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내려가겠습니다!”아람은 망설이지 않고 자진해서 나섰다.“제 몸무게가 가벼워서 감당할 수 있을 거예요!”모두들 걱정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백소아 씨, 그래도 안 돼요!”순간이 다가오자 하 팀장은 겁에 질려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사부님과 약속을 했어요. 백소아 씨의 안전을 지켜야 해요. 제가 내려갈게요.”“안됩니다. 팀장님! 남자의 몸무게를 전혀 견디지 못한다는 걸 아시잖아요!”팀원들은 당황했다.“팀장님, 전 전문적이고 자격을 갖춘 살림 보호원이에요!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요!”말을 하자 아람은 허리에 밧줄을 묶고 다른 밧줄을 들고 산비탈로 내려갔다.그녀는 매우 능숙하고 전문적으로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하지만 폭우로 인해 절벽이 미끄러운 진흙으로 덮여 있어서 구조가 더 어려워졌다.“제가 왔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마침내 아람은 진흙투성이가 된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발…… 발이…… 움직일 수 없어요.”그녀는 주체할 수없이 흐느꼈고, 배고픔과 추위 때문에 이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졌다.아람은 아주 훌륭한 외과의사여서 발이 골절이 되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았다.그녀는 여인을 안고 허리에 밧줄을 단단히 고정시켜주었다.이때, 아람은 발밑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은 무서운 떨림을 느꼈다.“안 돼! 산사태야! 빨리 끌어당겨요!”하 팀장은 겁에 질려 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에 공포가 느껴졌고, 손으로 밧줄을 힘겹게 잡아당겼다.하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발은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졌다.“안 돼요, 팀장님!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죽어요!”“팀장님, 더는 못 버티겠어요!”“팀장님! 한 명만 살릴 수 있어요! 지금 가지 않으면 너무 늦어요!”말하는 순간, 흙이 뒤섞인 파편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급류처럼 끊임없이 밀려들었다.하 팀장은 온 힘을 다하며 히스테릭한 소리를 질렀다.산사태의 마지막 순간,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마침내 한 여자를
푹우, 자갈, 진흙, 짙은 연기…….구아람이 의식이 희미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절망적이었다.그러나 재난이 닥치기 전,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등산객을 밀어 올렸다.희미한 희망이라도 그녀가 살아남길길 바랐다.모든 위험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보호팀 의상을 입을 자격도 없고, 이 자리에 나타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만일 죽음이 가치 있는 것이라면, 이 시끌벅적한 인생이 헛되지 않을 것 같았다.사실 전까지 그렇게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죽음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세 사모님이 아픈 아람을 데리고 주사를 놓으러 가도 온 하루 울며 떼를 쓰던 어린 아이였다.열한 살 때 경주와 이곳에서 만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그의 용기와 끈기는 깊은 바닷속의 등대처럼 반짝이는 길로 안내해 주었고, 우연한 만남이지만 그녀와 생사를 함께하는 정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아람에게 처음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었다.나중에 그와 결혼했더라도,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더라도 인정해야만 했다.경주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삶을 바꾼 것이었다.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많은 것이 변해 버렸지만, 아람은 그 모든 것을 감사히 받아들였다.……모든 것이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잠시 혼수상태에 빠진 아람은 길고 이상한 꿈을 꿨다.부모님 곁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어렸을 때 오빠들과 생일을 함께 보낸 꿈을 꾸었다.큰오빠는 그녀를 안고 산더미 같은 선물 위에 올려놓았고, 둘째 오빠는 음 이탈한 생일 노래를 불렀으며, 셋째 오빠는 케이크를 들고 촛불을 불었고, 넷째 오빠는 그녀가 항상 꿈꿔왔던 장난감 총을 작은 손에 쥐여주었다.그리고…… 경주도 있었다.생사를 걸고 나란히 싸웠던 것이 떠올랐고, 할아버지 곁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의 눈빛, 그리고 경주가 이혼 합의서를 내던지며 차갑게 떠나라고 했을 때의 모습도 떠올랐다.갑자기 뼈를 찌르는 고통이 온몸으로 퍼졌다.아람은 벌떡 깨어나 익사한
구아람의 친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 세 사모님의 손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강소연은 종종 그녀와 함께 복싱, 승마, 양궁, 암벽 타기를 즐겼고, 이 또한 두 사람의 공동 취미로 되었다.이 취미가 지금 도움이 되었다.아람이 곧 산 정상에 오르자 갑자기 몸 아래에서 또 다른 강한 떨림이 느껴졌고 귀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무수히 많은 작은 자갈들이 계속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산사태가 다시 일어났다.“하느님은 정말 의리가 없네요! 제가 일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선행을 베풀고 돈을 기부하며 덕을 쌓았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예요?”갑자기 아람이가 밟고 있던 바위가 무너져 내려 몸은 순식간에 공중에 떴고 모든 지지대가 사라졌다.“안 돼! 살려주세요!”절망감이 몰려오면서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떴다.절벽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헛디디면 몸이 산산조각으로 될 것이다.아람의 눈 끝에서 달갑지 않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구아람!”곧 크고 거친 손이 갑자기 아람의 가느다란 손목을 움켜쥐고 저승문에서 그녀를 끌어당겼다.떨어지는 느낌이 사라지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별처럼 밝고 강렬한 경주의 눈빛과 마주치더니 심장 박동과 호흡이 동시에 멈춰진 것 같았다.“신경주…….”‘꿈인가? 환각일까?’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걱정 마! 내가 여기 있잖아!”경주의 시선이 아람의 창백한 얼굴로 옮기자 두려움, 당황, 기쁨, 아픔…… 모든 감정이 한데 섞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감쌌다.땀을 뻘뻘 흘리며 왼손으로 땅바닥의 진흙을 파고 있었고, 그녀를 잡고 있던 붉은 손은 떨고 있었다.그는 자신의 몸도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쩌면 둘이 함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신경주…….”아람은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눈물은 창백한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나 죽기 싫어…….”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여기까지 올라왔고 늘 강인했다.하지만 경주를 본 순간, 단단했던 몸과 마음이
경주는 충격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왜냐하면 절벽이 무너지기 적전이었기 때문이다.“소아야! 빨리!”경주는 조급한 마음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을 외쳤다.그러자 아람은 눈을 부릅뜨고 가슴이 두근거렸다.그 소리에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순식간에 절벽을 기어올라 경주의 품으로 덮였다.남자는 팔을 꽉 조여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았다.우르릉-무너지려는 순간, 경주는 몸으로 아람을 감싸고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구르며 마침내 탈출했다.“악…….”등뼈가 바위에 세게 부딪히자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충격이 가볍지 않아 아파서 얼굴에 흘리는 식은땀은 비와 빠르게 섞였다.“다쳤어?”품에 안긴 아람은 고개를 들어 급히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아니.”경주는 통증을 참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람은 기절할 듯이 놀라 그의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늘어진 채 한숨을 쉬었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경주는 젖은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쉰 목소리로 물었다.“뭐?”아람은 가슴이 떨려 그의 반짝이는 눈을 피했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우리 처음 만난 게 13년 전이잖아? 왜 네가 바로 내가 구해주었던 여자아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어?”경주는 내장이 모두 녹아내릴 듯한 씁쓸함을 느꼈고 숨을 헐떡이며 말을 내뱉었다.아람의 지저분한 작은 얼굴이 너무 하얘져 투명해지기 직전이다.‘갑자기 소아라고 부른 건…… 기억이 난 건가? 왜 하필 이때 기억해 낸 거야? 13년이나 늦었네…… 차라리 평생 기억하지 말지.’“말해줘, 구아람……. 말해!”경주는 격렬한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고, 손끝으로 아람의 턱을 꼬집어 눈을 마주하게 했다.“내가 너와 결혼했을 때, 왜 내가 소아라고 하는지 기억나?”아람은 그를 깊이 바라보며 가슴이 내려앉았다.순간 경주의 안색이 변했고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에 가슴이 아팠다.‘당연히 기억나지. 이름을 물었는데 말이 없어서 내가 아무렇지 않게 소아라고 불렀었지.’하지만 경주는 농담처
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구아람은 손이 따뜻하다고 느꼈다.신경주의 손바닥이 이미 감각이 없어진 그녀의 새끼손가락까지 전례 없는 부드러운 열기로 감쌌다.아람은 마치 죽은 신경이 살아난 것 같았다.그녀는 편안하게 눈을 감고 그의 넓은 등에 기대었다. 차가운 손은 서서히 따뜻해져 만족스러운 듯 손을 움켜쥐었다.가슴이 두근거리는 경주는 그녀가 싫어하며 손을 뺄까 봐 두려워 손에 힘을 주었다.“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그의 목소리는 엄숙하며 분노가 담겨 있었고, 척추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하지만 아람이가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며 아픔을 참았다.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신뢰를 얻고 싶었고,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음…… 추워. 빨리 가.”아람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좀만 버텨. 곧 비를 피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경주의 거친 헐떡거림에 하얀 수증기가 눈을 가렸고, 발을 내딛기가 어려웠다.“못 찾으면 어떡해…….”아람은 정말 힘이 없어 목소리가 부드러웠다.“그럼 내 품에 숨어.”경주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싫, 싫어! 딴 생각 하지 마!”당황한 아람은 가슴이 떨려 눈을 깜빡거렸다.경주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몸부림을 치는 여인을 엎고 있지만 온몸에 무한한 에너지로 가득 차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건드리지 말고 빨리 가자. 어차피 도망도 못 가는데.’그들은 서로 가까이 있으며 호흡도 심장 박동도 일치했다.마치 13년 전의 스릴 넘치는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다만 등에 업힌 소녀가 이미 컸다.심지어 그와 결혼하여 3년 동안 그의 아내가 되었다.……한편.임수해는 아람이가 걱정되어 우산을 들고 폭우를 무릅쓰고 캠프로 달려갔다.캠프에 도착했을 때, 그가 들고 있던 검은 우산은 이미 망가졌고, 반듯한 양복은 모두 젖었으며 깨끗한 구두와 바지는 흙으로 덮여있었다.“아가씨!”수해가 문을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레인코트를 입은 범 선생과 한무와 부딪혔다.‘앞잡
“안 돼…… 신경주를 못 믿겠어! 당장 구 사장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겠어!”핸드폰을 든 임수해는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렸고 서둘러 구윤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구윤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고 수해가 말하지 전에 낮은 목소리가 초조하게 들려왔다.“수해야, 아람이한테 무슨 일 있어?”남매가 마음이 통해서인지 오늘 밤 계속 불안했었다.이번엔 수해가 주동적으로 연락하자,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더욱 확신했다.“도련님!”수해는 눈이 퉁퉁 부어 눈시울을 붉혔다.“아가씨…… 큰일 났어요! 빨리 기락산 삼림 공원으로 사람을 보내서 도와주세요!”……수해의 전화를 받았을 때 구윤은 성주에서 350킬로미터 떨어진 L 성의 윤군 본부에 있었다.L 성에 도착한 그는 친형제인 아람의 셋째 오빠를 만났다.어머니는 네쌍둥이를 낳았다. 네 명의 형제와 아람까지 모두 그의 혈육이었고 똑같이 사랑했다.셋째 동생이 제일 먼저 사회로 나가 스물여덟 살에 대령으로 되어 공훈을 세웠다. 지금은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L 성에서 홀로 군대를 이끌고 있어 가족과 만날 기회가 적었다.그래서 틈만 나면 셋째 동생을 만나러 오곤 한다.“아람이에게 일이 생겨서 당장 성주로 가야겠어!”구윤은 눈썹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뭐? 아람이가 왜?”군복을 입은 셋째 도련님 백진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항상 사람들 앞에서 차갑고 침착하던 대령이,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당황했다.구윤은 가슴이 내려앉았고 목소리까지 쉬었다.“아람이가 또 구조를 하기 위해 삼림공원에 자원봉사자를 하러 갔어.”백진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한숨을 내쉬며 초조하게 자리에서 돌고 있었다.부하 병사들이 이 걱정스러운 모습을 본다면 아마 충격을 받을 것이다.“전문적인 구조 요원이 아니기에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기부만 해라고 여러 번 말했었어. 고집이 세고 생각이 많아서 말을 안 들어!”구윤은 걱정을 했다.“아니…… 아람
경주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큰 손으로 아람의 뜨거운 이마를 다시 만지자 불안해졌다.그는 재킷과 체온으로 따뜻해진 옷을 벗고 아람에게 꽁꽁 덮어주었다.아람은 나른하게 눈을 떠보니 눈앞에 있는 남자는 거의 모든 옷을 그녀에게 주었고 검은 조끼만 입고 있었다.노출된 근육 라인은 숨이 멎을 듯이 아름다웠고, 거친 야외에서 자유로운 매력을 발산했다.“아직 추워?”경주는 그녀의 붉은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음…… 추, 추워.”불쌍하게 자신을 꼭 껴안고 있는 아람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경주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내리깔더니 두 팔을 벌렸다.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녀의 부드럽고 연약한 몸을 감싸고 가슴을 세게 문지르며 온몸의 열기를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아직도 추워?”그의 가슴은 심하게 두근거렸다.아람의 뾰족한 턱이 그의 튼튼한 어깨에 닿아 좌우로 문질렀다.경주는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만져주었고 긴장을 풀어주며 위로하는 듯했다.아름은 그의 품에 안긴 자신의 몸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졸린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경주는 그녀와 나란히 앉아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면서 손을 잡고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부드러운 열 손가락은 멍이 들었고, 손톱에는 흙과 피가 섞여져 전혀 귀족 아가씨의 손이 같지 않았다.그는 입술을 오물거리자 절벽에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람의 모습이 떠올랐다.순간 가슴은 칼로 찌르는 것 같았다.“구아람, 오늘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고양이처럼 목숨이 아홉 개나 있는 것도 아니잖아!”경주는 화가 나서 입을 부들부들 떨며 참지 못해 낮은 소리로 꾸짖었다.“음…… 네가 뭔데 날 신경 쓰는 거야.”그의 어깨에 기댄 아람은 열이 나서 어질어질했다.이런 상황에서도 날카롭게 대꾸를 했다.“내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어?”경주는 귀 끝이 빨개질 정도로 급해났다.“말해 봐. 네가 뭔데?”말이 본론으로 들
‘사랑이…… 없어졌어.’아람은 말을 내뱉은 순간 마음의 고통이 모호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다만 그 고통에 익숙해졌다. 결혼한 3년 동안 이런 고통은 경주보다 더 오래 있어주었다.“신경주, 지금 물어본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해?”가늘게 뜬 아람의 눈은 연약하고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하는 부드러운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내가 13년이나 사랑했어…… 인생에 13년이 몇 개 있겠어…… 더 이상 사랑을 못하겠어. 사랑하기 싫고 이젠 너도 두려워졌어.”‘널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이 두려워졌어.’날카로운 통증은 경주의 가슴을 찌르는 듯했고 입술도 창백해졌다. 홍수와 같은 모든 감정이 밀려와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는 자신이 극도로 비열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유명무실한 결혼이 아람을 지체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망쳐버릴 뻔했다.“구아람…… 네 말이 다 진심이야?”경주는 굴욕을 자초할 줄 알면서도 여전히 질문을 이어갔다.“응, 내가 너에게…… 언제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아람은 가볍게 웃었다.“내가 사랑한다고 말한 것도 진심이고, 이혼하기 싫다고 말한 것도 진심이야. 너를 위해 흘린 눈물도 진심이고…… 그래서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도 진심이야.”“구아람…….”경주의 눈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열이 나는 손을 다시 움켜쥐었지만 이 손은 너무 차가워서 단단한 얼음조각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더 이상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다.“신경주,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 또 한 번 날 구했네. 내가 신세를 졌어. 앞으로 무리한 부탁이 아닌 이상, 이 은혜를 꼭 갚을게.”아람은 말끝마다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말투로 서먹서먹한 말을 했다.이번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경주와 아무런 관계로도 엮기 싫다는 뜻이다.경주는 여전히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람은 이미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청아한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고 눈썹이 부들부들 떨며 이
도현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곧바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했다. 유희는 눈을 부릅뜨며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긴장했다. ‘유희 오빠는 효정이만 부를 수 있는 애칭인데,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렇게 불러?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집까지 쳐들어왔어?’“오빠, 아직 안 갔어?”대치를 할 때 아람과 경주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날카로운 아람은 두 남자가 상대하는 모습을 보자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봤다.“아, 내가 문을 못 열었어. 마침 유희 도련님이 돌아와서 문을 열어줬어. 지금 갈 거야.”도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람을 향해 활짝 웃었다.“아람아, 오빠가 바쁜 일정을 마치면 같이 여행이나 가자. 맨날 같은 남자랑 붙어있지 마. 심심하잖아.”경주는 말문이 막혔다.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친오빠라는 것도 알지만 질투하기 시작했다. 도현이 떠난 후에도 유희는 침착하지 못하고 경계했다. 집에 없는 동안 도현이 효정을 만났고,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유희야,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경주는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유희는 답답한 듯 숨을 내쉬었다.“미안해. 내가 오빠보고 자료를 가져오라고 했어. 너한테 미리 말하지 못했네.”아람처럼 예리한 사람은 바로 유희의 마음을 알아채고 주동적으로 사과했다.“넌 경주랑 친구잖아. 하지만 여긴 너와 효정의 집이야. 우린 잠깐 있는 건데, 외부인을 들여보낸 건 확실히 실례였어. 다음부터 그러지 않을게.”경주는 깜짝 놀라 아람의 허리를 안고 급히 유희 대신 해명했다.“아람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유희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은 아니야.”유희는 눈을 부릅뜨고 손을 흔들었다.“형수님, 그런 말을 하는 건 날 깎아내리는 거잖아. 네가 와서 지내는 건 나도 기쁘고 경주도 기뻐. 우리 와이프도 좋아해. 네가 온 후로 효정의 기분이 엄청 좋아. 말도 많아졌어. 너희들이 쭉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난 절대 반대하지 않아!”아람은 경주의 품에 안기며 다정하게 눈을 마주쳤다.“이렇게
“다른 건 다 괜찮아. 엄마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아람의 말에 좀 상처받았어.”구만복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불빛 아래 비추어진 처량한 속눈썹이 촉촉해졌다.“이 혼탁한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도연을 잘 알겠어.”“구 회장님, 아가씨는 혈기 왕성해요. 예전에 많은 일을 경험하지 못해서 잘 모를 거예요.”기 비서는 한숨을 쉬었다.“나중에 사모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 기회가 있다면, 아가씨도 회장님의 좋은 의도를 이해할 거예요.”...구만복을 배웅하고 정연은 효정을 위층으로 데려가 쉬게 했다. 아람, 경주 그리고 도현이 거식에 앉아 얘기를 했다.“아람아, 맹세해. 내가 말한 거 아니야!”도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맹세하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알아, 우리 구씨 가문 자식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경주에게 가장 적대적인 백진 오빠도 아빠를 이용해 우리에게 압박을 주지 않아. 그런 비겁한 짓을 하지 않을 거야.”아람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가족을 무조건 믿었다. “그동안 계속 여기 살았는데, 소식을 알고 있었으면 아빠는 진작에 찾아왔어. 무조건 누가 말을 했어. 너희들이 잘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야!”도현은 의아한 듯 턱을 쓰다듬었다.“음, 누굴까.”“윤유성 그 나쁜 자식이겠지.”아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요즘 답답해서 경주에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했었어. 성주에 윤유성의 사람이 많아. 우리의 행방을 발견하고 따라와서 아빠에게 일렀을 거야. 존재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엄청 커.”유성을 의심하는 건 점점 자연스러웠다. 유성은 아람의 마음속에서 이미 나쁜 사람으로 찍혔다.“젠장, 윤유성 그 자식이 그렇게 한가해? 소질이 없네.”도현은 혀를 차며 이를 악물었다.“상관없어. 그런 수단이 좋으면 쓰라고 해. 나랑 경주가 여기 있으면 아무렇지 않아.”아람은 경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경주는 다정하게 바라보며 곁에 있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를 했다. 그녀는 키스해달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경주는 늘 적극적이었다.
저녁 식사는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구만복과 아람은 마음이 통하여 아무도 서로를 불쾌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헐, 몰래 밥을 먹어?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돌아다니다 지친 도현은 배도 고파서 식탁으로 달려가 앉았다.“아람아, 넌 의리가 없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날 부르지 않아? 내가 많이 먹어도 구진 형보다 하겠어? 내가 네 밥을 뺏어 먹을까 봐 그래?”구만복과 아람은 도현을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아, 널 잊었네.”...저녁 식사를 마친 구만복은 떠날 준비를 했다. 아람은 계단에 서서 구만복과 기 비서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경주는 실례를 할까 봐 구만복을 차까지 배웅했다. 차에 타기 전 구만복의 훤칠한 몸은 갑자기 멈칫거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경주를 바라보았다.“득의양양하지 마. 오늘 밤 내가 남은 건 우리 딸이 보고 싶어서야. 아람과 오래 있고 싶어. 내가 널 인정하지 않았고, 용서하지도 않았어.” 경주는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지만 목은 쉬었고 씁쓸하게 느껴졌다.“알아요. 제가 너무 못난 거. 그래서 회장님의 용서를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저 저에게 아람에게 잘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요. 전혀 아깝지 않아요.”구만복은 깜짝 놀라며 차갑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신경주, 네가 아람 앞에서 어떻게 하든 그건 네 일이야. 하지만 내 앞에서 깊은 애정이 있는 척할 필요 없어.”“난 가족 외에 누구한테도 차갑게 굴어. 네가 내 딸을 위해 목숨을 포기해도 싫어. 여전히 네가 싫어. 너희들 사이를 여전히 반대하고 있어. 결국 네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그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제 인생에서 후회되는 건 딱 한 가지예요.”경주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지며 입을 떨며 말했다.“처음부터 제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거예요. 마지막까지 아람과 좋은 결과가 없어도 평생 지켜줄 거예요. 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요.”구만복은 경주를 한
한 시간 동안 고생한 결과,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간단한 요리는 괜찮지만 난의도가 올라가니 경주가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 보였다. 이것도 아람의 감독과 지도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주 혼자 하면 아마 밤을 새울 것이다. 요리하느라 바쁜 경주는 이마에 땀이 맺혔고, 입고 있는 흰 셔츠도 땀에 푹 젖었다. 아람이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파 휴지로 땀을 닦아주며 입을 삐죽거렸다.“아빠 정말 짜증 나. 집에 셰프도 많고 능력자 연서 이모도 있어서 맛있는 음식을 가득 먹을 수 있는데, 꼭 남아서 사람을 괴롭혀?”“아람아, 구 회장님과 오랜만에 만나잖아. 그리고 너도 내가 만든 음식을 구 회장님께 드리고 싶다고 했잖아.”경주는 전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하는 아람과 함께 요리를 하는 순간을 즐겼다. 아람은 말을 잘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그건 화나서 한 말이야. 아빠는 내 뜻을 알지도 못해!”“괜찮아, 아람아.”경주는 긴 팔로 아람의 허리를 끌어안고 나지막하게 위로했다.“나도 구 회장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간단한 요리라도 좋아.”“잘 보이고 싶어?”아람은 경주의 몸에 밀착하며 코끝이 닿을락 말락 했다.“그 생각을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아빠는 고집이 세. 네가 아무리 잘 보여도 아빠는 투덜거릴 거야. 네가 잘 보일 이유도 없어. 우리 둘이 만나는 건 아빠의 의견이 필요 없어.”“켁.”구만복은 기침을 하며 두 사람의 말을 방해했다. 아람은 째려보았다.‘이 늙은이가 정말 흥을 깨네!’“허, 고생했네, 신 사장님. 아침을 차려 주는 줄 알았어.”구만복은 피식 웃더니 우아하게 앉았다.“허, 밥을 먹겠다는 건 아빠야. 강요한 사람이 없어.”아람은 비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경주는 나 말고 누구한테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없어. 영광인 줄 알아. 투정 부리지 말고.”구만복은 말문이 막혔다. 경주도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다. 구만복과 아람의 말투와 분위기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아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치마를 경주에게 둘러주고 뒤로 돌아와 묶어주었다.“그런데 우리 아빠의 입은 그동안 연서 이모의 대접을 받아서 엄청 까다롭고 식탐이 많아.”경주는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걱정 마. 내가 옆에서 가르쳐줄게. 내 말대로 천천히 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어.”경주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튼튼한 팔로 아람을 품으로 끌어당기며 이마에 키스를 했다.“명령대로 할게요. 우리 사령관님.”...“야야, 고기를 먼저 넣어야지, 순서가 틀렸어!”“야야! 식초를 너무 많이 넣었어!”“아, 타잖아. 빨리 뒤집어!”두 사람은 부엌에서 시끌벅적하게 요리를 하며 어수선했다. 구만복은 원래 거실에 앉아 눈을 감가 쉬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자 눈을 뜨고 저도 모르게 부엌을 바라보았다. 별장 1층에 있는 주방은 개방형 구조여서 거실과 거리는 멀지만 구만복의 위치에서 안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경주의 훤칠한 뒷모습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람은 옆에서 가르쳐주며 가끔 장난스럽게 엉덩이로 경주를 부딪치며 머리를 툭툭 치는 모습도 보였다. 경주는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웃었다.‘바보 같네. 아람은 도대체 신경주를 왜 좋아하는 거야!’구만복은 비록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점차 부드러워진 시선은 아람과 경주에게서 뗄 수 없었다. 순간 화목한 가족 느낌이 들었다. 이런 편한 분위기와 단순한 행복이 바로 구만복이 그토록 추구하던 것이었다.“구 회장님, 아가씨를 보세요. 얼마나 행복하게 웃고 있어요. 아가씨가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시죠?”곁에 서 있는 기 비서는 흐뭇하게 웃었다.“흥, 당당한 나 구만복이 어떻게 이런 사랑만 모르는 딸을 낳았을까. 나중에 눈물을 흘릴 거야!”구만복은 화를 내며 중얼거렸다. 기 비서는 웃으며 타일렀다.“사랑에 빠지면 빠졌죠. 우리 아가씨의 능력과 미모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어요. 어마어마한 재산을 매일 KS 옥상에서 뿌려도 충분해요.
“정말이에요?”도현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러자 효정이 갈색 곰인형을 품에 안은 채 눈을 내리깔고 소심하고 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도현은 다정하게 웃었다.“당연하지, 진심으로 얘기한 거야. 네가 그렸어?”“네.”효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신경을 썼겠네. 감정도 많이 표현된 것 같아. 많이 힘들었지?”“네, 괜찮아요. 무엇보다도 유희 오빠가 좋아하거든요.”유희를 언급하자 효정의 맑은 눈에는 달콤한 미소를 머금으며 얼굴이 붉어졌다.“유희 오빠가 너무 잘해줘요. 제가 오빠한테 줄 게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선물했어요. 싫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도현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랫동안 경찰로 일하면서 매일 어두운 세상에서 사회의 수많은 사악한 악마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렇게 순수한 눈동자를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눈앞에 있는 효정은 먼지 하나 없는 밝은 달빛과 같아 순간 어두운 마음한 구석을 비춰주었다.“형사님?”도현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효정은 혼란스러운 듯 눈을 깜빡였다. 도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꼬리를 올렸다.“지난번 셋째 사모님 생일 연회에서 아람보고 새언니라고 불렀었지? 그럼 낯설게 굴지 말고 새언니처럼 날 오빠라고 불러.”“도현, 오빠?”효정도 얌전히 시키는 대로 불렀다.“도현 도련님. 효정 아가씨는 저희 도련님의 여자예요. 사적으로 사모님과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정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도현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재빨리 효정의 곁으로 다가가 유희를 도와 여자를 지켜주었다. 도현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담담하게 웃었다.“제가 무슨 실수를 해서 이렇게 경비하는지 모르겠네요. 왜요, 이유희의 여자가 되면 정상적인 소통을 할 권리도 없어요? 얘기를 나눈 남자는 죽어야 해요? 이건 집착이에요,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거예요?”“너!”정연은 이를 악물며 분노가 눈에서 타오르듯 했다. 아람의 친오빠가 아니었다면 정연은 이미 뺨을 날렸을 것이다.“연이 언니.”효정은
거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서리처럼 차가워졌다. 도현은 구만복을 설득하지 못하고, 설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느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정연도 효정을 데리고 갔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경주는 숨이 막혔다. 떨리는 손이 저도 모르게 아람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손을 움켜쥐며 동작을 멈추었다.‘아람아, 정말, 널 보내고 싶지 않아.’경주는 겁쟁이가 아니다.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고 미워하면 끝까지 미워하는 스타일이다. 아람에게 빚을 졌을 뿐만 아니라 구만복에게도 죄책감을 느꼈다. 3년간의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이나 아람이 잃어버린 아이도 모두 자신의 잘못 같았다. 자신이 구만복의 소중한 딸에게 상처를 주어 용서할 수없는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구만복이 욕설을 퍼붓고 다시 경주를 때려도 화가 풀릴 때까지 맞아줄 수 있었다.“아빠, 무슨 생각해.”아람은 피식 웃으며 단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아빠의 말을 듣는다면 애초에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가출하지 않았어. 내 걱정은 하지 마.”“내가 이국땅을 떠돌며 방황하는 그 긴 세월 동안 아빠가 나를 찾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내 행복을 망치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네.”경주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앞으로 다가가 불안에 가득 찬 눈으로 아람의 단호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구아람, 너!”구만복은 순간 화가 나서 안색이 창백해지며 숨을 헐떡였다.“지금 네 모습을 봐! 여전히 우리 구씨 가문의 아가씨야? 직접 마트에 가? 설마 그동안 네가 직접 요리를 했어? 신씨 가문에게 공짜로 3년 동안 일했는데, 아직도 모자라? 이게 네가 원하는 사랑이고, 원하는 삶이야?”구만복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 사랑하는 여자의 유일한 딸은 사랑만 받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억울함과 고생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신경주 저 나쁜 자식!’“아빠,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야. 평범한 인생.”아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감정으로 치솟으며
“어? 어? 난 또 누군가 했네.”구만복은 아예 마음에 두지 않고 무거운 책임을 맡긴 듯 도현을 바라보았다.“결혼 얘기를 할 준비를 한다는 건 아직 안 했다는 거잖아. 도현아. 골키퍼가 있어도 골이 못 들어가는 건 아니야. 너 인마, 아직 기회 있어.”도현은 화가 나서 이마를 잡았다. 정말 쥐구멍을 찾아서 들어가고 싶었다. 말이 끝나자 날카롭고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정원에 서 있는 거야? 협박하러 왔어?”아람은 팔짱을 끼고 화를 내며 구만복을 노려보았다. 지금 아람의 감정과 마인드는 사랑에게 물들여져 진정되었다. 더 이상 구만복을 마주하는 것을 저항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비즈니스 거물인 구만복이 KS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압박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젯밤 사랑을 나눈 후, 아람은 하얗고 부드러운 몸을 돌려 경주에게 밀착하며 촉촉한 입술을 만지며 다정하게 말했다.“경주야, 무슨 생각 해?”경주는 아람의 손가락을 가볍게 물고 큰 손으로 아람의 땀에 젖은 등을 다정하게 만졌다.“앞으로 또 어떤 장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어.”“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해?”아람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경주의 가슴에 기대었다.“실제 상황에 맞게 대책을 세우자는 거지. 우리가 함께라면 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어. 야, 지난번에 이미 한 번 물러섰는데, 이번에도 쫄보처럼 숨을 거야?”경주는 눈썹을 찌푸리며 다정하게 아람의 허리를 꼬집었다.“아람아, 내가 숨은 게 아니라 난 그냥.”“헤헤, 알아. 농담이야.”경주는 어이가 없었다.‘날 쫄보라고 놀려? 하긴, 내가 확실히 쫄보고 나쁜 남자였지. 사실을 얘기하고 있잖아.’“아무튼 이번 생에서는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어.”아람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삐진 것 같기도 하고 애교를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경주는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아람과 깍지를 꼈다.“지금은 함께 모든 순간을 이겨내자. 죽어도 떨어지지 말자.”구만복은 며칠 동안 보지
구만복은 화가 나서 숨을 들이쉬며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정연은 웃음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구만복과 도현이 말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자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렀다.‘정말 자상한 아버지와 효자의 모습이네.’이때, 발걸음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효정은 찻잔을 들고 공손하게 구만복에게 걸어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아, 아저씨. 차 드세요.”착한 효정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붉어지는 얼굴을 보자 구만복은 효정을 너무 좋아했다. 그러자 다정하게 말했다.“어? 효정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아람 언니 곁에 있어 주러 온 거야?”“저, 저, 네!”효정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유희와 동거 중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 그저 대충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아아, 그게 중요하지 않아!”구만복은 웃으며 효정을 곁으로 끌고 자세히 바라보았다.“아직 남자 친구 없지? 우리 막내아들은 어때? 둘이 성격이 다르고 나이도 비슷해서 잘 어울릴 거야.”“풋.”도현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마시고 있던 차를 뿜었다.“저, 저...”효정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불안한 마음에 손을 주물럭거리며 고운 피부가 모두 빨갛게 달아올랐다. 도현은 거칠고 험난한 삶을 살았지만, 형사로서 일반인을 뛰어넘는 관찰력으로 효정의 이상함을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너무 내성적이고 심각한 사회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효정이 입술을 깨물고 눈이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도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엄숙하게 말했다.“아버지, 먼 해문에서 성주까지 온 건 제 신붓감을 찾으러 온 거예요? 제가 몇 번 얘기했어요. 저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 결혼하기 싫어요!”구만복은 눈을 가늘게 떴다.“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되는 줄 알아? 네가 선택할 수 있으면 네 엄마 뱃속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젠장.”도현은 하마터면 욕설을 퍼부을 뻔했다. 억지로 참자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위에 형이 네 명인데,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