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심사위원증을 대충 휙 던지며 말했다.“이 심사위원은, 더는 해줄 흥미가 뚝 떨어졌네요. 미리 말하는데, 당신들 때문에 한남정이 가는 건 아니에요. 당신들이 우리 한남정의 평가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여하간에 한남정은 대회에 참가만 하면 우승이니까요. 당신들은 그 우승도 못 해보고 번마다 처참하게 졌잖아요. 우리 한남정에선 이런 쓰레기를 맛보고 평가할 생각은 없어요.”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면서 팩트로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사실이 아닌가?번마다 대회에서 지는 건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
익숙한 목소리에 강하랑은 고개를 돌렸고 사람들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에 정장을 빼입은 연유성이 있었다.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는 유난히도 허리가 곧고 커 보였다. 두 손을 정장 바지에 찔러넣은 채 긴 다리를 휘적이며 오는 그의 모습에서도 곱게 자란 티가 났다.강하랑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연유성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그녀는 시선을 옮겨 연유성의 얼굴을 보았다.그녀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어제 이 남자는 단이혁에게 맞아 입가가 터졌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보니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퉷!”박재인은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체면이 뭔지 아느냐고? 하, 내가 우리 선배님을 심사위원으로 보내줬더니, 뭐 체면? 이 사람은 내 선배님이야, 선배님. 알기나 해? 나보다 실력도 없는 게 체면을 운운해!”“너-”정수환은 바로 반박하며 욕하려 했지만, 순간 이상함을 감지하곤 멈추었다.‘무슨 소리지? 선배님이라고?'정수환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박재인을 훑어보곤 다시 고개를 돌려 강하랑을 보았다.‘선배님? 박재인이 어려도 한참 어린 여자애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하, 누굴 속여!'
“잘못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죠. 사과받아줄게요.”잘못을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에게 강하랑은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였다.그녀는 진지하게 눈앞에 있는 소년을 보더니 몇 마디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아직 어리니 주위 사람들이 하는 몇 마디에 휩쓸리는 건 아주 정상이에요. 하지만 다음번에는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길 바라요. 정말로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이 사실인지,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고 입을 여세요. 제가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쪽이 아직 나이가 어리니, 또 제때 사과하고 반성하니 받아 주는 거예요.
강하랑이 추억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단사랑 씨는 아까 그 소년이 아주 신경 쓰이나 봐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연유성의 그윽한 눈빛을 보게 되었고 바로 감정을 갈무리했다.“내가 누굴 신경 쓰던 연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 연 대표님은 요식업계 사람이 아닌 거로 아는데, 내가 같은 업계 후배를 챙기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는 거죠? 연 대표님, 오지랖 그만 부려요.”빈정대는 어투엔 아까 소년과 얘기하던 다정함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었다.연유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스해도 전혀
만약 강하랑이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면 그에게 좋은 소리를 하기는커녕 욕을 내뱉었을 것이다.‘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야! 연유성이 가당키나 해? 내가 원수 취급 안 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지금 낯선 사람과 본인을 비교하고 있었던 거야? 낯선 사람은 적어도 나한테는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았잖아. 연유성은?'‘아무리 방금 그 소년이 나한테 무례한 발언을 했다고 해도 제때 사과도 했었잖아. 그런데 연유성은? 뻔뻔하게 이런 말 할 자격이 있을까? 고작 어제 이혁 오빠한테 맞은 거로 퉁 칠 수
진솔한 태도에 강하랑도 순간 어쩔 줄을 몰랐다.그녀는 외할아버지가 했던 한 마디에 자연스럽게 장이나와 정희연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하간에 정수환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으니까 말이다.지금 박재인과 옥신각신하며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녀는 이제야 ‘죽지도 않고 살아있는 놈'이라든지 죽음에 관한 얘기는 전부 서로 장난삼아 습관처럼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짜로 그렇게 되라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그걸 알게 된 강하랑은 순간 정수환의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어쨌든 다른 의미에서 그녀는
“껴! 이런 기회를 왜 놓쳐? 껴!”박재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덕환이 먼저 입을 열고 말했다.그는 아까부터 계속 점심 메뉴를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늘솜가의 음식을 먹자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특히 이틀 연속 강하랑의 음식을 먹으니 더 그러했다.이미 환상의 맛을 보았으니 다른 음식은 성에 차지 않았고 먹는다고 해도 마치 맛없는 고무를 질겅질겅 씹는 기분이었다.정수환이 마침 강하랑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하니 그는 당연히 두손 두발 들 정도로 찬성했다.다수결로 찬성하니 아직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당연히 반대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