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요.”강하랑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지승현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그럼 내일 봐요.”말을 마친 지승현은 차에 올라타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강하랑은 제자리에 한참이나 멈춰 서서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 차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어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신이 났대?”멀지 않은 곳에서 예고 없이 들려온 목소리 때문에 그녀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화들짝 놀라면서 멈춰 섰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초점을 맞추고 나서야
“오빠! 좀 천천히 걸어!”강하랑은 어찌어찌 단이혁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목덜미를 끌어당기는 손 때문에 걷기가 너무 불편했다.그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고 단이혁은 속으로 투덜거렸다.‘하, 이 멍청한 녀석을 진짜 어떻게 하지? 한 번 당했으면 정신 차려야지, 그새 또 다른 놈한테 속다니... 그리고 여우남한테 뭐? 좋은 사람이라고?’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단이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녀의 앞으로 가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단사랑, 너 정신 좀 차려. 연유성한테 어떻게 당했는지 벌써 잊은
‘강세미가... 죽었어?’강하랑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녀가 강세미에 관한 기억은 교통사고에 멈춰 있었다. 그 뒤로는 인터넷에서 얼마나 떠들어대든 신경 쓰지 않았다.시간이 흐르자 한주에서 겪었던 일은 마치 허망한 악몽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이렇듯 기억 속의 이름이 다시 한번 들리니 꿈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안 그러면 말로 이루 형용하지 못할 감정이 물밀듯 밀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강하랑은 연유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연유성은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마치 왜 보냐고 묻는 것
기자는 질문을 계속했다.“강세미 씨의 사망이 연유성 씨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신 적 있습니까? 강세미 씨가 교통사고를 낸 이유도 연씨 가문에서 파혼을 통보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연씨 가문에서는 왜 갑자기 파혼을 통보했습니까?”예리한 질문이 나오자 강하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인터뷰 받는 사람이 진짜 연유성이면 몰라도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하는지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아무리 연유성이 미운 그녀라고 해도 그가 짝퉁 때문에 나락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그러는 순간 그녀는 문득 위험한
“너... 이제 어떡할 거야?”뉴스 채널에서는 벌써 다른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볼륨을 줄이지 않았는데도 병실 안은 평소보다 훨씬 적막하게 느껴졌다.강하랑은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연유성은 별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는 눈빛으로 가만히 있기만 했기 때문이다.얼굴에 붕대를 감은 탓에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더욱 잘 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강하랑을 바라봤다.“하랑아, 네가 해외에서 안 좋은 일을 겪은 적 있다는 건 승우한테 전해 들었어. 그때 청진 별장에
연유성은 원래도 정신이 약간 아픈 친구이다. 심지어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도 받고 있어서 다중인격이라고 해도 놀랄 건 없었다.적어도 지승우가 아는 연유성은 절대 강하랑을 해칠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껏 찾은 모든 정보의 화살이 그를 향해 있었다.이뿐만 아니었다. 강세미에게 최면이라도 당한 것처럼 싸고돌던 그는 강하랑이 돌아오자마자 또 그녀의 과거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지승우가 괜히 수성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물론 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황은 충분히 설명되었다. 그는
강하랑과 마찬가지로 지승우는 깜빡이 없이 들어온 엄청난 소식에 넋이 나가버렸다.‘친형? 친혀엉?! 세상 어느 친형이 이런 짓을 하는데?’지승우가 그렇게 미워하는 지승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지태석의 일에서 약간 더럽게 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지승우가 KL그룹 일에 훼방을 놓아도 그는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다. 마치 몇백억 원쯤은 지승우의 분풀이를 위해 쿨 투자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하지만 연씨 가문은 정말 장난 없이 살벌했다. 연유성이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지승우는 정신 차리지 못하고 어리벙벙해 있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온서애 얘기가 나오기 바쁘게 연유성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에는 ‘어머니’ 세 글자가 떡하니 보였다.연유성은 급하게 전화를 받지 않고 한참이나 기다렸다. 그리고 온서애가 애가 탈 때쯤 느긋하게 손을 뻗어서 수락 버튼을 눌렀다. 온서애의 목소리는 전화가 통하기 바쁘게 밀려 나왔다.“연유성,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며칠이나 출근하지 않은 걸 눈 감아 주려고 했더니, 강세미 그 여자랑 또다시 엮여서 소란을 피워? 그 여자는 죽어서도 사람을 귀찮게 구는구나. 내가 너 때문에 못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