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관을 불러서 내 몸도 한 번 검사해 봐야겠어.”만약 나민우에게 신장을 기증할 조건이 된다면 고민 없이 기증할 것이다. 그럼 여이현이 온지유 대신 나민우한테 보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재민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여이현을 쳐다보면서 물었다.“대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대장님도...”“괜찮으니까 군의관 불러.”여이현이 집요하게 밀어붙이자 성재민이 군의관을 불러왔다. 이곳은 정밀 검사를 할 수 있는 기계가 없었기에 병원으로 가야 했다. 군의관이 여이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대장님, 이런 말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만약 지금 신장을 기증하신다면 다른 동맹군을 포함한 Y 국 주변의 나라에서 먼저 공격할 것입니다. 그럼 공격에 대응할지 말아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만약 반격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놀림당할 것이고 반격한다면 큰 전쟁으로 번져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이현이 몇 분 동안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비밀리에 진행하면 돼.”군의관이 엄숙하게 말했다.“그렇게 안 된다는 걸 대장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곳에 보는 눈이 많습니다. 국가에서 새 대장을 임명하기 전 즉 대장님이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이 일은 절대 진행할 수 없습니다.”군의관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침대에 누워있던 나민우가 격렬하게 기침했다. 여이현의 눈빛에 압도된 군의관이 입을 꾹 다물었다. 여이현이 나민우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나민우 씨, 정신이 들어요?”“지금 저한테 하는 말인가요?”나민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여이현을 경계했다. 여이현은 나민우도 홍혜주만큼 상처가 많아서 충격받았는데 나민우마저 기억을 잃었다. 여이현이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당신이 나민우예요.”나민우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당신은 저의 친구인가요?”“네...”예전에 여이현은 온지유를 감싸고 도느라 나민우를 업신여겼다. 하지만 온지유와 여이현 사이에 아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민우는 온지유를
여이현은 멈칫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온지유는 제 아내예요.”자신의 여자라고 선포하는 게 아니라 나민우를 속이기 싫었던 것이다. 나민우는 기억을 잃었지만 여전히 온지유를 기억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 여이현은 죽을 것이고 나민우와 온지유가 행복하게 잘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온지유를 사랑하는 여이현은 이대로 나민우에게 온지유를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나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빠르게 스쳐 가는 기억의 조각을 붙잡고 싶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지유에 관한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고 눈앞에 서 있는 여이현에 대해서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여이현의 말을 들은 나민우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유부녀를 사랑하게 된 나민우에게 여이현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지유를 만나기 전부터 두 사람은 아는 사이였거든요. 나민우 씨가 지유 이웃 오빠였어요.”예전에 나민우가 온지유와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비밀리에 조사한 적이 있었다. 여이현은 나민우가 바로 석이인 줄 알았다.“그럼 온지유는요?”나민우는 지난 기억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민우가 기억을 잃은 것도 운명일 것이다. 나민우는 지금 누워있는 곳을 두리번거리면서 왜 갑자기 온지유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는지 궁금했다. 이때 여이현이 입을 열었다.“나민우 씨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지유는 아직도 그곳에 있어요. 잘 치료받고 있으면 제가 지유를 데리고 올 거예요. 두 사람이 만나는 날까지 치료 잘 받고 있어요.”그때가 되면 여이현은 앞날을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나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민우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한편, 인명진은 다급히 Y 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법로의 부대에 둘러싸였고 꼼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노석명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노석명은 피식 웃더니 차갑게 말했다.“인명진
온지유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기회를 준 거라고요?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예요.”온지유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신무열은 미소를 짓더니 의자를 끌어와서 온지유 앞에 앉았다.“온지유 씨가 나한테 나민우, 홍혜주 그리고 여이현을 찾는다고 한 거 기억 안 나요? 얼마나 지났다고 여이현을 포기하는 거예요?”신무열은 대놓고 온지유를 조롱하고 있었다.“내가 여이현을 포기하든 말든 신무열 씨랑 아무 상관 없어요. 신무열 씨가 물어보는 말에 난 대답했고 알고 싶은 건 다 알아내지 않았나요? 예전에 날 보내주겠다고 한 약속 꼭 지켜요.”온지유는 입술을 깨문 채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신무열은 온지유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하지만 오래전 기억이라 온지유가 어머니와 닮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고 아버지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의 혈액으로 검증도 했지만 온지유는 신무열의 혈육이 아니었다. 의문이 깊어지는 와중에 온지유는 인명진에게서 이 푸른 구슬을 받았다고 했다. 예전에 율이 이곳에 있었을 때, 인명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신무열은 인명진이 왜 푸른 구슬을 온지유에게 주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검증 결과가 가짜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신무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요한, 이리 와봐.”요한은 신무열의 부름을 받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요한은 신무열의 눈빛만 보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온지유가 방심한 틈을 타서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미 들켰다.온지유는 굳은 표정을 하고서 물었다.“설마 피를 뽑아서 검증하려는 건가요?”온지유는 신무열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미 한 번 피를 뽑았기에 더 이상 검증에 협조하고 싶지 않았다.“다시 해봐도 소용없어요. 운명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에요.”온지유가 의식이 또렷했
신무열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온지유는 신무열이 일부러 떠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신무열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 온지유는 무표정으로 신무열을 쳐다보았다.“온지유 씨는 정말 똑똑해요. 눈치가 빠른 건 인정하지만 너무 겁먹지 마요. 나는 그저 온지유 씨가 율인지 궁금할 뿐이거든요.”신무열은 진지하게 말했다. 이미 들킨 마당에 굳이 숨기면서 떠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무열은 그저 온지유가 율인지 알고 싶었고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신무열의 말에 온지유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지유도 자신이 율인지 의심했지만 증거가 없었고 그렇지 않길 바라면서 외면해 왔다. 확실한 검증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신무열을 이해할 수 없었다.온지유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이 푸른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 다 여동생인 줄 알겠네요? 이 구슬은 인명진이 갖고 있었던 건데, 그럼 인명진이 신무열 씨 여동생이란 거네요. 그래도 궁금하다면 율한테 직접 물어보세요.”온지유가 신무열을 비웃었지만 돌아오는 건 솔직한 대답이었다.“난 그 여자가 싫어요.”율이 실종된 뒤로 오랫동안 찾을 수 없었지만 노석명이 율을 찾았다면서 데리고 왔다. 그러나 신무열은 율을 만나고 나서도 기쁘지 않았다. 예전에 알던 율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신무열은 지금 율이라고 자칭하는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율일 것이라고 여겼다.노석명은 신무열 아버지의 충신이었고 율을 찾음으로써 공을 세웠다. 율은 노석명에게 고마워하면서 자주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신무열이 조사해 보니 노석명의 욕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노석명이 흉터남에게 지시해서 온지유와 여이현에게 독을 넣었다. ‘그리고 노승아 그 여자도...’온지유는 신무열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사실대로 알려줄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온지유는 입술을 깨물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나를 이 일에 휘말리게 하지 말아주세요. 신무
신무열은 직감을 믿었지만 온지유는 그마저도 소름이 돋았다. 이제야 갑갑한 마음을 내려놓고 법로와 연관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신무열은 이미 온지유를 여동생이라고 확신했다. 온지유는 이 검증을 거절해야만 했다.“싫어요!”온지유가 발버둥 쳤지만 요한의 상대가 아니었다. 요한은 한 손으로 온지유를 제압한 채 다른 한 손으로 온지유의 목에 주삿바늘을 꽂고 피를 뽑아냈다. 온지유는 신무열을 노려보더니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말했다.“법로의 아들다운 행동이네요!”신무열은 법로처럼 잔인했고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강요했다. 신무열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온지유 씨가 처음부터 협조했다면 이렇게 난폭하게 굴지 않았을 거예요. 그전의 검증 결과와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곧 우리에게 내린 축복일 거라고요.”신무열은 자리에서 일어나 요한한테 눈짓했고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증 결과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 번 나눠서 검증할 것이다. 동시에 신무열과 율의 혈액 검사도 진행되었다. 요한과 신무열은 자리를 떠났다.방 안에 남은 온지유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이곳에서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이때 신무열의 허락을 받은 율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율은 온지유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이곳에 와서도 사지가 멀쩡하다니, 정말 대단해.”온지유는 화가 솟구쳐 올랐지만 면전에 대고 모욕하는 율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내가 다치지 않아서 아쉽나 봐요?”온지유는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율한테 다가갔다. 온지유는 율과 노승아가 몸매는 비슷하지만 목소리나 생김새가 다르다고 여겼다. 그리고 노승아도 연락이 끊긴 지 한참 되었으니 말이다.온지유는 율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이 신무열과 친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아쉽긴 해. 하지만 오빠가 널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 한 번 겨루어 봐야 네 실력을 알면서 친해질 텐데, 그렇지 않아?”율은 조롱하는 듯한 눈빛으로 온지유를 바라보았고 피식 웃었다. 대놓고 온
율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온지유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감상했다. 율이 온지유를 거만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율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율은 순식간에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신무열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온지유 앞을 막아서면서 물었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오빠, 온지유가 날 괴롭혀서 어쩔 수 없었어. 날 무시하는 걸 어떡하냐고!”율은 울먹이면서 말했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신무열은 어이가 없었고 차가운 눈빛으로 율을 노려보면서 물었다.“그래?”“진짜야.”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신무열의 표정을 본 율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온지유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네가 왜 온지유한테 이러는지도 알고 있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까 다음부터 여기에 오지 마.”신무열이 차갑게 내뱉은 말은 비수가 되어 율의 가슴에 꽂혔다. 온지유는 무표정으로 서 있었지만 율은 온지유가 기뻐하는 줄 알았다. 화가 난 율이 신무열한테 따졌다.“오빠, 내가 오빠 여동생인데 왜 외부인을 감싸고 도는 거야?”율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신무열은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그 이유는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당장 나가. 두 번 말하기 싫으니까 알아서 해.”율은 울면서 달려 나갔지만 신무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율이 이곳에 왔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지유를 위해서 율을 내쫓은 건 화를 참았기 때문이다.만약 신무열이 화낸다면 어떤 짓을 벌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신무열은 온지유한테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율이 나가자마자 온지유는 신무열한테서 몇 걸음 떨어졌다. 신무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날 이용하고 나서 버리는 거예요?”신무열은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온지유에게 두려움을 선물했다. 신무열이 온지유에게 잘해주는 것 같겠지만 검증 결과가 그전과 같다면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곳을 나간 여이현이 안전해졌으니 온지유도 움직일 때가 되었다. 죽더라도 시도해 보고
온지유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알고 있어요. 난 신무열 씨를 막을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이제는 신무열 씨 여동생이 날 괴롭히러 오지 않게 해주세요.”“그렇게 할게요.”신무열은 온지유의 부탁을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온지유가 홍혜주와 나민우를 찾았으니 다시 노예 수용소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온지유는 신무열한테 말했다.“이제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죠? 노예 수용소에 가서 사람을 찾으려고요.”신무열이 온지유를 향해 물었다.“블랙 카드 아직 갖고 있죠?”신무열은 온지유에게 준 블랙 카드를 돌려받지 않았기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다. 온지유는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무서우니까 요한이랑 같이 갈래요.”혼자 나갔다가는 율이 미친 듯이 달려들 수도 있었다. 온지유는 살아서 나가기 위해 신무열한테 부탁했고 신무열은 주저 없이 허락했다.“그래요.”온지유는 노예 수용소에 들어가서 그전에 만났던 여자아이를 찾았다. 그러고는 요한에게 물었다.“이 아이를 내가 갇혔던 방으로 데리고 가도 돼요?”요한은 노예 수용소에 오랫동안 갇혀있은 15살짜리 여자아이를 온지유에게 맡긴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신무열이 온지유가 과한 요구를 하지 않는 이상, 모두 온지유 뜻대로 하게 내버려두라고 요한에게 당부했었다. 요한은 손을 내저었고 온지유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그전에 갇혔던 방으로 향했다. 여자아이 몸에 상처가 더 많아졌고 그 방은 여전히 그대로여서 약이 남아있었다.온지유는 여자아이를 침대에 앉힌 뒤, 조심스럽게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여자아이는 온지유를 은인으로 생각했다.“언니는 들어온 지 오래되었는데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고 요한이 보호해 주고 있네요? 이곳에서 지위가 높은 요한도 언니 편이니까 날 밖으로 내보내 줄 수 있는 거죠? 언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여자아이는 이렇게 살아있을 바에는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
온지유는 아이를 불렀다.아이는 걸음을 멈추더니 몇 초간의 침묵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그러자 온지유는 빠르게 다가가 아이의 앞을 가로막았다.“여기서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정말로 다른 생각한 적 없었어?”그녀는 아이의 손목을 힘 있게 잡았다.‘생각?'‘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아이는 노예였다. 법로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무기도 들고 있었다. 설령 다른 생각을 한 적 있다고 해도 아이에겐 힘이 없었다. 더구나 다른 노예들이 아이와 같은 생각을 하리란 보장도 없었다.여하간에 이곳에서 받은 고통은 끝이 없었고 해탈의 지경에 오른 일부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였다.“전 그냥 살고 싶을 뿐이에요. 만약 사는 것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고통 없이 빨리 죽는 게 나아요.”아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아이는 고작 10살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짓고 있는 미소에선 씁쓸함이 느껴졌고 눈빛은 공허했다. 꼭 이미 이 세계에서 80년은 산 사람 같았다.그녀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다.“이러나저러나 죽음이라면 우리 함께 노력해 보자. 죽어도 가치 있게 죽는 게 낫잖아. 나한테 계획이 있어.”아이는 견고한 온지유의 눈빛에 결국 마음을 바꾸었다....율은 화가 난 채 집으로 돌아왔다.그녀의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온지유를 죽이는 것.온지유를 찾아갔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무열도 왔다. 온지유와 다툼을 벌이자 신무열은 상황을 묻지도 않고 바로 온지유의 편을 들어주었다.그녀가 손을 대려고 했다면 신무열은 바로 그녀를 말릴 것이다.율은 노석명을 찾아갔다.그러나 노석명 쪽 부하가 그녀를 입구에서부터 막아섰다.“아가씨, 장로님께서 아무도 만나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율은 당황했다.신무열은 그렇다 쳐도 노석명까지 그녀를 만나려 하지 않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내가 누군지 알면서 지금 날 막는 거야? 장로님은 대체 뭐하기에 날 만나려 하지 않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