 게 뭐야. 다 들어줄 테니까 하랑이를 놓아줘.”“아, 정말 감동이네.”연바다는 고개를 숙여 얇은 입술로 강하랑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연 대표가 단하랑 씨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좋아요?”목에 닿는 서늘한 기운에 강하랑은 차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라니.이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라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었다!잡혀있는 강하랑뿐만이 아니라 연유성 뒤에 있던 단이혁 등 세 사람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한 남자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 인질을 넘겨주겠다는 말은 아주 치욕적인 말이었다.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나마 담담해 보이는 사람은 바로 연유성이었다.그의 얼굴엔 표정 변화가 없이 여전히 같은 자세로 연바다를 상대하고 있었다.연바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하, 동생아. 이 형이 친히 생각해준 방법이 왜, 마음에 들지 않는 거냐?”“헛소
동시에 연유성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연유성의 오른쪽 무릎이 비가 내려 축축한 바닥에 닿으려고 할 때 연바다의 느긋한 소리가 강하랑의 귓가에 다시 들려왔다.“단하랑 씨, 어때요? 좀 감동이려나? 한 남자가 단하랑 씨를 위해 무릎을 꿇는데 말이지. 쯧...”“연바다.”강하랑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참으며 자신을 잡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이를 빠드득 갈며 불렀다.남자는 여전히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흐음? 왜요. 단하랑 씨는 내가 주는 선물이 마음에 안 드시나?”‘선물? 또 선물 타령이야?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