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랐다. 고연우가 정민아를 위해 나섰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연우 도련님이 아내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게 어떻게 된 거지?정선아도 울음을 멈추고 고연우를 바라보았고, 눈에는 큰 상처를 받은 것처럼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공 비서랑 같이 병원에 가서 상처를 처치해.”정선아의 상처는 무척 보기 끔찍했다. 험상궂게 찢어진 부분은 없었지만 손바닥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병원에 갈 필요 없어요. 유리에 긁혀서 상처가 좀 났을 뿐이니까 여기 의사가 처치하면 돼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한쪽 손이 부러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그녀는 불쌍한 척하며 동정을 얻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고연우는 공민찬에게 눈짓한 후 정민아를 끌고 가버렸다.남자의 손바닥은 건조하고 약간 뜨거웠다. 피부가 서로 닿자 화끈거리는 느낌이 모공을 통해, 혈관을 따라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정민아는 이런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싫은 기색을 내며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손을 뒤로 뺐다.고연우가 손에 힘을 주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짜증 내며 말했다.“조용히 따라와.”정민아는 그가 왜 자기를 위해 나서주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물었다.“왜 도와줘?”남자는 덤덤하게 그녀를 보더니 아무것도 아닌 듯 말했다.“네 이름이 아직 우리 고씨 집안 호적에 있어. 그 자리에 정민아가 고연우 아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나서지 않으면, 네가 거기 서서 우리 집안 체면을 깎아 먹게 내버려둬?”“네가 나를 싫어한다는 걸 누구나 다 알잖아. 그러니까 내가 고연우 아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어도 너의 체면은 깎이지 않아. 그 사람들은 그저 너를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지. 억지로 나같이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시골 처녀와 결혼했다고.”고연우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자, 정민아는 아예 그의 팔짱을 끼고 금실 좋은 부부처럼 딱 붙어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내가 정씨 가문의 아가씨이지만 사람들은 나를 배은
휴게실로 다가오던 정민아도 곧 주소월이 화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부잣집 도련님들이 한창 휴게실에 앉아 휴대폰으로 미러링해서 정민아가 속옷만 걸친 채 침대에 누워있는 선정적인 사진들을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있었다.정선아는 정민아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비꼬기 시작했다.“언니, 어떻게 이런 걸로 엄마의 속을 뒤집을 수 있어? 이 사진들이 혹시라도 유포된다면 어떡해...”그녀는 곧장 입술을 깨물더니 태도를 180도 바꾸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저 사람들 진짜 너무했어! 어떻게 저런 몰카를 찍을 수 있지?”정민아는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손을 들어 정선아의 얼굴을 만지면서 애써 웃었다.“동생아, 이 상황이 재밌니? 그러면 내가 더 재밌는 걸 보여줄까?”주소월은 정민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반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민아야, 너 먼저 돌아가! 내가 저놈들한테 전부 지우라고 할게. 너는...”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최대한 자상한 말투로 다시 말했다.“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마! 내가 꼭 사진을 돌려 받아줄게.”정민아를 데리고 온 후, 주소월이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민아는 정선아의 머리채를 잡더리 휴게실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버렸고 그녀의 행동이 얼마나 빨랐는지 그 누구도 미처 말리지 못했다.정선아는 정민아의 무력에 의해 문 앞 바닥에 넘어졌고 싸맨 상처가 터지면서 고통이 밀려와 짧은 비명을 질렀다.주소월은 곧장 정신을 차리고 휴게실 문을 두드렸고, 휴게실 소파에 앉아 한창 재밌게 떠들던 부잣집 도련님들도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그들은 방금 전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정민아가 자기들을 향해 걸어오자, 놀라움과 흥분을 금치 못했다.이때, 그중 한 남자가 옆이 트인 드레스 사이로 길고 균형 잡힌 정민아의 다리를 감상하다가 다소 건방진 태도로 말을 건넸다.“민아 씨가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연우 도련
휴게실의 광경에 고연우의 눈이 커졌고 잠시 말문까지 막혔다.“정민아.”주소월도 눈앞의 광경에 놀라 다리에 힘이 빠졌고 하마터면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민아야...”얼굴에 피가 묻은 채, 한 손에 깨진 술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리모컨을 들고 있는 정민아의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멀리 튕겨 나간 정선아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고연우는 차가운 눈으로 정민아를 노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당장 술병 내려놔.”그러나 정민아는 턱을 치켜들며 그에게 TV를 가리켰다.고연우의 시선도 그녀를 따라 TV로 향했고 이내 정민아가 술병에 처참하게 맞아댄 남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야한 사진을 보았다.그러나 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무덤덤하게 눈을 돌려 피가 흐르는 그녀의 팔을 보면서 말했다.“뒷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공 비서랑 병원에 가서 상처부터 치료해.”그러나 정민아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빈정댔다.“연우 도련님은 정말 마음이 넓은 사람인가 봐. 내가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구는 사진을 보고도 너무 태연한 반응을 보이잖아.”고연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사진 속 사람이 네가 아니니까.”그 사진들은 정교한 보정 기술을 거쳤기에 정민아의 몸을 자세히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그러나 고연우가 단번에 합성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채자, 정민아는 조금 의아했다.“사진 속의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거 어떻게 알았지?”고연우는 그녀의 뒤쪽 허리 아랫부분의 흉터가 갑자기 떠올라 입술을 오므리더니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만지작거렸다.곧이어 정민아는 소파에 앉아 겁에 질린 얼굴로 목을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면서 싸늘하게 물었다.“얘기해 봐, 이 사진들은 어떻게 된 거지?”그 남자는 순간 정민아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기를 더 심하게 찔러댈까 봐 두려워졌고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민아 씨, 먼저 이 술병부터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그러나 곧이어 사악한
말을 마친 사연희는 주소월의 반응을 신경 쓰지도 않고 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고 모여있던 구경꾼들은 자발적으로 그녀와 정민아에게 길을 내줬다.정민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누군가를 찾았다.마침, 멀지 않은 곳의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서은혁은 그녀와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고, 이내 그녀를 향해 눈을 지그시 깜박거리더니 안정통로로 들어갔다.사연희도 곧장 정민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뭘 봐? 누구 있어?”“아무것도 아니야, 가자.”얼마 지나지 않아, 고연우와 공민찬도 휴게실에서 빠져나왔고 긴 다리를 이용해 몇 걸음 만에 그녀들을 따라잡았다.정민아는 두 남자가 계속 뒤따라오는 것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서서 물었다.“나한테 무슨 볼일 있어?”고연우가 말을 꺼내기 전에 공민찬이 먼저 다급하게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술을 드셔서 운전을 못 하시는데 제가 뒷수습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시다시피 여기는 대리운전을 부르기도 힘들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두 분이 같이 가시면 안 될까요?”정민아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조리 있게 말했지만, 그녀는 눈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내가 저지른 일은 왜 공 비서가 뒷수습해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대표님을 살뜰히 챙겨서 먼저 들어가요.”공민찬은 갑자기 유리 조각에 목이 찔려 피를 철철 흘리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녀에게 한마디라도 잘못해서 심기를 건드리면 큰 화를 면치 못할 것 같았다.“아니에요, 목덜미에 피가 철철 흐르는 남자를 간단하게 치료라도 해주고 병원에 보내야 하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입막음도 해야 해서 제가 해결하는 게 빨라요.”고연우는 얼굴을 심하게 찡그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맞은 남자가 웬일로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빨리 보내달라고 애원하던데, 그의 친구들도 아직 어안이 벙벙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이런 사소한 일은 제가 처
정민아는 사실 비아냥거리는 것도, 일부러 고연우의 심기를 건드리려는 것도 아닌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뿐이었다.그녀가 한 말을 다시 한번 곰곰이 되새기던 고연우는 생각할수록 그 말들이 귀에 거슬렸을 뿐만 아니라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내려.”곧이어 그는 시간을 한번 체크하더니 무반응인 정민아에게 차갑게 말했다.“5초 줄 테니까 당장 내 차에서 내려! 그렇지 않으면, 내일 네 그 망할 가게가 문을 닫게 될 거야.”그러나 정민아는 협박에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확실해?”“당장 꺼져!”정민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에서 내리자, 그는 차가운 얼굴로 조수석에서 내리더니 운전석에 올랐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정민아는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는 차를 보면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연락했다.“안녕하세요, 음주 운전을 신고하려고요. 검은색 벤틀리에 번호판은 XXX이고 방금 XX로를 벗어났어요.”신고를 마친 후, 그녀는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유유자적하게 주변 거리를 거닐었다.사연희의 집 주위에는 야시장이 있었고 각종 음식, 옷, 액세서리와 장난감을 파는 상인들과 손님들로 엄청나게 붐볐다.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정민아는 그중에서도 손님이 가장 많은 만둣가게에 들어가 만둣국 한 그릇을 주문했다.추운 겨울에 따뜻한 국물이 몸을 타고 들어가자, 온몸의 한기가 다 가시면서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둣국을 깨끗하게 비운 후, 택시를 잡아탔다.“아저씨, 신림동으로 가주세요.”신림동은 경인 시에서 부자 동네로 유명했고,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동네인 관계로 십만 원을 더 내야만 했다.정민아는 택시 뒷좌석에 기대어 앉아 은행 카드 잔액을 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3월이면 그녀와 사연희가 가게 월세를 각각 3천만 원을 내야 했지만, 그녀의 계좌에는 3천2백만 원밖에 남지 않았고 2월에 나오는 월급과 배당금을 다 끌어모아도 나머지 8백만 원을 채우기에는
정민아는 송씨 아주머니의 애정 어린 배웅을 받으면서 집을 나섰고 운전석에 올라타자마자 고연우의 회사가 아닌 자기의 작업실로 향했다.30분 후, 차는 정민아의 사무실 부근에 도착했고 고연우는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는 공민찬에게 연락했다.“공 비서, 나 데리러 와.”공민찬은 이른 아침부터 정민아의 가게 근처로 데리러 오라는 말에 그가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예상하고는 부랴부랴 그쪽으로 향했다.곧이어 그는 고연우가 정민아에게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운전 면허증도 취소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연우가 언짢은 표정을 짓자, 공민찬은 혹시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봉변을 당할까 봐 계속 눈치를 살폈고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곧이어 회의 내내 입에 담기도 어려운 심한 말을 들으면서 사죄하는 임원들을 보면서 공민찬은 다시 한번 자기의 판단이 맞았다는 확신이 들었다.폭풍 같았던 회의가 끝난 후, 공민찬은 고연우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가 병원에 가서 사모님의 정신과 진료 기록을 받아왔는데, 혹시...”고연우는 서류를 뒤적이던 행동을 멈추더니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공 비서, 당신한테 주어진 업무가 적은 거야, 아니면 능력에 비해 월급을 높게 받는 게 양심에 찔린 거야? 왜 시키지도 않은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그는 혹시라도 월급이 깎일까 봐 진단서를 품에 꼭 안은 채 도망갈 준비를 했다.이때, 고연우가 그를 불러세웠다.“잠깐.”“저한테 따로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가져와.”“네... 알겠습니다.”공민찬은 공손하게 진단서를 건넸고 고연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 그러면 저는 이만 나가봐도 될까요?”“18살부터 아팠다고?”“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경인 시의 모든 병원을 수소문해 봤는데 그 이전의 정신과 진단을 받은 기록은 없었습니다.”“발병 원인이 뭐래?”공민찬은
서은혁의 신분을 확인한 정민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날 찾아온 이유가 뭐죠?”서은혁은 코를 만지작거리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내가 우연이라고 말하면 믿을 건가요?”“당신은 허약한 몸 때문에 시골에 내려가서 산 게 아니라, 당신의 부모님께서 당신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어렸을 때 외국 고모의 집으로 보낸 거잖아요.”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변명도 하지 않고 자기의 거짓말을 빠르게 인정했다.“미안해요...”“정말 미안하다면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고 혹시라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모른척하고 지나가세요. 난 당신 누나를 제외하고 서씨 가문의 모든 사람이 다 싫어요.”곧이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레스토랑 직원을 불렀다.“저기요, 이것들 포장해 주세요.”사실 서은혁은 정민아가 자기의 신분을 알게 된다면 죄책감은 아니더라고 최소한의 미안한 감정은 남아있을 거로 확신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졌다.정민아가 포장한 음식들을 들고 가게에 다시 돌아오자, 사현희와 백아영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컴퓨터를 켜고 미완성인 디자인 원고를 보다가 사색에 잠겼다.몇 년 전, 서현란은 두꺼운 영어 사전을 품에 안고 정민아를 향해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었다.“민아야, 너 알아? 나 사실 남동생이 있어. 물론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 살아서 크리스마스 때만 간간이 얼굴을 보지만 엄청나게 잘생겼어! 내가 나중에 너한테 정신으로 소개해 줄게, 난 두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거든. 네가 우리 집에 시집온다면 다들 널 공주님처럼 총애할 거야!”“근데 너보다 두 살 어려. 연하라도 상관없지? 괜찮지?”그러나 당시의 정민아는 남동생이 있다는 서현란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그녀는 경인에 와서 사귄 첫 번째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인 서현란이 자기 때문에 곤란해질까 봐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항상 친한 척하지 않았었고 일부러 떨어져서 걸어 다녔었다.그러던 어느 해의 새해 전날, 골목을 지나던 정민아를 나이에
정민아는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답했다.“공 비서한테 널 죽이고 둘이 재혼한 다음 네 돈으로 집이랑 차도 마련하고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자고 했지.”“생각은 참 야무지네, 내가 죽으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지, 너한테는 한 푼도 안 남겨줄 거야. 내 돈으로 남자를 만날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남자를 바꿔서 만날 건데, 눈에 거슬리면 빨리 나랑 이혼해!”“이혼하면 다시 새로운 남자를 찾아서 결혼하려고? 과거 따위는 다 잊고 새출발하려고?”고연우가 잠시 멈칫하더니 낮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참, 넌 사악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굳이 잊지 않아도 생활에 전혀 영향이 없지! 네가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그 정도로 악랄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해.”작업실 안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맴돌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까지 들게했다.정민아는 갑자기 손에 쥔 마우스를 고연우의 얼굴을 향해 던졌고 다음은 휴지통, 물컵...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던져버렸다.끊임없이 날아드는 물건들을 아무리 피하려고 노력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고 결국 비싼 셔츠에 빨간 국물이 튀었고 손등도 여기저기 긁혀서 피가 배어 나왔다.“정민아, 그만해!”“고연우, 내가 널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왜 나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야? 내가 모든 과거를 다 잊고 다시 새출발하겠다는데 왜 네가 반대하냐고!”그 순간, 정민아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억눌러 왔던 감정들을 쏟아냈고, 말할수록 격분해서는 얼굴도 빨개졌고 마지막에는 소리까지 지르며 발악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깨끗했던 작업실은 난장판이 되었고 바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고연우는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피하면서 그녀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이제 충분히 부쉈어?”“...”“가게 월세를 다 해결했나 보네, 돈이 남아돌아서 이참에 가게 물건들도 다 새로 바꾸려고?”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이 없이 책상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는 정민아를 5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