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로운 침대에는 짙은 검은색의 침대 시트가 깔려 있다.박연희를 침대에 가볍게 내려놓았는데 하얀 유카타에 검은 머리를 얇은 어깨에 늘어뜨리니 여린 미모가 한층 더 돋보였다.조은혁은 약상자를 가지고 와서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의 가는 손목을 잡고 약을 발라 주었다.가느다란 손목에는 몇 가닥의 깊이 죄인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아파?”박연희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이제 안 아파요.”조은혁은 박연희에게 약을 잘 발라준 뒤, 소매를 내려주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수정 등 아래에서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세월이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묻고 싶은 건 없어? 내가 병실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앞으로는...”“알고 싶지 않아요.”그러자 조은혁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움켜쥐고 가볍게 밀쳐 넘어뜨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드디어 드레스룸에서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네.”“드레스룸이 더 짜릿하다면서요?”조은혁이 또 가볍게 웃었다.그는 그녀 옆에 돌아누워 진지한 얼굴로 관계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사실 남자는 자극보다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므로 침대에서 하는 것이 딱 좋아. 충분히 사적이고 넓어서 원하는 포즈는 다 할 수 있잖아.”박연희는 금세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의 어깨를 퍽 때렸다.“정말 입 밖에 나오는 말이 본성을 떠나질 않네요.”그는 워낙 욕구가 강렬한지라 그녀의 생리 기간을 제외하면 한 달 30일 동안 하루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가끔 박연희는 조은혁은 대체 어떻게 마흔이 넘었는데도 이렇게 좋은 에너지를 가졌는지 정말 궁금했다.그러나 어깨를 내리치자마자 박연희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조은혁이 그녀에게 자신의 몸을 바싹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 그의 절박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깊은 그의 눈동자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녀의 수줍음을 알아차렸다.“그렇게 많이 했는데 아직도 부끄러워?”그가 쉰
사실 조은혁은 원래 박연희가 싫다고 거절할 줄 알았다.하지만 성숙한 여인이라면 어찌 거절하겠는가? 게다가 오늘 밤 박연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부드럽고 온순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길 의향이 있었다... 뜨거운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물결이 밀물과 썰물처럼 출렁거렸다.조은혁은 줄곧 그녀의 작은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희고 앙증맞은 얼굴에 부드럽고 새까만 긴 머리카락이 어깨에 늘어져 있어 마치 맑은 물의 요괴와도 같았다. 게다가 그녀가 지금 그에게 하는 일은 지극히 방탕하며 반짝반짝 빛나던 눈동자가 살짝 감긴 모양은 즐거움에 익숙한 여인 같았다.사치스러운 욕실 안은 어느새 봄처럼 따뜻하게 피어올랐다....같은 시각, 차에 앉아 있는 심지철의 주위는 추운 섣달과도 같이 싸늘했다.옆에는 서 비서가 계속 설득하고 있었다.그렇게 한참 후에야 심지철이 한마디 내뱉었다.“조은혁 이놈은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 되겠군.”서 비서는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마음이 급해진 서 비서가 막, 입을 열려고 했지만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심지철은 한창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인데 그가 무슨 수로 그들 사이에 끼어들겠는가?검은색 세단이 천천히 심씨 저택으로 들어왔고 저택에 도착한 심지철은 그대로 지하실로 들어갔다.심경서는 여전히 묶여 있고 물조차 마시지 못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눈을 들어 심지철의 삼엄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심경서 역시 심지철을 잘 알고 있기에 즉시 음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연희 씨에게 또 무슨 짓을 했냔 말입니까?”그러나 심지철은 냉담한 눈빛으로 꼴이 말이 아닌 심경서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의 잠자리 사진들을 심경서의 얼굴에 내동댕이쳤다.“왜 이렇게 변한 것이냐?”차마 뜬 눈으로 보기 어려운 사진들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고 심경서는 보자마자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이건 어디서 난 겁니까?”“네가 물어볼
심경서 부부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오늘 밤, 이 황당한 광경을 보게 된 김이서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그녀는 줄곧 그녀의 남편이 비록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품고 있더라도 줄곧 결혼에 충성을 다했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심경서가 사석에서 이렇게 방탕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천한 년과 뒹굴며 조금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 것이 짐승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그 순간, 재떨이가 심경서의 미간에 부딪히고 검붉은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것으로 그들 부부의 정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심경서는 자신의 부인을 어두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끝이야?”끝일 리가 있겠는가?김이서의 마음은 마치 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임윤아를 끌어내더니 피가 나도록 뺨을 때렸다.그러나 임윤아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약자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법이다.그러자 심경서는 곧바로 버럭 화를 냈다.“김이서, 언제까지 소란 피울래? 정말 이혼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잠잠해지려는 셈이야?”이혼...김이서는 숨을 쉬는 것마저 잊은 채 펄펄 날뛰는 남편을 바라보며 첫 만남의 설렘마저 거의 잊어버렸다. 당시 심경서는 점잖으면서도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그저 술과 재물에 눈이 멀어버린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김이서가 한 발짝 물러섰다.문득 그녀는 소파에 엉킨 남녀의 옷가지를 안고 뛰쳐나갔다.“경서 씨.”임윤아는 심경서의 어깨에 달라붙어 낮게 흐느끼기 시작했고 수정 등 아래 밝게 빛나는 흰 피부와 먹물처럼 까맣고 폭포수와도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남자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다.심경서가 그녀에게 외투를 걸쳐주었다.그는 긴 바지를 대충 껴입고 소파에 앉아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담배 두 개비를 피우는 동안, 심경서가 임윤아를 보고 속삭였다.“어르신은 널 용납할 수 없을 거야. 게다가 난 와이프와 정략결혼을 한 거라 쉽게 이혼할 수도 없어... 그러니 난 너에게 명분을 줄 수 없어.”한 남자가 이렇게까
그의 말에 이 비서도 덩달아 진지해졌다.“좀 까다롭긴 하네요! 그런데 마침 제 친구에게 빈집이 있는데 장소는 크지 않지만 품위가 상당히 좋습니다. 바로 남로거리에 있는 문화거리라 임윤아 씨의 신분과도 상당히 맞을 겁니다.”그러자 심경서는 담배를 비벼 끄며 임윤아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지금 가도록 하지.”...작은 트렁크 두 개와 흔들거리는 차 안.한 시간 후, 그들은 남로거리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 장소는 확실히 25평 남짓으로 크진 않았지만 인테리어는 매우 사치스러웠고 모든 종류의 장식품도 상당히 훌륭했다.심경서마저 저택의 호사스러움에 경탄할 정도였다.임윤아를 집에 두고 심경서는 다시 내려가서 차에 올라탔다.이 비서가 직접 차를 몰고 그는 차를 몰며 담소를 나누었다.“집이 참 좋더군요. 모처럼 윤아 씨도 마음에 들어 하시던데 잠시 살기에는 좀 아쉬운 감이 있네요. 그렇지 않으면 내년 봄에 윤아 씨도 창가에 서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텐데... 테라스에 있는 해바라기꽃도 마침 꽃을 피울 거고 생각만 해도 그림 같네요.”“이 집은 얼만데?”그러자 이 비서는 능숙한 듯 답해주었다.“아이고, 우리 심 주임님, 그 집은 절대 싸지 않아요. 사실 집은 20억 정도밖에 안 되지만 안에 있는 장식품들이 엄청 비싸더군요. 지난번에 들었는데 총 60억 된다고 들었어요.”차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이 비서는 운전하며 일부러 이해심이 많은 듯 말을 이었다.“주임님 월급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키운다는 것은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돈은 제가 먼저 주임님께 대납할게요. 주임님께 여유가 생기면 다시 보고요.”심경서가 차창을 내렸다...그리고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심경서의 출신에 말쑥한 아가씨를 붙잡아두고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얹혀살도록 두고만 볼 수 있겠는가. 잠깐 고민하던 심경서는 다시 이 비서에게 말을 건넸다.“그래도 난 그 집을 사고 싶네.”이 비서는 계속하여 침묵을 지키며 끽
한참 후에야 김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절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이혼? 심경서 씨, 당신 저와 처음에 결혼했을 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요... 당신은 내가 온화하고 다정하다고 했고, 당신은 내가 당신의 이상적인 아내라고 말했잖아요.”“그건 옛날이고. 김이서, 네 모습을 봐봐. 아직도 온화라는 두 글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해?”...김이서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버렸다.“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누가 날 이렇게 몰아붙인 건데요? 심경서, 당신이 말해보라고!”심경서는 대답해줄 수 없었다.차가운 밤바람이 스치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마당에 남은 등들이 내는 소리인 모양이다. 심지철은 순간 발끈하여 고용인들에게 분부하였다.“저 등들을 모두 부숴라.”“아버님!”최민정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깜짝 놀라 외쳤다.“아버님은 연희 씨에게 마지막 체면조차 남겨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날 밤 연희 씨를 딸로 맞이한 날 준비하신 거잖아요.”하지만 심지철은 결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그 분홍색 유리 등들은 심지철이 박연희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흔적들이지만 결국 그의 손에 의해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심경서는 곧 사당 안으로 끌려들어 갔고 심지철은 계자를 들고 호되게 내리쳤다.심철산 부부는 마음이 아팠지만 끽소리도 못했다.한편, 김이서는 계속 입술을 틀어막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남편이 죽을 만큼 미웠지만 그의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지는 것을 보며 그녀도 마음이 아파 났고 결국 김이서가 심지철을 가로막고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이제는 때리면... 정말 인명피해가 날지도 몰라요.”그러자 심지철은 화에 못 이겨 계자를 힘껏 내동댕이쳤다.밤바람이 거세서 불어 헤치며 심씨 가문의 조상들을 스치고 심경서의 몸에 남은 상처도 스쳐 지났다.최민정이 심경서에게 애원했다.“경서야, 뭐라도 말 좀 해봐.”“저놈은 지금 귀신에게 홀렸는데 마음속에 어디 제 어미가 있겠어? 이 불충하
박연희는 갤러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그때, 문밖에서 비서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지난번에 찾아오셨던 김 여사님께서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박연희는 잠깐 멈칫하더니 밖을 내다보았다.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확실히 김이서가 맞지만 지난번보다 많이 수척해졌고 미간에는 풀리지 않는 애수가 서려 있는데 삶이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박연희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만나주지 않으면 김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결국 박연희는 커피숍에서 김이서와 만나게 되었다.핸드드립 커피 두 잔으로 자리에는 커피의 향기가 가득했다.똑같이 우아한 두 여인이 마주 앉아 있는데 심경서 때문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평생 교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결국, 김이서가 먼저 말을 꺼냈다.“얼굴이 좋아 보이시는 걸 보니 잘 지냈나 봐.”박연희도 담담하게 답했다.“네, 나쁘진 않아요.”박연희의 말투는 한없이 냉랭했고 분위기도 한동안 딱딱하게 경색되었다.김이서는 고개를 숙인 채 커피를 부드럽게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으나 그녀의 말투는 타협한 듯 무력하게 들렸다.“이제 알겠어. 당신이 심씨 가문에 돌아가야만 경서 씨가 정말로 마음을 다잡고 가정으로 돌아갈 것 같아. 그러면 경서 씨도 이제는 밖으로 가지 않을 거고 진이와 윤이의 어린 시절에나 아버지가 있을 거야...”그녀는 다시 박연희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진이와 윤이 모두 엄청 사랑스러워. 연희 너도 보면 분명 좋아할 거야. 진이와 윤이는 당신과도 혈연관계가 있잖아.”김이서는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이며 가족애 패를 꺼냈다.그녀는 박연희가 집에 돌아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저울질했지만 심경서는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이다. 심경서도 그저 박연희를 곁에서 바라볼 뿐 정말로 무언가를 할 순 없을 것이고 박연희도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심경서가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김이서는 이런 것들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박연희는 동의하지 않았다.그녀가 막
하지만 검은색의 롤스로이스는 별장에 들어간 뒤, 야외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아닌 지하로 내려갔다. 갑작스러운 내리막길에 박연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지하실 문은 잠겨버렸고 고용인들도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그러나 박연희는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조은혁이 박연희의 가는 허리를 잡더니 바로 그의 몸 위에 앉히고는... 좌석을 평평하게 놓았다.누운 조은혁의 허리 위에 앉아 있다 보니 화면이 조금 야하게 느껴지긴 했다.어두운 차 안, 조은혁은 그녀의 연약한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방금 내 팔다리가 발달했다고 했었지? 어떻게 발달했는데? 이렇게?”그러자 박연희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이 사람은 진짜 마흔도 넘었는데 아직도 언제 어디서든 그녀를 갈망하고 있다.짙은 색 정장 바지는 남자의 흥분으로 자랑스러운 볼륨감을 자랑했고 이는 여자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유혹이었다... 더군다나 조은혁은 박연희의 작은 손을 잡고 그녀에게 남자의 좋은 점을 체험하게 해주었다.그는 그녀의 붉은 입술을 물고 그녀와 진득한 키스를 하며 목소리는 더욱 깊어졌다.“연희야, 난 지금 팔다리를 좀 발달시키고 싶은데 네가 해주지 않을래?”조은혁은 취미가 있다.그는 이런 일을 하면서도 수치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즐겼지만 여자로서 박연희는 거부감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빨리 흥분하기도 했다.지금 그들은 외로운 남자와 여자이다.공간은 완전히 폐쇄되었고 하물며 이렇게 자극적인 곳인데 박연희처럼 수줍은 사람도 결국은 모든 걸 다 내려놓게 된다...새까만 긴 머리카락이 희고 얇은 등에 흩어져 살랑살랑 흔들렸다...그 매혹적인 기복 속에서 박연희는 고개를 들어 붉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여전히 연인 사이의 신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가는 땀이 그녀의 머리칼을 적시고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조은혁은 목이 메 괜히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그는 황홀하게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그녀의 향
귀를 찌르는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검은색 벤틀리 쪽 차 문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체에서 떨어져 나가며 도로에 부딪혔다... 이어 차는 비스듬히 앞의 벽에 들이박았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보닛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에어백이 터지면서 운전석의 남자를 보호했지만 그런데도 날아온 깨진 유리 조각이 조은혁의 오른팔에 약 4cm 깊이 박히며 피가 하얀 셔츠를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조은혁은 차 안에 앉아 심하게 숨을 헐떡였다.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의 자식은 아버지가 없고 박연희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잃고... 괴롭힘을 당할까 두려웠다.조은혁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팔뚝 살에 박힌 깨진 유리 조각을 힘껏 뽑았다.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그래도 억지로 이를 악물고 버티며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세게 내리쳤다. 차 문이 열리고 그는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차에서 내렸다. 뒤에 있는 차는 이미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검은색 엔진오일이 방울방울 떨어져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이 있었다.그리고 주위에는 잘생긴 부자 남자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조은혁은 재빨리 두 손을 휘저으며 사람들을 해산시켰다.“몰려있지 마세요! 빨리 피해요! 차가 폭발할 수도 있어요.”그의 외침에 군중들도 서서히 사방으로 흩어졌고 조은혁은 계속하여 10여 미터를 달려나가 머리를 돌려 박살이 난 그 차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옷 주머니에서 새하얀 담배 한 대를 꺼내더니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불을 붙였다.다행히 휴대폰은 아직 연락할 수 있었고 그는 다급히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곧이어 119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B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는 꽉 막혀버렸고 바람과 구름이 몰려온 B시의 하늘 아래, 그 소용돌이 속에 서 있는 조은혁은... 마치 하나의 산봉우리처럼 의젓했다....오전 10시, 심지철은 회의하고 있었다.서 비서의 말솜씨에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