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온 후, 정민아는 바로 위층 작은 방에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자기의 멍든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계란으로 멍 자국을 찜질하기 위해 주방으로 내려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문을 두드리려던 송씨 아주머니와 마주쳤다.그녀의 멍이 든 얼굴을 본 송씨 아주머니가 놀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어머, 이게 무슨 일이에요? 연우 도련님과 같이 외출하신 거 아니었어요? 어쩌다가 이렇게 심하게 다치셨어요?”그러나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정민아는 송씨 아주머니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호의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거부감마저 들었다.잠시 후, 송씨 아주머니의 진심이 통했는지 경계심이 많던 정민아의 목소리가 어느새 부드럽게 변했다.“아주머니, 그냥 작은 상처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계란으로 찜질하면 금방 나아질 거예요.”그러나 송씨 아주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예쁜 얼굴이 파랗게 멍들고 부었는데 어떻게 작은 상처라고 할 수 있어요! 아가씨, 여자한테는 얼굴이 생명이니까 아무리 작은 상처라고 생각해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돼요. 나중에 흉지면 평생 후회할 거예요.”정민아는 송씨 아주머니의 쉴 새 없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조금도 귀찮거나 반감이 들지 않았다.이때, 송씨 아주머니가 자기 머리를 콩 쥐어박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제가 깜빡했네요! 연우 도련님께서 왕 박사님을 부르셨어요. 지금 아래층에서 아가씨를 기다리고 계시니까 내려가서 얼른 진료받아요.”“연우가 왕 박사님을 불렀다고요?”정민아는 매일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을 달고 사는 송씨 아주머니가 두 사람의 화목한 부부 생활을 위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당연하죠,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얼마나 관심하는데요. 오늘 왕 박사님께서 가족과 함께 교외 리조트로 휴가를 떠났다고 들었는데,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적어도 두 시간은 걸렸을 거예요. 도련님께서 시간을 잘 맞춰 연락해서 일찍 도착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저는 부부 사이에 해결하지
정민아는 원래 나긋나긋한 성격이 아니었기에 금세 인내심을 잃고 그에게 따졌다.“나랑 이혼하길 바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또 이혼 안 하겠다는 거야! 너 설마 고통을 즐기는 이상한 취미가 있어? 아니면 나랑 자면서 정이라도 든 거야?”너무나 노골적이고 저속한 말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교류가 그것밖에 없는 건 사실이었다.고연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았고, 그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차가워졌다.“얼굴 상처가 언제면 나아진대?”정민아는 기가 막혀 눈살을 찌푸리면서 헛웃음을 지었다.“설마 날 걱정하는 거야?”“꿈을 많이 꾸면 몸에 해로우니까 저녁에 잘 때 높은 베개를 베지 말도록 해. 네가 이런 얼굴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내가 널 폭행했다고 오해할 거야, 최근에 아주 중요한 계약 건이 있으니까 이상한 소문이 퍼지면 안 돼.”“설마 이혼을 반대하는 것도 그 계약 건 때문이야?”“그런 게 아니면, 설마 정말로 너한테 정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정민아도 지금 당장은 이혼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 돌아서서 서재를 나갔다.그녀가 방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 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날 밤, 고연우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이튿날.정민아는 멍이 든 얼굴로 출근하면 고객들이 불편해할까 봐 며칠 휴가를 냈다.마침, 목요일이라 주말까지 집에 박혀있을 계획이었던 그녀는 오후쯤 주소월한테서 걸려 온 연락을 받고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정씨 가문으로 향했다.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더 심각해진 얼굴의 멍 자국을 가릴 생각도 없이 밖을 나갔다.저녁 식사 시간을 딱 맞춰서 도착한 정민아가 문을 두드리자, 주소월이 버선발로 나와 문을 열어주면서 푸념을 털어놓았다.“민아야, 선아 남자 친구가 선아한테 이별 통보를 했다는데, 이 일이 너와...”주소월은 정민아의 멍든 얼굴을 발견하고 흥분하면서 폭풍 질문을 퍼부었다.“민아야,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됐어? 무슨 일이야? 누가 그랬어?”그녀의 얼굴 상처는 한눈에 봐도 사람한
장기태와 정선아는 연인 사이였고, 상처 입은 모습을 집안 어른들한테 보일 수 없었던 그는 정선아의 본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어젯밤 산책을 하던 주소월은 우연히 장기태와 마주쳤고,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누가 그랬는지 궁금했었다.‘민아가 저렇게 만들어 놨을 줄이야...’그녀는 정민아가 1미터 80센티미터의 건장한 남자를 무참히 짓밟았다는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이때, 집안에서 정철진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루 종일 사고를 치는 것 외에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야? 빨리 들어오지 못해?”정철진은 군인 출신이라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주소월은 정민아를 데리고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갔고, 소파에 앉아 있던 정철진은 차가운 시선으로 정민아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선아를 좀 따라 배워, 어디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남자랑 주먹다짐해! 네 주위를 둘러봐봐, 다들 얼마나 조신해.”정민아는 가소로운 듯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도둑질을 좋아하는 친엄마와 술과 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친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유전자가 어디 가겠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착한 딸 행세는 바라지도 마세요!”정철진은 두툼한 손바닥으로 원목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노발대발했다.“그래서 네가 지금 선아의 결혼을 망치겠다고? 정민아, 네가 이렇게 나오면 연우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남들이 고씨 가문이랑 정씨 가문을 어떻게 보겠어!”“정선아가 내가 자기 결혼을 망쳤다고 하던가요?’“넌 어쩜 어려서부터 선아한테 덮어씌우려는 버릇은 변하지 않니? 네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남자 쪽에서 갑자기 네가 좋다면서 이별 통보를 한 거야.”정민아는 기가 막혀서 실소를 터뜨렸다.“장기태가 내가 자기를 유혹했다고 했어요? 아니면 아버지께서 간통을 저질렀다고 나도 그놈이랑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는 건가요?”정철진은 군대에 있을 때, 갖은 무례한 말을 들어봤지만, 정민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내가 무슨 자격으로 때리냐고? 내가 쟤 아버지야. 그래도 때릴 자격 없어?”정철진은 군대에서 신병을 훈계하는 자세로 나왔다.“쟤가 하는 꼴 좀 봐. 온 세상이 자기한테 빚진 것처럼 모든 게 불만이야. 산골 아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보여줘야 했어. 그에 비하면 얼마나 유복한데, 뭐가 불만이야?”“산골의 부모는 자기 친딸을 양딸로 키우지는 않아요.”이 말이 떨어지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거실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너...”주소월은 정민아가 알고 있을 줄 몰랐는지, 놀라서 목소리 톤까지 바뀌었다.하지만 정선아가 아직 옆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하려던 말을 삼키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민아야, 남이 함부로 나불대는 소리를 듣고 오해한 것이 아니니? 다른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고 먼저 아버지에게 사과해. 의사 선생님이 지나치게 흥분하면 안 된다고 했어.”주소월은 평생 군인의 아내로 살았고 자신도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 처세술에 강한데, 이렇게 억지스러운 말로 화제를 돌리는 걸 보니 정말 당황했나 보다.정민아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더 이상 한 글자도 내뱉지 못했다.그녀가 사실상 양딸이 아니라 친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런 결과가 있을 줄 알았다. 그들은 정민아를 키우고 부모의 책임을 다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양딸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정민아는 눈을 내리깔아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었다. 모든 날카로움이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세상만사가 귀찮았다.“죄송해요. 의사 선생님께서 저는 정신병이 있다고 했어요. 정신병은 더더욱 자극받으면 안 돼요.”그녀는 이 집에 1초도 더 있기 싫어서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정민아는 전혀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뺨을 만지며 그녀는 심지어 이쪽 얼굴을 때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맞은 자리에 또 맞았을 거니까.주소월이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정민아는 그녀가 내민 손을 보지 못한 듯 빠르게 걸어갔다.밖으로 나오니, 마침
정민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손을 뺀 후 그를 건너서 가버렸다.밖으로 나오니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대부분 식사가 끝나고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편안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함께 걷고 있었다. 도로에 줄지어 달리는 차들과 거리를 온통 채운 네온사인이 이 도시의 번화함을 부각시켰다.그녀는 처음 정씨 저택에 왔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정철진과 주소월이 직접 그녀가 있는 작은 도시로 데리러 왔고, 여기 도착했을 때 딱 이 시간이었다. 처음 대도시에 온 그녀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정씨 저택의 문이 눈앞에서 천천히 열렸고, 안에서 소년 소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유행되는 신상 옷으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색이 바래고 늘어난 데다 키가 크면서 소매와 바짓가랑이가 짧아진 옷을 입고 있었고, 밖으로 드러난 팔다리는 뼈만 앙상해 초라하고 꾀죄죄했다. 그녀는 그 집, 그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선아야, 언니야. 우리가 새로 입양한 아이.”정민아는 나중에야 이 잠깐의 멈춤이 그녀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았다.정민아를 데려오기 전에 부모님은 이미 정선아에게 이를 이야기했다. 정선아가 이 일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많이 울었기에 그녀가 들어섰을 때 애들은 하나같이 배척과 경멸의 시선을 보내왔다.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정민아는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에 특히 민감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그녀는 그들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그 후에 겪은 일들은 그녀의 직감이 맞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마당 뒤편에는 빈 벽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아무도 가지 않던 곳이었다. 정민아가 오고 나서 그 벽은 온갖 욕설로 도배됐다.[오늘 똥개를 보았니?]맨 위에 있는 큼지막한 제목이다.[똥개는 바람기가 있는 천한 여자다.][오늘 내가 똥개에게 구정물을 끼얹었더니 화를 냈어. 하하하! 그 옷은 우리 증조할머니가 봐도 촌스럽다고 싫어해. 시골 촌뜨기나 보물로 여기는 거지. 웩!][천한 년이 감히 내 남자친구를 유혹하다니,
쾅! 누군가가 밖에서 욕실 문을 걷어차서 열었다.고연우가 몇 걸음에 욕조 옆으로 다가와 물밑에 가라앉은 정민아를 끌어올렸다. 그의 얼굴은 서리가 맺힐 듯 차가웠다.“정민아, 미쳤어? 죽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죽어.”정민아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고 흐트러진 동공은 한참 후에야 초점을 찾았다. 남자의 분노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욕조를 보았지만 여자는 보이지 않았고 물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았다.그녀는 고연우의 허리를 휘감은 손을 놓고 흠뻑 젖은 눈을 내리깔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잠들었어.”말하고 나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목욕하는데 왜 들어왔어?”“허!”고연우는 그녀의 적반하장에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내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내일 네 묘지를 알아봐야 했을 거야.”그는 밖에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계속 대답이 없어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것이다.“죽을 생각이 없었어.”죽고 싶어도 그 무리를 하나씩 지옥에 끌어넣은 후 죽을 것이다.정민아는 그가 보는 앞에서 선반 위의 목욕 가운을 내리려 했다. 고연우가 그녀를 직접 욕조에서 끌어냈는데,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그가 보는 앞에서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이 태연하게 돌아서서 손을 뻗었다...오히려 그녀가 똑바로 섰을 때 고연우가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시선을 피했다.둘이 잠자리를 가졌지만 매번 불을 끈 상태에서 상대방의 희미한 그림자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열 번에 일곱 번은 한밤중에 곤히 자고 있을 때 정민아가 그의 몸 위로 올라와 수동적으로 깨어났다.그는 워낙 정민아에게 애정이 없는 데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방식이 싫었다. 남자라면 모두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지는 잠자리는 성의가 없었고 시작하기 전의 애무는 고사하고 절정에 달했을 때의 위로도 없었다.그래서 고연우는 정민아의 몸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시선을 피한 것도 뼛속까지 신사적인 그의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다
고연우는 그녀를 힐끗 봤는데, 그 눈빛은 마치 멍청한 바보를 보는 것 같이 속눈썹마저 경멸을 나타내고 있었다.그는 그녀를 건너서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정민아는 아래층에 내려와서야 송씨 아주머니가 면을 두 그릇 끓였다는 것을 알았다. 고연우는 벌써 젓가락을 들고 먹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위에 노릇노릇한 계란후라이와 잘게 다져서 볶은 고기, 파릇파릇 싱싱한 야채를 얹고 그 위에 송송 썬 쪽파를 뿌린 면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고, 한 젓가락 집으니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맛있는 냄새가 확 풍겼다.그녀는 면이 뜨거워 무심하게 집었다 놓았다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초점 없는 시선으로 주방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마지막에 고연우를 바라보았다.“밥 안 먹었어?”“응.”“정선아를 좋아해?”고연우네는 몇 년 전에 그 마을에서 이사 갔고 두 집은 같은 방향도 아니다. 고연우가 오늘 그렇게 때마침 나타난 것은 정선아의 작간이 틀림없다.면을 먹고 있던 고연우는 멈칫하더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내뱉은 말은 매우 듣기 거북했다.“집 나간 정신이 아직 안 돌아왔어?”정민아는 그를 바라보면서 말을 잇지 않았다.그녀는 사람을 바라볼 때 눈꼬리를 내리는 습관이 있는데, 이목구비가 또렷하지만 약간 염세적인 얼굴로 그렇게 보고 있으면 세상을 우습게 보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그녀의 시선에 밥맛이 떨어진 고연우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부모님이 뭔가 가져다드리라고 해서 갔어. 공교롭게 도착하자마자 네가 악랄하게 날뛰는 모습을 보게 된 거야.”말투는 덤덤했지만 눈가에 감도는 비꼬는 기색에서 경멸의 뜻이 남김없이 드러났다.정민아는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면을 먹었다. 그녀는 먹는 속도가 빨랐지만 소리는 별로 나지 않았다. 면 한 그릇은 이내 바닥이 났고, 더 이상 건져지는 것이 없을 때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휴지로 입을 닦더니 절반 넘게 남은 고연우의 면에 시선을 돌렸다.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배 안 불렀어?”그는
이 말이 끝나자 거실은 정적에 휩싸였다.정민아는 눈을 내리깔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정선아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겠으면 쿠팡에서 여자친구를 사 줄게.”“...”이 말을 들은 고연우는 쓴웃음을 짓더니 비꼬는 듯한 눈빛으로 정민아의 얼굴을 훑었다.“네 덕분에 나는 이제 여자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어.”“남자도 있어.”목소리가 맑고 시원해서 듣기 좋았지만 하는 말은 이가 갈릴 정도로 미웠다.“그래서 나한테 남자를 사주겠다는 거야?”고연우의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은 그냥 차가운 표정보다 더 섬뜩했다. 그는 더 이상 정민아와 말을 섞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정민아는 초점 잃은 눈빛으로 불어버린 면을 바라보았다.“고연우, 이혼하면 좋지 않아? 이혼하면 너랑 나 모두 자유를 얻게 되잖아.”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지극히 웃긴 얘기를 들은 것처럼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자유를 얻는다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그는 눈에 비꼬는 기색이 가득했다.“그렇게 많은 사람을 해치고 그렇게 많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네가 무슨 자격으로 자유를 얻어?”“...”“사모님.”송씨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한 그릇 더 끓여드릴까요?”정신을 차린 정민아는 그제야 고연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아니요.”그녀의 외롭고 가냘픈 뒷모습을 보면서 송씨 아주머니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모님, 대표님과 무슨 오해가 있는지 모르지만 사모님이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대표님이 오해하고 계신다면 분명하게 설명하세요.”“오해 아니에요.”고개를 돌린 정민아의 눈에 웃음기가 있었지만 기쁨에서 나오는 그런 웃음이 아니었다. 송씨 아주머니는 이게 어떤 종류의 웃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슬펐다.“제가 정말 많은 사람을 해쳤어요.”...월요일에 정민아는 얼굴의 상처가 다 낫지 않았지만 여전히 작업실로 나갔다. 백아영이 아침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