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리스트.”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교양이 좋은 구아린도 놀라서 손에 있는 포크를 떨궜다. 구진은 커피를 뿜을 뻔하며 사레가 들어서 얼굴이 빨개졌다.“아버지!”구아람은 벌떡 일어나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지금 복수하는 거예요?”구만복은 태연하게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내 딸인데 복수할 필요 있어? 아무리 조용하게 넘어간다 해도 이 일을 숨길 수 없을 거야. 나중에 소문 퍼지면 네가 비웃음을 당할 건데. 신경주도 재혼하는데 나도 널 위해 준비해 줘야지. 그 녀석보다 뒤처지면 안 돼!”“이건 아니지!”“아무튼, 이미 결정했어. 이 명단은 내가 밤새 비서에게 정리하라고 시킨 거야. 다 너랑 나이가 비슷하고 우리 가문과 어울리는 사람들이야. 너도 준비해. 다음달 부터, 매주 최소 다섯 번은 만나고, 주말은 휴식하니까 만나지 않아도 돼.”구만복은 정색하면서 말했다. 전혀 장난하는 것 같지 않았다.“몰라! 난 절대 안 가!”“안 가면, 사장 자리까지 버리겠다는 거야?”‘이 교활한 어르신!’구아람은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내가 아버지를 도와 KS WORLD를 키우면 KS 사장을 시켜준다고 했잖아요.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내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소개팅을 절대 안 할 거예요!”“그럼 사장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줘도 괜찮은 거지?”구만복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잊지 마, 구씨 가문은 여전히 내 손에 있어.”아침밥은 즐겁지 않았다.어렸을 때, 그녀는 기분이 나쁠 때마다 뒷마당으로 달려가 가산 동굴에서 숨어 돌에 욕을 새기거나 그 안에 숨어서 울곤 했다.그녀는 24살이 되어도 이 습관이 바뀌지 않아 가산으로 달려와 울분을 터뜨렸다.“우리 동생, 역시 여기 있네!”구진은 허리를 굽히고 늘씬한 몸으로 동굴 속에 들어갔다.“내가 의자를 훔쳤다고 아버지가 복수하는 거지?”구아람은 뾰로통하게 물었다.“음…… 그게 다가 아닐 거야. 아빠는 이런 식으로 네가 그 자식이 가져다준 부정적인 영향
해장원 밖.검은 페라리 옆에 홀로 서 있는 신경주는 너무나도 우아했다.기다리는 동안, 그는 문 앞에 걸려있는 편액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그는 꾸준히 구씨 가문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이곳은 구만복의 정부인, 즉 구아람의 어머니가 산 부동산이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정원 주택은 전국에서 이 하나뿐이다. 그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해장’ 이라는 이름도 바로 구아람 어머니의 성함인 백해장에서 온 것이다.그래서 그녀가 ‘백소아’ 라는 가명으로 그의 곁에 있은 것이다.‘하지만, 왜 ‘소아’ 라고 짓은 거지?’신경주가 생각에 잠겼을 때, 대문이 삐걱거리며 천천히 열렸다.소리가 들리자 그는 급히 시선을 거두어 어깨를 꽉 조였다.귀아람은 햇빛을 손으로 가리고 계단 위에 서서 신경주를 바라보았다.이 남자는 오늘 뜻밖에도 슈트 대신 베이지색 슬랙스에 하늘색 재킷을 입었다. 깔끔하고 상쾌하며 카리스마가 넘쳤다.구아람은 이런 옷차림을 본 적이 없다. 평소 그는 늘 단정한 슈트를 입고 있어 오늘은 왠지 너무 편해 보였다.그녀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급하게 나오느라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귀여웠고 유혹적이었다.신경주는 그녀의 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뭘 봐, 슬리퍼를 본 적이 없어?”구아람은 슬리퍼에 숨겨둔 발가락을 꾸물거렸다.“늘 하이힐만 신었잖아, 오랜만에 슬리퍼를 신은 모습을 보네.”“허허, 넌 확실히 눈이 나쁘구나.”“지난 3년 동안, 난 늘 이런 모습으로 너의 앞에서 서성거렸는데, 본 적이 없다고? 내가 존재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이혼 후까지 날 비꼴 필요는 없지 않나?”순간 신경주는 심장이 멎은 듯 안색도 어두워졌다.그래, 기억났다.그가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가장 먼저 반겨준 사람은 늘 그녀였다.그때 그녀는 거의 매일 종종걸음으로 신나게 그에게 다가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주걱을 들고, 기름진 하얀 얼굴로 그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그땐 그녀를 비웃었지만 지금 생각해
그러자 그는 왼팔로 안전벨트를 천천히 끌어당겨 매어 주었다.구아람은 이를 악물고 손을 확 걷었다. 마치 더러운 물건을 만진 것 같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오늘 우리 집에 물건 찾으러 가겠다고 약속했잖아.”신경주는 그녀를 놓아주고 여유롭게 핸들을 잡았다.“오늘 꼭 갈 거야, 그럴 필요 없어!”“거짓말.”신경주는 시동을 걸고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네가 사람을 잘 속이잖아. 3년 전 결혼해서 지금까지 날 몇 번이나 속였었어, 나에게 솔직하게 말 한 적은 있어?”“있었나?”구아람은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네가 없다면 없는 걸로 하자. 상관없어.”순간 신경주의 마음이 아파나며 씁쓸해졌다.때때로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러면 그가 한 모든 일을 돌이켜볼 때 마음이 편할 수 있다.페라리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지나쳤다.도망갈 수도 없으니 구아람은 아예 의자 등받이를 조절하고 팔짱을 끼고 편하게 앉아 눈을 감았다.“그 일은, 미안했어.”신경주는 핸들을 꽉 잡았다.“무슨 일.”이혼 후 이 남자가 점점 이상해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늘 퉁명스러웠는데 지금은 걸핏하면 잘못을 인정한다.‘김은주가 그를 교육했나?’“구윤이가 너희 오빠라는 걸 몰랐어.”“아, 그럴 수도 있지, 용서해 줄게.”구아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근데 왜…… 해명하지 않았어?”신경주는 그녀의 예쁜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내가 구윤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해명했으면 믿어줄 거야?”구아람은 고개를 저었다.“이 세상은 여자들에게 늘 악의로 가득 차 있어, 만약 내가 구윤의 동생이 아니라면, 만약 내가 백소아라면, 너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날 염치없고 허영심이 가득해 부잣집 도련님을 꼬시는 년으로 생각하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아끼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는지 신경도 안 써.”신경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핸들을 너무 세게 잡아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구아람은 소름이 돋았다.“사이즈가 230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작아 보여서 대충 맞췄어.”구아람은 하얗고 작은 발을 난처하게 웅크리고 냉랭하게 한 마디 던졌다.“남자들은 늘 어디서나 망나니짓을 하는구나?”신경주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관해 정원에 있는 그녀의 모든 물건을 보물 찾기처럼 자세히 더듬었기에 그녀의 발 사이즈를 알게 된 것이다.그래서 그녀가 햄스터처럼 집에 간식을 두는 걸 좋아하고 특히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가 자주 쓰는 향수는 세르주루텐의 라 휘드 베흘랑이다. 그가 예전에 어렴풋이 맡아 보았지만 맵고 차가운 향기가 그녀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이 도도한 향기는 특별히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너무 잘 어울렸다.그녀가 230 사이즈의 신발을 신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작은 흰색 신발은 지금도 신발장에 깨끗이 놓여 있으며 마치 그녀가 수시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그날, 그녀는 그가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실망했었다.그래서 그는 이런 방식으로 그녀를 다시 알고 싶었다.……두 시간 동안, 그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페라리는 관해 정원의 문 앞에 멈췄다.신경주는 먼저 자신의 안전벨트를 풀고 곧 구아람에게 다가갔다.팍-구아람은 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팔로 그를 막았다. “내가 알아서 할게.”찰칵-그러나 신경주는 틈을 타서 긴 팔로 그녀의 안전벨트를 풀어버렸다.“고마워할 필요 없어.”그녀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그의 동작이 너무 빨랐다.전에 그녀는 넷째 오빠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관학교에 있을 때 그가 권총을 조립하는데 10초가 걸렸지만, 신경주는 8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의 손놀림이 너무 놀라웠다.신경주와 구아람은 신씨네 집으로 함께 들어갔고, 그 소식은 하인들 사이에서 신속하게 퍼졌다.“세상에! 내가 잘 못 본 건 아니죠? 사장님이 사모님과 함께 온 거예요?”“진짜 사모님이네요! 와……
하지만 그녀는 이 괴이한 행동들이 너무 불편했다.뒤늦은 다정함은 유통기한이 지난 과일 캔과 같아 달달함이 아닌 쉰 것만 같다.구아람은 핸드폰을 꺼내 임수해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해야, 나 지금 성주의 관해정원에 있어, 지금 데리러 와.”“네?”임수해는 깜짝 놀랐다.“왜 거기 계세요?”“어휴, 말하자면 길어, 만나서 얘기해.”전화를 끊고 구아람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이곳에 오래 머무르기 싫어서 먼저 옷을 정리하고 임수해가 오면 바로 갈 생각이었다.예전에 그녀가 살던 방은 신효정의 방과 가까웠다. 하인에게 효정이가 이미 휴학하고 집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녀를 보러 가려고 했다.신효정의 방 문 앞에 이르자, 안에서 신효린이 욕설을 퍼붓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이년이! 말해 봐! 할아버지 생신날에 도련님과 무슨 짓을 했어?”“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언니…… 진짜예요.”신효정의 울먹이는 소리가 마음이 아팠다.“거짓말!”신효린은 그녀가 변명하고 있다고 생각해 더욱 화가 났다.“그런 걸 마셨는데 어떻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겠어! 그럼 그의 목에 있는 붉은 자국은 뭐야? 강아지가 물었나?”“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아……!”우당탕-곧이어 꽃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화가 나 눈이 붉어진 구아람을 주먹을 쥐고 방문을 걷어찼다. 한창 화내고 있는 신효린을 깜짝 놀라게 했다.“넌 뭐야?”신효린은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서 뭔가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그러자 탁하고 그녀의 얼굴에 맞았다.“아!”그 후, 또 다른 슬리퍼가 그녀의 얼굴에 맞았다.맞은 신효린은 코끝이 붉어졌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마마저 신발 자국이 찍혀 꼴이 너무 우스웠다.그녀는 이마를 감싸고 구아람을 가리키며 너무 화가 나 어떤 욕을 해야 할지 몰랐다.“말을 참 더럽게 하네.”팔짱을 끼고 눈살을 찌푸리며 웃는 구아람이 너무 무서워 보였다.“형…… 형수님.”구석에 움츠리고 있는 신효정은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구아람을 보자 그
구아람은 잠시 멍해 있더니 냉정하게 말했다.“난 괜찮지만 아마 효정이가 다쳤을 거야.”신경주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신효린의 손목을 더 세게 잡았다.“아아아! 오빠, 일단 놔 봐! 너무 아파!”신효린은 너무 아파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배이더니 울먹거리기 시작했다.신경주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그녀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그녀는 순간 큰 힘에 의해 뒤로 비틀거리더니 비참하게 주저앉았다.“오빠! 이 여자가 먼저 슬리퍼를 나한테 던졌어! 봐봐, 아직도 자국이 있어! 이게 증거야!”신효린은 울며 주먹으로 땅을 쳤다.“이 여자가 집까지 와서 동생을 때리는데 어떻게 남의 편을 들어줄 수 있어?”신경주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낮은 목소리로 다시 구아람에게 물었다.“진짜 괜찮아?”구아람은 어이가 없어 상대하기도 싫었다.그녀는 신효정을 향해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살며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형수님!”신효정은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겨 펑펑 울었다.언니가 자신을 때릴 때도 울지 않았다. 그러나 구아람을 본 순간 너무 억울해서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울지 마, 내가 있으니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 효정아, 앞으로 내가 도와줄게.”구아람은 마음이 아파났다. 그녀는 효정을 위로해 주면서 신효린을 째려보았다.‘참 독하네, 드라마 속의 악역들보다 더 악랄하네.’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본 신경주는 줄곧 냉정했던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는 이런 모습이 참 좋았다. 심지어 자주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신효린, 잘 들어.”구아람의 눈빛은 칼처럼 날카로워 신효린의 얼굴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이후부터 내가 효정이를 지켜줄 거야, 내가 관해 정원에 없다고 해서 여기서 일어난 일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다른 건 난 신경도 안 써. 하지만 또다시 효정이를 괴롭힌다면 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신효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울먹이며 신경주를 바라보았다.“오빠…….”“구아림 씨의 말을 잘 들었지?”신경주는
비록 김은주는 흉악하고 악랄하지만 형편이 좋지 않고 비실비실 거려 신효린은 그녀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그러나 구아람은 아니다. 그녀는 세력이 뛰어나고 독한 여자다. 만약 신경주와 다시 만나면 그녀는 앞으로 구씨 가문 아씨의 화풀이 대상이 될 것이다.이 생각을 하자 신효린은 또 꾀를 생각했다.한 산에 두 마리 호랑이가 살 수 없듯이, 김은주를 불러들여 싸움을 일으키려고 한다.그리고 그녀는 김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은주야! 큰일 났어! 오빠가 구아람을 데리고 집으로 왔어. 둘이 엄청 알콩달콩 하던데, 사모님 자리를 뺏기는 거 아니야?”신경주는 하인에게 신효정의 방을 깨끗이 정리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구아람은 계속 그녀를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언니가 있어서 이젠 무섭지 않아.”“아아! 언니가 아니라 형수님!”신효정은 이미 스무 살이 되었다. 그러나 자폐증으로 인해 언행이 얌전하고 유치해 보였다. 그녀는 구아람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고집을 부렸다.“형수님, 가지 마, 너무 보고 싶었어…….”형수님이라는 호칭은 구아람을 어색하게 했고 몸도 어색하게 뻣뻣이 굳어 있었다.신경주는 그녀들의 다정한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고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다.“신 사장님.”구아람은 눈치를 챈 듯 갑자기 냉정하게 말을 했다.“업무가 많이 바쁘고 또한 이 집을 싫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늘 효정이와 같이 있었잖아. 효정이도 늘 오빠를 존경했어. 그러니 선량함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음부터 그녀가 괴롭힘을 당할 때 모르는 척하지 마. 신효린이 또다시 효정이를 괴롭힌다면 난 반드시 그녀를 고소할 거야.”신경주는 어리둥절해져 입술을 오물거렸다.평소에 너무 바빠 집에 자주 들어오지 못했다.그래서 신효린의 행위를 모르고 있었다. 평소 할아버지 앞에서 다정했던 자매의 모습이 모두 가짜였다.“약속할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신경주는 큰소리로 말했다.“나랑 약속해서 뭐해, 내가 다친 것도 아닌데.”구아람
“끝이 없네. 언제까지 물어볼 거야?”구아람은 주먹을 쥐고 심호흡을 하며 화가 나 눈시울이 붉어졌다.“할 말은 이미 다 했어, 믿지 않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예전에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었지?”신경주는 급히 답을 듣고 싶었다. 몸은 점점 그녀에게로 기울어졌고 두 사람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구아람, 말해 봐. 예전에 우리 만난 적이 있지?”구아람은 심장이 조여오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아니야, 할아버지가 결혼을 정했을 때가 우리의 첫 만남이야. 그전에는 만난 적이 없어.”그녀가 바로 10년 전 자기가 구해준 아이라는 것을 알아 차릴까 봐 너무 두려웠다.이미 이혼도 했으니 13년간의 사랑을 뒤돌아보면 불쌍함과 낭패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구아람은 체면을 지키고 싶었다. 이 남자를 13년 동안이나 사랑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신경주는 실망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진실이 있는 것만 같았다.“놔, 물건 정리하고 갈 거야.”구아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옷장을 힘껏 당겼다.“구아람, 너…….”“그만, 제발 그만 물어!”구아람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신경주, 우린 이미 이혼했어, 이혼이란 뜻을 몰라? 왜 계속 과거에 집착해? 내가 널 사랑했다고 해도 뭐 어때? 그런 마음이 이미 사라졌는데. 네가 준 선물들, 그리고 널 보기만 해도 너무 역겨워.”사랑.신경주는 오직 이 두 글자만 들었고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그는 숨을 몰아쉬고 큰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하였다.자세히 보니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비록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눈빛은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허, 울어? 화나서 이러는 거야. 너랑 이혼한 건 큰 경사야. 꿈에서도 웃고 있더라.”구아람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이혼 계약을 맺는 순간부터 난 이미 결심했어. 너 때문에 눈물 흘릴 일은 이번 생에 절대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