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전에 본 적 없는 그런 기괴한 불길은 순식간에 사람을 완전히 태워버렸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함께 소멸된 것은 임호의 핸드폰도 포함되었다.감시 직원들은 경악하며 외쳤다.“즉시 보고해. 중요한 감시 대상이 병원에서 탈출했어.”특수 병원 안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반대편에서, 원지민은 전화가 끊기는 소리를 듣고 임호가 죽었음을 확신했다.그리고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이다.원지민은 속이 시원해졌다.이제 그녀의 아이와 친자 확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사라졌다.마침내 원지민을 방해할 사람이 더 이상 없어진 것이다.원지민의 눈에 임호는 그저 한낱 개에 불과했다.말을 잘 들었다면 굳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았겠지만 주인의 말을 거역한 개는 죽어 마땅했다.게다가 돈만 있으면 그런 개를 열 마리, 백 마리도 살 수 있었다.그녀는 핸드폰을 변기 안에 던지고 특수 용액을 부었다.그러자 핸드폰을 순간적으로 녹아내려 하수구로 흘러내려 갔다.이제 원지민의 다음 단계는 명실상부한 이씨 집안 며느리가 되는 것이었다.원지민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그 여자가 사라지기만 하면... 준혁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주사기 때문에 날 더 거부할 수 없을 거야.’이내 그녀는 다시 다른 핸드폰을 꺼내어 한 번호를 눌렀다.“큰아버지, 사람 받으셨나요? 말씀하신 대로 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는 큰아버지에게 달렸습니다.”상대방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연히 준비는 끝났다.”원지민은 이마의 잔머리를 쓸어 넘기며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원하는 건 이준혁뿐입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원지민은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잠에 들었다.모퉁이에서 문현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 밑에 숨겨둔 핸드폰을 꺼냈다.그녀는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고 그가 전화를 받자 입을 막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빨리 혜인이를 찾아야 해.”
원지민은 단지 이준혁을 혼란스럽게 하려 했을 뿐이었다. 문현미더러 이준혁에게는 임세희를 데려간 사람이 이천수라고 또한 이천수가 강제로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고 전하게 하려 했다.이때, 문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러자 원지민은 문현미를 바라보며 날카로운 손톱을 그녀의 목동맥 위에서 스르륵 움직였다.“어머님,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안 가르쳐줘도 되겠죠?”문현미는 문을 열고 담담하게 말했다.“이 비서, 난 괜찮으니까 원지민이 떠났는지 확인해 봐요.”이 비서는 방안을 둘러본 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원지민이 있던 방으로 갔다.하지만 고택 안 어디에서도 원지민의 흔적을 찾지 못한 후, 그는 이준혁에게 보고했다.이준혁은 그에게 지시했다.“어머니를 잘 보호하고 고택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해.”어두운 밤, 이준혁은 별장에 도착했다.홍 아줌마와 아름이가 모두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홍 아줌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혜인 씨가 저녁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오후에 전화가 와서 조금 늦을 거라고 했는데 방금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계속 연결되지 않아서 대표님을 찾으려던 참이었어요.”걱정으로 인해 홍 아줌마는 눈가가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대표님, 혜인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이곳은 이미 제가 사람을 시켜 다 점검하게 했고 바깥에도 사람을 배치해놨으니 아름이 데리고 밖에 나가지 마세요.”홍 아줌마는 더욱 불안해졌다.이준혁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윤혜인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대표님, 경천 도련님께서 이미 귀국 중에 계십니다. 제발 우리 아가씨를 도와주세요.”이준혁은 냉정하게 말했다.“제가 꼭 찾아낼 거예요.”갑자기 계단 위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름이 맨발로 달려 나오며 울먹였다.“할머니, 할머니, 방금 엄마 꿈을 꿨어요...”그러자 홍 아줌마는 아름이를 안아주며 눈물을 삼켰다.“아름아, 엄마 곧 돌아올 거야.”아름이는 눈을 비비며 이준혁을 보고 억울한 듯
윤혜인의 힘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은빛으로 번뜩이는 단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몸이 마치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급한 나머지 그녀는 혀를 세게 깨물었다.“으...”고통이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깨웠다.윤혜인은 온 힘을 다해 바닥에서 구르며 차가운 칼날을 피했다.“이 빌어먹을 년, 아직도 도망치려고 하는 거야?”임세희는 미친 듯한 표정으로 다시 달려들었고 칼은 다시 무섭게 내려 찍혔다.윤혜인은 몸을 옆으로 비틀며 피하려 했지만 칼끝이 빗나가 그녀의 팔을 찔렀고 순간 하얀 옷에 피가 스며들었다.임세희는 이미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칼을 들고 집요하게 쫓아오며 매번 칼을 휘두를 때마다 욕설을 퍼부었다.“이 빌어먹을 년,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상태로! 널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날카로운 칼끝이 바닥에 구멍을 하나씩 뚫었다.윤혜인은 끊임없이 구르며 피했고 다친 팔은 바닥에 핏자국을 남겼다.“쨍그랑...”칼이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그러자 임세희는 아예 손으로 윤혜인의 다리를 잡아 거칠게 끌어당기고는 그녀의 머리를 잡아 기둥에 찍었다.“아!”머리가 기둥에 세게 부딪치며 윤혜인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이상하게도 임세희의 힘이 매우 강했다.일반적인 힘이 아닌, 비정상적인 힘이었다.윤혜인은 잠시 숨 돌릴 틈을 타, 기둥에 발을 대고 그 힘을 이용해 뒤로 공중제비를 하며 임세희의 뒤통수를 세게 걷어찼다.“으아악...”뒤통수가 기둥에 부딪히자 임세희는 비명을 질렀고 순간 피가 머리카락을 검붉게 물들였다.뒤통수는 매우 치명적인 부위라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하지 않더라도 한동안 일어날 수 없을 터였다.이제야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지만 윤혜인의 예상과 다르게 임세희는 다시 일어났다.그녀의 회복력은 실로 놀라웠다.“몹쓸 년, 오늘 널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 하하하하하!”임세희는 광기 어린 웃음을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 손에 들고 있던 두피를 놓지 않은 채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그러자 뚱뚱한 남자가 한 발로 그녀를 거칠게 차더니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젠장, 시끄럽다고 했잖아. 내 말 안 들려?”모자를 쓴 키 큰 남자는 뚱뚱한 남자가 발길질을 멈추지 않자 즉시 제지하며 말했다.“그만해. 지금 죽이면 나중에 누가 책임질 건데.”뚱뚱한 남자는 그제야 멈추고 바닥에 침을 뱉으며 낮게 욕했다.“젠장, 이 못생긴 거 보라고... 보기만 해도 역겹다. 더 보면 한동안 밥도 못 먹겠어.”모자를 쓴 키 큰 남자도 이내 역겨운 표정을 짓더니 모자를 벗어 임세희의 얼굴에 던지고 코를 막으며 말했다.“얼굴 좀 가려. 더럽고 냄새까지 지독하네.”임세희는 이미 몇 번이나 차인 탓에 더 이상 감히 소리치지 않았다.그러나 키 큰 남자는 발로 임세희를 한 번 더 차며 윤혜인을 가리켰다.“아직 죽일 때가 아니야. 우리 말 잘 들어야 해, 알겠어?”두려움에 임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미친 사람도 겁에 질리면 순해진다는 말처럼, 임세희는 이제 지나치게 얌전해졌다.윤혜인은 침착하게 자리를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건장한 두 남자와 미친 임세희가 함께 있는 상황이라, 윤혜인은 그들과 맞설 수 없었다.뚱뚱한 남자는 깨어난 윤혜인을 보자마자 눈빛을 번쩍였다.방금 그 추악한 임세희의 모습을 본 후, 아름다운 윤혜인을 보니 마치 눈이 씻긴 것 같았다.“이 여자 정말 예쁘게 생겼네.”뚱뚱한 남자가 말했다.“예쁘지. 그냥 보기만 해.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마.”키 큰 남자는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며 경고했다.“차가 오면 이 둘을 옮겨. 그럼 우리의 임무는 끝나는 거야.”윤혜인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자신과 임세희를 어딘가로 옮기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때, 뚱뚱한 남자가 중얼거렸다.“죽으면 아까운데...”그러자 키 큰 남자는 담배를 물고 피식 비웃었다.“입 다물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뚱뚱한 남자는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뭐가 무서워
윤혜인을 차갑게 노려보는 임세희는 해골처럼 앙상한 얼굴에 이빨을 드러내며 매우 무섭게 웃고 있었다.“넌 죽어. 물론 너만 죽을 뿐이지. 난 이미 도망쳐 나왔으니까 새 삶을 시작할 거야.”임세희는 여전히 새 삶을 꿈꾸고 있었다. 그녀를 구해준 사람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임무만 완수하면 비행기, 돈, 그리고 여권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 말이다.그녀는 해외로 나가서 이 추악한 얼굴을 치료하고 평생 쓸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윤혜인은 임세희의 손을 막으며 비웃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이 사람들... 우리 둘 다 죽이려 한다는 거 전혀 못 들었어?”“어디서 날 속이려고... 수작 부리지 마!”임세희는 눈을 크게 뜨고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오늘 죽을 사람은 너 하나야, 난 절대 죽지 않아! 이 사람들은 널 보내고 나면 나를 비행기에 태워 해외로 보내 줄 거야. 그러면 난 얼굴을 치료하고 돈 많은 남자를 찾아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거야.”윤혜인은 차분하게 말했다.“임세희, 넌 정말 꿈속에 살고 있구나? 방금 난 분명히 들었어. 우린 곧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될 거라고 했다고.”임세희는 여전히 믿지 않았지만 손에 힘이 조금 풀렸다.“지금 넌 날 속이려는 거야...”윤혜인은 임세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아니 분명히 같이 들었으면서 왜 자동으로 그 말을 무시하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네.’하지만 그래도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잘 생각해 봐. 그 사람들이 이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했어. 일거양득인 셈이지.”임세희는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뚱뚱한 남자가 정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윤혜인은 계속해서 말했다.“당신을 비행기에 태워 줄 거였다면 왜 이렇게 잔인하게 굴었겠어?”임세희의 머리 위에는 큰 상처가 있어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모습은 참혹할 정도로 끔찍했다.
윤혜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뭐 하는 거예요? 다가오지 마요.”꺽다리가 담배를 하나 물더니 느긋하게 말했다.“따먹고 싶어서 그러죠. 근데 시간이 없네요? 흐흐. 아쉬워라...”쾅.굉음과 함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로 바닥에 쓰러졌다.윤혜인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임세희가 뒤에 숨어있는 걸 발견하고 일부러 남자의 집중력을 자기에게로 돌린 것이었다.“조심해요. 밖에 남은 사람 있는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임세희는 돌을 다시 주워들었다.퍽. 퍽. 퍽.그렇게 연속으로 일고여덟 번을 더 내리쳤다. 남자의 머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졌다.“아악.”윤혜인이 비명을 지르더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임세희의 상태는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남자는 이미 죽었지만 임세희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쳤다.이때 뚱보가 안으로 들어왔다.“형님. 차 도착했습니다.”하지만 꺽다리는 보이지 않고 임세희가 잔디 더미에 앉아 바보처럼 웃는 것만 보였다.뚱보는 안으로 걸어가며 욕설을 퍼부었다.“못생긴 년. 비켜. 우리 형, 형님...”뚱보는 한참 버벅거리다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더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그러다 갑자기 괴성을 쏟아냈다.“형, 형님.”바닥에는 형님이 아니라 사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헤헤, 불러.”임세희가 뚱보를 돌아보며 웃었다.“왜 형님이라고 안 해?”다리에 힘이 풀린 뚱보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연신 뒷걸음질 쳤다.뚱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오지 마. 오지 마. 이 못생긴 년. 괴물 같은...”“아악.”그러다 이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임세희의 입에는 어느새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낯가죽이 물려있었다.“아악...”뚱보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감싸 쥐고 처절하게 울부짖었다.임세희가 헤헤 웃으며 마구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이제 너도 못생겨졌어. 나를 못생겼다고 욕하더니 넌 이제 못생긴 돼지인걸?”임세희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정말 이성을 완전
임세희가 잠깐 고민했지만 머리를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만 할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윤혜인은 의심할 만한 상대를 말했다.“당신을 구한 사람 원지민이 보낸 사람 맞지?”임세희가 멈칫했다.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비록 원지민과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자기를 구한 사람이 원지민의 보디가드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그 골목에서 그녀에게 약을 탄 가면 쓴 남자였다.윤혜인은 그제야 모든 걸 알아채고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원지민 맞지? 그 여자 당신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 나를 해치려는 거야. 당신은 죽어서도 원지민의 희생양이 될 뿐이라고.”임세희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그냥 나 속이려는 거잖아.”임세희는 원지민과 척을 진 적이 없었다.원지민이 이준혁의 약혼녀를 자처하긴 했지만 임세희에겐 늘 온화했다.그때 이준혁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원지민이 업무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많은 편의를 봐줬다.“그걸 좀 생각해 보지 그래? 원지민이 왜 그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고 너를 구했겠어? 무슨 이득이 있다고?”윤혜인이 차갑게 말했다.“아까 두 사람이 하는 말 너도 들었지? 너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거야. 원지민은 항상 자기가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시키지.”임세희는 어딘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윤혜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하지만 윤혜인은 임세희에게 도리를 알려주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끌려는 것이었다.미친 여자와 도리를 따질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임세희가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임세희는 이미 사람을 둘이나 죽였다. 한사람 더 죽인다고 뭐가 달라질까?윤혜인은 이미 문까지 이동한 상태였다. 임세희가 한눈판 사이 윤혜인은 밖으로 달려 나가 문을 꽉 잡고는 아까 바닥에서 주웠던 몽둥이를 문고리에 끼워 넣었다.무슨 상황인지 알아챈 임세희는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윤혜인은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
윤혜인이 매섭게 쏘아붙였다.“무슨 말이야.”이상한 사람이 느긋하게 말했다.“이 차에 20층 되는 빌딩도 폭파할 만한 폭탄이 들어있어요.”윤혜인은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드는 생각이라면 차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상대는 마치 윤혜인의 생각을 꿰뚫기라도 한 듯 웃으며 말했다.“귀띔 하나 해줄까요? 당신이 운전석에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차는 바로 폭발할 거예요.”윤혜인은 다리와 발이 그대로 굳어 꼼짝달싹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화를 냈다.“이거 살인이야. 범법 행위라고.”“범법 행위? 하하하.”상대는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살아서 나를 잡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당신 도대체 뭐야?”“힌트 하나 줄게요.”이상한 사람이 말을 이어갔다.“당신은 나의 실패작이에요. 그러니 직접 처리하고 싶어요.”윤혜인이 잠깐 고민하더니 바로 대답했다.“그때 다리에서 내 차를 아래로 밀어버린 사람, 당신이지? 맞지?”“와. 총명한데요?”상대가 칭찬했다.“근데 아쉬워서 어쩌나. 이렇게 총명하고 예쁜 사람인데.”윤혜인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왜 이러는 거예요? 원지민이 나를 죽이라고 사주하던가요?”“저번에는 그랬지만 이번에는 아니에요.”이상한 사람이 비아냥댔다.“그러니 이렇게 창의력 없이 단조로운 방법을 선택했지.”‘저번이라면...’윤혜인은 원지민이 그렇게 오래전부터 그녀를 미워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그때는 분명 아무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원지민은 윤혜인 앞에서 늘 대범하고 착한 이미지였지만 뒤에서는 어떻게 그녀를 죽일지 고민했던 것이다.“당신 찰스 가문 사람이지?”윤혜인이 물었다.“생각하지 말아야 할 건 생각하지 마요. 허니.”상대는 윤혜인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느긋하게 이렇게 말했다.“인생의 마지막 30분을 잘 즐기길 바라요.”그러더니 연락이 끊겼고 스크린에 타이머가 나타났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윤혜인은 이상한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