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는 오랜만에 왔기에 좀 더 있고 싶었지만 고연우가 불량 학생을 잡는 교감 선생님처럼 냉랭한 얼굴로 앞에 버티고 서 있으니 술맛이 다 떨어졌다. 그녀는 키 높이 의자에서 내려와 퉁명스럽게 말했다.“너 때문에 도망갔잖아.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어.”모델남은 뜨지 못했지만 눈썰미는 있어서 고연우를 보자마자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그들이 대화하는 틈을 타서 벌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문을 열자마자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와 옷깃과 바짓가랑이로 들어왔다. 정민아는 추위에 떨며 손으로 앞섶을 여몄다.“추워?”“응.”어느 순간 정민아는 그가 옷을 벗어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지만 곧바로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남자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빈정댔다.“아니면 아까 그 남자를 찾아가서 옷을 벗어달라고 해봐. 무척 더운 것 같던데. 옷을 입지 않아도 얼어 죽지 않을걸.”이 괴상야릇한 말투는 비웃는 효과를 극대화했다.“쟤가 너한테 잘못한 게 있어?”“아니.”“다른 사람을 비웃는 데서 쾌감을 느껴? 고연우, 왜 사람이 그렇게 못됐어?”모델은 몸매로 밥 벌어먹는 직업이고, 일거리를 얻기 위해 자기를 고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 앞에서 몸을 보여주는 것은 정상적인 오디션 절차일 뿐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피라미드 최상단에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던 고연우는 이런 것을 모른다.“그 사람이 뭘 하려는지 정말 몰라?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야?”성깔이 보통이 아니어서 아무나 물어뜯는 정민아가 누군가를 감싸는 걸 처음 본 고연우는 굳은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정민아, 그동안 먹은 밥이 한 톨도 머리에는 작용하지 않았나 보지? 너랑 자고 기회를 얻으려는 거잖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명백한 의도를 어떻게 모를 수 있지? 목에 달고 있는 그 물건이 쓸모없으면 아예 뜯어버려.”“고연우.”정민아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마주 섰다.미남미녀가 서로 마주 보는 화면은 청춘 드라마 포스터처럼 아름다웠지만,
“허! 3살짜리 아이도 아는 안전 상식을 넌 몰라? 이 한밤중에 술을 마신 여자가 감히 낯선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타겠다고?”정민아는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추파를 던지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나처럼 평범하게 생긴 여자는 그런 걱정이 없어.”“남자는 흥분하면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짐승한테도 덮칠 수 있어. 예쁘게 생기면 더 쉽게 남자의 흥미를 끌 뿐이지, 남자가 예쁜 여자만 건드리는 것은 아니야. 상대를 가리지 않는 사람도 많아. 너의 어리석음으로 남자의 저열한 근성에 도전하지 마.”차 안은 곧 조용해졌고, 엔진과 에어컨에서 나는 미세한 소리만 들렸다.어두움 때문인지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는 정민아의 모습에 처량함과 쓸쓸함이 극에 달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쥐고 무의식적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딱딱 소리와 함께 화면이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어두컴컴한 차 안에서 눈을 어지럽혔다.고연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저씨는 그저 화가 치밀어 기절한 것이고 큰 문제는 없대. 내가 병원을 떠날 때 이미 깨어나셨어. 하룻밤 경과를 지켜보고 내일 퇴원할 수 있대.”정민아는 관심이 없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 그녀의 휴대폰 화면은 더 이상 켜지지 않았다.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11시가 넘었다. 이 시간에 송씨 아주머니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고 거실에는 작은 등이 켜져 있었다. 늦게 돌아온 정민아가 불을 켜지 않고 어둠을 더듬으며 위층에 올라가다가 걸려 넘어질까 봐 특별히 켜둔 것이다.정민아는 따뜻한 노란색 불빛을 보며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치는 것 같았다. 이 불빛은 그녀의 황폐한 전반생에 현란한 빛깔을 더했다. 알고 보니 수많은 불빛 속에 그녀를 위해 켜진 불도 있었다.정민아의 눈가에 보일 듯 말 듯한 웃음기가 감돌았는데, 신발을 갈아 신고 고개를 든 고연우가 마침 이 장면을 포착했다. 여인의 또렷한 이목구비는 순간적으로 생동감 넘쳤고, 속세를 초월한 선녀가 갑자기 하늘에서 속세로 내려온 것 같았다.그는 정민
“해외에서 쇼를 보다가 말이 잘 통하는 여성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준 거야.”사연희의 말에 정민아는 차를 운전하며 대답했다.“혼자 가. 외로우면 남자 파트너를 구하고.”사연희는 드레스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사람들이 쫓아다니며 어디서 맞췄는지 묻게 하려는 건데, 그녀가 가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사연희는 변비에 걸린 듯한 얼굴로 말했다.“그렇게 건전하지 못한 얘기는 꺼내지도 마. 나는 일에 집중해야 해. 재수 없는 사내놈들은 내 돈벌이에 방해가 될 뿐이야.”고등학교 때 그녀의 절친이 쓰레기 같은 남자에게 사기를 당해 몸도 잃고 돈도 잃었다. 친구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기숙사 창문으로 뛰어내렸는데, 몸이 찌그러지고 머리가 터져 피투성이가 된 채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뒤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버린 사연희는 공부에 전념했고 평생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그리고 단지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임무가 있어. 주문을 따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두 너에게 달려 있어.”만약 옷이 6점이라면 정민아를 모델로 세울 경우 직접 만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사연희의 목표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세계 각지에 매장을 오픈하는 것인데, 지금 돈도 없고 이름도 없어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면서 지내고 있다.백아영이 보여준 그 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워서 눈길을 확 끌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벌써 사람들이 쫓아다니며 가게 이름을 묻는 굉장한 장면을 상상했다.정민아가 그녀의 아름다운 상상을 사정없이 뭉개버렸다.“그냥 혼자 가. 주문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화가 나서 심장병이 올까 봐 걱정돼.”그녀가 사연희를 알게 됐을 때는 그 악몽 같은 삶에서 벗어난 뒤였다. 과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연희는 그녀의 대인관계가 안 좋다는 것은 알지만 구체적인 원인은 몰랐다. 그저 여자끼리 싸우기 좋아하는 미친년들이 그녀가 예쁘게 생겨서 질투하는 줄로만 알았다.이때 정민아의 휴대폰이 울렸고, 화면에 정선아 이
정민아가 차 옆에 거의 도착할 때쯤 정선아는 이를 갈면서도 다음 계획을 생각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쫓아갔고, 달래고 사과해서 다시 끌고 왔다.파티가 성황리에 진행되는 가운데, 흰색 셔츠에 검은색 양복바지를 입은 직원들이 쟁반을 들고 잘 차려입은 남녀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정민아의 등장으로 잠시 조용해졌던 현장 분위기는 금세 원래로 돌아갔다.“언니, 어머니는 저기 계셔. 가자.”그녀는 정민아를 끌고 빠르게 주소월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잇달아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내주면서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저 여자가 왜 왔어?”“재수 없어. 진작에 알았으면 오지 말걸. 제발 좀 멀리 가. 몸에 그런 병이 있을지도 몰라.”“그만해.”옆에 있던 파트너가 열변을 토하는 여인을 팔꿈치로 쳤다.“아무리 그래도 연우 도련님 부인이야. 오늘 연우 도련님도 왔는데 혹시 들으면 큰일 나겠어.”여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 코웃음을 쳤다.“이게 뭐 어때서? 주변에 연우 도련님이 저 여자를 싫어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들었다 해도 절대 도와주지 않을걸.”정선아는 이 말을 듣고 속이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른다. 주소월의 난처한 얼굴을 보니 더 기뻤다. 하지만 그녀는 싹싹하고 착한 딸 모습을 하고, 주소월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어떤 사람들은 함부로 지껄이기 좋아해요. 저 여자들과 똑같이 굴지 마세요.”주소월은 입꼬리를 올리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원래 정민아를 데리고 가서 친정 친척들에게 소개하려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친척들이 개의치 않는다 해도 그녀는 데리고 갈 면목이 없다.“민아야,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먼저 저쪽 휴게실에 가서 좀 쉬자.”그녀는 꾸짖고 싶어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내뱉지 못했다. 정민아는 성깔이 보통이 아니고 난리를 칠 때면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싫어서 달래야만 했다. 어차피 휴게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모든 것은 파티가 끝난 후에 다시 얘기하면 된다.하
주소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랐다. 고연우가 정민아를 위해 나섰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연우 도련님이 아내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게 어떻게 된 거지?정선아도 울음을 멈추고 고연우를 바라보았고, 눈에는 큰 상처를 받은 것처럼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공 비서랑 같이 병원에 가서 상처를 처치해.”정선아의 상처는 무척 보기 끔찍했다. 험상궂게 찢어진 부분은 없었지만 손바닥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병원에 갈 필요 없어요. 유리에 긁혀서 상처가 좀 났을 뿐이니까 여기 의사가 처치하면 돼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한쪽 손이 부러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그녀는 불쌍한 척하며 동정을 얻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고연우는 공민찬에게 눈짓한 후 정민아를 끌고 가버렸다.남자의 손바닥은 건조하고 약간 뜨거웠다. 피부가 서로 닿자 화끈거리는 느낌이 모공을 통해, 혈관을 따라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정민아는 이런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싫은 기색을 내며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손을 뒤로 뺐다.고연우가 손에 힘을 주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짜증 내며 말했다.“조용히 따라와.”정민아는 그가 왜 자기를 위해 나서주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물었다.“왜 도와줘?”남자는 덤덤하게 그녀를 보더니 아무것도 아닌 듯 말했다.“네 이름이 아직 우리 고씨 집안 호적에 있어. 그 자리에 정민아가 고연우 아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나서지 않으면, 네가 거기 서서 우리 집안 체면을 깎아 먹게 내버려둬?”“네가 나를 싫어한다는 걸 누구나 다 알잖아. 그러니까 내가 고연우 아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어도 너의 체면은 깎이지 않아. 그 사람들은 그저 너를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지. 억지로 나같이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시골 처녀와 결혼했다고.”고연우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자, 정민아는 아예 그의 팔짱을 끼고 금실 좋은 부부처럼 딱 붙어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내가 정씨 가문의 아가씨이지만 사람들은 나를 배은
휴게실로 다가오던 정민아도 곧 주소월이 화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부잣집 도련님들이 한창 휴게실에 앉아 휴대폰으로 미러링해서 정민아가 속옷만 걸친 채 침대에 누워있는 선정적인 사진들을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있었다.정선아는 정민아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비꼬기 시작했다.“언니, 어떻게 이런 걸로 엄마의 속을 뒤집을 수 있어? 이 사진들이 혹시라도 유포된다면 어떡해...”그녀는 곧장 입술을 깨물더니 태도를 180도 바꾸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저 사람들 진짜 너무했어! 어떻게 저런 몰카를 찍을 수 있지?”정민아는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손을 들어 정선아의 얼굴을 만지면서 애써 웃었다.“동생아, 이 상황이 재밌니? 그러면 내가 더 재밌는 걸 보여줄까?”주소월은 정민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반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민아야, 너 먼저 돌아가! 내가 저놈들한테 전부 지우라고 할게. 너는...”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최대한 자상한 말투로 다시 말했다.“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마! 내가 꼭 사진을 돌려 받아줄게.”정민아를 데리고 온 후, 주소월이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민아는 정선아의 머리채를 잡더리 휴게실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버렸고 그녀의 행동이 얼마나 빨랐는지 그 누구도 미처 말리지 못했다.정선아는 정민아의 무력에 의해 문 앞 바닥에 넘어졌고 싸맨 상처가 터지면서 고통이 밀려와 짧은 비명을 질렀다.주소월은 곧장 정신을 차리고 휴게실 문을 두드렸고, 휴게실 소파에 앉아 한창 재밌게 떠들던 부잣집 도련님들도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그들은 방금 전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정민아가 자기들을 향해 걸어오자, 놀라움과 흥분을 금치 못했다.이때, 그중 한 남자가 옆이 트인 드레스 사이로 길고 균형 잡힌 정민아의 다리를 감상하다가 다소 건방진 태도로 말을 건넸다.“민아 씨가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연우 도련
휴게실의 광경에 고연우의 눈이 커졌고 잠시 말문까지 막혔다.“정민아.”주소월도 눈앞의 광경에 놀라 다리에 힘이 빠졌고 하마터면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민아야...”얼굴에 피가 묻은 채, 한 손에 깨진 술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리모컨을 들고 있는 정민아의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멀리 튕겨 나간 정선아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고연우는 차가운 눈으로 정민아를 노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당장 술병 내려놔.”그러나 정민아는 턱을 치켜들며 그에게 TV를 가리켰다.고연우의 시선도 그녀를 따라 TV로 향했고 이내 정민아가 술병에 처참하게 맞아댄 남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야한 사진을 보았다.그러나 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무덤덤하게 눈을 돌려 피가 흐르는 그녀의 팔을 보면서 말했다.“뒷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공 비서랑 병원에 가서 상처부터 치료해.”그러나 정민아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빈정댔다.“연우 도련님은 정말 마음이 넓은 사람인가 봐. 내가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구는 사진을 보고도 너무 태연한 반응을 보이잖아.”고연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사진 속 사람이 네가 아니니까.”그 사진들은 정교한 보정 기술을 거쳤기에 정민아의 몸을 자세히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그러나 고연우가 단번에 합성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채자, 정민아는 조금 의아했다.“사진 속의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거 어떻게 알았지?”고연우는 그녀의 뒤쪽 허리 아랫부분의 흉터가 갑자기 떠올라 입술을 오므리더니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만지작거렸다.곧이어 정민아는 소파에 앉아 겁에 질린 얼굴로 목을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면서 싸늘하게 물었다.“얘기해 봐, 이 사진들은 어떻게 된 거지?”그 남자는 순간 정민아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기를 더 심하게 찔러댈까 봐 두려워졌고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민아 씨, 먼저 이 술병부터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그러나 곧이어 사악한
말을 마친 사연희는 주소월의 반응을 신경 쓰지도 않고 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고 모여있던 구경꾼들은 자발적으로 그녀와 정민아에게 길을 내줬다.정민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누군가를 찾았다.마침, 멀지 않은 곳의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서은혁은 그녀와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고, 이내 그녀를 향해 눈을 지그시 깜박거리더니 안정통로로 들어갔다.사연희도 곧장 정민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뭘 봐? 누구 있어?”“아무것도 아니야, 가자.”얼마 지나지 않아, 고연우와 공민찬도 휴게실에서 빠져나왔고 긴 다리를 이용해 몇 걸음 만에 그녀들을 따라잡았다.정민아는 두 남자가 계속 뒤따라오는 것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서서 물었다.“나한테 무슨 볼일 있어?”고연우가 말을 꺼내기 전에 공민찬이 먼저 다급하게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술을 드셔서 운전을 못 하시는데 제가 뒷수습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시다시피 여기는 대리운전을 부르기도 힘들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두 분이 같이 가시면 안 될까요?”정민아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조리 있게 말했지만, 그녀는 눈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내가 저지른 일은 왜 공 비서가 뒷수습해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대표님을 살뜰히 챙겨서 먼저 들어가요.”공민찬은 갑자기 유리 조각에 목이 찔려 피를 철철 흘리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녀에게 한마디라도 잘못해서 심기를 건드리면 큰 화를 면치 못할 것 같았다.“아니에요, 목덜미에 피가 철철 흐르는 남자를 간단하게 치료라도 해주고 병원에 보내야 하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입막음도 해야 해서 제가 해결하는 게 빨라요.”고연우는 얼굴을 심하게 찡그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맞은 남자가 웬일로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빨리 보내달라고 애원하던데, 그의 친구들도 아직 어안이 벙벙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이런 사소한 일은 제가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