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퉷!”박재인은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체면이 뭔지 아느냐고? 하, 내가 우리 선배님을 심사위원으로 보내줬더니, 뭐 체면? 이 사람은 내 선배님이야, 선배님. 알기나 해? 나보다 실력도 없는 게 체면을 운운해!”“너-”정수환은 바로 반박하며 욕하려 했지만, 순간 이상함을 감지하곤 멈추었다.‘무슨 소리지? 선배님이라고?'정수환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박재인을 훑어보곤 다시 고개를 돌려 강하랑을 보았다.‘선배님? 박재인이 어려도 한참 어린 여자애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하, 누굴 속여!'
“잘못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죠. 사과받아줄게요.”잘못을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에게 강하랑은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였다.그녀는 진지하게 눈앞에 있는 소년을 보더니 몇 마디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아직 어리니 주위 사람들이 하는 몇 마디에 휩쓸리는 건 아주 정상이에요. 하지만 다음번에는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길 바라요. 정말로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이 사실인지,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고 입을 여세요. 제가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쪽이 아직 나이가 어리니, 또 제때 사과하고 반성하니 받아 주는 거예요.
강하랑이 추억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단사랑 씨는 아까 그 소년이 아주 신경 쓰이나 봐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연유성의 그윽한 눈빛을 보게 되었고 바로 감정을 갈무리했다.“내가 누굴 신경 쓰던 연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 연 대표님은 요식업계 사람이 아닌 거로 아는데, 내가 같은 업계 후배를 챙기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는 거죠? 연 대표님, 오지랖 그만 부려요.”빈정대는 어투엔 아까 소년과 얘기하던 다정함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었다.연유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스해도 전혀
만약 강하랑이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면 그에게 좋은 소리를 하기는커녕 욕을 내뱉었을 것이다.‘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야! 연유성이 가당키나 해? 내가 원수 취급 안 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지금 낯선 사람과 본인을 비교하고 있었던 거야? 낯선 사람은 적어도 나한테는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았잖아. 연유성은?'‘아무리 방금 그 소년이 나한테 무례한 발언을 했다고 해도 제때 사과도 했었잖아. 그런데 연유성은? 뻔뻔하게 이런 말 할 자격이 있을까? 고작 어제 이혁 오빠한테 맞은 거로 퉁 칠 수
진솔한 태도에 강하랑도 순간 어쩔 줄을 몰랐다.그녀는 외할아버지가 했던 한 마디에 자연스럽게 장이나와 정희연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하간에 정수환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으니까 말이다.지금 박재인과 옥신각신하며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녀는 이제야 ‘죽지도 않고 살아있는 놈'이라든지 죽음에 관한 얘기는 전부 서로 장난삼아 습관처럼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짜로 그렇게 되라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그걸 알게 된 강하랑은 순간 정수환의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어쨌든 다른 의미에서 그녀는
“껴! 이런 기회를 왜 놓쳐? 껴!”박재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덕환이 먼저 입을 열고 말했다.그는 아까부터 계속 점심 메뉴를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늘솜가의 음식을 먹자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특히 이틀 연속 강하랑의 음식을 먹으니 더 그러했다.이미 환상의 맛을 보았으니 다른 음식은 성에 차지 않았고 먹는다고 해도 마치 맛없는 고무를 질겅질겅 씹는 기분이었다.정수환이 마침 강하랑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하니 그는 당연히 두손 두발 들 정도로 찬성했다.다수결로 찬성하니 아직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당연히 반대하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면 자신과 비교하면 되는 것이다.물론 이렇게 흔쾌히 대답을 한 것도 이 이유만 있는 건 아니었다.외할아버지인 정수환이 자신을 선배님이라고 부르니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아무래도 친척이니 듣기 거북했다.아무리 예의상 그러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흔쾌히 대답한 것도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어색한 사이로 남지 않기 위해서다.세 사람이 점심 메뉴를 토론하고 있을 때 등 뒤로 느긋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심지어 다소 서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강하랑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곤 바
그의 말에 강하랑은 걸음을 멈추었다.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정수환이 이미 먼저 입을 열었다.“방금 연 대표가 아가씨를 단사랑이라고 부르던데, 맞나? 단 씨 성은 흔치 않은데 이름도 비슷하니 인연이군. 단씨 가문 사람도 만만한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영호 단씨 가문은 한주 연씨 가문보다 더 대단하네. 아가씨, 영호 단씨 가문이라고는 들어봤나?”강하랑은 귀를 의심했다.역시 밝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 그녀는 나중에 부모님이랑 외가로 갈 때 또 한 번 설명할 생각이었다.거기다 이미 정수환이 이런 말까지 꺼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