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공기 속에는 여인의 달콤한 숨결이 퍼져 있었다.윤유성은 꼼짝도 하지 않고 침대 옆에 앉아 아람을 지키고 있었다.갑자기 그녀가 몸을 뒤척이더니 부드럽게 낑낑거렸다.윤유성은 가슴이 찌릿해져 목이 말라 침을 삼켰다.오랜 시간 동안 성주든 S 국이든, 그를 좋아하고 갈망하는 미인이 많고도 많았다.하지만 그럴수록 흥미가 없어졌고, 배밑에 빽빽하게 붙어 있는 따개비보다 더 까다롭고 역겹다고 생각했다.오직 아람만이 그에게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나쁜 짓을 저지르고 모두의 분노를 사도 두렵지 않았고 그녀를 아껴주면 그만이었다.윤유성은 아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넋을 잃게 하는 작은 얼굴을 살짝 만져보고 싶었다.순간, 핸드폰이 진동했고 비서가 메시지를 보내왔다.[사장님, 구아람 씨의 가족이 데리러 오셨어요, 지금 문 앞에 있어요.]윤유성은 금테 안경을 올리더니 병실 문을 열였다.복도에는 구윤, 구진, 그리고 임수해의 늘씬한 모습들이 마치 압박감이 강한 세 빙산처럼 눈앞에 서 있었다.“죄송합니다, 구 사장님.”윤유성은 서둘러 선수를 쳤다.“아람 씨의 위가 갑자기 아파서 걷지도 못하더라고요. 병원으로 데려오느라 제때에 연락 못 드렸어요.”수해는 입술이 하얘질 정도로 오므렸고 아가씨를 몰래 데려간 행위를 참을 수 없었다.“윤 도련님!”입을 열려고 했지만 구윤은 침착해라고 손짓을 했다.그러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하며 윤유성을 바라보았다.“윤 도련님, 아람이를 병원에 데려다주신 건 고마워요. 하지만 우리가 동생을 찾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 전화를 여러 번 끊었어요, 마지막엔 전화를 아예 꺼놓았네요…… 이건, 무슨 뜻이죠?”구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윤유성 이 자식이 겁도 없네, 감히 몰래 우리 사랑둥이를 데려가? 우리를 놀고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윤유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죄송합니다. 아람 씨 생각만 했었어요. 편히 쉬게 하
다음날 구아람이 일어나 보니 해문의 집에 있었다.“뭐야! 순간 이동했어?”그녀는 소리를 지르고는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악, 아파! 이게 꿈이 아니라 진짜 집으로 돌아온 거네.’“순간 이동? 그럼 난 시간을 다스릴 거야.”이때 유민지와 강소연이 마침 문을 열고 보배 같은 아람을 보려고 했는데, 마침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강소연은 빙글 웃으며 말장난을 쳤다.“아람아, 어때? 아직도 아파?”유민지는 급히 침대에 걸터앉아 홀쭉해진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파났다.“살이 또 빠졌네, 요즘 너무 피곤했지?”“아람아, 차라리 성주 그 이상한 곳으로 돌아가지 말고 집에 있어!”강소연도 마음이 아파서 눈시울을 붉혔다.“넌 우리 구씨 가문에서 제일 고귀한 아가씨야,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공주님인데, 왜 그런 남자들과 싸우고 있어.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 해, 내가 다 들어줄게. 네가 BOBO를 달라고 해도 잡아서 회로 만들어줄 수 있어!”아람을 웃음을 금치 못했다.“소연 이모, 내가 음식을 가리지 않지만 악어 회는 너무 자극적인 것 아니에요?”“네 소연 이모가 사랑을 표현할 줄 몰라서 그래, 관심이 지나쳐서 이상해졌어.”유민지는 씁쓸하면서도 자책했다.“무슨 일이 생기면 어머니께 말씀드릴 수도 없어, 돌아가시기 전 네가 걱정 없이 자라게 해라고 우리에게 신신당부한 건 널 힘들게 하려는 건 아닌데.”“에이…… 그냥 속이 안 좋은 건데, 큰 병이 아니에요.”아람은 손을 흔들며 그녀들이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강소연은 눈을 부릅떴다.“큰 병이 아니라고? 어렸을 때 네가 기침만 해도 우린 며칠 동안이나 걱정했었어!”“아람아, 아버지가 너 아픈 것 때문에 잠을 설쳤어, 아침까지 드시지 않고 너 깨나기만 기다리고 있어.”유민지는 한숨을 쉬었다.‘어린아이들도 걱정시키고 늙은 사람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네.”“네? 안 되는데!”나른한 아람이가 구회장이 밥을 안 먹는다는 말을 듣자 벌떡 일어났다.“제가 가서 밥을 억지로 먹일게요!”그러자 갑자기
“안 아파요, 괜찮아졌어요.”아람은 예쁜 새엄마에게 바싹 다가갔다.“그…… 먼저 얘기 나누고 있어, 내가 가서 간식 좀 만들어 올게.”말을 마치자 초연서는 두 손을 머리 위로 향해 뿔을 그으며 구회장님이 화가 났다는 신호를 보냈다.아람은 OK라는 손짓을 하며 그녀를 향해 윙크했다.초연서가 떠난 후, 지 비서도 눈치 있게 자리를 피했다.“아버지, 방금 연서 이모랑 하신 말씀을 밖에서 다 들었어.”아람은 아버지 곁에 붙어 앉아 형제처럼 구만복의 어깨를 감싸고 머리를 맞대었다.“날 너무 무시하네. 내가 나대는 건 그럴 자본이 있고 실력이 있다는 거야. 집에서 기르는 카나리아들이 어떻게 나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이기겠어.”“넌 확실히 훌륭해. 하지만 그 멍청한 녀석들이 계속 널 건드리는데, 힘들지도 않아?”구만복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왜 그 사람들을 건드리고 소란스럽게 구는 거야, 늙은 나까지 조마조마하게 만드네.”“멍청한 녀석? 풉…… 신씨 가문을 말하는 거야?”아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소리는 꾀꼬리처럼 맑았다.“구회장이 나보다 더 독하게 말하네, 방금 내 말이 너무 심했어, 인정할게!”“계집애, 네가 손해 볼까 봐 걱정하는 거야, 네가 행복한 건 바라지도 않아!”구만복은 사랑스럽게 딸의 허리를 감싸더니 문득 무슨 생각이 난 듯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신씨 가문의 사람을 건드렸는데, 신경주 그 자식이 사장님으로서 널 난처하게 한 건 아니지?”아람은 가슴이 떨리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 이번 일은 신경주도 옆에서 부채질했어.”구만복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응? 무슨 말이야?”“신효린을 지목하러 나선 여기자가 정말 심한 혼수상태에 빠진 줄 알았는데, 신경주가 몰래 그 사람을 살리고 자선 행사장으로 데려온 거야.”아람의 눈빛이 반짝였다.“허, 겉과 속이 참 다르네, 네 자리를 빌려 자신의 문제를 수습하네. 그놈이 꾀가 많아, 어쩐지 요 몇 년 동안 꾸준히 사장 자리에 앉아 있네.”구만복은 냉소하더니 참
하룻밤 사이에 신효린은 다시 실검에 올랐고 매번 일을 일으킬 때마다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자신의 힘으로 신씨 그룹 주식을 하루 만에 수백억 증발시켰다. 참으로 우수한 전적이다.사건 당일 밤, 안나 조는 기자들에게 신씨 호텔과 계약 해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사건 다음날, 여전히 실검에 있었고 신씨 그룹 주식이 폭락했으며 신효린에 대한 토론이 멈추지 않았다.[어떤 귀족 가문 아가씨는 봉황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동물보다도 못해. 구씨 가문 아가씨는 예쁘고 마음씨도 착하고 재능도 많을 뿐만 아니라 호텔 경영에 주얼리 디자인까지 할 줄 아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간통하고 교활하여 신술 궂은 수단만 쓸 줄 알지. 안나가 처음으로 성주에 왔는데 참 창피하네.][신효린을 우리 귀여운 구 알렉스 아가씨와 비교하지 말지? 그럴 자격이 없거든!][신효린이 그런 짓을 한 건 전혀 놀랍지 않아, 윗물이 맑아야 아래 물이 맑지, 알 사람들은 다 알잖아.][참, 신씨 그룹에 좋은 사람이 있긴 해? 이게 무슨 사악한 집안이야, 관련 부서에서 조사해 볼 수 없나?]사건 발생 사흘째, 신경주는 신광구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사장 권한으로 긴급 고위층 회의를 소집했다.신효린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요 며칠 동안 계속 몸이 안 좋다고 했지만 아마 볼 낯 없어서 안 나오는 것 같았다.“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경주는 우아한 몸매를 앞으로 숙이더니 깍지 낀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고 눈빛은 위압적이었다.“지난번 KS 호텔의 바자회에서 일어난 일은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가 신씨 그룹을 대표해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안색이 어두운 경주가 손짓을 하니 한무는 즉시 문건을 꺼내 큰소리로 읽었다.“신씨 그룹 이사인 신효린 씨가 그룹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처벌 결과를 공시합니다. 이날부터 신효린 씨는 이사직을 해임하고 호텔 프로젝트 기획권을 회수하며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명령했습
‘이건 분명 날 모욕하는 거야!’역시, 진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점점 변해갔고 경멸이 느껴졌다.“아무리 네가 사장이라고 해도 그룹의 이사를 함부로 처리하면 안 돼! 이 일은 회장이 결정해야 돼! 어떻게 먼저 선수를 쳐?”진주는 어쩔 수 없이 신광구를 내세워 제압하려 했다.경주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무거운 질문을 가볍게 내던졌다.“그 말씀은, 회장님께서 신효린의 행위를 용서할 거란 말입니까? 설령 상업 절도, 사기를 저지르고 신씨 그룹의 주식을 하룻밤 사이에 백억 대를 증발했다 해도 회장님은 신효린의 이사 자리를 지켜주고 계속 높은 자리에 앉히겠다는 거예요? 고작 회장님의 딸이라서?”이 말들은 칼처럼 사람의 마음을 찔렀다.고위층들이 진주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화가 난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마치 옷을 벌거벗은 듯한 수치스러움에 두피가 저려났다.“직장에 절대적인 공평이 없다는 것을 알아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공평은 화려한 두루마기 같아요, 까보면 형편없거든요.”경주는 눈을 반짝이며 언성을 높였다.“하지만 제가 사장 자리에 있는 한, 절대 그런 일이 나타나게 하지 않을 겁니다.”진주를 단 한 마디도 욕하지 않았다.그러나 진주는 심한 욕설을 들은 것 같았다.말이 끝나자 갑자기 조용해졌다.곧 모든 고위층들의 눈이 밝아지더니 신 사장님의 당당한 발언에 감동하고 박수를 보냈다.……회의가 끝난 후, 진주가 고위층 회의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소식이 그룹을 휩쓸었고, 모두가 모여서 회장 부인의 어릿광대를 조롱했다.‘회의실에 들이닥치다니, 참 소질도 없네!’신효린의 면직 소식도 이메일로 모두에게 전달되었다.“드디어 신효린을 파면했네, 역시 하느님이 보고 있으셨어!”“하느님은 무슨, 신 사장님이 대단한 거지! 돌아가서 신 사장님의 사진에 대고 빌어보겠어, 이게 바로 정의의 힘이야!”“이게 친척을 모른 체하는 건가?”“퉤! 이건 대의멸친이라고 해! 더구나 친하지도 않잖아! 같은 배속에서 나온 것도 아닌데.”“하하하, 몰라. 아무튼
경주는 뻣뻣하게 입꼬리를 올렸고 눈빛은 슬퍼 보였다.“구아람 곁에 윤유성이 있잖아, 오빠들도 있고, 내가 갈 필요도 없는데 왜 가겠어. 내가 미쳤어?”경주는 가만히 있는데 오히려 한무가 엄청 급해났다.“사장님! 지금 사모님의 마음속에서 호감이 아예 없어요! 미친 짓을 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사모님을 되찾지 못할 거예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무를 째려보았다.겁에 질린 그는 침에 사레가 들어 기침을 했다.“이미 이혼했어, 한번 헤어진 부부는 다시 맺어지기 어려워. 구아람을 다시 되찾을 생각도 없어.”경주는 가슴이 답답해났고 목소리는 무겁고 쉬어서 세상 모든 고생을 다 한 느낌이었다.“인연이었다면 날 떠나지 않았을 거고, 인연이 아니었다면 쫓아다녀도 소용없어. 구아람을 놓아준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 단 한 번도.”……진주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고 관해 정원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더니 서재로 가서 신광구를 끌어안고 울며불며 말했다.“오빠! 경주가 양심이 없어! 효린이가 친동생인데! 도와주기는커녕 면직해버려? 앞으로 효린이가 회사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겠어? 제 고집만 피우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아…… 그저 권력을 잡고 싶어 하잖아, 사장으로 된 후 점점 더 당신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있어!”“해직 명력은 내가 내린 거야.”신광구는 짜증이 나서 그녀를 천천히 밀어냈다.“내가 경주를 시켜 효린이를 파면하라고 한 거야.”예전에는 진주의 눈물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녀가 우는 것을 보면 온몸이 불편하고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졌다.그때마다 신광구는 저도 모르게 경주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 뼛속까지 차갑고 고집 센 여자 말이다.그녀는 신광구를 위해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고, 진주처럼 애정이 가득하고 애교를 부린 적도 없었다.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아쉬운 건 진정한 의미에서 경주의 어머니를 정복
신씨 가문은 난장판이었다.그러나 구아람은 신나게 해장원 뒤 정원에서 그네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이 그네는 평소 그녀 말고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이건 구만복이 아람의 어머니를 위해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한가하면 그 위에 앉아 순진무구한 소녀처럼 맨발로 어슬렁거리거나 아예 엎질러진 채 나른하게 햇볕을 쬐며 잠을 잤었다.구만복은 매번 와서 어머니에게 직접 그네를 밀어주었었다. 햇빛에 비친 예쁜 두 그림자가 겹쳐지고 갈라지다 또 겹쳐진다.혹은 아내의 곁에 앉아 말없이 서로에게 기댄 채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그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하지만 구만복은 매일 집사에게 그네를 깨끗이 닦으라고 명령한다.마치 아람의 어머니가 그냥 놀러 나간 것처럼, 지치면 집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아가씨, 안나 조 씨가 이미 저희 쪽으로 이적했어요, 연회에 초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고 하네요.”임수해는 아람에게 그네를 부드럽게 밀어주었다.“아가씨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저에게 연락했어요. 요 며칠 제 핸드폰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아, 영어 말하기 연습도 할 겸 좋은 기회네.”아람은 사과를 아삭아삭 깨물었다.“또 저를 놀리시네요.”수해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꿈틀거리는 붉은 입술을 바라보았다.통통하고 윤기 있고 부드러운 입술은 아람의 손에 있는 사과보다 더 유혹이 컸다.수해는 침을 마구 삼켰다.“예전의 구 사장은 호텔이 더 잘 되기 위해 진심을 굽히고 초대를 받았겠지.”아람은 사과를 씹으며 발끝으로 땅을 툭툭 쳤다.“하지만 난 지금 안나의 롤 모델이야, 난 알렉스잖아. 그 초대를 쉽게 받을 수 없어. 정체를 한 번만 들어내도 충분해. 아니면 신분이 가치가 없게 되잖아.”“그러네요. 전에 안나 조가 아가씨를 무례하게 대하셨는데, 이번에 한 수를 가르쳐 주셔야죠. 미움을 샀으면 대가를 치러야 해요.”“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요즘 너무 피곤해서 가기 귀찮아.”아람은 하품을 하였다.“전에 ‘민트’
기락산 국가 삼림공원은 13년 전 구아람과 신경주가 처음 만났던 곳이다.바로 그곳에서 경주가 생명이 위태한 아람을 살려주었다.“오! 범 선생님의 제자예요? 선생님은 팀장을 안 하세요?”아람은 옛 친구의 얘기를 듣자 눈이 반짝거렸다.“네, 선생님께서 다음 달에 은퇴하시거든요. 이번 달에 마지막 순찰을 하고 저랑 업무를 인계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실 겁니다.”하 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선생님의 주소록에서 백소아 씨의 이름을 봐서 선생님에게 엄청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았어요. 선생님께서는 담담하게 떠나고 싶어 해요. 하지만 이번 달에 시간을 내서 선생님을 뵙고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췌장암을 걸려서, 이번에 헤어지면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네? 선생님이…….”아람은 벌떡 일어서더니 심장이 쪼여났다.“검사를 할 때 이미 말기였어요. 아시다시피 췌장암은 빠르게 퍼져요.”하 팀장은 울컥했다.“알겠어요.”안색이 어두워진 아람은 나지막하게 말했다.“시간을 내서 선생님을 뵈러 갈게요.”“백소아 씨, 제가 얘기했다고 하지 마세요.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해요. 동정을 받기도 싫어하시고. 그러니…….”“알겠어요. 제가 선생님과 만난 지 13년이 지났어요. 성격을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통화가 끝나자 아람은 멍하니 그네에 앉아있었다. 한참 지나니 붉어진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아가씨, 범 선생님은 누구예요? 왜…… 왜 그러시는데요?”수해는 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 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물을 가볍게 닦아주었다.“옛 친구야.”아람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더니 마음도 아파났다.“수해야, 성주와 해문에서 권위 있는 소화기내과 의사가 있는지 알아봐 줘, 최선을 다해서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네, 오늘 바로 알아볼게요.”수해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아가씨가 주동적으로 말하지 않는 한 그녀의 사생활을 존중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전화가 끊긴 지 얼마 안 되어 또 전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