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욕하고 있던 고양이가 곧 자신의 곁에 있을 거란 생각에 단이혁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그리고 정희월이 한 말도 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그래서 단지헌과 같이 가라는 말에 그도 흔쾌히 동의했다.“어머니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노인네랑 그럼 같이 가죠. 뭐.”태도는 아까보단 많이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입은 아니었다.노인네라고 부르는 단이혁에 단지헌은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내게 되었다.“이 썩을 놈아, 누가 아빠를 그렇게 불러?”만약 옆에 있던 정희월이 아니었다면 그는 슬리퍼를 들어 단이혁을 향해 던졌을 것이다.
“연유성. 그래, 내가 여기 오기 싫어하는 것은 인정할게.”강하랑은 솔직하게 말하면서 그의 칠흑 같은 두 눈동자를 똑바로 보았다.“만약 널 보살폈던 그동안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면 그냥 말해. 굳이 네 몸으로 이런 장난을 할 필요 없으니까.”이미 많은 것을 겪었던 강하랑은 더는 3년 전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연유성을 볼 수가 없었고 그의 곁에 맴돌 수가 없었다.만약 3년 전이였다면, 연유성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매일매일 병실로 찾아와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을 것이다.아무리 그가 다친 것이 그녀 때문이
큰 소리가 들려왔으니 이렇게 우뚝 서서 지켜보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그는 계속 서 있기만 한 지승현을 향해 눈빛을 보냈다. 나가라고. 그러자 지승현은 그제야 손에 있던 물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두 사람만 남게 했다.처음이었다. 지승우는 지승현을 향해 빈정대지도 않았고 아주 담담한 얼굴로 나가자고 했다.다만 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지승우의 태도는 바로 돌변했다.“야, 지승현. 너 어디 문제 있는 거냐? 왜 허구한 날 자꾸만 사랑 씨를 졸졸 따라다니는 건데, 재밌냐?”“난 사랑 씨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중이야. 이것도 문제
전에도 말했듯이 지승현은 지승우의 용서를 구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또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 책임이야. 그러니 변명은 하지 않을게. 날 때리든 욕하든 네 마음대로 해, 난 가만히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내가 사랑 씨를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집안의 상황으로 봤을 때, 이제 더 이상의 갈림길은 없을 거야. 설사 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 씨가 아닌 다른 걸 선택했다고 해도, 단씨 가문에서 사랑 씨를 지켜주지 않을까?”“너 진짜...”지승우는 지
병원.지승현과 지승우가 나간 다음 병실에는 침묵이 잠겼다.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강하랑은 결국 먼저 입을 열어 사과했다.“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내 태도가 너무 삐딱했지? 만약 그것 때문에 퇴원하려는 거라면 내가 간병인을 찾아줄게. 그리고 앞으로는 간병인을 통해 도시락을 배달해 줄게, 어때?”강하랑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수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도시락을 배달해 주는 사람이라면 그녀라도 꼴 보기 싫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유성의 기분을 위해 억지 미소를 짓고
강하랑은 당황한 것도 잠시 연유성의 시선에 당당히 맞섰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은 채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너 입술이 너무 말랐어. 물 좀 많이 마셔. 물 마시기 불편하면 승우 씨한테 솜으로 닦아달라고 해.”말을 마친 강하랑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문은 달칵 소리와 함께 조용히 닫혔다.병실 안에서 연유성은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면서 천천히 입술을 매만졌다. 찢긴 피부가 만져지면서 통증도 전해졌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온 지승우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우뚝
강하랑은 조용히 밥 먹는 데 집중했다. 이때 단이혁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속삭였다.“단사랑, 너 나랑 한주에 가서 며칠 지내지 않을래?”맛있게 밥 먹던 강하랑은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모른 듯 멈칫했다. 단이혁은 그녀를 영호에 묶어두지 못해 안달 난 사람이기 때문이다.“오빠,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네가 영호에서 심심할까 봐 그러지.”단이혁은 어두운 안색으로 뻔뻔하게 말했다. 누가 들어도 억지에 가까운 말이었다.지금의 강하랑은 영호를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병원에 있는
“아...”강하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지승현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녀도 한때 지승현과 만나 볼 생각한 적 있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자꾸만 무언가 찝찝하게 모자란 것 같았다. 지금은 물론 어떻게 대답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이다.이때 지승현이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대답해달라고 재촉하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당황하지 말아요. 우리 당분간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잖아요.”다정한 말투에 마음이 놓인 강하랑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도 지승현과 같은 친구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