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민은 단지 이준혁을 혼란스럽게 하려 했을 뿐이었다. 문현미더러 이준혁에게는 임세희를 데려간 사람이 이천수라고 또한 이천수가 강제로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고 전하게 하려 했다.이때, 문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러자 원지민은 문현미를 바라보며 날카로운 손톱을 그녀의 목동맥 위에서 스르륵 움직였다.“어머님,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안 가르쳐줘도 되겠죠?”문현미는 문을 열고 담담하게 말했다.“이 비서, 난 괜찮으니까 원지민이 떠났는지 확인해 봐요.”이 비서는 방안을 둘러본 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원지민이 있던 방으로 갔다.하지만 고택 안 어디에서도 원지민의 흔적을 찾지 못한 후, 그는 이준혁에게 보고했다.이준혁은 그에게 지시했다.“어머니를 잘 보호하고 고택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해.”어두운 밤, 이준혁은 별장에 도착했다.홍 아줌마와 아름이가 모두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홍 아줌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혜인 씨가 저녁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오후에 전화가 와서 조금 늦을 거라고 했는데 방금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계속 연결되지 않아서 대표님을 찾으려던 참이었어요.”걱정으로 인해 홍 아줌마는 눈가가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대표님, 혜인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이곳은 이미 제가 사람을 시켜 다 점검하게 했고 바깥에도 사람을 배치해놨으니 아름이 데리고 밖에 나가지 마세요.”홍 아줌마는 더욱 불안해졌다.이준혁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윤혜인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대표님, 경천 도련님께서 이미 귀국 중에 계십니다. 제발 우리 아가씨를 도와주세요.”이준혁은 냉정하게 말했다.“제가 꼭 찾아낼 거예요.”갑자기 계단 위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름이 맨발로 달려 나오며 울먹였다.“할머니, 할머니, 방금 엄마 꿈을 꿨어요...”그러자 홍 아줌마는 아름이를 안아주며 눈물을 삼켰다.“아름아, 엄마 곧 돌아올 거야.”아름이는 눈을 비비며 이준혁을 보고 억울한 듯
윤혜인의 힘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은빛으로 번뜩이는 단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몸이 마치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급한 나머지 그녀는 혀를 세게 깨물었다.“으...”고통이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깨웠다.윤혜인은 온 힘을 다해 바닥에서 구르며 차가운 칼날을 피했다.“이 빌어먹을 년, 아직도 도망치려고 하는 거야?”임세희는 미친 듯한 표정으로 다시 달려들었고 칼은 다시 무섭게 내려 찍혔다.윤혜인은 몸을 옆으로 비틀며 피하려 했지만 칼끝이 빗나가 그녀의 팔을 찔렀고 순간 하얀 옷에 피가 스며들었다.임세희는 이미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칼을 들고 집요하게 쫓아오며 매번 칼을 휘두를 때마다 욕설을 퍼부었다.“이 빌어먹을 년,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상태로! 널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날카로운 칼끝이 바닥에 구멍을 하나씩 뚫었다.윤혜인은 끊임없이 구르며 피했고 다친 팔은 바닥에 핏자국을 남겼다.“쨍그랑...”칼이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그러자 임세희는 아예 손으로 윤혜인의 다리를 잡아 거칠게 끌어당기고는 그녀의 머리를 잡아 기둥에 찍었다.“아!”머리가 기둥에 세게 부딪치며 윤혜인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이상하게도 임세희의 힘이 매우 강했다.일반적인 힘이 아닌, 비정상적인 힘이었다.윤혜인은 잠시 숨 돌릴 틈을 타, 기둥에 발을 대고 그 힘을 이용해 뒤로 공중제비를 하며 임세희의 뒤통수를 세게 걷어찼다.“으아악...”뒤통수가 기둥에 부딪히자 임세희는 비명을 질렀고 순간 피가 머리카락을 검붉게 물들였다.뒤통수는 매우 치명적인 부위라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하지 않더라도 한동안 일어날 수 없을 터였다.이제야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지만 윤혜인의 예상과 다르게 임세희는 다시 일어났다.그녀의 회복력은 실로 놀라웠다.“몹쓸 년, 오늘 널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 하하하하하!”임세희는 광기 어린 웃음을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 손에 들고 있던 두피를 놓지 않은 채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그러자 뚱뚱한 남자가 한 발로 그녀를 거칠게 차더니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젠장, 시끄럽다고 했잖아. 내 말 안 들려?”모자를 쓴 키 큰 남자는 뚱뚱한 남자가 발길질을 멈추지 않자 즉시 제지하며 말했다.“그만해. 지금 죽이면 나중에 누가 책임질 건데.”뚱뚱한 남자는 그제야 멈추고 바닥에 침을 뱉으며 낮게 욕했다.“젠장, 이 못생긴 거 보라고... 보기만 해도 역겹다. 더 보면 한동안 밥도 못 먹겠어.”모자를 쓴 키 큰 남자도 이내 역겨운 표정을 짓더니 모자를 벗어 임세희의 얼굴에 던지고 코를 막으며 말했다.“얼굴 좀 가려. 더럽고 냄새까지 지독하네.”임세희는 이미 몇 번이나 차인 탓에 더 이상 감히 소리치지 않았다.그러나 키 큰 남자는 발로 임세희를 한 번 더 차며 윤혜인을 가리켰다.“아직 죽일 때가 아니야. 우리 말 잘 들어야 해, 알겠어?”두려움에 임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미친 사람도 겁에 질리면 순해진다는 말처럼, 임세희는 이제 지나치게 얌전해졌다.윤혜인은 침착하게 자리를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건장한 두 남자와 미친 임세희가 함께 있는 상황이라, 윤혜인은 그들과 맞설 수 없었다.뚱뚱한 남자는 깨어난 윤혜인을 보자마자 눈빛을 번쩍였다.방금 그 추악한 임세희의 모습을 본 후, 아름다운 윤혜인을 보니 마치 눈이 씻긴 것 같았다.“이 여자 정말 예쁘게 생겼네.”뚱뚱한 남자가 말했다.“예쁘지. 그냥 보기만 해.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마.”키 큰 남자는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며 경고했다.“차가 오면 이 둘을 옮겨. 그럼 우리의 임무는 끝나는 거야.”윤혜인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자신과 임세희를 어딘가로 옮기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때, 뚱뚱한 남자가 중얼거렸다.“죽으면 아까운데...”그러자 키 큰 남자는 담배를 물고 피식 비웃었다.“입 다물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뚱뚱한 남자는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뭐가 무서워
윤혜인을 차갑게 노려보는 임세희는 해골처럼 앙상한 얼굴에 이빨을 드러내며 매우 무섭게 웃고 있었다.“넌 죽어. 물론 너만 죽을 뿐이지. 난 이미 도망쳐 나왔으니까 새 삶을 시작할 거야.”임세희는 여전히 새 삶을 꿈꾸고 있었다. 그녀를 구해준 사람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임무만 완수하면 비행기, 돈, 그리고 여권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 말이다.그녀는 해외로 나가서 이 추악한 얼굴을 치료하고 평생 쓸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윤혜인은 임세희의 손을 막으며 비웃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이 사람들... 우리 둘 다 죽이려 한다는 거 전혀 못 들었어?”“어디서 날 속이려고... 수작 부리지 마!”임세희는 눈을 크게 뜨고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오늘 죽을 사람은 너 하나야, 난 절대 죽지 않아! 이 사람들은 널 보내고 나면 나를 비행기에 태워 해외로 보내 줄 거야. 그러면 난 얼굴을 치료하고 돈 많은 남자를 찾아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거야.”윤혜인은 차분하게 말했다.“임세희, 넌 정말 꿈속에 살고 있구나? 방금 난 분명히 들었어. 우린 곧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될 거라고 했다고.”임세희는 여전히 믿지 않았지만 손에 힘이 조금 풀렸다.“지금 넌 날 속이려는 거야...”윤혜인은 임세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아니 분명히 같이 들었으면서 왜 자동으로 그 말을 무시하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네.’하지만 그래도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잘 생각해 봐. 그 사람들이 이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했어. 일거양득인 셈이지.”임세희는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뚱뚱한 남자가 정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윤혜인은 계속해서 말했다.“당신을 비행기에 태워 줄 거였다면 왜 이렇게 잔인하게 굴었겠어?”임세희의 머리 위에는 큰 상처가 있어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모습은 참혹할 정도로 끔찍했다.
윤혜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뭐 하는 거예요? 다가오지 마요.”꺽다리가 담배를 하나 물더니 느긋하게 말했다.“따먹고 싶어서 그러죠. 근데 시간이 없네요? 흐흐. 아쉬워라...”쾅.굉음과 함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로 바닥에 쓰러졌다.윤혜인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임세희가 뒤에 숨어있는 걸 발견하고 일부러 남자의 집중력을 자기에게로 돌린 것이었다.“조심해요. 밖에 남은 사람 있는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임세희는 돌을 다시 주워들었다.퍽. 퍽. 퍽.그렇게 연속으로 일고여덟 번을 더 내리쳤다. 남자의 머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졌다.“아악.”윤혜인이 비명을 지르더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임세희의 상태는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남자는 이미 죽었지만 임세희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쳤다.이때 뚱보가 안으로 들어왔다.“형님. 차 도착했습니다.”하지만 꺽다리는 보이지 않고 임세희가 잔디 더미에 앉아 바보처럼 웃는 것만 보였다.뚱보는 안으로 걸어가며 욕설을 퍼부었다.“못생긴 년. 비켜. 우리 형, 형님...”뚱보는 한참 버벅거리다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더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그러다 갑자기 괴성을 쏟아냈다.“형, 형님.”바닥에는 형님이 아니라 사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헤헤, 불러.”임세희가 뚱보를 돌아보며 웃었다.“왜 형님이라고 안 해?”다리에 힘이 풀린 뚱보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연신 뒷걸음질 쳤다.뚱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오지 마. 오지 마. 이 못생긴 년. 괴물 같은...”“아악.”그러다 이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임세희의 입에는 어느새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낯가죽이 물려있었다.“아악...”뚱보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감싸 쥐고 처절하게 울부짖었다.임세희가 헤헤 웃으며 마구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이제 너도 못생겨졌어. 나를 못생겼다고 욕하더니 넌 이제 못생긴 돼지인걸?”임세희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정말 이성을 완전
임세희가 잠깐 고민했지만 머리를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만 할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윤혜인은 의심할 만한 상대를 말했다.“당신을 구한 사람 원지민이 보낸 사람 맞지?”임세희가 멈칫했다.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비록 원지민과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자기를 구한 사람이 원지민의 보디가드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그 골목에서 그녀에게 약을 탄 가면 쓴 남자였다.윤혜인은 그제야 모든 걸 알아채고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원지민 맞지? 그 여자 당신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 나를 해치려는 거야. 당신은 죽어서도 원지민의 희생양이 될 뿐이라고.”임세희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그냥 나 속이려는 거잖아.”임세희는 원지민과 척을 진 적이 없었다.원지민이 이준혁의 약혼녀를 자처하긴 했지만 임세희에겐 늘 온화했다.그때 이준혁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원지민이 업무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많은 편의를 봐줬다.“그걸 좀 생각해 보지 그래? 원지민이 왜 그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고 너를 구했겠어? 무슨 이득이 있다고?”윤혜인이 차갑게 말했다.“아까 두 사람이 하는 말 너도 들었지? 너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거야. 원지민은 항상 자기가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시키지.”임세희는 어딘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윤혜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하지만 윤혜인은 임세희에게 도리를 알려주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끌려는 것이었다.미친 여자와 도리를 따질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임세희가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임세희는 이미 사람을 둘이나 죽였다. 한사람 더 죽인다고 뭐가 달라질까?윤혜인은 이미 문까지 이동한 상태였다. 임세희가 한눈판 사이 윤혜인은 밖으로 달려 나가 문을 꽉 잡고는 아까 바닥에서 주웠던 몽둥이를 문고리에 끼워 넣었다.무슨 상황인지 알아챈 임세희는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윤혜인은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
윤혜인이 매섭게 쏘아붙였다.“무슨 말이야.”이상한 사람이 느긋하게 말했다.“이 차에 20층 되는 빌딩도 폭파할 만한 폭탄이 들어있어요.”윤혜인은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드는 생각이라면 차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상대는 마치 윤혜인의 생각을 꿰뚫기라도 한 듯 웃으며 말했다.“귀띔 하나 해줄까요? 당신이 운전석에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차는 바로 폭발할 거예요.”윤혜인은 다리와 발이 그대로 굳어 꼼짝달싹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화를 냈다.“이거 살인이야. 범법 행위라고.”“범법 행위? 하하하.”상대는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살아서 나를 잡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당신 도대체 뭐야?”“힌트 하나 줄게요.”이상한 사람이 말을 이어갔다.“당신은 나의 실패작이에요. 그러니 직접 처리하고 싶어요.”윤혜인이 잠깐 고민하더니 바로 대답했다.“그때 다리에서 내 차를 아래로 밀어버린 사람, 당신이지? 맞지?”“와. 총명한데요?”상대가 칭찬했다.“근데 아쉬워서 어쩌나. 이렇게 총명하고 예쁜 사람인데.”윤혜인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왜 이러는 거예요? 원지민이 나를 죽이라고 사주하던가요?”“저번에는 그랬지만 이번에는 아니에요.”이상한 사람이 비아냥댔다.“그러니 이렇게 창의력 없이 단조로운 방법을 선택했지.”‘저번이라면...’윤혜인은 원지민이 그렇게 오래전부터 그녀를 미워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그때는 분명 아무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원지민은 윤혜인 앞에서 늘 대범하고 착한 이미지였지만 뒤에서는 어떻게 그녀를 죽일지 고민했던 것이다.“당신 찰스 가문 사람이지?”윤혜인이 물었다.“생각하지 말아야 할 건 생각하지 마요. 허니.”상대는 윤혜인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느긋하게 이렇게 말했다.“인생의 마지막 30분을 잘 즐기길 바라요.”그러더니 연락이 끊겼고 스크린에 타이머가 나타났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윤혜인은 이상한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
“윽...”윤혜인은 목이 졸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한 손으로 핸들을 꼭 잡은 채 목에 감긴 마귀 같은 손을 떼어내려고 애썼다.임세희가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어 두 손으로도 벗어나기 힘든데 지금은 애석하게도 한 손이었다.윤혜인의 얼굴은 빨갛 던데로부터 하얘졌다가 점점 파래지기 시작했다.옆에서 다리던 까만 세단에서 남자가 이같은 위급한 상황을 발견하고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박아.”주훈은 잘못 들은 줄 알고 몇초간 반응하더니 되물었다.“대표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이준혁이 어두운 눈빛으로 또박또박 지시했다.“70으로 달리다가 속도 올려서 좌 후방을 박아.”주훈은 그제야 이준혁이 무슨 생각인지 알아챘다.이 상황에서 박지 않으면 저 미친 여자가 윤혜인을 졸라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주훈은 저속으로 달리다가 속도를 확 올렸다. 슈퍼카의 거만한 엔진소리가 윤혜인의 신경을 자극했다.목이 졸려 숨이 잘 올라오지 않았지만 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던 터라 임세희의 자세도 그렇게 안정적인 건 아니었다.윤혜인이 갑자기 커브를 돌자 임세희의 손도 삐뚤고 말았다.손을 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다급한 상황에서 윤혜인은 창문을 내리고 스톱이라는 사인을 내렸다.주훈이 들이박으려는데 이준혁이 말렸다.“잠깐만.”끼익.주훈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늦췄다.이준혁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윤혜인의 제스처가 마치 차 안에 폭탄이 들어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덜컹해 얼른 지시했다.“속도 올려서 따라붙어.”지프차를 따라잡고 나서야 이준혁은 윤혜인이 ‘폭탄’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정확하게 들었다.차 안에는 역시 폭탄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절대 박아서는 안 된다.임세희는 아직도 정신없이 윤혜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준혁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조금 더 바짝 붙여.”주훈이 박지 않게 조심하면서 방향을 잘 조정해 차를 까만 지프차에 바짝 붙였다.아주 정밀한 동작이 필요했기에 주훈의 손에도 땀이 차오
이 말에 두 남자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육경한은 얼굴이 살짝 어두워지긴 했어도 나름 덤덤한 편이었는데 소종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부자연스럽게 서 있었다.여자의 향기를 맛본 남자라면 그게 누구든 소원의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없었다. 육경한이 옆에 없었다면 소종의 반응은 아마 더 컸을 것이다.‘이 여자... 진짜 대단하긴 하네...’소종이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소원은 소종이 만났던 여자들보다 훨씬 매혹적이었다. 일부러 귀여운 척하며 꾸며낸 것이 아닌 뼛속까지 타고나길 매혹적인 여자였고 목소리는 마치 세이렌처럼 위험하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육경한은 유난히 어색해하는 소종을 보며 눈빛이 차가워졌지만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젊고 잘생긴 청년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손님 여러분, 아름다운 밤입니다.”클럽은 안목이 높았기에 남자 도우미들은 젊고 준수했지만 남자다웠고 몸매가 근육질이라 나이 불문하고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이 클럽의 남자 도우미들은 말발이 좋고 여자를 잘 홀리기로 소문나 있었는데 퇴근하고 찾아오거나 휴일에 찾아와 스트레스를 풀고 가는 손님들이 많았다.다만 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소종은 즐비하게 서 있는 남자 도우미들을 보며 얼굴이 굳었다. 가부장적 마인드라 입으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지만 남자가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걸 질색했고 속으로는 비하했다.“뭐야. 기생오라비 같은 것들은…”소종이 작은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리자 영숙이 입을 열었다.“소 비서님,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 클럽에 기생오라비 같은 도우미는 없어요. 근육이 탄탄해서 소 한 마리는 거뜬히 든다니까요. 못 믿겠으면 한번 해볼래요?”소종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해보긴 뭘 해봐요… 내가 미쳤어요?”영숙이 입을 감싸 쥔 채 웃었다.“소 비서님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말한 해본다는… 소 비서님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는지
영숙은 엘리베이터 문을 막는 커다란 손을 보고 악개인 소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손목에 찬 몇억짜리 시계가 눈에 들어오자 이내 누군지 알아채고 기분이 좋아졌다.사실 영숙은 육경한이 소원의 매력을 이겨내지 못할 거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의도치 않은 키스였지만 싸늘하게 식었던 남자의 마음에 불씨를 심어주기엔 충분했다.영숙은 육경한을 보며 헤벌쭉 웃었다.“대표님, 내려가시려고요?”육경한이 대꾸하지 않아도 영숙은 딱히 난처해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잠깐만 기다려주실래요? 이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거지 내려가는 게 아니에요. 2층이니까 잠깐만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육경한이 차가운 표정으로 영숙의 품에 안긴 소원을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올라간다고?”영숙은 어두워진 유경한의 얼굴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순진한 척 웃었다.“네. 위층이 남자 도우미 대기실이라서요. 그쪽으로 가려고요.”남자 도우미 대기실이라는 말에 육경한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영숙은 소원을 꼭 끌어안은 채 자꾸만 엉겨 붙는 소원에게 보란 듯이 이렇게 말했다.“체리야. 이러지 마. 조금만 참았다가 이따가 가서 골라... 착하지? 좋은 놈으로 골라줄게.”이렇게 말하며 영숙이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데 소종이 발로 엘리베이터 문을 막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감히 우리 대표님을 기다리게 해요? 무슨 자격으로?”그러면서 콧방귀를 세게 뀌었다.“얼른 나와요. 우리가 먼저 갈라니까.”밝기만 하던 영숙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클럽에서 오래 일해 수많은 부를 끌어모으긴 했지만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래도 클럽 덕분에 많은 귀인을 만나게 되었고 대부분 영숙을 보면 체면을 봐주며 숙 매니저라고 부르거나 영숙 씨라고 불러주기 일쑤였다.하지만 영숙과 신분이 별반 다를 바 없는 소종이 말끝마다 영숙을 무시하고 있었다. 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서러움을 꾹꾹 눌러 담으며 참았을 텐데 소종이 모욕하는 건 정말 참기 힘들었다.복수에 때가 없
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덕분에 방민기는 술을 조금 깰 수 있었다. 클럽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집에서 소장했던 술을 조금 마시고 나온 터라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는데 육경한에게 맞아 속까지 뒤틀린 방민기는 어제 먹었던 것까지 다 토해냈다. 더 중요한 건 얼굴이 피투성이였지만 그 피가 자기 피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 피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역시 방민아 그 X은 믿는 게 아니었는데.’방민기는 정말 너무 후회되었다. 방민아에게 골탕을 먹일 생각이긴 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육경한의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것 같으니 일단은 몸을 사리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민기에게 육경한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바닥에 누운 방민기는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지 못했기에 분위기가 어느새 청소년 관람 불가가 되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소종이 육경한을 부축하고 영숙이 소원을 부축한 덕에 드디어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었다. 소종은 기괴한 눈빛으로 소원을 힐끔 째려봤다. 눈빛이 흐리멍덩한 걸 봐서는 연기는 아닌 것 같았다.‘뭐야, 왜 저래...’아까 벌어진 상황은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종은 소원을 밀어내지 않고 소원이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놔둔 육경한이 더 이상했다.영숙이 겨우 소원을 안고 고개를 돌려 육경한에게 사과했다.“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체리가 아마 방민기 대표님에게 당해서 실례를 범한 것 같네요. 제가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뒤에 정신 차리면 직접 찾아뵙고 사과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번은 너그럽게 넘어가 주세요. 게다가 지금은 뭘 하려고 해도 의식이 없으니...”육경한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섹시한 입술은 어느새 껍질이 까진 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는데 어딘가 사악하면서도 음침해 보였다.소종이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얼른 가요. 사과는 무슨. 대표님 눈 버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데리고 내려가요.”영숙이 떨떠름하게 웃으며 말했다.“네. 지금 바로 데리고 물
방민아는 종래로 그녀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던 육경한이 갑자기 이렇게 묻자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그게...”잠깐 뜸을 들이던 방민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연주랑 클럽에 갔었어요.”방민아는 더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육경한이라면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더 깊이 물어보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육경한은 이 말을 듣고 더 캐묻지 않았지만 방민아가 오히려 되물었다.“경한 씨, 이건 왜 묻는 거예요?”“별거 아니에요.”육경한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일찍 쉬어요.”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났다. 방민아도 더는 매달리지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요. 경한 씨도 일찍 쉬어요.”통화가 끝나자 소종이 육경한에게 물었다.“대표님, 방민기 대표는... 어떻게 할까요?”사이가 좋든 나쁘든 방민기는 결국 육경한의 미래의 형님이었기에 그가 팬티만 입고 이곳에 발라당 누워있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육경한은 처참한 꼬락서니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방민기를 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차에 던져넣고 방씨 저택으로 보내.”“네, 알겠습니다.”소종도 그렇게 생각했다. 방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한 상태라 방민아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손 놓고 볼 수는 없었다. 이 일이 밖으로 새 나가는 날엔 방민아만 난처해질 것이다.소종이 방민기를 밖으로 끌어내려는데 술에 취한 방민기는 축 늘어져 있었고 아까 깜짝 놀라서 그런지 돼지보다 더 무거웠다. 일단 문 앞까지 끌어내고 영숙에게 사람을 찾아와 처리하라고 하려는데 영숙이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소원을 살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영숙은 소원을 챙겨야 했다. 매니저로서 아가씨를 관리하고 있는 영숙은 소원을 챙기는 게 당연했고 이를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영숙이 소원을 부축해 문 쪽으로 걸어갔다. 볼이 발그레한 소원은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지만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름다웠다. 그렇게 육경한 옆을 지나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육경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
방민기는 얼얼한 엉덩이를 문지르며 연신 신음했다. 옷을 입지 않아서 그런지 그 모습이 너무 얍삽해 보였고 누가 봐도 여자가 특수한 서비스를 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들어온 사람이 육경한이라는 걸 발견한 방민기가 입을 열었다.“매부, 드디어 왔네. 이 여자...”미친 여자라고 말하기도 전에 화가 치밀어오른 육경한이 아무 이유도 없이 방민기에게 발차기를 날렸다.“아악.”발차기를 정통으로 맞은 방민기가 머리를 감싸 쥔 채 바닥에서 한 바퀴 빙 굴렀다. 찢어질 듯이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억울했다.저 미친 여자를 더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말하려는데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얻어맞은 것이다. 나오기 전에 운수라도 보고 나왔으면 이런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육경한이 여자 앞으로 다가가서는 쪼그리고 앉아 축 늘어진 여자의 턱을 들어 올리며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비꼬기 시작했다.“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왜 또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야?”소원은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너무 흐리멍덩했고 몸이 불타올라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았다.육경한은 무슨 생각하는지 한참 동안 소원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갑자기 손을 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서 보고 있는 영숙을 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이에 소종이 얼른 물었다.“대표님, 여긴 어떻게 할까요?”육경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여기 내 사람은 없는데.”그 뜻인즉 안에 있는 소원과 방민기는 그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니 어떻게 처리할지는 클럽에서 알아서 정하라는 말이었다.마음이 다급해진 영숙이 입을 열려는데 육경한의 질문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숙 매니저, 여기 내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어디 있지?”육경한이 말한 내 사람은 당연히 육연주와 방민아였다. 영숙이 전화했을 때 분명 육연주와 방민아가 취했다고 했는데 정작 두 사람은 여기 없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영숙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영숙은 잰걸음으로 달려가 얼른 차 문을 열어줬다.“대표님, 빨리 오셨네요...”반짝거리는 구두로 땅을 밟은 남자는 긴 다리로 신속하게 차에서 내리더니 영숙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대답을 듣지 못한 영숙은 난처한 기색 없이 매우 덤덤했다.‘왔으면 된 거지...’오히려 육경한을 뒤따라온 소종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영숙을 바라보며 말했다.“숙 매니저님, 직원을 이렇게 관심하는지 몰랐네요. 혹시 체리라는 직원과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 건가요?”가시가 돋친 말에 영숙이 바짝 긴장했지만 이내 태연하게 말했다.“소 비서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육씨 가문을 걱정한 것뿐이에요. 두 분 다 있는 집 아가씨라 특수한 존재인데 스캔들에 휘말려서야 되겠어요?”영숙이 소종에게로 다가가더니 온갖 신비로운 척은 다 하며 이렇게 속삭였다.“위에서 요즘 불시 검문하는 거 아시면서. 다른 손님이었으면 제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데 대표님 손님은 저 따위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대표님 뜻을 먼저 여쭤봐야죠.”영숙의 해명은 흠잡을 데 없었지만 소종은 믿지 않았다. 오랫동안 재계와 유흥가를 오간 소종은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유흥가에서 아가씨를 거닐고 다니는 마담이라면 눈에 뵈는 게 돈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마담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부품과도 같아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아가씨를 위해 손님에게 밉보이는 건 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영숙이 몸담고 있는 이곳은 돈 많은 사람들의 천국이었다.소원이 이런 곳에서 몸을 사릴 수 있었던 건 소원이 운 좋아서가 아니라 영숙이 미리 손님을 선별해서 줬기 때문이었다. 업무를 성사하기 위해 오는 사장님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런 손님들은 이곳의 아가씨들을 건드리는 법이 거의 없었고 그저 업무 수요 때문에 형식적으로 아가씨를 불러 분위기를 띄울 뿐이었다.소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둘러대는 영숙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숙 매니저님이 무슨 생각을 하든 나
동영상을 찍으려면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데 영숙이 룸으로 들어오는 순간 일을 그르치게 될 것 같아 일단 영숙에게 이렇게 귀띔했다.“내가 술병을 깨면 그때 전화해요.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절대 들어오면 안 돼요.”영숙이 말했다.“알았어. 네가 말한 대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소원이 들어간 뒤로 영숙은 너무 불안했고 안에서 들려오는 매질 소리에 가슴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때마다 소원이 했던 말이 떠올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영숙은 소원이 총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 계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절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말자고 다짐했다. 소진용의 딸이니 무조건 믿고 협조해 줘야겠다고 속으로 되뇌는데 안에서 드디어 술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영숙은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여러 번 울리자 영숙은 혹시나 육경한이 받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영숙의 능력으로 육경한의 개인 번호 하나 얻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기에 영숙은 바로 육경한의 개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개인 번호라 해도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거나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육경한이 영숙의 번호를 기억할 리는 없었다.연결음이 일고여덟 번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자 다급해진 영숙은 정말 당장이라도 차를 운전해 육경한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싶었다. 마지막 연결음이 끝나려던 찰나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참으로 매혹적이었다. 적어도 소종의 목소리는 아니었기에 붕 떠 있던 영숙의 마음이 다시 차분해졌다. 천만다행으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육경한이었다.“대표님, 저는 KB 클럽의 유영숙이라고 합니다.”샤워를 마친 육경한은 진한 갈색의 비단 잠옷을 입고 침대에 기대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갑자기 전화드려 죄송하지만 일단 제 말씀 좀 들어주세요...”영숙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저녁에 육연주 씨와 방민아 씨가 클
한 시간 전.영숙이 몸을 돌리려는데 소원이 불러세웠다.“언니...”소원이 뭔가 말하려다 말았다.“왜 그래?”영숙이 다시 몸을 돌리더니 소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음... 이따가 복잡한 상황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소원의 말에 영숙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뭔데?”영숙은 고민에 잠겼다. 이 바닥에서 오래 있었으니 소원이 지금 출근하러 나온 게 이상하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리 손님이 중요하다지만 밥벌이가 급하지도 않은 소원이 몸조리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 희생정신을 보이는 게 수상했기 때문이다.순간 모든 걸 알아챈 영숙이 얼른 이렇게 물었다.“혹시 룸에 무슨 일 있어?”소원이 침묵으로 대답하자 영숙이 소원의 손을 꼭 잡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면 가지 마. 아직 몸도 채 낫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쉬어. 걱정하지 마. 아무리 큰 일이 있어도 내가 다 커버할 수 있어.”소원이 영숙의 손을 도로 잡으며 말했다.“한번은 피할 수 있어도 영원히 피할 수는 없어요. 언니, 유진이도 그렇고 유진이를 돌보는 아줌마도 그렇고 다 내가 필요해요. 내가 일어서서 싸우지 않으면 곧 후회할지도 몰라요.”소원이 영숙을 보며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내겐 언니가 필요해요. 언니만이 나를 도울 수 있어요.”소원은 이상하게 영숙이 믿음직스러웠다. 선의는 숨기려 해도 잘 숨겨지지 않는 법이라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선의가 어디서 온 건지 모르지만 소원은 지금 그 선의가 너무 필요했다.“그래. 말해 봐.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소원이 답했다.“지금 저 방에 들어가면 얘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어요. 만약 내가 술병을 깨트린다면 대신 전화 좀 해줘요...”소원이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육경한에게 전화 좀 해줘요.”깜짝 놀란 영숙이 되물었다.“육경한 대표에게 전화하라고?”“네.”소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육경한에게 전화 좀 해줘요.”영숙은 두 사람 사
날카로운 손톱으로 마음을 할퀴는 것처럼 너무 고통스러웠다. 겪어보고 나니 왜 다들 물뽕을 그렇게 선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꾸만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게 누군가에게 엉겨 붙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더는 참기 힘들었던 소원은 시야마저 흐릿해지자 얼른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고 이에 방민기가 소원을 경계하며 뒤로 물러서더니 손사래를 쳤다.“소원아, 우리 배운 사람답게 행동하자. 말로 하면 되는 걸 왜 힘을 쓰려 그래? 너도 알잖아. 네가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거. 술병을 들어도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겠어? 지금 온몸이 모기에게 물린 것처럼 간지럽고 힘들지? 그런 몸으로 나를 다치게 하겠다고? 힘 빼지 마.”쨍그랑.부서지는 소리에 방민기가 깜짝 놀라더니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너... 너 정말...”소원은 들었던 술병을 그대로 자기 머리에 내리치더니 깨지면서 생긴 날카로운 부분을 손에 꽉 움켜쥐었다. 검붉은 피가 소원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와 눈과 속눈썹, 그리고 코가 뒤덮었고 따듯한 불빛 아래 너무 기괴해 보였다. 소원은 피로 물든 예쁜 입술로 이렇게 말했다.“당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진 몰라도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정 그렇게 나와 놀고 싶다면 내 시신을 갖고 노는 건 어때요?”방민기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더니 연신 뒷걸음질 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X발. 이런 미친X을 봤나. 그 미친 X끼랑 다를 게 뭐야.”아무리 여자에 미쳤다 해도 시신을 가지고 노는 건 너무 섬뜩하고 미친 짓이었다.소원이 깨지고 남은 술병을 목에 찔러넣자 핏줄기가 목을 타고 줄줄 흘러내려 너무 위험해 보였다.“놀고 싶다면서요?”소원의 빨간 입술이 움직였다.“그렇게 담이 작아서야 되겠어요? 방민기 씨... 무서운 게 없는 줄 알았는데.”“나도 안 무서워하는데 먼저 발 빼면 되겠어요?”소원의 목소리는 마치 뱀처럼 방민기의 귓가에 빙빙 맴돌았다. 방민기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계속 뒤로 물러나다가 구석으로 몰리고 말았다. 소원이 유리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