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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화

강하랑은 잠깐 침묵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후련한 어투로 말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잖아. 그 덕에 운 좋게 오빠도 찾고 말이야. 그 사람들은 나를 키워주기도 했으니까 그냥 여기서 그만하자.”

그녀는 그간 키워준 은혜로 이번 사건을 눈감아 줄 생각이었다.

“막내야...”

남자가 뭐라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강하랑은 문밖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빠, 나도 오빠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지금은 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래. 난 어차피 곧 그 사람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될 거잖아!”

납치 사건은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사건이었다. 아무리 단서가 많아도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었고 실질적인 증거가 없으니 되려 그들에게 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게다가 강씨 가문에서 그녀의 친부모가 단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녀를 20년 동안 키웠다는 것을 빌미로 한번, 또 한 번 단씨 가문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얼른 이혼을 하고 싶었고 강씨 가문과 연을 끊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그녀의 출신을 알고 나서도 절대 그녀의 진짜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었다.

노크 소리엔 점점 짜증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강하랑은 통화를 여기서 끝마치려 했다.

“알았어, 오빠. 난 일이 있어서 이만 먼저 끊을게.”

통화는 종료되었다.

그녀는 느긋하게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짜증스러운 감정이 가득 담긴 노크 소리에도 그녀는 느긋하게 촌스러운 앞머리를 정리했다.

문을 열자 문밖에 있던 남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게 되었다. 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강하랑은 고개를 들고 나직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단 다섯 글자에서 어렵지 않게 거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유성은 저도 모르게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 그는 손을 내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일은 세미 생일이야. 강씨 가문에서 저녁에 파티를 여니까 너도 와. 내가 내일 오후에 데리러 올 테니까.”

강하랑은 그저 눈을 깜빡거렸다.

세미.

너무나도 다정하게 부르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 다른 일은 없지?”

연유성은 자그마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었던 터라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고 그녀는 현재 아주 평온해 보였다.

가슴이 이상하게 답답해짐을 느낀 그는 몸을 틀었다.

“없어. 일찍 쉬어.”

“잠깐만.”

강하랑이 그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빠르게 다시 나왔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바로 10분 전 그가 그녀에게 건넸던 이혼 서류였다.

“사인은 이미 했으니까 시간 되는 대로 마무리 해줘. 더 필요한 서류 있으면 그냥 퀵 서비스로 보내주면 돼. 마지막 페이지에 주소를 적어 뒀으니까.”

두 사람이 혼인신고 접수할 때도 연유성은 오지 않았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이혼 서류 접수는 연유성 혼자 알아서 가뿐하게 처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연유성은 그녀가 건넨 서류를 보더니 이내 다시 시선을 옮겨 그녀의 평온한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전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울대를 굴리더니 이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시간 달라고 하지 않았었나?”

“시간을 주든, 안 주든 결과는 똑같은데 뭐.”

팔이 점점 저렸던 강하랑은 서류를 연유성 품에 확 끼워 넣었다.

“게다가 내일은 세미 생일이잖아. 우리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분명 좋아할 거야.”

연유성은 얼떨결에 그녀가 끼워 넣은 서류를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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