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누구?”이상철은 눈썹을 찌푸렸다.“누구겠어요. 진주의 둘째 딸, 신씨 가문의 넷째 아가씨 신효정이죠.”소희는 무심코 말을 하는 척했다.“요즘 오빠가 집에 오지도 않아요. 밖에서 신씨 가문 넷째 아가씨와 작은 집을 마련했어요. 둘이 매일 붙어있어요. 저번에 엄마가 몸이 좋지 않을 때 제가 병원에 같이 가줬어요. 아이고, 결혼하면 어머니를 잊는다더니, 오빠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도 나와 엄마를 잊었어요!”“소희야, 말 그만 해.”하진영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효정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상철이 유희에게 불만이 있을까 봐 걱정했다. 이준상은 웃었다.“신씨 가문 넷째 아가씨가 미인이겠네. 난 유희를 잘 알아. 그 어느 여자한테도 진지한 적이 없어. 신씨 가문 아가씨가 유희의 마음을 단단히 잡았네.”“진주의 딸이 내 손자의 마음을 잡아? 꿈이나 꿔!”이상철은 눈썹을 찌푸리며 지팡이를 무겁게 내리쳤다.“결혼하기 전에 동거를 해? 이게 귀족 가문 아가씨야? 진주도 악명이 높으니, 역시 딸을 잘 교육하지 못하네!”“아버지, 손자를 너무 걱정하지 마요.”이상철은 몰래 웃으며 말했다.“우리 유희는 남자라 손해를 보지 않아요.”하진영은 이 말을 듣자 위로를 받았다. 소희의 눈빛도 음흉해졌다. ‘이유희가 신효정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어도, 진주의 딸이면 절대 이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때, 기자들이 소리를 질렀다.“신 사장님이 오셨어!”“정말 신경주야. 신경주가 왔어!”수만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셔터 소리가 커졌다. 소희도 흥분하여 기대를 하며 레드카펫 쪽을 바라보았다. 경주가 검은 슈트를 입었고, 준수한 얼굴은 눈처럼 차웠다. 행동거지에 권력자 다운 카리스마가 넘쳤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거부하는 냉정함이고 많은 여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소희도 마찬가지이다.“소희야, 가자, 뭐해?”하진영은 딸을 잡고 나지막하게 재촉했다.“엄마, 너무 잘생겼어.”소희는 경주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침을 흘릴 지경이었다.“오빠, 오빠가
소희는 꿍꿍이가 많았다. 경주와 함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만약 경주와 나란히 입장하면 언론은 물론 모든 여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경주의 파트너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경주는 어떤 행사에 참석하든 항상 혼자였고, 절대 여성 파트너를 데려오지 않는다. 아람과 결혼한 3년 동안에도 아내와 함께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다. 만약 소희가 이 기회를 잡으면 모든 사람에게 경주의 마음속에서 소희가 중요한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남자에게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일단 오해를 불러일으키면 아람와 틈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틈을 타고 들기 쉬워질 것이다. 소희는 수작을 부리며 경주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붉어졌다.“오빠.”그러나 경주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표정이었고, 잘생긴 눈썹은 사람을 오싹하게 했다. 소희를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경주의 시선은 소희 위, 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경주는 소희를 공기 취급했다. 소희가 이를 악물며 화가 나서 치마 자락을 들고 경주를 향해 다가갔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구씨 가문이 도착했어요!”경주는 순간 살아난 것처럼 즉시 뒤를 돌아보며 눈에 빛이 났다. 최고급 럭셔리 링컨이 레드카펫 중앙에 멈추었다. 문이 열리자 슈트를 입은 구윤이 먼저 내렸다. 그리고 신사적으로 아람의 손을 잡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 장면은 참석한 모든 여성들이 그들이 남매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비명을 질렀다. 선남선녀를 대충 찍어도 레전드 사진이 된다. 경주는 마치 모든 것이 텅 빈 것처럼 세상이 조용한 것 같았다. 경주의 뜨거운 시선에는 오직 아람 밖에 없었다. 그들을 바라볼 때 경주는 마음이 씁쓸했다. 못난 경주는 구윤을 질투했다. ‘나도 언제 당당하게 아람의 손을 잡고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오늘 아람의 패션은 사람의 눈이 빛나게 했다. 평소 항상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오
소희를 보았을 때 경주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러나 아람을 보는 순간 그 얼음은 녹아내리고 봄빛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어렸을 때만 해도 경주는 다정하면서도 온화했다. 경주의 마음속에서 아람이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소희는 치를 떨며 붉은 눈으로 경주가 사랑하는 아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람은 경주를 보지 못한 건 아니다. 큰 키에 존재감이 너무 강했고 걸어오는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아람아, 저 자식이 널 찾으러 왔어.”구윤은 아람의 귀에 속삭였다. 늘 엄숙하던 구윤의 말투는 장난기가 담겼다.“신경 쓰지 마. 못 본 척하면 돼.”아람은 삐진 듯 입을 삐죽거렸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분명 말했어. 오늘 각자 일을 한다고,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전에 내 말은 다 듣겠다며 말하더니, 거짓말이었어, 이 거짓말쟁이!”아람은 화가 나서 욕했다.‘거짓말쟁이!’차가운 구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서로 사랑하니까 다툰 다는 말은 틀림없었다. 이때 구만복과 초연서도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레드카펫을 걸었다. 초연서의 드레스는 아람이 오래 전부터 초연서의 사이즈에 맞게 몰래 만들어준 것이다. 초연서의 드레스 색갈은 아람과 같았다. 잘 재단된 정장 튜브 스커트로 더 단아하게 다지인 되었으며, 모자는 몽환적인 얇은 명주 그물로 아름다운 얼굴을 반쯤 가려 우아한 스타일을 연출했다.“세상에, 구만복이야! 역시 거물이네. 나이가 들어도 카리스마가 넘쳐. 40대 같아!”“30년 전을 돌아가도 엄청난 미남이야, 신 사장님 보다 못하지 않아! 유전자가 너무 강해서 구씨 가문의 도련님과 아가씨들은 모두 구만복을 닮았어!”“그러네!”“초연서 너무 예쁘네, 정신을 못 차리겠어!”“그 당시 진주보다 예뻐서 TVC 에이스가 되었어.”“아쉬워, 너무 아쉬워. 젊은 사람들은 그 당시 초연서가 얼마나 핫한 지 모를 거야! 그 일 때문에 은퇴만 하지 않았 더라면 진주는 절대 핫해지지 못해! 흥, 진
초연서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심지어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구씨 가문의 등장은 다시 한번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경주가 아람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은 모든 관심을 받고 플래시 불빛이 난동을 부렸다.구만복은 차갑게 전 사위인 경주를 바라보며 화가 나서 뺨을 날리고 싶었다.“구 회장님, 따님과 함께 입장해도 될까요?”경주는 다정한 눈빛으로 아람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정성스럽게 말했다.“구아람 씨가 제 파트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아람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아람을 민망하게 하는 일은 드물었다.“신 사장님, 사장님 파트너가 되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을 텐데, 꼭 우리 아람이어야 해요?”구만복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차갑게 말하며 경주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네, 꼭 아람이어야 해요.”경주는 심호흡을 하며 아람에게 손을 내밀었다.“제 곁에는 아람만 있을 거예요. 자리는 평생 아람에게 남겨줄 거예요.”사람들은 환호했다.‘너무 달달해!’소희는 너무 멀리 있어 경주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들의 흥분한 모습을 보니 듣고 싶은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구만복은 어두운 안색으로 아람을 바라보았다. 아람은 절대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성격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경주를 원망하여 냉정하게 말했다.“신 사장님, 그냥.”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주는 아람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아람은 호흡이 빨라졌다. 순간 경주의 품에 안겼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은 마치 온 세상에게 아람은 경주의 여자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아람아, 가자.”경주는 다정한 눈빛으로 아람을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아람은 얼굴을 붉혔다.“젠장, 너무 위압적이네!”“위압적인 것이 아니라 날 위해 기회를 만드는 거야.”경주는 입꼬리를 올리며 아람의 귀에 속삭였다.“진작에 알았어야지, 난 껌딱지야.”하늘이 내린 천생연분 같은 외모의 두 사람은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서 떠났다. 경마장 입구의 화면에서도 경주와 아람을 클로즈업했다.“만복아, 봐
아람은 경주와 팔짱을 끼고 원망했다.“겁도 없네.”“힘내지 않으면 아내를 얻을 수 있겠어?”경주는 다정하게 아람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세가지 사람이 있어. 여자를 뺏는 사람, 딸을 뺏는 사람, 여자와 딸을 뺏는 사람.”경주는 말문이 막혔다.“흥, 기다려. 우리 아빠는 나보다도 원한을 품어.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갑자기 아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참, 준비됐어?”“그럼, 와이프가 준비한 일은 절대 방심하면 안 돼.”경주는 가볍게 말했다. 아람의 귀끝이 빨갛고 뜨거워졌다. 반박하려하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노려보는 소희가 보였다. 소희를 보자 마음이 불편했다. 비록 경주를 받아드리고, 믿고 예전 일을 따지지 않기로 했지만 소희와 돌던 스캔들이 아람 마음속의 가시였다.“둘째, 기다리고 있었어.”소희는 바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부렸다.“누가 기다려라고 했어.”경주는 차갑게 소희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안색은 소희를 겁먹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뻔뻔하게 얘기했다.“방금 같이 들어가려고 했잖아. 구아람씨가 온 것을 보고 다가가서 얘기한 거잖아.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어. 둘째,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기분이 나빠?”경주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소희도 겁에 질렸다. 하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람과 경주를 헤어지게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아람은 눈을 깜빡이며 팔짱을 살짝 풀었다. 아람의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 경주는 소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람과 깍지를 꼈다. 그리고 소희의 곁에서 재빨리 지나가며 차갑게 말했다.“꺼져.”소희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을 붉혔다.‘꺼져라고, 감히 날 꺼져라고? 구아람 그년 앞에서 날 꺼지라고 했어!’소희는 아람과 경주의 뒷모습을 노려보왔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마음에서 사악함이 솟아올랐다....입장하자마자 아람은 경주의 손을 뿌리치며 눈썹을 찌푸린 채 얼굴을 돌
사실 아람도 소희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을 뿐이다.“알아, 다 알아. 전에 호텔 일 때문에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다는 거.”경주는 함정에 빠져 아람을 속상하게 한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다 내 탓이야. 내가 너무 바보였어. 내가 똑똑하면 당하지도 않았어. 모두 내 잘못이야. 날 때려, 죽도록 때려, 그저 날 무시하지 마.”너무 비굴했다. 아람 외에 그 누구도 천상의 경주를 비굴하게 만들 수 없다.“넌 충분히 똑똑해.”아람은 한숨을 쉬며 경주의 품에서 돌아서서 눈을 마주쳤다.“나 몰래 여자를 만나고 싶어도 어리석게 약점을 잡혀 기자들을 끌어들여 촬영하지 않았겠지?”경주는 씁쓸하게 웃었다.“아람아, 날 놀리지 마.”“지난번은 나 때문에 당한 거라고 했잖아.”“누군가가 사진을 보내주었어. 너와 똑같게 생긴 여자가 남자한테 호텔로 끌려간 사진이었다. 너무 당황했어. 네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달려간 거야.”“젠장, 내가 아무 남자와 함께 호텔 갈 여자야! 생각도 안 해?”아람은 화가 나서 경주에게 딱밤을 때렸다.“맞아,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바보같았다. 분명 허점투성인데 난 그걸 믿었어.”경주는 아픈 이마를 만졌다.“그후 핸드폰 사진이 다 지워졌다고 했어. 그땐 화가 나서 믿지 않았어. 그 후 넷째 오빠와 논의했어. 시도해보니 할 수 있었어. 그저 하지 않았을 뿐이야.”지금 설명할 수 없는 건 단 한 가지였다. 자신과 닮은 여자가 궁금하여 바로 만나고 싶었다.“그 여자는 큰오빠와 넷째 오빠보고 찾아라고 할 거야.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두고 어떻게 숨고 있는 거야?”아람은 입술을 삐쭉거리며 남몰래 자신을 칭찬했다.“고마워, 아람아, 믿어줘서 고마워.”경주는 아람을 안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아람에게 키스를 했다. 큰 손으로 아람의 소리를 잡고 몸을 돌려 벽에 밀착했다.“음, 그만해.”아람은 경주의 키스에 가슴이 설레었다. 두 손은 경주의 든든한 가슴을 밀었다.“메이크업이 다
이때, 핸드폰에 또 소식이 전해왔다. 실검 1위는 다시 경주와 아람이 차지했고, 열기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었다. 전 부부가 함께 등장할 때마다 여론을 뜨겁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경주와 아람은 천생연분이고, 비즈니스에서 힘을 합치면 그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광구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허, 구 회장님이 구아람 씨처럼 눈길을 끄는 딸이 있어서 정말 좋겠네. 구아람 씨가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들러리고 구아람 씨가 영원한 주인공이야.”진주는 실검을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경주와 아람은 숨지도 않네, 광구 오빠, 오늘 기회로 구 회장님께 결혼얘기를 해. 구아람 씨가 정체를 숨기고 경주에게 시집을 가서 우리 모두를 속였는데, 우리가 괴립힌 것처럼 구씨 가문에게 빚을 졌어. 차라리 이 기회에 지난번의 잘못을 보상하는 건 어때?”이때, 이씨 가문의 사람도 모두 착석했다. 하진영과 진주는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진주의 말이 너무 잘 들려 눈썹을 찌푸렸다.‘진주의 말이 참 역겹네. 집에 이런 여자가 있는 건 신씨 가문의 재앙이야. 신씨 가문이 수년 동안 내리막 길을 가지 않은 건 3대가 버틴 거야.’소희가 경주에게 시집을 가면 진주와 싸울 생각만 하면 하진영의 머리가 아팠다. 하진영은 경주를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훌륭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신씨 가문은 너무 복잡했다. 경주는 사생아와 마찬가지다. 비록 잠시 신씨 가문에서 권력을 잡았지만 신 회장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위에 이복형제도 있어 신남준도 경주를 계속 지켜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진영은 이 결혼을 바라지 않았다.‘재혼이고 나이도 많은데, 소희와 어울리지 않아.’“그래요, 아빠. 엄마 말이 맞아요.”효린도 옆에서 비아냥거렸다.“봐요, 오빠와 구아람 씨가 얼마나 달달해요. 구아람 씨는 다시 시집을 오고 싶어해요. 오빠도 모든 것을 구아람 씨에게 주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이건 사랑이에요. 아빠, 그냥 허락해 주세요.”오랜 세월 신씨 가문의
“유성아, 만복 아저씨도 오셨다고 했어. 나가서 맞이해. 우리가 호스트로서 의무를 다해야 해. 친구들을 소홀하면 안 돼.”윤정용은 큰 목소리로 이씨 가문과 신씨 가문이 들어라고 재촉했다. 두 가문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신광구와 이상철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분위기는 침체되고 어색했다.“네, 아버지.”유성은 돌아서서 안경을 치켜올렸다. 하얀 얼굴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아람과 경주가 함께 입장하고 소희를 난감하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이 경마 대회에서 화해했다는 소식을 공개할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그땐 일이 상당히 번거로워질 것이다. 유성은 적어도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복도의 한적한 곳에 도착한 유성은 우 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는 바로 연결되었다.[윤 사장님, 무슨 일이에요?]“언론 쪽은 모두 준비해놨어?”유성은 창백한 입을 열었다.[준비되었어요. 보도 자료도 준비됐어요. 명령만 내리시면 전국의 모든 유명한 언론,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이 소식을 전할 거예요.]“좋아.”유성은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잠시 후 신씨 그룹과 윤씨 그룹이 사이가 안 좋다는 소식을 먼저 보도해. 그리고 구씨 그룹과 윤씨 그룹이 사이가 좋아 협력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해. 사람을 시켜 은밀한 사진을 찍어 이 소식을 증명하게 할 거야.”[네, 하지만 너무 성급한 건 아닐까요?]우 비서는 걱정했다.“레드카펫을 일을 알잖아. 나서지 않으면 모듯 것이 너무 늦어져. 아람이 그 비겁한 자식한테 뺏기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유성은 아람과 경주가 팔짱을 끼고 다정한 모습을 생각하자 화가 나서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그래서 내가 한 발 앞서 나가야겠어. 그들의 감정은 당당할 수 없어. 그러니 아예 어둠 속에 묻혀 버려야 해.”한편 이상철은 시계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야, 유희가 아직도 안 왔어? 전화해서 재촉해 봐.”“네, 아버지.”하진영의 마음도 급해져 급
마치 머리 위에 칼이 매달린 듯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경찰서장은 억지로 웃었다.“그, 두 분 먼저 차 한 잔 드세요.”“아니요. 여기 있는 차를 감히 마실 수가 없네요.”아람은 예쁘고 유연한 다리를 꼬고 차갑게 바라보았다.“제 비서를 가두었더라고요. 바로 풀어주시면 좋겠어요. 이 일은 우리 구씨 가문과 윤씨 가문 사이의 사적인 문제예요.”“원만하게 공직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면 문제를 일으켜서 자신을 곤란하게 하지 마시죠.”아람은 항상 단도직입적으로 말했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경찰서장의 가식적인 미소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억지로 말했다.“구아람 씨.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30년 넘게 일하면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해 왔어요.”“잡혀들어온 사람 중 결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임수해는 비록 구아람 씨의 사람이지만, 윤씨 가문의 도련님을 장애가 생길 정도로 때렸어요. 이미 고의 상해죄에 해당해요. 감정 결과도 이미 상사에게 보고했어요.”“두 분은 성주에서 존엄한 분이지만 법 앞에서는 누구든지 평등해요. 아무리 재벌이라도 약자를 괴롭히고 법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구아람 씨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네요.”“서장님, 말은 잘하시네요.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네요.”경주는 따뜻한 손으로 아람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눈썹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렇다면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유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겠죠?”아람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가슴이 떨리며 눈을 부릅떴다.“신 사장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경찰서장은 의아했다.“윤진수를 때린 건 임수해가 아니라 저예요.”경주는 차갑고 경멸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검은 눈동자가 차갑고 날카로운 빛을 번쩍이며 마치 경찰서장을 갈라놓으려는 듯 섬뜩하게 말했다.“이제 임수해를 풀어주고 저를 체포해도 되죠?”아람은 깜짝 놀라 경주의 손을 잡았다.“경주야, 너.”경찰서장은 멍해져 입을 반쯤 벌린 채 아무 반응도
아람은 눈을 부릅뜨고 경주의 차갑고 멋진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전화기 너머 희미한 흐느끼는 소리만 남긴 채 정적이 흘렀다.“왜? 한 명은 이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한 명은 말도 안 하네.”경주는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들고 아람의 볼을 꼬집었다.“이 자매가 정말, 아무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아, 아니에요.]아린이 가장 먼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했다.[형부, 수해 오빠를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우린 가족이야.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아린의 감정을 진정시킨 경주는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한무에게 명령했다.“차 돌려. 경찰서로 가.”그 말을 듣자 한무는 바로 핸들을 꺾어 차를 돌렸다.“경주야, 어떻게 할 생각이야?”아람은 걱정스럽게 경주의 차분한 표정을 바라보았다.“어떻게 하든 수해를 먼저 구해야 해.”경주는 한숨을 쉬며 아람과 깍지를 꼭 꼈다.“아린과 수해는 연애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곤경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아.”아람은 순간 더듬거렸다.“공감되었어?”경주는 안도하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번 아람을 꼭 껴안았다.“예전에는 공감했는데, 지금은 아니야. 이 세상에서 최고의 행복이 지금 내 품에 있잖아.”...수해는 이 더러운 구치소에서 2주 동안 구금되어 있었다. 윤씨 그룹이 합의를 거부하면 계속 구금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해는 아람과 경주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힘겹게 발버둥을 친 끝에 기다리는 것은 여전히 감옥일지라도 수해는 여전히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입을 꼭 다물 것이다. 이때 수해는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의 구석에 몸을 움츠리고 조심스럽게 수해를 바라보며 수다를 떨고 있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너희들, 너무 시끄러워.”수해는 여전히 눈을 감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맞고 싶지 않으면 닥쳐.”구금된 몇 명의 남자는 즉시 입을 가리고
걱정으로 인해 아린은 멘붕 직전이었고 주체할 수 없이 흐느꼈다.[엄마와 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어. 임씨 가문에서도 사람을 찾았지만 수해 오빠를 구하지 못했어.]“뭐? 왜 이제야 나한테 말해?”아람은 마음이 급해서 목까지 쉬었다.“아람아, 흥분하지 마. 아린이 놀라겠어.”경주는 아람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람의 흥분된 감정을 진정시켰다.“아린에게 말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말해라고.”아람은 죄책감에 숨을 내쉬었다.“미안해, 아린아. 언니가 방금 너무 심하게 말했어. 울지마. 무슨 일인지 천천히 말해. 도대체 어느 겁도 없는 놈이 감히 나 구아람의 사람을 건드려! 죽여버릴 거야!”상황이 긴박하지만 경주가 아람의 말을 듣자 웃음을 참았다.[윤씨 가문의 사람이 한 거야.]아린은 처절하게 흐느꼈다.[아마도 내가 윤진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맞아서 그래. 윤씨 가문 사람이 화가 나서 수해 오빠를 괴롭혔어.][수해 오바는 고의 상해죄로 체포되었어. 그리고 윤진수 그 짐승이 진단서까지 뗐어. 몸에 있는 크고 작은 병을 모두 수해 오빠 탓을 해서 중상을 선고받았어.]물론 그 안에 발기 부전도 포함되었다. 윤씨 그룹의 능력으로 진단서를 조작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위조하는 것도 사소한 일이었다.“저 양심도 없는 짐승 새끼 죽여도 속이 시원하지 않아.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봐줬어. 윤씨 그룹이 감히 우리를 건드려?”아람은 화를 냈다. 너무 원망스러워서 눈시울이 붉어지며 살기를 뽐냈다.[윤씨 그룹이 어떻게도 합의를 해주지 않아.]“허, 합의? 그럴 일이 있어? 저 사람들은 수해를 죽이고 싶을 거야!”아람은 심하게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원망했다.“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윤성우야. 임윤호도 참여했을 수 있어!”[임윤호, 임윤호는 수해 오빠의 친형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아린은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었다.“그럴 가능성이 커.”경주는 큰 손으로 다정하게 아람의 등을 쓰다듬으며 안
아람과 경주는 자신의 별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나가는 길에 경주는 아람을 안고 펑펑 울었다. 아람의 검은 드레스를 구겨질 정도로 잡았고 옷까지 젖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아람이 위로하며 효정에게 약속했다. 가끔 와서 효정을 보고 유희에게 이씨 가문만 챙기지 말고 효정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고 당부했다. 자유의 기쁨을 잃고 사육된 동물처럼 되지 않게 하라고 했다.유희는 또다시 맹세를 했다. 눈물을 흘리는 효정을 안고 문 앞에 서서 떠난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는 한참 달렸다. 아람은 결국 참지 못하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어두운 밤에 떨어지는 별처럼 맑은 눈물을 흘렸다.“아람아, 울지 마.”경주는 마음이 아파서 호흡이 가빴다. 튼튼한 팔로 아람을 품에 안아주며 다정하게 위로했다. 턱으로 아람의 머리카락을 문질렀다.“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니잖아. 효정이가 보고 싶으면 한동안 데려와서 같이 살아도 돼. 아니면 내가 더 큰 별장을 사서 아예 같이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정연은 이제 사장님 비서가 될 거야. 그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효정을 아줌마에게 맡기는 게 제일 좋아.”“흥, 네가 정말 이유희의 절친이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아람은 코를 빨아들이며 손끝으로 경주의 가슴을 찌르며 원망했다.“아직 편하고 행복하게 지내본 적이 없는 커플을 헤어지게 할 거야? 날 기쁘게 하려고? 신경주, 넌 정말 양심이 없어. 효정이 아무 말을 안 해도 유희가 매일 널 저주할 거야.”경주는 갑자기 멍해졌다. 그러고 얇은 입술로 아람의 촉촉한 입술에 키스했다. 키스를 하고 경주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어. 효정이도 너랑 헤어지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좋은 일인 줄 알았어.”“저 커플을 방해하지 말라고 네가 그랬잖아.”아람은 키스를 받고 호흡이 흐트러져 눈이 촉촉해지며 설렜다.“그래서 너도 가서 귀찮게 하지 마.”경주는 아람의 예쁜 두 눈을 바라보며
“아람아, 무슨 생각이 들었어?”경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희와 정연도 긴장을 하며 하얀 아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한 비서의 분석이 맞아. 윤유성의 사악한 성격으로 라이언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죽일 수 있어.”“그리고, 오랫동안 계략을 꾸미고 있었을 거야. 다만 중요한 도구가 이제 도착했을 뿐이야!”유희와 다른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을 때 경주만 바로 깨닫고 반응했다.“그 도구가 헬기라고 생각해?”아람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초조하게 말했다.“지상에서는 윤유성이 행동하기 어렵지만, 하늘에서 편하잖아. 그리고 비행기가 출국하면 우리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막을 수 없어. 그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정말 음흉하고 고압적인 행동이다. “형수, 정말 똑똑하네. 넌 정말 신이야!”유희는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박수를 치며 공손하게 절을 할 뻔했다.“아부는 그만하고 빨리 대책을 생각해.”아람의 가슴은 돌에 눌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한무야. 지금부터 인력을 추가 배치해. 윤유성의 헬기 행방을 면밀히 감시해. 어떤 행동이 있더라고 제때 차단해야 해.”경주는 카리스마를 뽐내며 안색이 차가워졌다.“네, 신 사장님.”예전의 경주는 비즈니스의 거물이고 고귀한 왕이었다. 하지만 아람 앞에서 보좌하든, 아람을 위해 전장에 돌격하는 장군이든 상관없었다. 무엇이든 아람을 위해 기꺼이 할 수 있었다.“만약 막지 못하고 헬기가 뜨면 어떡해? 폭탄으로 라이언을 구해야 하나?”유희는 진지하게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던졌다.“라이언은 양국의 공개 수배 범죄자야. 때가 되면 백진 오빠와 도현 오빠에게 알려서 군과 경찰이 힘을 합치도록 할게.”아람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침착하게 말했다.“하늘로 날아가더라도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거야.”세 남자의 얼굴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윤민주가 감옥에 가고, 윤진수가 체포되었다. 경주의 말대로 윤성우의 처지는 점점 난감했고 살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유성이 S 국에서의 노력
아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경주는 아람의 침울한 표정을 보고 손을 잡아주며 쓰다듬었다.“아람아, 알아. 네가 효정을 많이 이뻐하는 거. 봐봐, 지금 효정에게 유희가 있어. 유희가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고, 챙겨주고 있어. 유희는 능력도 좋고 집안도 좋아. 효정을 지켜주기에는 충분해.”“응, 알아. 사실 너무 고마워.”아람은 유희가 효정을 받아줘서 고마운 것이 아니다. 고마운 건 유희가 초월적인 안목이 있고,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효정을 인정해 주고, 기꺼이 인내심을 가지고 곁에 있어 준다는 것이다. 잠시 후 유희가 돌아왔다. 다크서클이 더 짙어진 것 같았다.“유희야, 고생했어.”경주는 한숨을 내쉬었다.“내 와이프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고생은 무슨.”유희는 정연을 원망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어디까지 얘기했지? 참, 방금 생각해 봤는데 라이언은 수배 중인 범죄자야. 국내에서 권력이 없는데,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매수할 수 있어? 윤유성의 짓인가? 몰래 라이언을 지켜주고 있어?”아람과 경주도 같은 생각이었다. 결국 라이언은 왕준의 상사였고, 남도 습격 사건에 참여했다. 라이언은 유성에게 치명타를 입힌 중요한 증인이기도 하다. 유성은 이런 약점을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발등을 찍는 짓이다.“라이언이 나타난 건 아직 살아있다는 거고 아직 성주에 있다는 거야. 성주에 있으면 절대 도망칠 수 없어. 그저 시간문제야.”경주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원망에 목이 쉬었다.“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어. 윤유성과 라이언과 같은 짐승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더 이상 희생하기 싫어. 너무 가치가 없어.”유희의 가슴이 아파 났다. 경주는 겉으로 차갑고 무심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다.“저기, 궁금한 게 있어요.”한무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뭔데?”세 사람이 일제히 물었다.“윤유성이 왜 라이언을 보호하려고 애쓰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지금 S 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구역에
정연도 화가 나서 뺨이 불타는 듯 붉어졌다.“원래는 우리 사람들이 우세했지만, 라이언 쪽에 지원이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모두 능력이 뛰어나고 무기를 들고 있었어요.”“완전히 우리를 다 죽이겠다는 기세였어요.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에요.”유희는 화가 풀리지 않아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뼈마디에서 소리가 났다. 라이언을 잡지 못하고 부하들은 거의 전멸한 상태였다. 승부욕이 넘치는 유희 앞에서 이미 선을 넘을 행동이었다.“음, 유희 오빠, 왜. 누가 오빠를 화나게 했어?”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따라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효정이 주름진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아람이 선물 준 곰인형을 품에 안은 채 졸린 눈을 비비며 서 있었다. 말할 때 한쪽 어깨끈이 흘러내렸다.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끈했다. 하마터면 속살을 드러낼 뻔했다.뿐만 아니라 효정의 목과 쇄골에 붉은 자국이 있었다. 유희가 남긴 키스 마크였다. 어젯밤의 광기 어린 집착이 분명했다. 한무는 놀라서 바로 눈을 감았다. 경주도 어색하여 땀을 흘리며 시선을 거두고 아람을 바라보았다.‘아아아!’유희는 화가 나며 마음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순간 효정의 앞으로 달려가 부드러운 몸을 덥석 안고 감쌌다. 효정은 고개를 유희의 품에 묻히며 그렁그렁한 눈만 보였다. 그러고 나른한 목소리로 유희를 위로했다.“유희 오빠, 화내지 마. 화내면 무서워.”“화내지 않았어. 기분이 엄청 좋아. 가자, 방에 가자.”유희는 마음이 급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효정을 안고 성큼성큼 위로 올라가며 귀에 속삭였다.“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지 마. 나한테만 보여줘!”거실은 어색하게 침묵했다. 한무는 어안이 벙벙하며 급히 해명했다.“저, 저 아무것도 못 봤어요. 신 사장님, 제 편을 들어줘야 해요!”정연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 급히 유희에게 상황 보고를 하느라 효정을 챙기지 못해 이런 어색한 일이 일어났다.“연아, 걱정하지 마.”아람은 다정하게 위로해 주었다.“네가 오랫동
한무는 숨을 들이마셨다.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지만 이미 배부른 느낌이 들었다.“아니에요. 아니에요. 헬기가 좋지만 제가 살아서 타도 죽어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네요.”“됐어, 경주야. 한 비서가 얼마나 충성하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잖아. 헬기 한 대로 이렇게 화를 내?”아람은 긴 손끝으로 경주의 턱을 치켜올리며 여왕처럼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올해 생일 선물로 헬기를 사줄게. 윤유성보다 더 좋은 거 사줄게. 좋아?”‘젠장, 너무 부럽네! 역시 해문 갑부의 딸이야. 헬기를 생일 선물로 해?’경주는 눈을 깜빡이며 아람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아람아, 난 네 남자야. 하지만 난 너에게 빌붙어 사는 남자가 아니야. 선물을 해도 내가 너한테 해야지.”“풋,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우리 사이에 무슨. 그저 돈 몇 푼인데.”아람의 카리스마 넘치는 말은 유희와 한무를 부럽게 했다. 그들도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남자는 아니지만, 남자라면 리무진, 탱크, 헬기를 갖고 싶어할 것이다.경주는 담담하게 고개를 흔들며 가슴이 찡해났다.“아람아, 나한테 선물할 필요 없어. 네가 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네가 예전에 나한테 준 선물들은 지금 별도의 방에 전시되어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 매번 집에 갈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서 여러 번 보고 만졌어.”그때 아람을 잃은 경주는 마치 페티시스트와도 같았다. 경주는 종종 그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거나 그 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경주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사랑에 빠진 미치광이 같았다.마음속은 이미 통제 불능이고 미쳐버렸다. 아람은 경주를 깊이 바라보았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경주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게다가 내가 무슨 선물이 필요하겠어. 넌 하늘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야.”경주는 이 로맨틱한 말을 다시 반복했지만, 말할 때마다 처음처럼 다정했다.“바보.”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키스로 천 마디 말을 대신
“연적?”아람은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블루베리를 집어 경주의 입에 넣어주었다.“이유희에게 연적도 있어? 신선하네.”경주도 피식 웃었다.“네가 우리 동생을 감금하듯 지켜주는데. 매일 너랑 네 비서 말고는 누구를 만나?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못 하는데 무슨 연적이야. 꿈꿨어?”“그렇다고!”유희는 초조하여 목소리까지 갈라지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어젯밤 자기 품에서 도현 오빠라고 부르는 효정이 떠올랐다. ‘꿈에서 다른 남자 이름을 불렀어!’유희의 가슴은 아파 나며 산산조각이 된 것 같았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우리 도현 오빠야?”아람은 차갑게 유희를 바라보았다. 경주는 멍해졌다. 도현이랑 어떻게 엮인 건지 전혀 상상이 안 된다. 유희는 눈을 부릅뜨며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아람을 바라보았다.“아람아, 네가 어떻게 알아? 너 신이야?”“신은 무슨!”아람은 어이없었다.“넌 참, 속마음이 얼굴에 쓰여있어. 어젯밤 너와 우리 오빠가 얘기하는 것을 봤어. 네 눈빛이 막 이글거렸어.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 사장님. 넌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우리 구씨 가문 남자는 모두 상남자야. 절대 남친 있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효정이 남자랑 얘기를 했다고 다 연적이라고 생각하지 마.”“도현 도련님은 그럴 분이 아니야. 유희야. 누구를 의심해도 아람이 가족은 의심하지 말아야 해.”경주는 아람의 허리를 안고 유희를 비웃었다. 유희도 한숨을 쉬고 계속 얘기하기 곤란했다. 너무 유치해 보였다.“아. 그래서 효정과 서둘러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했어? 위기감이 들었던 거네.”아람은 유희의 속마음을 모두 꿰뚫어 보았다.“야, 그런 사소한 거로 침착하지 못해? 왜 이렇게 유치해!”유희는 부끄러워 입을 오물거렸다.“혼인신고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경주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정색했다.“지금은 네 집안일을 먼저 해결해야 해. 네가 이씨 그룹에서 안정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거야.”유희는 여전히 불안했다. ‘나 이유희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