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꼬면서 말했다.“아직도 네가 그렇게 값진 존재라고 생각해? 내가 정말 너랑 이혼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내가... 나 유선우가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조은서는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유선우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를 기생으로 생각했던 것인가...심지어 배 속에 아이도 이젠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이 모든게 다 그녀가 백아현의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유선우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미련없다는 듯 떠나버렸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떠났다.조은서와 백아현 중에서 진정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조은서였다.가장 우스운 건 그녀가 오늘에 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조은서는 허탈하게 웃었다.‘내가 유선우에게 빌다니. 유선우가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니...’‘유선우가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유선우의 구세주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계속 희망을 품었었다니.’조은서는 자신이 너무도 우스웠다.그녀는 유선우의 구세주일 리가 없었고 그냥 그의 성욕을 처리해주는 여자에 불과했다.그가 조은서와 백아현을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왜 그녀는 계속 몰라보는 걸까?왜 그에게 희망을 품고 있는 걸까? 그의 애를 임신하고도 그에게 모욕 당하고 의심 받고... 그녀는 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녀의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서 배 속에 있던 아이도 불안하게 움직였다.마치 유이안이 엄마의 비통함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조은서는 조용히 서재에 서 있었다. 정원에서 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는데 그녀는 유선우가 떠났다는 걸 알았다.그는 마지막으로 백아현을 보러 갔다......유선우가 떠난 지 사흘이 되던 날, 조은혁은 6년이라는 판결을 받았다.그날 저녁, 조승철은 심장마비로 구급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돌아갔다.그날은 마침 추석이었다. 집집마다 떠들썩했고 하인들은 아래층에서
온몸이 아파왔다.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죽을 듯이 아팠다. 그러나 조은서는 이런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의 배 속에는 유이안이 존재하니까.8개월이 되는 유이안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보지도 못했다.그녀는 유선우의 무자비함을 원망했지만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아이만은 사랑했고 또 아이의 출생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 이렇게 죽을 수 없다.‘죽으면 안 돼!’‘죽으면 안 돼!’조은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통증을 줄이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쳐들고 온몸의 힘을 다해 소리쳤다.“누구 없어요...”“내 아이 좀 살려줘요...”...누구도 그녀의 울부짖음을 듣지 못했다.밖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고 아래층에서는 계속 명절 방송 소리가 들려왔다.조은서는 바닥을 짚고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침실 밖으로 기어나갔다.‘누가 좀 나를 도와줘. 내 아이를 살려줘...’피가 계단까지 흘렀다.다리 사이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고 럭셔리한 별장 바닥을 어지럽혔다.마치 유선우가 그녀에게 했던 애정 어린 말들처럼 그녀에게만 상처가 되어 다가왔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조은서의 눈물도 함께 피와 섞여 흘러내렸다....결국 하인이 피바다 속에 쓰러져있는 그녀를 발견했다.하인은 손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져서 고개를 들어보았는데 이내 비명을 질렀다.“사모님!”조은서는 피범벅이 되어 계단에 쓰러져 있었고 그녀의 흰색 실크 잠옷도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의 몸은 과다 출혈로 인해 경련을 일으켰다.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하인은 비명을 지르며 기사를 부른 후 유선우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유선우의 폰은 꺼져있었다.그는 현재 해외에서 백아현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YS 병원.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실을 드나들었다. 수술실 문이 열릴 때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함은숙은 벤치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유선우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그의 폰은 여전히 꺼져있었고 심지어 진유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한심한 것들!’‘아무리 그래도 아내인
“다가오지 마! 그렇지 않으면 목 졸라 죽여버릴 테니까.”“YS 그룹도 스캔들에 휘말리게 만들 거야!”“유선우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당신들이 체면을 제일 중요시하잖아. 왜 안 다가와... 왜 안 다가오냐고? 은서를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것들이...”...차준호는 멀리서 임지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미친 듯이 날뛰며 필사적으로 조은서를 지키려고 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한참 후, 그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는 임지혜를 함은숙 몸에서 떼어내고 그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힘껏 끌어안았다.임지혜는 그의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를 맡았다.그녀는 순간 얼어붙었다.‘차준호야!’그녀는 뒤돌아보지 않고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뒤에 있는 차준호에게 말했다.“은서를 구하라고 말해줘. 은서가 죽으면 안 된다고. 죽으면 안 된단 말이야! 차준호, 내가 빌게. 내 아이를 보아서라도 한 번만 도와줘. 제발, 응?”차준호는 그녀를 안고 목이 쉰 듯한 목소리로 함은숙에게 말했다.“조은서를 살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선우가 미치는 꼴을 보게 될 거예요. 후회하실 거라고요.”함은숙은 선 자리에 얼어붙었다.바로 이때, 심정희가 복도 끝에서 달려왔다. 그녀는 머리를 산발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그녀는 금방 남편을 잃었다......수술실 계속 켜져 있었다.하얀 침대 시트 위에 누워있는 조은서의 머리가 베개 위에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는 땀범벅이 되었는데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임지혜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들어가 그녀의 곁을 지켰다.그녀는 조은서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은서야, 조금만 더 버티면 돼. 너랑 아이 다 괜찮을 거야!”조은서는 너무 아파 거의 의식을 잃어갔다.그녀는 임지혜가 곁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조은서는 임지혜가 수술실로 들어오기까지 또 어떠한 대가를 치렀으리라고 생각했다.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임지혜는 조은서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먹이며 말했다.“태아
유이안이 태어났다.의사가 그녀에게 전했다.“아이는 아주 건강해요. 인큐베이터에 한 주일만 있으면 퇴원할 수 있어요.”조은서는 베개 위에 누워 녹초가 된 채 저도 모르게 입술을 떨었다.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너무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다. 몸이 너무 허약한 탓에 말할 힘도 없었다.임지혜는 그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띠고 말했다.“은서야, 들었어? 아이가 아주 건강하대. 별문제 없대.”조은서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이내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유이안은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갔다.함은숙은 밖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저 아이가 바로 선우 아이야... 나 할머니가 됐어!’눈매와 오뚝한 콧등을 보아서는 유선우를 똑 닮았다.함은숙은 유이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아이 덕분에 그녀는 조은서까지 챙기기 시작했다.“조은서는 괜찮아? 백숙 준비해서 병실로 가져와. 여자는 산후조리할 때 몸보신 제대로 해야 해.”하인은 할 말이 있는 듯했다.함은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무슨 일 있어?”하인은 거짓말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작은 사모님께서 아가씨를 낳으시고 30분만 쉬고는 사돈 어르신 따라가셨습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드리시러 간 것 같습니다.”함은숙은 가슴이 철렁했다.한참 지난 후, 그녀가 다시 물었다.“조씨 가문에서 유씨 가문더러 장례식에 오라는 소식을 전해왔어?”하인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사돈 어르신께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함은숙은 허탈하다는 듯 벤치에 앉았다.그녀는 조은서가 유선우와의 인연을 끊으려고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도 낳았고 조은서가 떠나든 말든 별 상관 없었다. 원래 기뻐해야 하는데 뜻밖으로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그녀는 차준호의 말을 떠올렸다.“언젠간 선우가 미치는 꼴을 보시게 될 거예요.”‘아니, 유선우는 내 아들이야. 여자 때문에 미친다고?’함은숙은 전혀 믿지 않았다....조씨 가문의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살을
조은서는 조산한 몸을 이끌고 조승철의 장례를 치렀다.박연준은 꽃을 올리면서 유감스러워하며 조은서에게 사과했다.조은서는 빈소 앞에 서서 조승철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참담한 미소를 지었다.“박 변호사님께서 최선을 다하셨다는 걸 저도 알아요. 조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 게 유선우가 베풀던 호의를 다시 거두어갔기 때문이에요. 유선우가 좋아할 때면 모든 게 문제가 아니죠. 그런데 그 감정이 사라지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죠. 죽든 살든 슬프든 다 그와 상관없는 일이 되는 거예요.”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이어갔다.“유선우 옆에 있을 때마다 제 스스로가 그에게 잘 보이려고 빌면서 애원하는 자존심 없는 개처럼 느껴져요... 그런데 다 소용이 있는 건 아니더군요. 지금과 같은 후과가 초래될 수도 있죠.”유선우가 전에 말했었지. 그녀가 비는 걸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그러나 그녀는 다시는 그에게 빌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이젠 모든 것을 잃게 된 셈이 되었으니까.바람이 빈소로 불어 들어왔다.저녁이 되었다. 빈소 안에 서 있는 조은서는 너무 말라 거의 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서 있다가 다시 절을 올리며 조승철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일주일 후, B시 국제공항.유선우가 전용기에서 내려왔다. 백아현 부모와 사촌 여동생이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당연하게도 백아현의 유골도 함께 B시로 돌아왔다.백정수는 백아현의 유골을 안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김춘희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그들은 딸 덕분에 잠시나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는데 딸이 떠나고 없으니 이 영광을 물려받을 사람을 찾아야 했다. 백서윤은 같은 또래 애들 중 제일 이쁘게 생긴 애였다. 특히 얼핏 보면 조은서를 꽤 닮았다.아니나 다를까, 유선우는 백서윤을 보자마자 멈칫했다.김춘희는 이내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공항 VIP 통로를 지나게 되면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백정수는 한참 유선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유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하고 별로 대답하지
진유라의 말을 들은 유선우는 멍해졌다.‘줄곧 괜찮았는데 갑자기 조산했다고?’진유라는 감정을 억누르고 말을 이어갔다.“대표님께서 떠난 지 이틀 만에 조은혁 씨 재판이 열렸고 6년 선고받았습니다. 당일 저녁에 조승철께서 심장병이 발작하셨는데... 끝내는 돌아가셨습니다. 사모님께서 연락받자마자 조산하셨습니다.”유선우는 이 모든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했다.조은혁이 6년 선고받고 조승철은 돌아가고 조은서는 조산하고... 이 모든 일들이 동시에 발생했다. 그는 조은서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와 조은서 사이의 미래가 어떻게 번져갈지 더더욱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한참 멍해 있다가 다시 물었다.“아이는?”진유라의 말투가 약간 부드러워졌다.“아이는 건강합니다.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주차장.검은 롤스로이스 팬텀이 유독 눈에 띄었다.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뒤를 한 번 보았는데 무릎 위에 놓인 유선우의 두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유선우의 표정은 엄청 어두웠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먼저 병원으로 가!”뒤에서 유선우의 목이 쉰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선우는 항상 앞만 내다보고 사는 사람이었다. 사적인 일이든 공적인 일이든 후회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척 후회되었다.그는 생각에 잠겼다.‘그날 조은서가 전화를 끊었다고 해도 뭐가 어때서.’‘여자라면 질투할 수도 있는 거잖아.’게다가 그날 그녀가 그에게 간청할 때 그는 분명히 마음이 흔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매정하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내뱉었다.그는 그녀에게 몸을 몇 번 팔려는가고 물었었다. 그리고 이혼해도 상관없다고, 그녀가 아니어도 된다고 큰소리쳤었다.분명히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데, 분명히 그녀가 그토록 신경 쓰이는데 그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혼자 아버지를 잃은 고통과 출산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아이를 낳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또 내가 얼마나 미
병실에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함은숙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아이는 내가 잠시 돌보고 있을게. 조은서 현재 상태로 애를 돌보기엔 무리야.”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병실 문이 열렸다.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들어오더니 유선우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통곡하면서 말했다.“대표님 다 제 탓입니다. 그날 서재 전화가 울렸는데 사모님이 잠에서 깨실까 봐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얘기하는 데다가 제가 또 다른 일에 정신을 파느라고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사모님께 전한다는 것도 잊어버렸고요... 그 전화는 확실히 제가 받은 게 맞습니다. 일부러 사모님과 대표님께 알리지 않은 게 아니에요. 사모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아주머니는 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사람이었다.조은서도 그녀를 잘 대해줬다. 그녀는 너무 급한 마음에 자신의 양쪽 뺨을 스스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면서 말을 이어갔다.“저만 아니었다면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오해하실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사모님께서 이런 고생을 하실 일도 없었을 거예요!”그녀는 무자비하게 자신의 뺨이 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십여 번이나 때렸다. 불빛 아래 서 있는 유선우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조은서를 오해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조은서가 그의 옷소매를 잡고 가지 말라고 빌 때 그는 그녀를 모욕하는 말을 한가득 퍼붓고 그녀를 밀쳐냈다...그가 떠날 때 그녀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유선우는 고개를 숙이고 유이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이안이를 낳으면서 나에게 얼마나 실망했을까?’아주머니는 계속 자신의 뺨을 내리치고 있었다.함은숙은 그녀에게 몇 마디 욕을 한 후 뒤돌아 유선우를 비난했다.“아무리 그래도 조은서가 백아현보다 더 중요하지! 선우야, 이번엔 확실히 네가 너무 심했어.”유선우는 자신이 조은서를 냉대하고 괴롭히는 이유가 그녀의 마음을 얻지
조은서는 몸을 돌려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이윽고 그녀는 매우 피곤한 듯한 어투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저희 오빠가 고소 취하했어요... 선우 씨가 애만 낳으면 이혼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전 다른 요구는 없어요. 전 이안이만 있으면 돼요.”제법 쌀쌀한 찬바람이 휘몰아쳤고 희미한 달빛만이 전부인 어두운 밤, 유선우는 말없이 조은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조은서는 한때 쉴 새 없이 사랑의 불씨를 태우며 그를 아낌없이 사랑해주었다. 하지만 현재는 한 치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그 자리에는 불타올랐던 흔적과 재만 남겨졌다.유선우는 조금 쉰 목소리로 미안하다며 사과했고, 포기할 수 없다고 애원했으며, 그날에는 자신이 오해한 것이라고, 전화는 아주머니가 받은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그러나 조은서는 그저 담담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다.“선우 씨, 그게 인제 와서 다 무슨 의미가 있어요?”하룻밤 사이, 조은서와 그녀의 오빠는 아버지를 잃었다.그리고 심정희는 남편을 잃었다.그날 밤, 조은서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고 하마터면 유이안을 잃을 뻔했다... 이 모든 것이, 이 많은 것이 어떻게 유선우의 미안하다는 한마디에 전부 풀릴 수 있겠는가?조은서는 지금 대체 누굴 탓해야 하고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 몰랐다.그저 유선우를 보기 싫고 그와 말을 섞기도 싫다는 것만 알고 있다.조은서가 자리를 뜨려 하자 유선우는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고 차에 내려놓았다.하지만 조은서가 고분고분 따라줄 리가 없다.조은서는 유선우의 등을 필사적으로 내리치며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내려놓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유선우는 조은서의 외침을 전부 무시한 채 그녀만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고 자신의 품에 가둬버렸다.유선우는 자신의 얼굴을 조은서의 어깨에 묻고는 낮은 목소리로 쉼 없이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애원했다.그러자 조은서는 그의 어깨뼈를 꽉 물었다.죽을힘을 다해 꽉 물었고 유선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