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혁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순 없다. 하물며 박연희와 진시아가 아직 심지철의 손에 있다... 진시아는 시멘트 바닥을 계속 걷어차는 바람에 의족까지 떨어져 나간 상태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낭패했다.선두에 선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매우 겸손한 태도를 갖추었다.“조 대표님, 저희는 대표님과 개인적인 원한이 없고 순전히 돈을 받고 일하는 것입니다. 창고에 있는 여자라면 조 대표님께서는 한 명만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남겨진 한 명이라면 저희가 말하지 않아도 조 대표님께서 잘 아실 겁니다.”그는 군말 없이 바로 부하들을 불러모았고 그 순간, 버려진 창고는 야외 영화관이 되었고 화면에는 뜻밖에도 진시아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남자의 희열 어린 외침과 여자의 비명이 뒤섞여 귀를 자극했다.화면 속은 아주 형편없었다...이것은 조은혁 일생의 수치이다.손가락이 오그라들고 얼굴 근육은 거의 뒤틀리다시피 일그러졌지만 그는 여전히 애써 미소를 지었다.“어르신 정말 독하시네요. 이건 제 얼굴을 땅에 박고 문지르는 것과 다를 바도 없는데 저에게 조금의 여지도 주고 싶지 않으신 거군요.”“조 대표님, 죄송하게 됐습니다.”말하는 동안, 진시아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을 다시 직면해야 할 줄 꿈에도 몰랐다. 비록 그녀가 지금 몸을 팔아 먹고산다고 해도 그날 밤은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이다.“읍읍...”그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고 조은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애원이 가득했다.조은혁이 그녀를 선택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조은혁 역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고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연민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일말의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면 조은혁은 진시아를 완전히 지나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조은혁이 흔들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심지철의 뜻대로 넘어가는 것이다.심지철이 원하는 것은 진시아에 대한 조은혁의 죄책감이고 조은혁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며 폭풍우가 몰아친다.심지철은 수십 년 동안 절정의 높은 자리에 있으며 단 한 번도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하지만 이 순간, 그의 눈에도 살기가 확연히 드러났다.보아하니 4년 전의 싸움에서는 조은혁도 실력을 전부 다 발휘하지 않았던 모양이다.이윽고 심지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너희들을 보내지 않는다면? 오늘 밤 여기 있는 모든 사람 중 아무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면?”매서운 밤바람이 휘몰아치며 조은혁의 검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조은혁은 허름한 창고에서도 여전히 온몸의 귀티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심지철의 살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만약 10분 후, 제가 김 비서에게 전화하지 않으면 JH그룹의 모든 복사기는 밤새 열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도시 곳곳에 심경서의 잠자리 사진이 가득 붙여질 텐데 어르신께 여쭙고 싶네요. 그걸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감히!”“어르신께서는 저 조은혁의 배짱을 얼마든지 시험해 보셔도 좋습니다. 저를 이 지경까지 몰아붙여 놓고 아직도 저한테 감히 그럴 수 있냐고요? 시간이 없는 건 맞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르신의 행동으로 오늘 밤 심씨 집안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죽여버렸을 테니까요. 저는 일개 무인으로서 여자고 아이이고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영상이 다시 방영된다면 심씨네 여인들도 모두 남자들에게 벌거벗겨져 강간을 당해야 할 겁니다.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심지철은 화가 치밀어 올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서 비서는 급히 청심환을 꺼내 심지철에게 건네주며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조 대표님도 말만 그렇게 할 뿐, 정말 그런 일을 하시려는 것은 아닙니다.”“아니요. 저 조은혁은 매우 진지합니다.”서 비서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심지철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고 서 비서를 살짝 밀치고는 눈을 들어 조은혁을 바라보았다.“조 대표는 정말 뛰어난 인재로군.”“연희가 눈이 좋아 절 따라온
진시아는 그 카드를 손에 꼭 쥐었다.그녀는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데 조은혁은 분명 그녀를 푸대접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시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 났다.그녀는 조은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절망과 아쉬움, 그리고 새롭게 피어나는 생기가 솟아올랐고 진시아는 갑자기 무너져내려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는 마침내 몇 년 동안 꾹꾹 숨겨왔던 말을 내뱉었다.“은혁 씨,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연희 씨에게도 죄송하다고 전해줘요. 그때 진범이를 데리고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전 하마터면 진범이를 죽일 뻔했어요...”그러나 조은혁은 아주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그는 병실 문을 열어 조금의 미련도 없이 걸어 나왔고 그와 진시아의 지난 일들도 이제 과거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같은 시각, 복도 끝에는 박연희가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조은혁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한 걸음 거리를 사이에 두고 멈춰선 그의 검은 눈동자가 그윽하게 반짝거렸다.“연희야, 이제 집으로 가자.”차에 탄 뒤에야 차 안은 피비린내로 가득했고 그의 재킷에도 피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은혁은 외투를 벗어 차에 던지고는 박연희를 끌고 막차를 타러 갔다.늦은 밤이었지만 버스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조은혁은 손잡이를 잡은 채 버스에 서서 박연희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먹물처럼 까맣게 물든 밤.하얀 셔츠에 밤바람은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가볍게 머리를 스쳤다.게다가 그는 186cm의 큰 키에 군중들 사이에서 유독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여 차 안의 많은 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그의 눈에는 오직 박연희뿐이었다...그의 눈빛은 부드러우며 아름다웠다.당시 조은혁은 5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몇 년 동안 분노에 지배되어 살아왔지만 오늘 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큼 그는 자신이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고 느꼈다.박연희가 그의 구원이었다.그들은 인파 속에서 서로 껴안은 채 서로를 응시하며 서서히 흐트러진 심장 박동을 느꼈다......그
호화로운 침대에는 짙은 검은색의 침대 시트가 깔려 있다.박연희를 침대에 가볍게 내려놓았는데 하얀 유카타에 검은 머리를 얇은 어깨에 늘어뜨리니 여린 미모가 한층 더 돋보였다.조은혁은 약상자를 가지고 와서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의 가는 손목을 잡고 약을 발라 주었다.가느다란 손목에는 몇 가닥의 깊이 죄인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아파?”박연희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이제 안 아파요.”조은혁은 박연희에게 약을 잘 발라준 뒤, 소매를 내려주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수정 등 아래에서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세월이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묻고 싶은 건 없어? 내가 병실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앞으로는...”“알고 싶지 않아요.”그러자 조은혁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움켜쥐고 가볍게 밀쳐 넘어뜨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드디어 드레스룸에서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네.”“드레스룸이 더 짜릿하다면서요?”조은혁이 또 가볍게 웃었다.그는 그녀 옆에 돌아누워 진지한 얼굴로 관계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사실 남자는 자극보다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므로 침대에서 하는 것이 딱 좋아. 충분히 사적이고 넓어서 원하는 포즈는 다 할 수 있잖아.”박연희는 금세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의 어깨를 퍽 때렸다.“정말 입 밖에 나오는 말이 본성을 떠나질 않네요.”그는 워낙 욕구가 강렬한지라 그녀의 생리 기간을 제외하면 한 달 30일 동안 하루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가끔 박연희는 조은혁은 대체 어떻게 마흔이 넘었는데도 이렇게 좋은 에너지를 가졌는지 정말 궁금했다.그러나 어깨를 내리치자마자 박연희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조은혁이 그녀에게 자신의 몸을 바싹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 그의 절박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깊은 그의 눈동자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녀의 수줍음을 알아차렸다.“그렇게 많이 했는데 아직도 부끄러워?”그가 쉰
사실 조은혁은 원래 박연희가 싫다고 거절할 줄 알았다.하지만 성숙한 여인이라면 어찌 거절하겠는가? 게다가 오늘 밤 박연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부드럽고 온순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길 의향이 있었다... 뜨거운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물결이 밀물과 썰물처럼 출렁거렸다.조은혁은 줄곧 그녀의 작은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희고 앙증맞은 얼굴에 부드럽고 새까만 긴 머리카락이 어깨에 늘어져 있어 마치 맑은 물의 요괴와도 같았다. 게다가 그녀가 지금 그에게 하는 일은 지극히 방탕하며 반짝반짝 빛나던 눈동자가 살짝 감긴 모양은 즐거움에 익숙한 여인 같았다.사치스러운 욕실 안은 어느새 봄처럼 따뜻하게 피어올랐다....같은 시각, 차에 앉아 있는 심지철의 주위는 추운 섣달과도 같이 싸늘했다.옆에는 서 비서가 계속 설득하고 있었다.그렇게 한참 후에야 심지철이 한마디 내뱉었다.“조은혁 이놈은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 되겠군.”서 비서는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마음이 급해진 서 비서가 막, 입을 열려고 했지만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심지철은 한창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인데 그가 무슨 수로 그들 사이에 끼어들겠는가?검은색 세단이 천천히 심씨 저택으로 들어왔고 저택에 도착한 심지철은 그대로 지하실로 들어갔다.심경서는 여전히 묶여 있고 물조차 마시지 못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눈을 들어 심지철의 삼엄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심경서 역시 심지철을 잘 알고 있기에 즉시 음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연희 씨에게 또 무슨 짓을 했냔 말입니까?”그러나 심지철은 냉담한 눈빛으로 꼴이 말이 아닌 심경서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의 잠자리 사진들을 심경서의 얼굴에 내동댕이쳤다.“왜 이렇게 변한 것이냐?”차마 뜬 눈으로 보기 어려운 사진들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고 심경서는 보자마자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이건 어디서 난 겁니까?”“네가 물어볼
심경서 부부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오늘 밤, 이 황당한 광경을 보게 된 김이서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그녀는 줄곧 그녀의 남편이 비록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품고 있더라도 줄곧 결혼에 충성을 다했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심경서가 사석에서 이렇게 방탕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천한 년과 뒹굴며 조금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 것이 짐승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그 순간, 재떨이가 심경서의 미간에 부딪히고 검붉은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것으로 그들 부부의 정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심경서는 자신의 부인을 어두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끝이야?”끝일 리가 있겠는가?김이서의 마음은 마치 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임윤아를 끌어내더니 피가 나도록 뺨을 때렸다.그러나 임윤아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약자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법이다.그러자 심경서는 곧바로 버럭 화를 냈다.“김이서, 언제까지 소란 피울래? 정말 이혼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잠잠해지려는 셈이야?”이혼...김이서는 숨을 쉬는 것마저 잊은 채 펄펄 날뛰는 남편을 바라보며 첫 만남의 설렘마저 거의 잊어버렸다. 당시 심경서는 점잖으면서도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그저 술과 재물에 눈이 멀어버린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김이서가 한 발짝 물러섰다.문득 그녀는 소파에 엉킨 남녀의 옷가지를 안고 뛰쳐나갔다.“경서 씨.”임윤아는 심경서의 어깨에 달라붙어 낮게 흐느끼기 시작했고 수정 등 아래 밝게 빛나는 흰 피부와 먹물처럼 까맣고 폭포수와도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남자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다.심경서가 그녀에게 외투를 걸쳐주었다.그는 긴 바지를 대충 껴입고 소파에 앉아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담배 두 개비를 피우는 동안, 심경서가 임윤아를 보고 속삭였다.“어르신은 널 용납할 수 없을 거야. 게다가 난 와이프와 정략결혼을 한 거라 쉽게 이혼할 수도 없어... 그러니 난 너에게 명분을 줄 수 없어.”한 남자가 이렇게까
그의 말에 이 비서도 덩달아 진지해졌다.“좀 까다롭긴 하네요! 그런데 마침 제 친구에게 빈집이 있는데 장소는 크지 않지만 품위가 상당히 좋습니다. 바로 남로거리에 있는 문화거리라 임윤아 씨의 신분과도 상당히 맞을 겁니다.”그러자 심경서는 담배를 비벼 끄며 임윤아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지금 가도록 하지.”...작은 트렁크 두 개와 흔들거리는 차 안.한 시간 후, 그들은 남로거리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 장소는 확실히 25평 남짓으로 크진 않았지만 인테리어는 매우 사치스러웠고 모든 종류의 장식품도 상당히 훌륭했다.심경서마저 저택의 호사스러움에 경탄할 정도였다.임윤아를 집에 두고 심경서는 다시 내려가서 차에 올라탔다.이 비서가 직접 차를 몰고 그는 차를 몰며 담소를 나누었다.“집이 참 좋더군요. 모처럼 윤아 씨도 마음에 들어 하시던데 잠시 살기에는 좀 아쉬운 감이 있네요. 그렇지 않으면 내년 봄에 윤아 씨도 창가에 서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텐데... 테라스에 있는 해바라기꽃도 마침 꽃을 피울 거고 생각만 해도 그림 같네요.”“이 집은 얼만데?”그러자 이 비서는 능숙한 듯 답해주었다.“아이고, 우리 심 주임님, 그 집은 절대 싸지 않아요. 사실 집은 20억 정도밖에 안 되지만 안에 있는 장식품들이 엄청 비싸더군요. 지난번에 들었는데 총 60억 된다고 들었어요.”차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이 비서는 운전하며 일부러 이해심이 많은 듯 말을 이었다.“주임님 월급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키운다는 것은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돈은 제가 먼저 주임님께 대납할게요. 주임님께 여유가 생기면 다시 보고요.”심경서가 차창을 내렸다...그리고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심경서의 출신에 말쑥한 아가씨를 붙잡아두고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얹혀살도록 두고만 볼 수 있겠는가. 잠깐 고민하던 심경서는 다시 이 비서에게 말을 건넸다.“그래도 난 그 집을 사고 싶네.”이 비서는 계속하여 침묵을 지키며 끽
한참 후에야 김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절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이혼? 심경서 씨, 당신 저와 처음에 결혼했을 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요... 당신은 내가 온화하고 다정하다고 했고, 당신은 내가 당신의 이상적인 아내라고 말했잖아요.”“그건 옛날이고. 김이서, 네 모습을 봐봐. 아직도 온화라는 두 글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해?”...김이서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버렸다.“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누가 날 이렇게 몰아붙인 건데요? 심경서, 당신이 말해보라고!”심경서는 대답해줄 수 없었다.차가운 밤바람이 스치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마당에 남은 등들이 내는 소리인 모양이다. 심지철은 순간 발끈하여 고용인들에게 분부하였다.“저 등들을 모두 부숴라.”“아버님!”최민정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깜짝 놀라 외쳤다.“아버님은 연희 씨에게 마지막 체면조차 남겨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날 밤 연희 씨를 딸로 맞이한 날 준비하신 거잖아요.”하지만 심지철은 결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그 분홍색 유리 등들은 심지철이 박연희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흔적들이지만 결국 그의 손에 의해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심경서는 곧 사당 안으로 끌려들어 갔고 심지철은 계자를 들고 호되게 내리쳤다.심철산 부부는 마음이 아팠지만 끽소리도 못했다.한편, 김이서는 계속 입술을 틀어막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남편이 죽을 만큼 미웠지만 그의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지는 것을 보며 그녀도 마음이 아파 났고 결국 김이서가 심지철을 가로막고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이제는 때리면... 정말 인명피해가 날지도 몰라요.”그러자 심지철은 화에 못 이겨 계자를 힘껏 내동댕이쳤다.밤바람이 거세서 불어 헤치며 심씨 가문의 조상들을 스치고 심경서의 몸에 남은 상처도 스쳐 지났다.최민정이 심경서에게 애원했다.“경서야, 뭐라도 말 좀 해봐.”“저놈은 지금 귀신에게 홀렸는데 마음속에 어디 제 어미가 있겠어? 이 불충하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