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월은 결혼하고 나서 본가에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정씨 집안사람들은 가끔 뉴스에서 단씨 가문의 소식과 함께 볼 뿐이었다. 그러면서 시집 잘 갔다고 감탄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녀가 언급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그녀보다는 단지헌이나 혁이들이 더 많이 언급되었다. 그들은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전부 영호에서 내놓으라 할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아내 혹은 어머니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분가에 관한 일을 토론하면서도 역시 정희월을 부르자고 한 사람은 없었다. 텀블러 안의 물이 정제되고 거실에는 한참이나 정적이 맴
“에취!”MRC 그룹으로 가는 길, 강하랑은 크게 재채기를 했다.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강하랑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록색 불이 켜지자 그녀는 다시 길을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스쿠터와 동시에 울리는 핸드폰에 강하랑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행히 차 속도가 빠르지도 않았고 커브를 도는 것도 어렵지 않아서 다친 곳은 없었다.그러나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차 속도를 조절하고 난 강하랑은 전화가 끊기기 전에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사랑 씨,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
단이혁의 목적을 떠올리니 강하랑은 저도 모르게 긴장되고 흥분되었다.“맞다, 언니. 오늘 어디서 뭘 했어요?”“어디에 있었긴요. 촬영 현장에 있었죠. 요즘 찍고 있는 게 있는데 요 며칠 사이에 끝나 거든요. 일하느라 시간이 없어요.”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업무를 떠올리면 죽을 만큼 싫어한다. 그게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직업이라고 해도 말이다.온마음도 예외는 아니었다.배우가 된 것은 온씨 가문에게 반항하기 위해서였다. 온씨 가문은 연예계를 거들떠보지 않았으니, 온마음은 바로 그들에게 반항하려고 했다.연기하면서 캐릭
“그럼 언니의 뜻은... 만약 결혼 상대가 이혁 오빠라면 괜찮다는 뜻이에요?”강하랑은 온마음의 뜻을 알아차리고 웃으면서 넌지시 물었다.“난...”온마음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당연히 괜찮았다. 다만 온마음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을 뿐이다.그녀가 생각했을 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까.단이혁은 영호시 단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다. 집안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XR엔터의 대표였다. 그러니 단이혁은 온마음과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전화를 끊은 후, 강하랑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차에 앉아 기계음을 듣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옆으로 밀어놓았다.온마음에게서 확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녀가 단이혁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그래도 온씨 가문에서 온마음에게 찾아준 결혼 상대들에 비하면 단이혁을 꽤 좋은 상대였다.만약 결혼한 후의 생활이 별로 좋지 않다면, 강하랑이 나서서 이혼을 시킬 것이다.그때가 되면 온마음은 온씨 가문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니 온씨 가문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단, 단, 단 대표님!”양정인은 깜짝 놀라서 서채은 옆에 똑바로 섰다.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담임한테 걸린 사람 같았다.단원혁은 양정인을 쳐다보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는 서채은을 가볍게 훑었다.양정인에 비하면 서채은은 매우 평온해 보였다.서채은은 일어나지 않고 천천히 몸을 돌려 단원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양 비서가 모르는 게 있어서 저한테 물어보고 있었어요. 그러는 김에 단 대표님께 보여드릴 서류를 들고 왔어요. 다른 일은 없어요.”양정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얘기했다.“네, 맞습니다. 서 비서님한테 물을 것이
그런 사람을 두고 설레지 않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람이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원래도 다른 세상의 사람이니까. 억지로 같은 세상을 공유하려고 하면 좋은 결말을 보지 못할 것이다.시작하기 전에 깨끗하게 잘라내는 것이 나았다.“단 대표님, 해야 할 말은 전에 다 한 것 같은데요. 한 번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왜 또 물으시죠?”서채은은 작게 웃으며 부드럽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 말을 비수처럼 단원혁의 심장을 매정하게 파고들었다.분명, 그날의 두 사람은 분명 좋았다.단원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알겠어.”단원혁은 시선을 내리고 서채은이 시선을 돌렸을 때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곧 결재할게. 하지만 지금의 업무를 양 비서한테 인수인계하는 데 며칠 걸릴 거야. 그리고 어떤 서류들은 기밀이니까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 연봉에 관해서는 내가 결재할 때 얘기해 놓을 테니까 다른 일이 없다면 돌아가도 돼.”“감사합니다, 단 대표님.”확실한 대답을 얻은 서채은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인수인계의 문제에 관해서 얘기한 후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떠났다.몸돌려 떠나는 순간,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바쁜 척하는 단원혁이 시선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