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민수는 곧바로 대문을 비춘 CCTV 영상을 정희월에게 보여줬다. 차에서 내린 청년의 얼굴은 화면에 크게 비쳤다.‘진짜 처음 보는 청년이네.’상대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안경 너머의 인상이 약간 익숙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연유성과 지승우는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정희월도 시름을 놓고 말했다.“이만 데리고 와. 사랑이 친구인 것 같으니 친절히 대해주고.”“네.”진민수는 대답하기 바쁘게 몸을 일으켜서 손님들을 마중하러 갔다. 그렇게 지승현 등은 단씨 가문의 본가에 들어서게 되었다.지씨 가문의 후계자인 지승현도 단씨 가
아무것도 모른 채 생글생글 웃는 강하랑과 달리 눈치 빠른 지승현은 가만히 앉아서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인식했다. 그러면서도 모르는 척 조용히 찻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셨다.지승현이 찻잔에서 입술을 떼기 바쁘게 참다못한 정희월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이름이 승현이라고 했죠? 성은 뭐예요? 일은 어디에서 하나?”“소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안성 KL그룹의 지승현이라고 합니다. 혹시 들어보셨어요?”지승현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정희월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본가에서 요양 생활을 보내는 그녀는 업계의 일에 대해 잘
정하성은 아직도 정수환을 따라 공부하던 시절을 잊지 못했다. 가끔 실수했을 때 박재인이 곁에서 비웃던 장면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악몽과 같았다. 사이가 나쁜 건 분명히 정수환과 박재인인데 중간에 끼인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공부하던 시절뿐만 아니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도 그는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정수환과 박재인이 만날 때마다 그의 요리 실력을 한바탕 비평했기 때문이다.그래도 요즘은 정씨 가문과 박씨 가문이 만날 일이 없어서 악몽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박재인과도 더는 만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희월은 적당한 타이밍을 찾아서 입을 열었다.“우리 영호에 또 구경거리가 한둘이 아니지. 마침 놀기 좋은 계절에 잘 왔어. 오전에 선선할 때 나갔다가 더워지면 우리 집에 오려무나. 같이 수다도 떨고, 과일도 따고 하면 참 좋겠어. 그러고 보니 우리 사랑이도 영호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같이 구경하면 어떨까?”“저야 당연히 환영이죠. 사랑 씨만 원한다면요.”지승현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자제한 입술과 달리 반달처럼 휜 눈을 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강하랑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게 한 마디 더 보탰다
“으이구, 바보야!”정희월이 말한 바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말하지 않았다. 강하랑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도 다그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정희월과 단지헌도 자유롭게 연애하고 결혼했다. 그래서 강하랑 또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 그래서 지승현이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강하랑이 싫다면 포기할 생각이다.더구나 강하랑은 이제 금방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을 시집보낼 생각은 그녀도 당연히 없었다.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은 더욱 안 됐다. 아
금방이라도 싸움이 불붙을 것 같은 분위기에 강하랑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지승우를 말려서면서 설명했다.“내가 승현 씨한테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온 거예요. 오늘 여러모로 도움 많이 받았거든요. 미안해요, 나는 승우 씨가 형이랑-”“형 아니거든요!”지승우는 처음으로 강하랑에게 화를 내면서 손을 뿌리쳤다. 세 사람이 한데 모인 좁은 병실 문 사이에서 밀려 나간 강하랑의 팔은 퍽 소리를 내면서 문틀에 부딪쳤다.갑작스러운 통증에 강하랑은 인상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팔을 감쌌다. 그 모습에 지승현과 지승우 둘 다 안색이 변했
강하랑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연유성 걱정을 그만하고 싶기는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문 상상은 아무리 기를 써도 멈출 수 없었다. 특히 사람들이 그의 얼굴에 남은 흉터를 바라보는 상상 속의 눈빛이 가장 끔찍했다.그녀는 생각하다 못해 한숨을 쉬면서 연고를 들었다. 연고라도 바르며 잠시 상상을 멈출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얇은 소매를 위로 거두자, 흉터로 가득한 팔이 드러났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흉터는 더 이상 처음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치지 않은 쪽 피부에 비해서는 여전히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흉터 사이
지승우는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언성을 높이려는데 지승현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꼴 보기 싫으면 밥이나 빨리 먹지? 네가 도시락 통을 비워야, 내가 갈 거 아니야.”지승우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안경을 닦는 지승현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안경을 바닥에 던져 가루가 될 때까지 짓밟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면서 말이다.‘재수 없는 새끼.’“야, 좋은 말로 할 때 사랑 씨한테서 떨어져라.”지승우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지승현은 그를 곁눈질로 힐끗 보더니 안경을 다시 쓰면서 입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