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랑은 당황한 것도 잠시 연유성의 시선에 당당히 맞섰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은 채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너 입술이 너무 말랐어. 물 좀 많이 마셔. 물 마시기 불편하면 승우 씨한테 솜으로 닦아달라고 해.”말을 마친 강하랑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문은 달칵 소리와 함께 조용히 닫혔다.병실 안에서 연유성은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면서 천천히 입술을 매만졌다. 찢긴 피부가 만져지면서 통증도 전해졌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온 지승우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우뚝
강하랑은 조용히 밥 먹는 데 집중했다. 이때 단이혁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속삭였다.“단사랑, 너 나랑 한주에 가서 며칠 지내지 않을래?”맛있게 밥 먹던 강하랑은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모른 듯 멈칫했다. 단이혁은 그녀를 영호에 묶어두지 못해 안달 난 사람이기 때문이다.“오빠,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네가 영호에서 심심할까 봐 그러지.”단이혁은 어두운 안색으로 뻔뻔하게 말했다. 누가 들어도 억지에 가까운 말이었다.지금의 강하랑은 영호를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병원에 있는
“아...”강하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지승현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녀도 한때 지승현과 만나 볼 생각한 적 있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자꾸만 무언가 찝찝하게 모자란 것 같았다. 지금은 물론 어떻게 대답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이다.이때 지승현이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대답해달라고 재촉하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당황하지 말아요. 우리 당분간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잖아요.”다정한 말투에 마음이 놓인 강하랑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도 지승현과 같은 친구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알았어요.”강하랑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지승현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그럼 내일 봐요.”말을 마친 지승현은 차에 올라타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강하랑은 제자리에 한참이나 멈춰 서서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 차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어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신이 났대?”멀지 않은 곳에서 예고 없이 들려온 목소리 때문에 그녀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화들짝 놀라면서 멈춰 섰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초점을 맞추고 나서야
“오빠! 좀 천천히 걸어!”강하랑은 어찌어찌 단이혁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목덜미를 끌어당기는 손 때문에 걷기가 너무 불편했다.그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고 단이혁은 속으로 투덜거렸다.‘하, 이 멍청한 녀석을 진짜 어떻게 하지? 한 번 당했으면 정신 차려야지, 그새 또 다른 놈한테 속다니... 그리고 여우남한테 뭐? 좋은 사람이라고?’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단이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녀의 앞으로 가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단사랑, 너 정신 좀 차려. 연유성한테 어떻게 당했는지 벌써 잊은
‘강세미가... 죽었어?’강하랑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녀가 강세미에 관한 기억은 교통사고에 멈춰 있었다. 그 뒤로는 인터넷에서 얼마나 떠들어대든 신경 쓰지 않았다.시간이 흐르자 한주에서 겪었던 일은 마치 허망한 악몽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이렇듯 기억 속의 이름이 다시 한번 들리니 꿈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안 그러면 말로 이루 형용하지 못할 감정이 물밀듯 밀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강하랑은 연유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연유성은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마치 왜 보냐고 묻는 것
기자는 질문을 계속했다.“강세미 씨의 사망이 연유성 씨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신 적 있습니까? 강세미 씨가 교통사고를 낸 이유도 연씨 가문에서 파혼을 통보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연씨 가문에서는 왜 갑자기 파혼을 통보했습니까?”예리한 질문이 나오자 강하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인터뷰 받는 사람이 진짜 연유성이면 몰라도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하는지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아무리 연유성이 미운 그녀라고 해도 그가 짝퉁 때문에 나락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그러는 순간 그녀는 문득 위험한
“너... 이제 어떡할 거야?”뉴스 채널에서는 벌써 다른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볼륨을 줄이지 않았는데도 병실 안은 평소보다 훨씬 적막하게 느껴졌다.강하랑은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연유성은 별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는 눈빛으로 가만히 있기만 했기 때문이다.얼굴에 붕대를 감은 탓에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더욱 잘 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강하랑을 바라봤다.“하랑아, 네가 해외에서 안 좋은 일을 겪은 적 있다는 건 승우한테 전해 들었어. 그때 청진 별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