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줄 안 온지유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불편하다고요? 어디가 불편한데요?”그녀의 커다란 두 눈이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온지유를 보고 있던 여이현의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 이내 잠겨버린 목소리로 답했다.“몸이 불편해.”온지유는 얼른 확인했다.뜨거운 그의 체온에 거칠어진 호흡 소리를 들은 그녀는 그제야 눈치챘다.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린 그녀는 얼른 그의 몸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좀 참을 수 없어요?”“본능인데 어떻게 참아.”여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진정해 보려고 시도했다.그러자 온지유가 말했다.“이현 씨는 생각이 많아서 그래요. 매일 이런 것만 머릿속에 생각하잖아요!”여이현은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보며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 말했다.“생각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다른 남자였어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오히려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게 더 문제 있는 거지!”“...”직설적인 그의 말에 온지유는 말 문이 막혔다.“얼른 자.”여이현은 손을 들어 다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 들끓어 오르는 욕망을 꾹꾹 억누르면서.“괜찮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온지유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에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그녀도 사실 그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중에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이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여하간에 부부 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그가 그녀에게 손을 댄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존중하고 있었기에 그럴 일은 절대 없었다.다만 여이현이 그녀를 꽉 끌어안은 탓에 그녀는 그의 몸에 생긴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그녀는 함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온지유는 잠들어 버렸다.임산부였기에 자주 졸음이 쏟아지는 건 정상적인 증상이었다.하지만 요즘 자꾸 악몽을 꾼 탓에 푹 자지 못했다.여이현의 품에서 온지유는 아
여이현은 하나씩 배제해 보았다.상대가 총기까지 꺼낸 것을 보아 오히려 그에게 원한이 있는 것 같았다.그들은 처음에 온지유를 목적으로 납치를 했다. 배 속의 아이도 목적이 아니었다.납치범들은 대부분 나약한 아이를 목표로 삼기를 좋아했지만, 장기밀매가 목적일 수도 있다.이번의 노출로 그들은 보수적인 선택을 할 것이고 동일한 인물을 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온지유를 선택할 리가 없었다.그렇다는 건 누군가 사주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대장님, 어제 그 여자가 또 대장님을 찾아왔었습니다.”이때 다른 부하가 말릴 새도 없이 보고했다.한편 노승아는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병실로 나온 여이현을 본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연예인이었던지라 외출할 때 선글라스는 필수였다. 얼굴을 꽁꽁 가린 그녀는 최대한 자신의 모습이 기사에 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붉어진 눈시울로 여이현을 보며 줄 끊어진 진주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아주 가련해 보였다.“이현 오빠, 괜찮은 거야?”노승아는 그가 아주 걱정되었다.“걱정돼 죽는 줄 알았어. 깨어나서 정말로 다행이야. 오빠가 깨어나지 않아서 그동안 잠도 이룰 수 없었어. 이젠 드디어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그녀는 흥분한 얼굴로 깨어난 그를 보며 아주 기뻐했다,그리고 이내 여이현을 이리저리 살폈다.“대체 어디를 다친 거야? 얼른 봐봐.”여이현은 그녀의 손을 탁 잡았다. 아무리 안색이 창백해도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어제 왔었다고?”노승아는 자신을 의심하던 온지유가 떠올랐다. 여이현도 자신을 의심할까 봐 두려워 얼른 변명했다.“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었어. 오빠가 너무 걱정되어서 오빠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다들 못 들어가게 막았거든. 그래서 더 오빠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했나 봐. 난 병원 재방문하다가 우연히 온지유가 여기 있는 걸 본 거야. 사람이 많이 모여 있기에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로 생각해서
어떻게 된 일일까.두 사람이 다시 화해하기라도 한 걸까?두 사람을 어떻게든 갈라놓으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두 사람의 감정을 더 돈독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노승아는 남몰래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었다.‘왜 나는 안 되고 온지유는 되는 건데!'그녀는 여이현과 친분이 있는 사이가 되기 위해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그러니 절대 온지유가 쉽게 여이현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이건 너무 불공평했다.“노승아.”여이현의 매서운 눈빛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내 말, 듣고 있는 거야?”노승아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감정을 갈무리하면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알아. 나도 더는 그런 기사가 나지 않게 조심할 거야. 그리고 난 이미 드라마 몇 편이나 받았어. 이젠 일에 집중할 때가 되었고 이미지 관리해야 한다는 거 알고 있어,”그녀는 이미 한번 망할 뻔했었다.이미지를 다시 바꾸고 싶다면 부단히 작품을 찍으며 연기를 해야 했다. 그녀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준다면 대중들도 언젠가 그녀의 노력을 알아줄 것이었다.지금은 인터넷 시대였다.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든 전부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만들어 홍보했다.여이현은 그녀에게 일 얘기만 했다.“그래.”노승아는 여전히 여이현에게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를 위해 기획사까지 차렸으니 말이다.물론 그는 그저 그때의 일로 은혜를 보답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그녀가 여이현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어떻게든 보답하려고 했다.그러니 그녀는 더는 그의 마음을 이용할 수 없었다.오히려 여이현에게 성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언젠가 연예계 최정상 자리에 앉아 그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다.“너만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노승아는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이따 일정이 있으니까 난 먼저 가볼게.”“그래.”여이현은 차갑게 대답했다.노승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한번 병실에 누워있는 온지유에게로 향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온지유가 평
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이현의 링거도 때마침 뺄 때가 되었기에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그는 이미 병실에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 그것도 영양 가득한 임산부 특식으로 말이다.뚜껑을 연 그는 국물이 담긴 그릇을 그녀의 앞으로 밀었다.온지유는 국물을 마셨다. 그녀가 직접 만든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최근 그녀는 식욕이 샘솟았다.여이현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돼지 간을 한 조각 집어 베어 물던 그녀는 비린 맛이 확 느껴졌다.“윽, 이건 맛이 없네요. 이현 씨가 먹어요.”그녀는 바로 여이현의 그릇에 내려놓고 계속 국물을 마셨다.여이현은 자신의 그릇에 놓인 돼지 간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맛없는 음식을 발견했을 때 제일 먼저 그를 떠올리며 그에게 처리를 맡길 줄이야.그 말인즉 그는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얘기였다.그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그래, 네 입맛에 안 맞는 건 전부 내가 다 먹어줄게.”그는 온지유가 남긴 것만 먹었다.온지유는 딱히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그녀가 배불리 먹은 뒤에야 여이현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여이현은 그녀가 남긴 음식을 전부 먹어치웠다.온지유는 저도 모르게 놀란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왜 내가 남긴 것만 먹었어요.”그러자 여이현이 말했다.“네가 남긴 것이 뭐 어때서? 방금 말했잖아, 네 입맛에 안 맞는 건 전부 내가 먹어치우겠다고.”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 따스해지는 기분을 느꼈다.여이현처럼 귀하게 자란 사람들은 절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녀가 남긴 음식이 아닌가.꼭 그와 다시 잘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조용히 식사하는 그를 보았다. 이상한 기분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달달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물었다.“이현 씨가 싫어하는 음식도 나 대신 다 먹어줄 거예요?”여이현이 말했다.“네가 준 거라면
온지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딸기 케이크가 먹고 싶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여이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난 마음을 읽는 마법을 부릴 수 있거든."온지유는 믿지 않았다.이런 우연이 있을 리가.온지유는 여이현을 빤히 쳐다보다 다시 방 한쪽에 있는 옷장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못미덥다는듯 옷장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그 안에는 과자, 과일, 케이크 등 각종 간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모든 공간이 온통 먹거리로 채워져 있었다.온지유는 여이현을 쳐다보았다.여이현은 약간 어색한 듯 말했다."그게... 전부 내가 먹으려고 준비한 거야."온지유는 웃음을 터뜨렸다.“연기는 거기까지만 하세요. 저 한번 기쁘게 해주려고 정말 애쓰셨네요."여이현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문 앞에 서 있던 용경호를 바라보았다.용경호는 그의 시선을 피해 아무 말 없이 자책하듯 벽을 보고만 있었다.30분 전, 여이현과 용경호는 어떻게 온지유에게 서프라이즈를 줄 수 있을지 의논하고 있었다.그때 용경호가 말했다."옷장 안에 온갖 간식을 가득 채워 두고, 때가 되면 마법처럼 사모님이 좋아하는 것 하나를 꺼내 보세요. 이 수법은 안 먹힐 때가 없었어요. 제가 아는 모든 여자들이 좋아했었던 겁니다."여이현이 반신반의하며 물었다."정말 그렇다고?""당연히 정말이죠. 해봤는데 다들 진짜 좋아했어요. 그걸로 다 제게 푹 빠졌었죠!"용경호는 자신 넘치게 여의현에게 장담했다.그 당당한 태도에 여이현도 용경호의 제안을 따랐다.하지만 정작 계획은 몇 초도 안 돼 들통이 나 버렸다.여이현은 용경호를 보며 속삭였다."다 푹 빠진다고 하지 않았나?"용경호가 당황하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저도 사모님이 눈치가 이리 빠를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조카들에게 써봤을 때는 정말 좋아했었거든요."여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조카들?"용경호는 결국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사실... 제 여자 경험은 그저 제 조카들과의 장난을 말한 거였습니다."여이현의 얼굴이 점점 어
온지유는 용경호의 말에 갸우뚱하며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러세요?"용경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엊저녁 대장님이 제게 벌을 주셨어요. 한밤중까지 훈련을 시키시더니, 아침에는 새벽에 우는 수탉보다 일찍 일어나라 하시는 거 아닙니까."온지유는 그제야 눈치챘다."그랬었구나, 이현씨는 용경호씨가 밤에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던데요?"용경호는 너무 억울하다는 듯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그래요, 대장님이 그러시면 제가 밤에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걸로 해야죠."집 아래에 도착하고 온지유가 말했다."여기서 잠깐 기다려줘요. 금방 다녀올게요.""알겠습니다."용경호는 온지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기해야 했지만,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부대에서 이미 이 아파트의 보안 수준은 확인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했다.온지유는 돌아가던 길에 인명진의 방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인명진이 왜 그토록 자신을 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혹시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그는 지금 집에 있을까?온지유는 잠시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다.그 자리에서 몇 번을 눌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집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려던 순간, 인명진의 문이 열렸다.온지유가 급히 돌아보며 말했다."인..."길고 늘씬한 몸이 힘없이 그녀 쪽으로 기울어졌다.온지유는 놀라서 급히 그를 부축했다.다행히 인명진이 문을 붙잡고 있었기에 모든 무게가 온지유에게 쏠리는 일은 없었다.그 덕에 온지유는 비교적 쉽게 쓰러진 인명진을 부축할 수 있었다."인명진 씨? 무슨 일이에요?"인명진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율아..."그 이름을 들은 온지유는 부정하지 않고 먼저 인명진을 집 안으로 밀어 들어섰다.집에 들어온 온지유는 강한 피비린내를 맡았다.쓰레기통 안에는 피로 얼룩진 붕대들이 가득했다.온지유는 인명진을 소파에 눕혔다. 그의 복부는 이미 선명한 피로 물들어 있었다.온지유는 순
"그럴 리가요?"온지유는 이런 인명진을 본 적이 없었다.왜 그가 자신이 싫어질까 봐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인명진은 그런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 같았다.하지만 지금은 인명진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온지유는 부드럽게 말했다."일단은 제 말을 따라줘요. 먼저 상처를 치료해 줄게요."인명진은 여전히 망설였다.하지만 온지유는 그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의연히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온지유는 그의 옷을 풀고 그의 상처들을 바라보았다.하얀 피부에 깊게 새겨진 상처들에 온지유의 마음도 덩달아 쓰려왔다.그의 테이블 위에는 약이 놓여 있었다.온지유는 약을 가져와 조심스럽게 그의 상처에 발랐다.그리고 물었다."어제 나를 보러 왔었나요?"인명진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온지유는 그의 상처를 치료하며 지난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다시 묻기 시작했다."어제 나를 보러 왔었죠. 나를 보러 왔지만 마주치지는 않았어요. 그때는 상처가 없었을 텐데, 그 후에 다친 거네요. 내가 납치된 이후예요. 그 빨간 머리 여자, 홍혜주 씨 맞죠? 당신과 아는 사이였어요. 나를 납치한 사람이죠. 당신과 그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 상처들도 그 사람들 때문인가요?"온지유의 추측일 뿐이었다.하지만 그 추측은 거의 다 맞았다.인명진은 상황을 숨기고 싶었지만 동시에 온지유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기도 했다.그는 조용히 말했다."맞아요, 홍혜주.""그럼..."온지유가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그럼 그날 택시를 운전했던 사람도 홍혜주였나요?""그래요."인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내가 지유 씨를 구할 수 있었던 거예요."온지유는 인명진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혹시 우리... 작은 방에서 만난 적 있나요?"이 말에 인명진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그녀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다.그러나 온지유의 눈빛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온지유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온지유는 그에 깜짝 놀랐다."지금 뭐 하려는 거예요?”온지유는 인명진의 가슴을 밀어내며 물었다.인명진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차갑게 말했다."낯선 남자의 방에 이렇게 무턱대고 들어오다니, 위험할 거란 생각은 안 했나 봐요?"온지유는 대답했다."알고 지낸 지 꽤 됐잖아요.""내 정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데?"온지유는 입술을 꾹 다물고, 한치의 두려움 없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당신이 제게 감히 뭘 할 수 있는데요?""당신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쳐도, 나한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요?"온지유는 인명진의 위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러자 되려 인명진의 시선이 복잡해졌다.온지유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반대로 한 발짝 물러섰다.온지유는 그가 단지 말로만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인명진이 정말로 해칠 마음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녀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인명진은 결국 소파에서 일어나며, 자기가 졌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지유 씨 말이 맞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당신을 해칠 수 없어요."온지유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그날 홍혜주도 나를 해치지 않았어요."인명진이 말했다."그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아요.""저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온지유가 계속해서 말했다."기억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저도 알아요. 저랑 인명진 씨, 그리고 홍혜주 씨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걸요. 우리가 어떤 곳에 있었든 간에, 난 나왔잖아요. 두 분은 나올 수 없는 거예요?"온지유는 인명진과 홍혜주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그들도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인명진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유 씨와 저희는 달라요.""왜 다르죠?"인명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그만하고 이젠 돌아가세요."인명진은 온지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려는 듯했다.온지유를 더 이상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다.온지유는 인명진의 상처를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보며 물었다."전에 손에 끼고 있
“아니에요. 저는 그냥... 그냥 적응이 안 된 것뿐이에요.”여희영은 어디에라도 숨고 싶었다. 광고부 직원인 그녀는 이태훈과 나눌 만한 얘기가 없었고 여이현이 왜 자신한테 이 일을 시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후 그룹과 어떤 광고 협력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 여이현이 회사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희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여희영 씨, 아니... 여 본부장님, 차 한잔하실래요?”이태훈은 여희영이 여이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이태훈이 무엇을 원하는지 여이현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도 자신의 의도를 숨길 필요 없었다.차 한 잔 마시자 이태훈은 술을 마신 듯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는 여이현이 이런 방법을 쓸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이태훈 씨, 무슨 프로젝트를 논의하시려고 오신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여희영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만약 자신이 맡은 업무가 아니면 핑계를 대고 거절할 생각이었다.이태훈은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셨지만 어지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나서 실눈을 뜬 채로 몇 걸음 걸어가 여희영 앞에 섰다.“여희영 씨,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제가 여진 그룹을 너무 높게 평가한 건가요?”“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여희영은 이태훈의 경멸스러운 말투를 듣고 그를 밀쳐내며 한쪽으로 물러섰다.“이태훈 씨, 계속 사적인 얘기를 하실 거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차에 약을 탄다는 건 저한테 뭐라도 해보겠다는 거 아닌가요?”이태훈은 비웃으며 두 걸음 다가가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그런데 만약 저랑 희영 씨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 저야 너무 좋죠. 하지만 그 대신 앞으로 희영 씨와 여진 그룹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 같네요.”그 말을 들은 여희영은
집에 돌아온 뒤, 온지유는 여이현과 간단히 통화하고 변호사를 시켜 박민정에게 연락을 보냈다.이 일은 이렇게 그녀의 손에서 완벽하게 끝을 맺었다.일을 끝낸 뒤에 온지유는 아이 방을 찾아가 애가 한창 꿈나라 여행 중인 걸 확인한 뒤 내려와서 저녁준비를 했다.방문이 닫히자마자 자고있던 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속삭였다.“외할아버지, 아까 말한 거 할아버지는 다 들으셨어요?”“그럼, 다 들었지. 누가 너희를 괴롭힌다며?”“그래요,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꼭 우리를 도와주셔야 해요. 누구도 우리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요, 우리 엄마가 괴롭힘당하면 외할아버지가 괴롭힘 당하는 거랑 같아요.”법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별이가 말을 이었다.“외할아버지 돈 많아요? 엄청 엄청 아주 많이 있어요? 저 먼저 빌려줄 수 없어요?”“이 할아버지는 돈 좀 있으니 별이는 걱정하지 마. 돈 문제든 아니든 이 할아버지가 꼭 너를 도와주마. 넌 기다리고 있거라, 다 이 할아버지가 알아서 할 터이니”법로는 즉시 사람을 경성으로 보냈다.별이의 말이 맞았다. 온지유를 건드리는 건 그를 건드리는 거와 다름없었다.전화를 끊고 법로는 온지유에게 전화하려 했으나 별이의 당부가 생각나 결국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다.그는 홀연 일어나 결국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경성으로 가는 사람에게 시켜 어둠 속에서 일을 해결하기로 결저했다.한편 여진그룹 쪽, 여이현은 금방 장 사장을 접대해 보낸 뒤 건물 최고층에서 그가 떠나는걸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비서에게 지시했다.“이태훈에게 연락해. 장 사장이 우리를 찾아 협조하겠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줘.”네 하고 나간 비서가 몇 분 후 돌아와 보고했다.“대표님, 이태훈 씨 지금 오고 있답니다. 그리고 여희영 씨께서 회사에 계시는지 궁금해하십니다.”“알려줘, 고모님께서 지금 회사에 있다고. 그리고 고모님께 연락 넣어서 지금 당장 회사로 오라고 해. 내가 급한 일로 부른다고 하면 될 거야.”일을 간단히 처리한 후, 여이현
장 사장은 온지유의 눈길에 잔뜩 겁을 먹었다. 오랫동안의 판매 경험 덕분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겁을 먹고 줄행랑을 놓았을 것이 분명하다.한참 넋 놓고 있던 장 사장은 웃는 얼굴로 여이현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대표님, 정말 부탁합니다. 저도 방법이 없어서 그래요.”“예전에 이씨 그룹과 일을 함께하지 않으셨나요? 왜 지금은 하지 않으시죠?”여이현은 돌려 물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대답을 기다렸다.장 사장은 안색이 많이 굳어지더니 오랜 고민 끝에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입을 열었다.정상적인 관계라면 이리도 입을 열기 힘들 리가 없었기에 여이현은 무언가 눈치를 채고 눈빛으로 온지유에게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이때 온지유의 핸드폰이 울렸다. 별이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실례합니다. 밖에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온지유는 회의실을 떠나서 전화를 받고 물었다.“선생님, 저는 별이 엄만데요. 무슨 일이죠?”“별이 어머니, 학교에 한 번 와보셔야 될 거 같아요. 별이가 같은 반 친구와 싸워서 애가 다쳤어요. 지금 애 부모님께서 꼭 별이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하세요.”‘별이가 어떻게 애들이랑 싸울 수 있을까? 개학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아직 서먹서먹할 텐데 무슨 일로 싸웠지? ”온지유가 급히 학교에 도착하자 사무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과 필요 없어요! 배상해요. 배상!”들어 본 적 없는 낯선 목소리라 누군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온지유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만약 저희 별이 잘못이라면 얼마든지 배상해드릴게요. 하지만 별이 잘못이 없다면 저희는 배상할 생각 없어요.” “그쪽이 누군데요?”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은 기세등등하여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있었다.이 틈을 타 온지유는 그 여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붉은색 원피스에 흰 진주 목걸이, 펜던트 귀걸이 그리고 다이아몬드반지 부잣집 집안임이 분명했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온지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대방의
여희영은 원망의 눈길로 여이현을 바라보았다.온지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희영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줬다.“죄송해요. 이현 씨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어젯밤에 잘 못 잤죠? 돌아가서 푹 휴식하세요. 제가 점심을 맛있게 차려드릴게요.”“그래도 네가 젤 좋아.”여희영은 온지유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들뜬 마음으로 올라갔다.온지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는 여이현이 꼭 무슨 꿍꿍이가 있는 상인 같아 보였다.그녀는 여이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껴안고 온몸을 기댔다.“대표님,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사랑하는 이가 품속에 있는데 남자로서 참을 수 없었던 여이현은 그녀를 꼭 껴안고 진한 키스를 했다.“말해, 도대체 무슨 일인데?” 키스할 때마다 산소 부족이 오는 온지유는 성난 말투로 물었다.여이현이 그녀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어제 고모를 구해준 사람은 이태훈이야.”이태훈? 온지유는 한참을 생각해서야 이태훈이 이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것이 생각났다.‘갠 좀 곤란한 성격인데. 이게 좋은 일이랑 뭔 상관이지?’온지유는 여이현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고모님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네요? 근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죠?”최승현 하나로도 벅찬데 이씨가문까지 더해진다면 여이현과 온지유가 나선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이씨 가문 지금의 지위로 그런 더러운 수단을 써서 돈을 끌어모을 리는 없었기 때문에 여이현은 이태훈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가령 진짜 음모가 있다면 여진그룹을 해치워버리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여이현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닐 거야. 그냥 우연이야. 두 사람의 인연이라고 해야 적합하나?”“인연인지 아닌지 좀 있다가 알게 될 거잖아. 얼른 옷이나 바꿔. 오늘 만날분은 예전에 이씨 가문과 일을 같이 해봤던 분이야. 그분에게서 정보를 깨여낼 수도 있겠다.”여이현은 그 말을 듣고서야 이번 미팅이 생각나 고개를 끄덕이며 온지유에게 칭찬의 키스를 했다
이태훈은 집사로부터 아침밥을 받아쥐더니 하나하나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집사는 이태훈의 이런 세심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도련님, 제가 할게요.”집사는 여희영이 진짜 이태훈의 여자친군지 아니면 그냥 소개팅을 피하려고 찾아온 가짜인지 떠보기 시작했다.이태훈은 그런 집사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한껏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왜요? 제가 제 여자친구를 돌봐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에요? 제가 몇 년 동안 집을 떠나있으니 규칙을 다 잊으셨나 보네요.”“아닙니다. 전 다만 도련님을 위해서 일을 해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도련님이 혼자 하실 수 있다니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이태훈은 집사를 향해 손짓하고 침대 옆에 앉아 여희영에게 죽을 먹여줬다.“조심해요. 죽이 뜨거워요. 이 죽은 몸이 좋은 죽이에요. 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제가 다 가져다드릴게요.”“알겠어요. 그럼 약속한 거예요. 두말하기 없기인 거 아시죠?”‘어차피 연기하는데 더 실감이 나게 하면 좋지.’여희영은 애교 넘치는 눈빛으로 이태훈을 바라보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집사는 이씨 가문 전체에 이 사실을 알렸다.집사가 떠난 한참 뒤에도 이태훈은 여전히 여희영에게 아침을 먹여주고 있었다. 여희영은 그의 손길을 뒤로 피했다.그녀의 거부에 이태훈은 동작을 멈추고 웃음기 찬 얼굴로 아침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그럼 혼자 드세요. 아 맞다. 제 이름은 이태훈이고 경성 이씨 가문 넷째예요.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신분은 어르신들이 주신 거니 자랑할 바는 아니죠.”“그러면 뭐가 자랑거리라고 생각해요?”여희영은 당연히 이씨 가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씨 가문은 후배들에게 아주 엄격하다고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만나볼 기회는 없었다.이태훈이 처음 만나는 이씨 가문 사람이라 그녀는 호기심이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해낸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자랑거리죠. 진정한 사나이가 되려면 가문의 힘을 빌면 안 되죠.”말을 하던 이태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근데 이씨 가문 도련님이 경성으로 돌아왔을 줄이야.”남자가 돌아설 때 여이현은 그가 이씨 가문 도련님 이태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태훈은 자유롭기를 좋아하고 규정에 구속되지 않으며 어렸을 때부터 세계 일주를 다닌 유명한 사람이었다.벌써 이렇게 컸을 줄이야.이씨 가문은 후배들의 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가문이라 유용한 인재가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품은 꼭 합격 되어야 했다.여이현은 그런 이태훈이 여희영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고 설마 진짜 일이 벌어졌다면 이씨 가문 이태훈과 여희영이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일 것이다. 그는 여씨 가문과 연을 이을 생각을 하며 가볍게 웃었다.“하지만 대표님, 저놈들이 술잔에 탄 약이 효과가 강하다고 소문난 약이에요. 정말 괜찮을까요?”부하의 말에 여이현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정말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될 게 아닌가 생각했다.병원 안, 이태훈이 응급실 문어구에서 기다리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전화 너머에서 무슨 얘길 했는지 이태훈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그 말인즉 할머니께서 꼭 저에게 소개팅을 시켜주시겠다 하셨다고요? 하지만 전 다른 사람에게 정해지는 운명이 싫어요. 좀 도와주세요. 이번 일만 해결해 준다면 제가 호텔 본부장 자리를 내줄게요. 금방 개업한 그 호텔 있잖아요. 매출이 아주 좋대요.”상대방이 뭐라 했는지 이태훈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저에게 방법이 있었으면 지금 이러고 있겠어요?”이때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 선생님들이 밖으로 나왔다. 이태훈은 전화를 끊고 급히 다가가서 물었다.“의사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약 때문인 거 같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악효과가 좀 강해서 이미 주사를 놓았으니 좀 기다려 보시면 될 거에요. 내일 아침까지 이상이 없으시다면 퇴원해도 좋습니다. 여전히 불편하시다면 약을 더 주사해야 합니다.”이태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의사 선생님이 떠난 뒤 병실로 들어갔다.
술을 마신 여희영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주량으로 이 정도 술을 마시고 취할 리가 없을 텐데 술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 눈앞이 희미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최승현이 술잔에 약을 탓 것이 틀림없다.여희영은 아무 생각 없이 이현에게 물었다.“이현 씨, 오늘 차 갖고 오셨나요? 제가 갑자기 몸이 좀 불편해서 절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이현은 최승현과 아이컨택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당연하죠. 전 술을 마시지 않았잖아요.”그리고 여희영을 부축하여 연회장을 떠났다. 그는 여희영이 경계심을 늦춘 틈을 타서 최승현에게 은밀히 눈치를 줬다. 눈치를 받은 최승현은 다른 출구로 떠나 미리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여희영은 이현 자동차 조수석이 앉아있는 최승현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최승현 씨가 왜 이곳에 있죠?”“아, 최승현 씨는 제 친구예요. 저와 함께 왔으니 같이 떠나는 거예요. 여희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먼저 여희영 씨를 데려다주고 최승현 씨를 데려다줄 거에요.”남자의 말에 여희영은 무언가 깨달은 듯 남자가 부축하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두 사람은 공범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같은 차를 타고 가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여희영은 신속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을 찾아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최승현이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 낮은 목소리로 이현에게 말했다.“얼른 안으로 끌어오지 않고 뭐해?”그 말을 들은 이현이 여희영을 잡으러 다가오자 여희영은 큰소리로 외치며 도움을 청했다.“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이때 호텔 안으로부터 구석에 남아있던 남자가 뛰쳐나왔는데 누군가 그보다 더 빨랐다.그 남자는 호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나와 이현을 제압하고 여희영을 등 뒤에 감춰 보호했다.최승현은 차에서 내려 차가운 눈길로 갑자기 뛰쳐나온 남자를 보며 말했다.“사람을 도와주기 전에 그쪽이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해요.”말을 마
“괜찮아요. 기사 아저씨께서 한 번만 내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제 것만 낸 거로 하면 되죠. 돌려 주지 않으셔도 돼요.”최승현은 택시비를 내고 차에서 내려 여희영에게 차 문을 열어줬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이 장면을 목격한 온지유는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서 여희영을 몸 뒤로 숨겼다.“두 사람이 왜 같은 차에서 내려요?”온지유는 질투 난 듯 잔뜩 뾰로통한 얼굴로 최승현을 바라보았다. 여희영은 마음속으로 그녀의 연기에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최승현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그쪽을 온지유 씨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그 말에 두 사람은 조각상처럼 굳어졌다. 최승현은 진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했다.여희영은 그런 최승현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무시하고 온지유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여희영 씨, 전 여희영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요. 여희영 씨가 저에게 못되게 굴더라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여희영 씨를 제 여자로 만들 거에요!”고래고래 소리치는 최승현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이리로 주의를 기울이며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여희영은 최승현이 큰소리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온지유와 함께 여이현을 찾으러 올라갔다.연회가 열리는 곳은 교외에 있는 바캉스 호텔이었다. 주최 측에서는 호텔 전부를 연회장소로 정해서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도록 만들었다.홀로 연회장에 들어선 여희영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각양각색의 남녀들이 모여있는 연화장은 마치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이때 그녀 눈이 들어온 간판이 그 추측을 실증해줬다. 그제야 여이현이 왜 온지유를 참가 못 하게 막으려 했는지 깨달았다.“아가씨, 저와 함께 춤을 추실 수 있나요?”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젠틀하게 초대를 보내왔다.여희영은 기분전환을 하려고 연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소개팅할 마음이 없었다.여희영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누군가는 일부러 연회에 참가했다.“이분은 여희영 씨라고 여진그룹 여
“어머, 네가 마음 많이 썼네. 나도 깜박하고 있었는데. 맞아. 예전에는 파리에서 생활하고 싶었지 하지만 지금은 너도 알다시피...”여진숙이 더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모두 원인을 알고 있었다.이때 온지유가 여진숙에게 선물 상자를 가져다주며 말했다.“이 얘긴 그만하는 게 어때요? 자 이건 저희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한번 열어보세요. 맘에 드시는지.”여진숙이 상자를 열자 그 속에는 열쇠와 부동산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부동산 계약서에 쓰여있는 파리 주소를 보자 여진숙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온지유가 여진숙의 모습을 보고 다가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줬다.“사람이 필요하시다면 어머님께서 직접 고르시고 말씀하세요. 의료팀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현 씨가 모두 준비해뒀어요.”여희영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이번 가정모임에서 여진숙이 수작을 부릴 것 같아서 여이현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파리에서 자리 잡고 살 기회를 얻은 여진숙은 그 자리에서 여씨 가문을 여이현에게 전부 넘겨주고 모든 재산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지금부터 여진숙은 남은 세월을 편안히 누리고 재단의 일에 손을 뗄 것이다.세 사람이 모임 장소에서 나오자 여희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인제야 비로소 여진 그룹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이현아, 정말 대단해.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여진숙이 파리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거 말이야.”그녀는 여이현이 그처럼 세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온지유도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여이현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여이현은 차에 시동을 걸고 어느 정도 주행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서찬이 찾아갔을 때부터 눈치챘어요. 그래서 제가 사람을 불러 간병인을 매수했죠. 서찬이 떠나자마자 간병인 쪽에서 정보를 입수했어요.”‘그렇구나.’두 사람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