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랑은 지승우가 보내온 문자를 볼 사이도 없었다.그녀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은 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연유성의 병실에서 나온 강하랑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자 그제야 지승현을 병실에 두고 왔다는 것이 떠올랐다.머리로는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멈춰서서 입원실의 복도에 아무렇게나 앉아 지승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저도 모르게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났다.멍한 시선으로 입월실 밖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강하랑의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사실 예전에도, 강하랑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엄청 신기한 감정이다.그 감정은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것이니까.귀여운 동물을 좋아하고, 창밖의 따스한 햇살을 좋아하고, 책으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리고 단지 이 사람이라서 좋아한다.강하랑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진지하게 지승현을 쳐다보았다.“승현 씨, 승현 씨가 얘기한 것처럼, 제가 아까 한 말은 확실히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어요. 그저 걸어오는 승현 씨를 보고 잠깐 마음이 설렜던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승현 씨가 자꾸만 저를 도와줘서, 혹은 승현 씨가 매너 있어서...
“네.”강하랑은 정희연 모녀를 무시하고 정희월 쪽으로 걸어갔다.물론 침대에 누워있는 정수환과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옆의 정하성과 송미현과도 인사를 나누었다.무시당한 정희연은 화가 치밀어 올라 의미심장한 말투로 얘기했다.“어떤 사람들은 참 고귀한 척한다니까. 보고 싶은 것만 보나 봐. 예의가 없다고 하기에는 웃어른들한테 인사할 줄도 알지. 그렇다고 예의가 있다고 하기에는 인사를 반만 하는데, 도대체 어쩌면 좋겠니.”아예 대놓고 강하랑을 욕하는 것이었다.강하랑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정희월의 어깨를 주무르며 낮은
“단씨 가문이 돈이 많은 건 단씨 가문의 일이야. 네 언니가 얼마나 잘 지내던지, 재산을 나눠 갖는 것과 상관이 없어. 내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이게 맞는 말이지 않은가.정희월이 아무리 단씨 가문에서 잘 지낸다고 해도 그녀는 정수환의 친딸이었다.재산을 나눠줄 거라면 정하성, 정희월, 정희연에게 똑같이 나눠주어야 한다.정희월도 친딸이니까!잘 살고 있다고 재산을 주지 않는다니. 그럼 정하성과 정희연은 뭐 못 살고 있어서 재산을 나눠 갖는 것인가? 매주에 한 번씩 미용원에 들르는 정희연이 못살고 있
병실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정희연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정수환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저 이런 정희연이 익숙하다는 듯 담담하게 앉아있었다. 뭐,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매일같이 화를 내는 정희연을 상대하다가는 화병으로 죽을 것이다.정희연이 떠난 후, 사람들은 병실에 더 머무르지 않았다.정수환과 정하성은 원래도 몸이 안 좋은 정희월이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정희월은 정하성 부부와 인사를 나눈 후, 도시락통을 가지고 떠났다.정하성 부부는 강하랑과 정희월이 떠나는
긴장한 송미현은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이런 사업은 잘 몰라서... 제게 물으셔도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하성 씨한테 물어보세요.”“괜찮다. 네 생각을 얘기해 봐.”정수환은 담담한 표정으로 얘기했다.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사업에 수완이 좋은 여자가 많았다. 부부가 앞으로 분가해서 사업을 한다면 서로 잘 도와줘야 할 것이다.전에 송미현에게 이런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집안일만으로도 힘든 송미현에게 정하성의 일까지 도우라고 하면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것이라고 생각했
정수환도 고민 중이었다.정희연이 자기한테 편애한다고 얘기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원래도 일한 자가 얻는 게 있는 법이다. 정희연이 가문을 위해서 한 것이 뭐가 있던가.정수환이 99%의 재산을 정하성에게 넘긴다고 해도 그건 정당한 일이다. 정희연은 반박할 말이 없다. 정수환은 그저 싸움이 싫었다. 집안싸움은 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단씨 가문에서 반대하면 늘솜가는 이대로 몰락할지도 모른다. 한남정은 늘솜가가 나온 후 생긴 한식집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포장마차처럼 운영하며 떠돌이들을 거두던 곳인데 후에는 갑자기
요리 콘테스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그냥 접을 수밖에 없었다.물론 1위를 뽑지는 않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늘솜가의 홍보를 톡톡히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화재로 인해 홍보를 더 보충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식당들은 거의 자기의 목표를 다 달성한 셈이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자신만만해하던, 요식업계의 가장 큰 대회에서 꿈을 펼쳐보려던 소년이다.요리를 완성했지만 그 요리에 대한 평가도 듣지 못했으니.오히려 준비를 제대로 못 한, 그저 홍보를 위해 나온 사람들은 기뻐했다.어차피 화재로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처참한 점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